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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 생애 | ||
소속 |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컬리지) | ||
관련 학자 |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 로버트 훅 · 에드먼드 핼리 ·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 | ||
저서 |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 ||
기타 | 남해회사 거품 사태 |
<colbgcolor=#dddddd,#010101>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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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자연철학 |
저자 | 아이작 뉴턴 |
언어 | 라틴어 |
발행일 | 1687년 7월 5일 |
권수 | 3권 |
[clearfix]
1. 개요
아이작 뉴턴의 도서.뉴턴 역학이 집대성되어 있고, 물리학을 넘어 인류지성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책이자 17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책이다.[2][3] 초판 발행은 1687년 라틴어 본이다.[4][5] 첫 페이지에서 제목을 단어마다 한 줄씩 배치했는데, 둘째 줄과 넷째 줄 단어는 수식어라 크기가 작고 첫째와 셋째 줄 단어가 중요하므로 크게 적혀있다. 자연과학에서의 위치를 요약할 수 있는 단어여서 셋째 줄에 위치한 프린키피아(Principia)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6] 국내에도 '프린키피아'라는 이름의 한국어판이 세 권짜리로 출간되어 있다.
2. 출판 과정
사실 출판 20년 가량 전에 이미 책의 기본적인 내용은 완성되어 있었으나, 로버트 훅과 광학에 대한 논쟁[7]에서 상처받은 그는 발표하기를 꺼려 계속 묵혀두고 있었다. 그러다 1684년, 에드먼드 핼리[8]가 뉴턴을 찾아왔다. 당시엔 요하네스 케플러 덕에 행성의 공전궤도가 타원임이 이미 알려져 있었는데 왜 그러한 궤도를 돌게 되는지는 아무도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핼리는 만유인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아이디어가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라고 생각했지만 만족스럽게 풀어내지 못해 도움을 구하러 갔다. 핼리가 뉴턴에게 "만유인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면 행성궤도가 어찌 될 것 같습니까?"고 물어보자 뉴턴은 미리 계산을 해봤었기 때문에 즉각 타원이라고 답했다. 이에 핼리가 깜짝 놀라서 어떻게 알아냈는지 물어보자 뉴턴은 "그건 내가 20년 전에 계산해뒀다네"라고 대답했다.만유인력과 뉴턴(Issac Newton - and the scientific revolution)에서는 뉴턴이 계산을 해봐서 안다고 답하고 한참 계산한 것을 뒤적이지만 결국 못 찾아서 다시 계산해서 보내주겠다고 말한 다음 계산해서 보내줬다고 나와 있는데, 아무튼 이 말에 핼리는 기절초풍하며 지금이라도 발표할 것을 권유했고 뉴턴은 비로소 자신의 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출판했다. 뉴턴은 당시 왕립학회에 대한 감정이 아직 남아있었고, 학회는 학회대로 재정 문제로 새 서적 출판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9], 핼리가 적극적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나서주었다. 때문에 서문에 핼리 덕분에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는 감사가 적혀 있다.
3. 내용
당시 저술에는 라틴어를 쓰는 게 학계의 원칙이었기 때문에 영국에서 쓰였으나 제목과 내용은 라틴어이다. 총 세 권[10]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권과 2권은 물체의 움직임에 대하여='고전역학'의 기초적인 부분 전부[11], 3권은 태양계의 구조 설명에 실제로 사용하는 내용이다.미적분학의 개념을 뉴턴이 당시에도 알았다곤 하나 이 책에선 적극적으로 사용하진 않았다. 사용했다 해도 공리 선택의 차이일 뿐 결과는 어차피 똑같지만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은 현재의 엄밀하게 정의된 극한에 기반한 미적분과는 다르므로 현대적인 설명방법과 같진 않았을 것이다. 대신 엄밀한 기하학적 방법으로 이론을 전개하는데, 친구도 읽기 어렵다고 내던지는 수준의 책이 되어버렸다. 난해한 저서에 짜증이 난 한 귀족[12]은 그가 길거리에 나오자 그를 가리키며 조롱하길 "저기 자기 자신을 포함해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책을 쓴 녀석이 간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가뜩이나 모국어인 영어로 읽어도 난해할 문제를 더 난해한 언어인 라틴어로 저술했으니...
이건 아는 척 거들먹거리는 이들을 엿먹이고 이론의 발전에 도움은 되지 않는 비판은 피하려는 뉴턴의 의도였다. 실제로 뉴턴은 제3권에서 "나는 원래 제3권을 일반인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썼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 원리들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 원리들에 따라서 생기는 유용함을 잘 모를 것 같고, 또 사람들이 오랜 세월 젖어 있던 편견을 버리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그에 따른 논쟁 거리를 미리 막기 위해 나는 결국 제3권의 내용을 수학적 방법으로 바꿔서 썼다."라고 밝히고 있다.
4. 의의
당시는 과학이 철학으로부터 독립된 학문이 아니었기에, 제목처럼 뉴턴은 자신을 자연철학자, 즉 철학자라고 칭하며 살았는데, 이 책은 철학의 보편에 대한 증명 가능성을 완벽하게 보여주기 시작한 최초의 책[13]이기도 하여, 이를 통해 과학혁명의 끝판왕 역할로 뉴턴 사후 자연철학을 유럽학계가 드디어 철학으로부터 온전히 독립시키고 과학이라는 표현이 더 보편적인 표현이 되게 만들었을뿐만 아니라, 철학쪽에도 영향을 미쳐 유럽 철학사의 흐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다음 세기에 임마누엘 칸트라는 독일의 철학자가 나오면서 형이상학의 보편성, 윤리학의 보편성, 예술철학(미학)의 보편성 등 뉴턴 정신을 이어받은 보편성이 철학계 최고 이슈가 된다. 즉 철학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준 연구라는 것. 아이작 뉴턴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의 인물들과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후보에 들어가는 이유다.5. 여담
- 학습만화인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50선과 How So? 하버드대 선정 인문고전에서 다루었다.
- 뉴턴의 프린키피아의 위상에는 못 미치지만, 버트런드 러셀,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 공저의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도 프린키피아로 부르기도 한다. 이것도 극악무도한 난이도로 유명하다. 맨체스터 공대 기계공학과 대학원생이던 비트겐슈타인이 이 책을 읽고 저자들을 찾아 충동적으로 그들이 살던 케임브리지대학교에 가서 러셀[14]을 만났고, 그 인연으로 이미 독일 대학에서 공학 석사까지 했던 상황에서 바로 기계공학 박사의 길을 버리고 결국 철학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참고로 이 프린키피아도 3권까지 출판은 되었는데, 1권이 이미 안 팔린 상황이라 나머지 2, 3권은 두 사람이 출판사에 본인들 사비를 갖다 바치다시피 하여 겨우 출판하였다.
- 원래는 4권까지 발간하려 했으나 취소되었다는 설이 있다.
- 2016년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유럽판 초판이 370만 달러에 낙찰되어 과학책 최고가를 경신했다. 그런데 종전 기록도 제임스 2세에게 선물한 영국판이라서 프린키피아의 다른 판본끼리 기록을 바꾸었다. #
6. 외부 링크
- 원본 아카이브 - (라틴어)
7. 관련 문서
[1]
The 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
[2]
사실상 사람들마다 세부적인 판단은 다르겠지만 "
성경", "
호메로스"등과 함께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책이자, 가장 영향력있는 책으로도 평가 받기도 한다.
[3]
그나마 이에 비벼볼만한? 책으로는
국부론,
자본론,
종의 기원등이 있겠지만 이들조차도 프린키피아에 비하면 밀린다는것이 압도적인 중론이다.
[4]
PRINCIPIA(The 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 Isaac Newton 1686
https://archive.org/details/philosophiaenatu00newt_0/page/n10/mode/2up?view=theater
[5]
The 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 (1846) by Isaac Newton, translated by Andrew Motte
https://archive.org/details/newtonspmathema00newtrich/page/n8/mode/2up
[6]
라틴어로 '원리'를 뜻한다. 영어 단어 "principle"도 여기서 유래했다.
[7]
뉴턴은 빛이 입자라 주장했고 훅은 빛이 파동이라 주장했다. 당시
왕립학회 주류였던 뉴턴에 의해 훅은 자신의 초상화를 철거당하는 등 모욕을 당하지만
후에 둘의 의견은 모두 맞았다고 밝혀진다.
[8]
핼리 혜성을 예측한 걸로 유명한 그 사람이다.
[9]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인
2014년판 코스모스에 의하면, 학자들에게 지급할 봉급이 없어서, 임금을
책으로 지급하는 막장 상황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당시는
왕립학회 뿐만 아니라,
영국 왕실의 국책 사업이던
영국 동인도 회사도 경영난에 시달리는 통에, 주주들에게 줄 배당금을 돈 대신 재고품으로 남겨논
후추로 지불하기도 했을 정도로 영국 경제가 불경기였던 시절이다.
[10]
물론 당시기준. 현재 기준으론 마음먹으면 한 권에 몰아넣을 수 있는 분량.
[11]
이를 사용해 케플러 법칙들을 '증명'한다. 대표적으로
케플러 제3법칙을 구심력과 만유인력을 사용하여 증명한 것이 있다.
[12]
당시 뉴턴이 재직 중이었던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어느 학생이라는 설도 있다.
[13]
이는 뉴턴이 수학적 방식으로 자기 이론들을 싹 다 풀어버린 영향이 컸다. 반박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훌륭한 학자들조차 2% 부족한 수식에 경향성을 설명한 글을 덧붙인 형태의 논문들이 많았고, 그에 따라 맞는 이론조차 반박도 자주 당했고 과학적 정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식으로만 100% 다 써서 설명해버린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뉴턴이 수학적으로 너무나 엄청난 천재였기에 가능했다. 당대 학자들도 뉴턴을 최고로 친건 당대의 부족했던 수학적 틀에서 뉴턴만큼 한세대에 진보하는건 상상을 못했기 때문이고, 후대 수학자들 중에도 뉴턴이 남긴 수학적 영감들을 깊게 연구하여 의미있는 수학정리들을 만들어낸 경우가 많다.
[14]
안타깝게도 화이트헤드는 못 만났는데, 두 사람은 이후에도 평생 한번도 못 만났다. 화이트헤드가 마지막 3권까지 책을 내고 나서 런던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어 런던에 가버렸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가을에 케임브리지에 간건데, 그해 봄에 화이트헤드가 런던으로 갔다. 6~7개월 차이로 못 만난 것이다. 이후에라도 만났으면 좋았겠으나 화이트헤드는 나중에 미국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도 가서 다시는 유럽으로 돌아와 살지 않고 미국에서 죽었기에(케임브리지라는 이름이 좋아서였는지 말년에 교수 그만두고도 미국 케임브리지에서 살다가 죽었다. MIT가 있는 그 도시이다.) 평생 못 만났다. 사실 수학원리는 러셀의 선배 겸 스승이던 화이트헤드의 주도로 쓰여진 책이고, "코뿔소 논쟁" 등 처음 만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학적으로 날카로운 질문들에 러셀이 쩔쩔 맸다는 기록을 러셀 본인이 남긴 걸 보면(당시의 비트겐슈타인은 정확한 설명을 자꾸 요구했다고 하니 진짜 답을 간절히 원한 듯 하다), 러셀 말고 그쪽 분야의 당대 끝판왕인 화이트헤드를 만났다면 의미있는 일이 충분히 있었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죽을때까지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