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17:43:22

프르셰미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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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1457E><colcolor=#FFF> 보헤미아 전설상의 통치자
프르셰미슬
Přemysl
파일:프르셰미슬.jpg
제호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 프르셰미슬
(Přemysl)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아내 리부셰
자녀 네자미슬, 라도빌, 루도미르
1. 개요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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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헤미아의 전설상의 통치자. 프르셰미슬 왕조의 시조로 간주되는 인물이다.

2. 행적

12세기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 학장이자 연대기 작가이며 외교관으로도 활동했던 코스마스(Cosmas, 1045년경 ~ 1125년)가 집필한 <보헤미아 연대기>에 따르면, 리부셰라는 현명한 여인이 부족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잘 수행했지만, 부족의 남자들이 여자가 판관이라는 사실에 불만을 품고 남자를 공작으로 세우라고 요구하자, 리부셰는 산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산 너머에 작은 강 빌리나(Bilina)가 있고, 그 강둑에는 스타디체(Stadice)라는 마을이 있다. 그 안에는 길이가 12보이고 너비도 같은 경작지가 있다. 이 경작지는 수많은 들판 사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밭에도 속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공작은 이 경작지에서 가지각색의 황소 두 마리를 쟁기질하고 있다. 황소 중 하나는 흰색 줄무늬로 띠를 띠고 있는 것 같고, 머리도 흰색이다. 다른 하나는 머리부터 등까지 모두 흰색이며, 뒷다리도 흰색이다. 자, 원한다면 내 지팡이와 외투와 공작의 옷을 가져다가 백성과 나의 명령에 따라 가서 그를 당신들의 공작이자 내 남편으로 데려와라. 그 남자의 이름은 프르셰미슬이다. 그 사람은 너희의 머리와 목에 떨어질 많은 법을 고안할 것이다. 이 이름은 '계획적인' 또는 '과도한 생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의 후손들이 이 나라를 영원히 다스릴 것이다."

부족민들은 곧바로 사절단을 보냈다. 사절단은 프르셰미슬이 리부셰가 묘사한 모습 그대로 땅을 갈고 있는 것을 찾아냈다. 사절단이 그에게 공작으로 삼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프르셰미슬은 사절들에게 농민들이 먹는 음식을 대접한 뒤 자리에 앉아 지팡이를 땅에 꽃았다. 지팡이는 식사하는 동안 3개의 콩나물이 있는 나무로 변했는데, 한 새싹은 무성하게 자랐지만 나머지 2개는 말라버렸다. 사절들이 이 일이 벌어진 이유를 궁금해하자, 프르셰미슬은 이렇게 답했다.
"내가 리부셰와 결혼하면 세 아들이 태어나겠지만 한 사람만 통치하게 될 것이다."

그 후 프르셰미슬은 호화로운 말과 신발을 신었고, 좋은 말을 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출신을 잊지 않고 나무 인피로 짠 신발과 베낭을 가져다가 미래를 위해 보존하라고 명령했다. 이후 리부셰와 결혼한 뒤 세 아들 네자미슬, 라도빌, 루도미르를 낳았고, 보헤미아인들을 현명하게 다스려 야만성을 억제하고 오랫동안 유효한 법을 제정했다.

리부셰가 죽을 때까지 통치가 평온했지만, 리부셰 사후 블라스타가 이끄는 부족 내 여인들이 남자에게 복종하기를 원하지 않아 비셰가르드 맞은 편에 데빈 성을 지었다. 이후 남자와 여자간의 전쟁이 7년간 벌어진 끝에 블라스타가 전사했고 남자들이 성을 함락시켰다고 한다. 프르셰미슬 사후 장남 네자미슬이 보헤미아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고 한다. 16세기 보헤미아 성직자이자 연대기 작가 리보차니의 바츨라프 하예크(Václav Hájek z Libočan)에 따르면, 프르셰미슬과 리부셰는 721년에 결혼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 학계에서는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프르셰미슬은 왕조의 창시자로서 보헤미아에서 큰 존경을 받았다. 보헤미아 통치자들은 그들의 기원을 드러내기 위해 대관식 중에 그의 그림이 그려진 라프테(Lapte: 슬라브 농민들이 주로 신은, 나무 인피나 자작나무 껍질로 짠 신발)를 신었고, 그의 베낭을 어깨에 매었다.[1] 이 유물들은 비셰흐라드에 있는 공작의 방에 보관되었고, 바츨라프 4세 시기까지 보헤미아 군주의 대관식에서 사용되었다. 이 유물들은 1420년에 후스파가 비셰흐라드를 함락시켰을 때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체코의 민속학자 블라디미르 카르부시츠키(Vladimír Karbusický, 1925 ~ 2002)에 따르면, 그를 비롯한 보헤미아 역사의 신화적 인물 12명의 이름은 9세기에 보헤미아인이 프랑크 왕국에 보낸 고대 슬라브어 텍스트의 일부에서 유래했다. 이 텍스트에는 다음의 문구가 담겨 있었다.

카르부시츠키에 따르면, 이 문구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고 한다.
"발걸음을 멈추세요, 테타[2]. 그리고 더 잘 생각하십시오. 나는 당신을 위해 전쟁이나 악행을 의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절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손님을 환영합니다."

현대 체코어로 변환하면 이렇게 해석된다고 한다.

[1] 14세기에 집필된 달리밀의 연대기에 따르면, 바츨라프 1세만이 자신이 농민 출신이라는 걸 부끄러워해 대관식에서 이 유물들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2] 카르부시츠키는 이 용어는 당시 프랑크족의 지도자 이름이거나 보헤미아에 거주하는 슬라브인들이 서쪽 이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