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16:30:07

파벨 밀류코프

<colbgcolor=#0080FF> 러시아 임시정부 외무장관
파벨 밀류코프
Па́вел Милюко́в
파일:파벨 밀류코프.jpg
<colcolor=#fff> 본명 파벨 니콜라예비치 밀류코프
Па́вел Никола́евич Милюко́в
출생 1859년 1월 27일[1]

[[러시아 제국|]][[틀:국기|]][[틀:국기|]] 모스크바
사망 1943년 3월 31일 (향년 84세)
[[비시 프랑스|
파일:비시 프랑스 대통령기.svg
비시 프랑스]] 엑스레뱅
매장
[[프랑스|]][[틀:국기|]][[틀:국기|]] 파리 바티뇰 묘지 러시아 정교회 섹션 25 구역
학력 모스크바 대학교 ( 역사학 / 석사)[2]
부모 니콜라이 파블로비치 밀류코프
마리야 아르카디예브나 밀류코바[3]
배우자 안나 세르게예브나 스미르노바
안토니나 바실리예브나 그리고리예바
소속 정당
약력 러시아 제국 제3대 국가두마 의원
러시아 제국 제4대 국가두마 의원
제헌의회 의원
러시아 임시정부 외무장관
종교 정교회 ( 러시아 정교회)
서명
파일:파벨 밀류코프 서명.svg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러시아 제국의 정치인이자 역사학자.

2. 생애

저명한 역사가인 바실리 클류쳅스키[4]의 제자이며, 정치인으로서 유명해지기 전에 역사학자로서 이름을 날렸다.

입헌민주당의 창립자로 2월 혁명 이후 체사레비치 알렉세이 차르로 즉위하고 니콜라이 2세의 막냇동생인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이 섭정을 맡기를 원했다.[5]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건국 이후 볼셰비키에 대항하는 운동을 펼쳤으며, 러시아 내전(적백내전)에서 백군을 지지하였다.

1921년, 프랑스로 망명한 뒤 정치 활동을 이어 나갔고 입헌민주당 당내 분열이 일어나 입헌민주당을 탈당했다.

1922년 3월 28일에는 극우언론인 세르게이 타보리츠키에게 암살당할뻔했다. 밀류코프는 유대인 해방과 러시아의 모든 소수민족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반유대주의자 세르게이 타보리츠키는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암살을 시도했다.[6] 이 일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아버지 블라디미르 드미트리에비치 나보코프가 죽었다.

밀류코프는 여전히 공산 정권에 반대했지만 나치 독일과 소련의 전쟁에서는 소련을 지지했다.

3. 대중매체

Hearts of Iron IV의 모드 카이저라이히에서는 러시아 공화국의 입헌민주당 지도자로 등장한다. 민주주의 공화국을 유지해야 지도자로 선출할 수 있으며,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면 사망 이벤트가 뜨며 바실리 마클라코프가 뒤를 잇는다.

Hearts of Iron IV의 모드 레드 플러드에서는 러시아 제국이 원역사보다 강하게 존속한 탓에 적백내전이 제국충성파(백군)와 공화주의자(적군)로 나뉘었는데 백군과 싸웠으나 공화주의자들이 승리하지못한채 만주에 있는 황러시아로 도망쳤다. 이때 공화주의 파벌중 자유주의 파벌인 입헌 민주당의 당수로 나오며 황러시아 공화국에서 집권할 수 있다. 대신 집권하려면 다른 여타 황러시아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하는것이 특징

조선, 혁명의 시대에서는 입헌 민주당 당수로 "우매함인가, 아니면 반역인가"[7]라는 말로 황후가 이끄는 답없는 러시아 정부를 비판한다. 본인은 군주제 지지자였지만 졸지에 반정부 인사가 된다. 영국에 피난하여 쿠데타 계획을 세우고 미하일을 차르로 옹립한다. 이후 외무장관에 취임하고 연합국에게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러시아에게 할양하는 조건으로 전쟁수행을 계속할 것을 당부하지만[8] 이는 좌익의 반발을 일으킨다. 우익에게는 케렌스키와 같이 유약하다고 까이면서 등장이 없다가 3부에서 백군 연합체인 전러시아 임시정부에서 외무장관자리에 있다고 언급된다.

[1] 율리우스력으로는 1월 15일. [2] 명예 박사 학위 수여. [3] 혼전 성씨는 술타노바 [4] 제정 러시아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중 한명인데 한국으로 번역된 저서로는 '러시아 신분사'가 있다. [5] 니콜라이 2세는 실제로 자신의 퇴위 후 알렉세이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고 미하일 대공에게 섭정을 맡기려고 했지만, 알렉세이의 혈우병이 악화되었고 알렉세이와 가족들은 떨어져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아 니콜라이 2세는 미하일 대공에게 황제 자리를 넘긴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하일 대공은 '미하일 2세'로 선포되었지만 18시간 만에 퇴위해 정식 황제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6] 정작 타보리츠키 역시 어머니가 유대계였는데 이를 수치스럽게 여긴 타보리츠키는 나중에 숨기고 나치와 협력까지 한다. [7] 실제 역사상의 밀류코프의 국가두마 연설이었다. [8] 단순한 제국주의적인 이유외에도 러시아가 단독 강화하면 연합국의 지원이 끊어지고 러시아 경제는 파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