"소위님 같은 솜씨를 가졌으면서 왜 제트기에 타지 않는 겁니까?"
"프로펠러 없는 비행기는 어떤 것도 믿을 수가 없거든"
1. 유년 시절
하인츠 작센베르크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가 도래한 후인 1922년 7월 12일에 안할트주의 대도시 데사우(Dessau)에서 태어났다. 소년 하인츠는 가깝게 지내는 삼촌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바로 1차 대전 시절 31대의 적기를 격추시킨 에이스 파일럿으로 푸르 르 메리트 훈장까지 받으며 명성을 날렸던 고트하르트 작센베르크(Gotthard Sachsenberg : 1891~1961)였다. 하인츠는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삼촌을 볼 때마다 공중전 이야기와 그들의 기사도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댔고, 고트하르트의 무용담은 어린 소년을 하늘을 날으며 전투기를 모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었다.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이었던 하인츠 작센베르크는 19세가 되던 해에 입대 연령이 차자마자 곧바로 모병소로 달려가 입대 신청을 냈다. 1941년 봄에 정식으로 공군에 입대한 그는 동료 전우들로부터 하인츠를 줄인 "하이노(Heino)"라는 애칭이나 "빔머자르(Wimmersaal)"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42년 여름까지 그는 비행 훈련을 받았는데, 삼촌의 재능을 물려받은 것인지 또래 비행병 후보 중에서 뛰어난 조종 적성을 보이며 하사가 되어 교육을 마쳤다.
2. 동부전선에서
8월 21일에 38번째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작센베르크는 거듭된 출격과 생사의 갈림길에 선 교전으로 심신이 너무 지쳐 있었다. 그는 몇 주 동안 본국에 휴가를 보내게 되었고, 다시 돌아온 후에는 얼마간 지상 근무를 하다가 11월부터 재차 출격을 시작했다. 이런 공백 기간에도 불구하고 그는 43년 말까지 52기를 격추시키고 있었다. 이듬해인 44년 1월에는 전장에 새롭게 나타나기 시작한 신형 전투기 Yak-7에게 피탄 당해 불시착을 했는데, 불붙은 자신의 Bf 109G-6가 활주로에 멈추기도 전에 위험을 느낀 그는 뛰어내렸고, 곧바로 기체는 폭발해 버렸다.
1944년 3월 22일에 잡은 Yak-7은 하인츠 상사의 76번째 전공이었다. 충분한 수상 자격을 갖추게 된 그는 이 격추 후에 기사철십자 훈장 수여자 후보로 추천되었고, 이 서훈은 6월 9일에 수여되었다. 그 사이에도 5월 7일 출격에서는 하루에 무려 6대를 잡았고, 5월 31일에는 4기, 6월 8일에는 5기 이상을 격추시키자 드디어 하인츠 상사의 격추수는 101기가 되었다.
6월 23일에 루마니아 상공에서 조우한 미 육군항공대의 P-51 전투기와 처음 싸워본 교전에서 작센베르크는 이 신형기가 소문 이상으로 무서운 강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간신히 격추당하는 것은 면할 수 있었지만, 부상을 입은 채로 겨우겨우 기지 근처까지 돌아온 하인츠 작센베르크는 타고 있던 Bf 109G-6(166233 "겔베 아인")를 동체 착륙시켜 목숨을 건졌다. 이때 부상을 입었던 작센베르크는 이듬해 3월 3일에 헝가리 상공에서 만난 P-51을 격추해 그날의 원수를 되갚아주었다.
3. 파파게이 슈타펠의 전설
1945년에 작센베르크는 짧은 기간 동안 Me 262를 장비한 제7전투항공단(JG 7) "코만도 노보트니"에 소속되었다가 4월에는 아돌프 갈란트 중장이 직접 모은 역전의 수퍼 에이스들로 편성된 제44전투단(JV 44)에 전격 발탁되었다. 그가 여기서 맡은 임무는 제트 전투기를 모는 것이 아니라, 이착륙하는 순간에 취약해지는 Me 262 제트 전투기의 공중 엄호를 위한 기지방위 비행중대(Platzschutzstaffel)를 이끄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중대 규모가 아니라 슈밤 편대였던 이 소부대는 Fw 190D-9 전투기를 갖추고 적기를 격추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군기를 보호하고 비행장 상공에 들이닥치는 적기를 내쫓는 이착륙 엄호(Start-und Landeschutz)가 주임무였다.별동대였지만, 지휘관인 하인츠 빔머잘 작센베르크에게는 비행중대장(Staffelkapitän) 보직이 주어졌다. 그들이 타는 Fw 190D-9은 기지 대공포 요원들이 오인사격하지 않게끔 주날개 아래에 적색과 흰색으로 화려한 고시인성 도색이 되어 있었다. 하인츠 소위 탑승기에는 "Verkaaft 's mei Gwand ' I foahr in himmel!(내가 천국에 가거든 내 옷을 경매에 부치라구!)"라는 글자가 그려넣어져 있어 한눈에 구별된다. 이 독특한 도색으로 인하여 훗날 앵무새 비행중대(Papagei Staffel)의 전설이 탄생했다.[1] 이런 식별용 도색은 얼마전 독일 공군이 모든 전력을 털어넣었다가 실패로 돌아간 보덴플라테 작전에서 수많은 아군기들을 오사해버린 대공포의 오인사격 사건에서 얻은 전훈을 반영시킨 것이었다.
4. 전후
Gotthard Sachsenberg 중위 보다도 먼저 사망했다.
하인츠 작센베르크의 전쟁 중 회고록
말로만 듣던 그 신형 전투기는 과연 대단했다. 고공에서는 메서슈밋보다 빨랐고 저공에서는 폴케불프를 손쉽게 따라 잡았다. 우리 전투기의 강점인 급강하로도 떨칠 수 없는 그 적기는 나중에 우리들의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내가 처음 마주한 P-51 전투기에 타고 있던 조종사 역시 상당한 전투기 조종에 대한 솜씨를 가진 적이었는데, 그는 탑승기의 이 같은 속도와 놀랄 만한 가속 능력을 활용해 나를 궁지에 몰아 넣었다. 나중에 본토 방공전에서 P-51에 속도가 붙지 않았을 때는 우리 최신예기보다 상승률이 조금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문제는 적기들이 항상 높게 날아 온다는 것이었다.
5. 서훈
2급 철십자 훈장1급 철십자 훈장
공군 명예컵 (1943년 10월 2일)
독일 황금십자장 (1943년 10월 17일)
기사철십자 훈장 (1944년 9월 6일)
제2차 세계 대전 전투기 에이스 일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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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56b94> ▲ 67~84위 | ||||
순위 | 이름 | 국적 | 격추 수 | 비고 | |
87위 | 라인하르트 자일러 | 독일 | 109대 | ||
88위 | 에밀 비치 | 독일 | 108대 | ||
한스 한 | 독일 | ||||
베른하르트 베히텔 | 독일 | ||||
91위 | 빅토르 바우어 | 독일 | 106대 | ||
베르너 루카스 | 독일 | ||||
93위 | 귄터 뤼초 | 독일 | 105대 | ||
94위 | 아돌프 갈란트 | 독일 | 104대 | ||
에버하르트 폰 보렘스키 | 독일 | ||||
하인츠 작센베르크 | 독일 | ||||
97위 | 하르트만 그라서 | 독일 | 103대 | ||
98위 | 지크프리트 프라이타크 | 독일 | 102대 | ||
프리드리히 가이스하르트 | 독일 | ||||
에곤 마이어 | 독일 | ||||
막스-헬무트 오스터만 | 독일 | ||||
요제프 부름헬러 | 독일 | ||||
헤르베르트 롤바게 | 독일 | 4발 중폭격기 격추 1위 | |||
104위 | 베르너 묄더스 | 독일 | 101대 |
인류 최초 적기 100기 격추 스페인 내전에서 14기 격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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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미팅 | 독일 | ||||
요셉 프릴러 | 독일 | 스핏파이어 격추대수 1위 (68대 격추) | |||
울리히 베르니츠 | 독일 | ||||
108위 | 파울-하인리히 데네 | 독일 | 99대 | ||
레오폴트 슈타인바츠 | 독일 | ||||
볼프강 슈페테 | 독일 | ||||
하인리히 바르텔스 | 독일 | ||||
한스 슐레프 | 독일 | ||||
113위 | 호르스트 하닝 | 독일 | 98대 | ||
구스타프 뢰델 | 독일 | ||||
헬무트 뤼플러 | 독일 | ||||
▼116~139위 |
[1]
이 명칭은 훗날 밀덕들에 의해 붙여진 것이지 정식 부대명칭은 아니었다. 당시 JV 44 부대원들은 이 고마운 전우들을 가리켜 작센베르크 슈밤(Sachsenberg Schwarm)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