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종교의 미칭.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정치적 신조어로 분류된다.2. 이슬람
이슬람의 별칭. 의외로 이 표현을 최초로 쓴 사람은 조지 W. 부시다. 9.11 테러 이후 가진 담화에서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언급하고, 테러는 이슬람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발언하였다. 이는 테러를 일으키는 일부 이단 격인 이슬람 근본주의 내지 이슬람 극단주의와 평화적으로 여겨지는 대다수 무슬림들을 구별하기 위한 정치적인 수사로 풀이된다.이슬람권의 지도자 중에서는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이 평화의 종교 표현을 인용하여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며 본래의 가르침이 변형되거나 잊혀지면서 무슬림이면서 살상을 일삼는 이들이 나온다고 발언하였다. 이후에는 이슬람권 또는 비이슬람권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 되었다. 2016년 방글라데시 다카 베이커리 테러 이후 방글라데시 총리의 성명에서도 테러범들을 규탄하면서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표현이 등장하였다.
2.1. 근거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는 근거 중 하나로 이슬람 이란 단어 자체가 평화란 뜻이라는 주장이 있다. 아랍어 إسلام 은 복종하다, 의탁하다(신에게)란 뜻이 있으며, 평화를 뜻하는 سلام (살람)이란 단어와는 같은 어근(s-l-m)을 공유하지만, 이를 근거로 이슬람이란 단어 자체가 평화란 뜻이란 주장으로 연결되기엔 무리가 있다. 平和와 平定에는 같은 平자가 들어가지만 의미는 전혀 다른 것과 비슷하다. 그 밖에 일부 쿠란 구절이 인용되기도 하는데 다음의 구절이 가장 유명하다.타인과 지상에 해악을 끼치지 아니한 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살해하는 것은 모든 백성을 살해하는 것과 같다
이 구절은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이지만,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는 전후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인용문에서는 장의 앞 부분인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선언(선포,경고)한다라는 구절이 빠져 있는데, 쿠란 5장에는 유대인들과 구약성경에 연관된 내용이 자주 나오며, 바로 직전에는 구약에 기록된 최초의 살인(카인이 질투때문에 동생 아벨을 죽인) 인 듯한 사건이 언급된다. 이에 하나님(알라)이 질투때문에 형제도 죽이는 죄를 저지른 인간(유대인)을 보고 내린 계명이 바로 저것이다. 빠진 부분을 포함하면 다음과 같다.이런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율법을 내렸나니, 타인과 그리고 지상에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은 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죽이는 것은 모든 백성을 죽이는 것과 같으며, 또한 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모든 백성을 구제하는 것과 같다 하였으매 그리하여 선지자들이 말씀을 가지고 너희에게 오셨노라 그 후에도 너희 가운데 대다수는 지상에서 과오를 저지르고 있더라
- 쿠란 5장 32절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모든 인류를 죽인 것과 같다"는 구절만 떼어놓고 보면 보편적인 생명존중사상으로 느껴지지만, 질투심에 형제를 죽인 전력이 있는 인류에 대한 질책으로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내린 훈계에 가까우며,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계속 죄를 범한다는 식으로 유대인을 까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다음 장을 보자.- 쿠란 5장 32절
정녕 알라와 그의 사도에 대항하여 싸우며 지상에 부패가 도래하도록 하려는 자들에 대한 벌은 죽임을 당하거나,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손발이 서로 다르게 잘리우리니 그들은 그 땅에서 추방될지라 이는 현세에는 치욕이요, 내세에는 무거운 징벌이 기다리고 있노라
- 쿠란 5장 33절
이런 식으로 이 인용구절은 전체적으로 유대인을 까는 내용에 포함된 구절로, 상기의 인용구는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내린 계명에 가깝다. 율법 부분의 문구만을 딴다면 오늘날에도 평화와 연관된 구절로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전체문맥으로 봤을 때 현대적 관점에서의 강력한 생명존중사상과 통하는 문구로 보기는 어려우며 - 쿠란 5장 33절
애초에 "해악"이라는 문구가 어떤 의미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이슬람을 제외한 다른 신앙을 퍼뜨리는 것을 "해악"으로 규정한다면, 저 문구를 통해 이교도에 대한 테러행위를 방어할 수는 없는 것이다.
2.2. 비판
이슬람에서 추구하는 평화는 사후 내세에서의 궁극적인 평화이지 현실 세계에서 전쟁이 없는 평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마치 이슬람이 전쟁을 반대하는 사상이라는 식으로 말장난을 하니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 이런 식으로 말장난을 치던 대표적인 인물로 튀르키예의 아드난 옥타르(필명 하룬 야히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슬람이야말로 모든 테러의 치료제이며 테러는 진화론의 유산이라는 황당한 주장 및 별별 괴상한 음모론을 주장하다가,9.11 테러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에 기반한 테러 및 내전, 전쟁 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평화의 종교"라는 수사는 공허한 말로 전락하였다. 테러 발생→테러는 이슬람과 무관,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이슬람측의 반복적인 반응이 일종의 클리셰가 되어 버린 것. 지금은 오히려 반이슬람을 표방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반어적인 어법으로 자주 쓰인다. 이슬람에 의한 테러 공격 회수를 집계해주는 유명한 반 이슬람 사이트 이름이 religion of peace이고 구글에서 Religion of peace라고 치면 완전히 밈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있다. Religion of Piece(폭탄테러로 인해 몸이 "조각"났다)나 Religion of (Rest in)Peace등으로 비꼬기도 한다. 90년대 유명 PC게임인 C&C시리즈에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단체인 Nod 형제단이 맨날 Peace, Peace thorough Power, Nod technology is Peace같은 문구를 반복하는 걸로 나오는 걸 보면 서구 사회에서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레퍼토리를 예전부터 비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는 말은 이슬람 극단주의 진영에 의해서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고 있다. 아무리 개판 막장으로 살아도 비무슬림을 무슬림으로 개종시키면 모든 죄가 용서받고 천국으로 가서 영원한 평화를 누리게 된다는 게 이들 극단주의자들의 주장인데, 당연히 이런 식의 평화를 추구하면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 수 밖에 없다. 이슬람 근본주의 이론가인 이집트의 사이드 쿠틉은 모든 인류가 알라의 지배에 복종할 때가 되어야만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고, 다에시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는 아예 이슬람은 결코 평화의 종교[1]였던 적이 없으며, 전쟁의 종교라고 발언하였다.
이슬람 온건주의자들도 비슷한 오류를 저지르는 건 마찬가지라.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테러를 일으킬 때마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고 테러리스트는 무슬림이 아니다."라는 주장만 되풀이한다. 당연히 무슬림 아닌 사람들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들은 진정한 무슬림들이 아니에요. 우리와 상관없어요."라고 선 긋는 행동에, 책임을 회피한다고 생각했으면 생각했지 '아 그렇구나, 테러리스트들은 무슬림이 아니구나.'라고 반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테러리스트가 무슬림이 아니라고 단정짓는 판단 역시 이슬람 신학 상에서 굉장히 예민한 논제인 타크피르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정작 이슬람에서 말하는 평화의 종교 할 때 그 평화는 내세에서의 평화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고 얼버무리기 때문에 비무슬림들 입장에서 혼란과 짜증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며 단지 소수의 무슬림이 극단주의자일 뿐이라고 말하는 몇몇 온건 무슬림 선교사들의 논리를 반박할 수 있는 증거 중 하나가 설문 조사이다. PewResearch라는 사이트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의 법 중 하나인 샤리아를 국법으로 제정하자는 무슬림이 여러 나라에서 50-80%[2]를 차지한다. 또, 빈 라덴이나 알 카에다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무슬림도 상당수 존재한다![3]
2.3. 이슬람은 테러의 종교인가?
사실 그렇다고 테러리스트들 중에 무슬림의 비중이 높다 한들 모든 무슬림이 테러리스트는 아니지만 테러리스트는 모두 무슬림이다 같은 주장이 사실이 되긴 어렵다. 가령 위에서 언급한 아부 바르크 알 바그다디가 이끄는 IS는 애초에 무슬림도 이유 불문하고 죽이는 사람들이고 비무슬림 테러리스트들도 찾아보면 꽤 많다. 당장 IS가 요르단 조종사조차도 잔혹하게 분살한 전적이 있다. 가령 #에서 보이듯이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샤리아라면 모를까 폭탄테러에는 부정적이다.그리고 이런 인식이 확산되며 테러와는 전혀 상관없는 무슬림들에게까지 이유없는 증오를 보이는 경우가 유럽에서 늘어나고 있다. 가령 무슬림들에게 이유없이 산성 테러를 가한 사건이라던지,영국 런던의 모스크에서 트럭 테러로 무슬림 1명이 죽는 사고가 일어났다. 예외적으로 바로셀로나에서는 테러사건이 일어났지만 무슬림 혐오가 확산되는 경향은 포착되지 않았다. 즉 사실상의 연좌제가 무슬림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셈.
여기에 따르면 대부분의 무슬림 국가들에서는 알 카에다를 부정적으로 본다. 이집트 73%, 튀니지 63%, 요르단 77%, 파키스탄 55%, 터키 72%, 레바논 98%. 탈레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이집트 76%, 파키스탄 66%, 튀니지 59%, 요르단 81%, 터키 69%, 레바논 97%이다.
자살폭탄 테러에 대한 지지율 또한 여기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무슬림 국가들에서는 비교적 낮다. 사실 과거에는 70%대까지도 찍었지만 10년 사이에 반절 가량 줄었다. 실제 해당 기사에서도 자살폭탄테러에 대한 지지는 과거에 비해서는 줄었다고 보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가장 높은 팔레스타인은 62% 정도이고 파키스탄에서 제일 낮다.3% 정도.
2.4. 연관 표현
- nothing to do with Islam(이슬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평화의 종교"와 마찬가지로 테러나 사건 사고 이후 상투적으로 쓰이면서 반어적인 어법으로 쓰이고 있다.
3. 불교
최근에는 이슬람에 상대적으로 밀린 감이 있지만 불교가 자비와 평화의 종교라는 수식어를 달기도 한다. 배타적인 교리가 아니고 살생을 금하는 교리 등에 평화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특히 1960년대 이후 서구권에서 자신들이 원래 믿던 기독교는 폭력적인 종교로 해석하고, 정반대로 자비의 종교인 불교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인터넷과 현실을 막론하고 "과연 불교가 절대적으로 평화로운 종교인가?"라는 회의적 관점도 점점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불교에 의해 주도되는 폭력 행위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대한민국에서는 고신대학교 정일권 교수가 쓴 '붓다와 희생양'에서 불교도 여느 종교가 그렇듯, 결코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서구인들이 지나치게 불교를 미화 왜곡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보수적 기독교인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에 약간의 편향은 있지만, 결코 예수천국 불신지옥식으로 무식하게 결론짓는 책이 아니다. 되려 기독교인이 쓴 불교 비판서 치고는 최대한 논리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으로 비판하려 애쓴 점도 보일 지경이다.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외국인 출신 일본 조동종 승려)의 '불교 파시즘'에서도 불교, 특히 선불교가 평화롭기만 한 종교는 아니며 되려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사상적 기반들 중 하나가 되었다는 날선 비판을 하고 있다.
또한 2000년대 이후 미얀마에서 무슬림 로힝야족 탄압에 군사정권과 결탁한 현지 불교계가 앞장서고 있고, 태국에서도 불교계가 왕실, 군부와 연합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4. 기독교
교리상으로는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리라, 원수를 사랑하라 등 평화를 강하게 지향하고 있으며, 예수의 행보 역시 그와 일치한다. 따라서 초기의 기독교 신자들은 병역 거부를 실천하는 등 강한 반전주의, 평화주의, 반군국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평화에 대한 논의 자체가 반국가적인 행위인 것처럼 오인되는 현실에서 평화 추구는 반체제적 이념 운동으로 간주되었다.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인의 참전을 정당화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전쟁에 참가하여 용감하게 서로 죽이는 것이 기사도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천국 가는 길이기도 하다.'라는 것이 주류적 사고방식이 되었다. 이는 결코 극단주의자의 사고방식이 아니다. 물론 이는 세속 국가에서도 국민들에게 교육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백년 전쟁 당시 잔 다르크는 '신의 뜻은 프랑스가 승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같은 기독교인인 영국군과 싸우는데 앞장섰다.
상대가 같은 기독교인임에도 그럴진대 이교도나 이단자에게는 더욱 잔혹하게 대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내세우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중세 카타리파 탄압 학살 때 진압군 측 추기경이 한 말인 "이단이든 아니든 모조리 죽여라, 신께서는 참 신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와 함께 중세의 많은 전쟁들이 교회 권력이나 기독교인들에 의해 일어나게 되었고, 외부를 향해, 혹은 서로끼리 폭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마녀사냥 등의 폭력적 행위 역시 - 순수하게 종교적인 문제만은 아니기는 하나 - 기독교에 책임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기독교와 선교사는 근대의 제국주의 식민지 침략의 첨병으로써 쓰인 역사가 있다. 모든 선교사가 악했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기독교의 주류는 분명 제국주의에 협력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무신론자나 세속주의자인 서구인들이 제국주의에 협력하지 않은 건 또 아니라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종교개혁가들 역시 각종 폭력이나 전쟁을 벌였고, 평화주의적인 소수 종파들을 탄압, 학살하기도 했다.
그 후 1517년, 기독교 뿌리에서 가톨릭과 개신교를 나누는 종교개혁이 일어난다.
현재에도 일부 기독교인들이 세속적인 이데올로기와 기독교의 정신을 함께 해석함으로써 순수 기독교의 정신에 위배되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독교의 기초는 사랑에 근거하여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이다. 몇몇 이단과 특정 교파를 제외하면 대다수 기독교인의 목표는 본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3장 13절에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고 써있듯 기독교는 사랑을 기독교의 기초 정신으로 삼는다.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 인가?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였는가? 기독교적 평화 BAPTIST FAITH AND MESSAGE: Article 16: Peace and W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