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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의 신전과 내부 무덤의 모습[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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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팔렝케의 키니치 하나브 파칼 왕의 무덤. 고대 이집트에 투탕카멘의 무덤이 있다면 마야 문명에는 이 파칼 왕의 무덤이 있다.무덤이 위치한 거대한 피라미드는 '비문의 신전'이라고도 불린다. 내부에서 마야 상형문자들이 새겨진 비문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2. 상세
2.1. 고대의 황금기와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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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시절의 팔렝케 | 팔렝케의 왕궁 |
팔렝케는 파칼 왕이 죽은 후에도 후계자 키니치 칸 발람 2세, 키니치 칸 조이 치탐 2세를 거치며 오랜 황금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 황금기는 711년 인근 도시 토니나의 공격으로 늙은 조이 치탐 2세가 붙잡혀 끌려가면서 종결되고야 만다. 치명타를 입은 팔렝케는 점차 쇠락했고, 800년대에 이르자 도시 자체가 붕괴했다. 팔렝케는 1520년대에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들이 도착할 때까지 조용히 정글의 암흑에 파묻혀 무너져갔으며 콩키스타도르들이 도착했을 무렵 팔렝케는 아무도 거주하고 있지 않는 폐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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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모슬레이가 찍은 1890년의 팔렝케[4] |
2.2. 1952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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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루즈 륄리에의 모습과 발굴 현장 |
두 줄의 구멍이 있는 석판을 들어올리자 피라미드의 내부 중앙으로 이어지는 지하 계단이 드러났으나, 계단통로 내부는 자갈과 돌덩어리들로 막혀 있는 상태였다. 륄리에는 1949년부터 1952년까지 무려 3년 동안 계단 통로 내부에서 자갈과 돌을 퍼내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1952년에 마침내 륄리에는 69개에 달하는 계단들을 모두 파내고 돌 빗장이 걸린 문에 다다랐다. 륄리에가 빗장을 열고 문 안으로 들어가자 두 번째로 봉인된 문이 보였고 그 앞에는 붉은색으로 칠해진 조개껍데기 3개, 7개의 옥 구슬, 귀마개가 들어있는 상자가 놓여있었다. 두 번째 봉인마저 깨고 들어가자 그 안에는 6구의 인간 해골이 들어있는 또다른 상자를 발견했다. 그 뒤에는 마지막 세 번째로 봉인된 문이 있었다.
세 번째 입구마저 열고 들어가자 그 안에는 길이 8.8m, 너비 3.9m에 달하는 묘실이 드러났다. 묘실의 벽은 제례 의복을 입은 남자 9명이 돋을새김된 회반죽으로 장식됐다. 방 한가운데에는 상형문자들이 복잡하게 새겨진 거대한 직육면체 석판이 놓여있었는데, 륄리에는 처음에 그 석판이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륄리에는 곧 이 정교하게 새겨진 석판이 석관의 관뚜껑일 가능성을 떠올렸고 1952년 11월 석판을 들어올리자 그 아래에서 키니치 하나브 파칼 왕의 유해가 발견됐다. 석관 안에는 유해 뿐만 아니라 옥, 조개껍데기, 돌로 만든 정교한 데스마스크와 팔찌, 목걸이 등 옥으로 만든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야학자들 사이에서는 투탕카멘의 무덤 급의 대발견이었다. 귀족들의 무덤들이 발견된 적은 여러 차례 있지만 왕의 무덤, 그것도 이정도로 권력이 강했던 왕의 무덤이 도굴당하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되어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이 발견은 마야 왕릉의 양식과 당시의 왕실 장신구, 유물들이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3.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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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의 신전 | 꼭대기의 사원 구조 | 사원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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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구조도 |
무덤으로 내려가는 통로는 꼭대기의 사원 바닥에서 찾을 수 있다. 총 69개의 계단들을 걸어내려가면[5] 왕의 시신이 묻힌 매장실이 나온다.
지면에서 2m 아래 위치한 매장실은 8.8m X 3.9m 짜리 크기에 높이 7m 수준으로 마야 문명권에서 가장 거대한 지하실이다. 지하실 바닥은 9톤 짜리 거대한 암석 하나로 이뤄져 있다.
가장 눈여겨볼만한 것은 무게가 20톤에 달하는 거대한 석관이다. 5톤에 달하는 거대한 돌뚜껑으로 덮여있는데, 이 돌뚜껑에 화려하게 돋을새김된 부조가 아주 걸작이다. 워낙 독특하게 생겨서 외계인이 우주선을 조종하고 있는 모습이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돌았는데 사실 그건 아니고 옥수수 신의 현신인 파칼 왕이 저승으로 돌아가 부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만 마야 문명권에서도 유난히 돋보일 정도로 화려한 조각, 세계수, 해와 달, 별, 죽은 자의 세계를 상징하는 거대한 뱀 등 다양한 상징들이 넘쳐나기에 문화적, 예술적으로도 독보적인 작품들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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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칼 왕의 부장품 | 데스마스크 |
현재 멕시코 시티의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서는 파칼 왕의 무덤을 1:1로 완벽히 복제해서 재현해놨다. 특히 2004년에는 관광객들의 출입으로 인해 팔렝케 유적의 진짜 무덤이 습도와 온도가 높아져 회반죽이 훼손되자 무덤의 출입을 금지했고, 정글 속에 위치한 팔렝케가 마냥 가기 쉬운 곳도 아니기 때문에 더 편하게 무덤 내부를 보고 싶다면 멕시코 시티의 인류학 박물관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1]
엄밀히 말하면 아래의 사진은 멕시코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 무덤의 모습을 1:1 비율로 보기 편하도록 재현해놓은 것이다.
[2]
세계에서 5번째로 오랫동안 재위한 군주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한정하면
캐나다의
엘리자베스 2세 다음으로 오래 재위한 군주이기도 하다.
[3]
참고로 당시 한국에서는 한창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투닥거리다가 신라의 삼국통일이 이뤄지던 시기다. 신라의
삼국통일이 676년이다.
[4]
첫 번째 사진에 나온 피라미드가 바로 파칼 왕의 무덤이 묻힌 비문의 신전이다. 두 번째 사진은 정글에 파묻혀버린 왕궁의 모습. 위에 나온 팔렝케 왕궁과 동일한 건축물이다.
[5]
키니치 하나브 파칼 왕은 69년 동안 재위했다.
[6]
투탕카멘의 가면 같은 번쩍번쩍한 데스마스크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아보일지 몰라도 상당히 정교하게 깎인 물건이다. 바로 옆의 피라미드에서는 왕비의 데스마스크가 발견됐는데, 이 역시 비슷한
공작석과 옥으로 만들었는데 파칼 왕의 데스마스크에 비하면 훨씬 열화한 것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