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6 03:49:23

스바토플루크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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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1457E><colcolor=#FFF> 보헤미아 프르셰미슬 왕조 16대 공작
스바토플루크 2세
Svatopluk II
파일:스바토플루크 2세.jpg
제호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 스바토플루크 2세
(Svatopluk II)
출생 1080년
사망 1109년 9월 21일 (향년 29세)
재위 보헤미아 공국의 공작
1107년 ~ 1109년
자녀 바츨라프 진드리치
형제 오타 2세 올로모우츠
아버지 오타 1세 올로모우츠
어머니 헝가리의 에우페미아
1. 개요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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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헤미아 공국 프르셰미슬 왕조 16대 공작.

2. 행적

1080년경 보헤미아 공작 브르제티슬라프 1세의 넷째 아들이자 올로모우츠 공작인 오타 1세 올로모우츠와 헝가리 국왕 벨러 1세의 딸 에우페미아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오타 2세 올로모우츠가 있었다. 1086년 오타 1세가 사망했을 때, 보헤미아 국왕 브르제티슬라프 2세는 오타 1세의 두 아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올로모우츠 공국을 자신의 아들 볼레슬라프에게 넘겼다. 에우페미아는 이에 맞서 브르노 공작 콘라드 1세 등 자신을 지지하는 몇몇 귀족들과 함께 할거했고, 볼레슬라프는 그 와중에 사망했다.

브르제티슬라프 2세는 이를 응징하고자 1091년 모라비아를 침공해 브르노를 포위했지만, 도중에 자신의 아들 브라티슬라프 2세가 보헤미아 본토에서 아버지를 축출하려고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장로들의 권고에 따라 콘라드와 화해하고 후계자로 지명했다. 그 후 에우페미아가 올로모우츠를 관리하다가 1095년에 스바토플루크에게 올로모우츠의 통치권을 넘겨줬다. 스바토플루크는 1103년 보헤미아 공작이자 사촌인 보르지보이 2세와 함께 폴란드 대공 즈비그뉴와 협력해 또다른 폴란드 대공 볼레스와프 3세 크쉬보우스티의 영역을 공격했다.

볼레스와프 3세는 이에 맞서 부하 젤리스와프에게 모라비아를 습격하게 했다. 젤리스와프는 모라비아의 많은 도시와 마을을 약탈했지만, 귀환하던 중 보르지보이 2세의 습격을 받고 패배했다. 이에 볼레스와프 3세 본인이 직접 모라비아로 재차 출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볼레스와프 3세는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지 못하자 외교술을 구사하기로 했다. 보르지보이 2세는 그로부터 막대한 뇌물을 받고 즈비그뉴와의 동맹을 끊었다. 그런데 보르지보이 2세는 볼레스와프 3세로부터 받은 뇌물을 스바토플루크에게 나눠주지 않았다. 그는 이에 반감을 품고 보르지보이 2세를 축출할 기회를 노렸다.

1105년, 보르지보이 2세는 자신에게 폐위된 뒤 복위를 꾀한 아버지 하인리히 4세에 대적하는 하인리히 5세를 지원하기 위해 바이에른으로 진군했다. 사촌인 스바토플루크가 이를 이용해 프라하에서 정변을 일으키려 했으나 실패했고, 폴란드 대공국으로 망명해 볼레스와프 3세의 보호를 받았다. 1107년, 볼레스와프 3세는 헝가리 국왕 칼만과 연합해 보헤미아로 쳐들어가 보르지보이 2세를 축출하고 스바토플루크를 보헤미아 공작 스바토플루크 2세로 앉혔다. 보르지보이 2세는 하인리히 5세에게 망명했다.

이후 하인리히 5세는 공작위에 오른 스바토플루크 2세를 소환했고, 스바토플루크 2세는 형제 오타 2세에게 통치 대행을 맡기고 황제를 알현하러 갔다가 체포되었다. 보르지보이 2세는 스바토플루크 2세가 체포된 틈을 타 그로이츠슈 백작 비프레히트 2세의 지원을 통해 복위를 꾀했지만, 스바토플루크 2세를 대신해 통치를 맡고 있던 오타 2세에게 격퇴되었다. 그 후 스바토플루크 2세는 하인리히 5세에게 많은 양의 금을 지불하고 항상 복종하겠다고 맹세해 석방된 뒤 보헤미아 공작으로 인정받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보르지보이 2세는 폴란드 대공 볼레스와프 3세 크쉬보우스티의 궁정으로 망명했다.

스바토플루크 2세는 폴란드의 지원 덕분에 보헤미아 공작이 되었지만 볼레스와프 3세의 간섭을 받기를 거부했다. 이에 반감을 품은 볼레스와프 3세는 1108년 스바토플루크 2세가 황제의 명령에 따라 신성 로마 제국군의 헝가리 원정에 동행한 틈을 타 보르지보이 2세를 보헤미아 공작에 복위시키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도중에 포모제인이 북쪽 국경을 넘어 여러 마을을 파괴하자 군대를 북쪽으로 돌렸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스바토플루크 2세는 혹여 보헤미아 내에서 볼레스와프 3세에 호응해 자신을 축출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을 우려해 보헤미아의 강력한 귀족 집안인 브르쇼프 가문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여 처형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했다.

1109년, 스바토플루크는 하인리히 5세와 손잡고 폴란드를 향한 원정을 단행하려 했다. 그러나 그 해 9월 21일 군대를 사열하던 중 어느 기병의 급습을 받고 뒤에서 창으로 찔려 암살당했다. 암살자 얀 브르쇼프는 도주했다가 1년 후 체포된 뒤 코가 잘리고 눈이 뽑히는 형을 받았다. 보르지보이 2세는 그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프라하로 진격했지만 오타 2세에게 패배하고 사로잡힌 뒤 프라하 요새에 감금되었다. 비프레히트 2세의 장남 비프레히트 3세가 그를 도우려 했지만 프라하 인근 전투에서 오타 2세에게 격퇴되었다. 이후 양자는 보헤미아 각지에서 내전을 이어가다가 1110년 하인리히 5세가 보르지보이와 비프레히트 3세를 봉국을 혼란에 빠뜨린 죄로 체포하고 보르지보이 2세의 남동생 블라디슬라프 1세를 보헤미아 공작으로 선임하면서 분쟁이 종식되었다.

그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아내에게서 아들 바츨라프 진드리치를 낳았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5세를 대부로 삼았다. 바츨라프 진드리치는 오타 2세가 사망한 1126년부터 1130년까지 올로모우츠 공작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