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팀 버클리 Tim Buckl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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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티모시 찰스 버클리 3세 Timothy Charles Buckley III |
출생 | 1947년 2월 14일 |
미국 워싱턴 D.C. | |
사망 | 1975년 6월 29일 (향년 28세) |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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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싱어송라이터, 기타리스트 |
장르 | 포크 록, 싱어송라이터, 사이키델릭 록, 퓨전 재즈, 아방가르드 음악, 펑크, 사이키델릭 포크 |
활동 | 1966년 ~ 1975년 |
자녀 | 제프 버클리 |
레이블 | 엘렉트라 레코드 |
링크 | 공식 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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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19세에 데뷔, 2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포크 락에 기반한 다양하고 실험적인 음악적 시도를 보여주었으며, 포크 락에 큰 족적을 남긴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제프 버클리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2. 커리어
워싱턴 주 출신으로 뉴욕 주 암스테르담 시와 캘리포니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는 2차 세계 대전에 활약했던 군인.[1] 가족이 음악을 좋아했는데 재즈부터 컨트리, 포크 음악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학창 시절엔 스포츠도 잘하는 인기 있는 학생이었다고 한다.[2] 친구들이랑 밴드를 만들면서 뮤지션의 길에 들어선다. 그리고 대학 중퇴후 1집을 내면서 데뷔했다.1966년 데뷔 앨범을 내면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인기있는 뮤지션은 아니었지만[3],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과 독특한 서정성으로 평단의 지지를 얻게 되고 1-2년 꼴로 음반을 내며 왕성한 활동을 했다. 초창기엔 동창인 래리 베케트와 작업하면서 재즈에 영향을 받은 내향적인 사이키델릭 포크 음악으로 인지를 얻었고 이후 아방가르드 락에 영향받은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말기엔 섹스 펑크라고 불리는, 마초적이고 에로틱한 펑크/재즈 록으로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대중적으로는 'Song to the Siren', 'Buzzin 'Fly' 등의 곡이 많이 알려졌다.
3번째 앨범인 Happy Sad가 차트 81위를 기록한 것이 최고 성적일 정도로 음악 활동 내내 큰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고, 나름 상업적 강수였던 섹스 펑크 시절도 외설적인 가사 때문에 방송을 잘 타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는 술, 약물, 마약 등에 의존했고 결국 사고가 터졌다. 1975년 6월 28일 그는 댈러스에서 공연을 마친 후 자축 파티를 열었고, 친구들과 함께 주말동안 술과 마약을 하다가 쓰러졌다. 친구들은 그냥 만취한 줄 알고 집으로 데려가 침대에 눕혔는데, 아내 주디가 얼마 후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으나 살리기엔 이미 늦어있었다. 사인은 헤로인과 모르핀 과용. 그는 빚더미 속에서 죽었고 재산이라고는 기타 한대와 앰프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팀 버클리의 가장 유명한 곡인 Song to the Siren. 몽환적인 분위기의 서정적인 곡으로 1970년 발표된 6번째 앨범 Starsailor에 수록되어 있다. 당대에는 상업적으로도 실패했고 비평도 좋지 않았으나, 1980년대 이후 재조명되면서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곡은 로버트 플랜트, 조지 마이클, 존 프루시안테, 시네이드 오코너, 엘리자베스 프레이저( 콕토 트윈즈, 디스 모탈 코일) 등 많은 뮤지션에 의해 커버되었다.
3. 제프 버클리와의 관계
1966년 11월 17일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제프 버클리가 태어났다. 팀 버클리는 제프가 태어나기 전에 메리 귀베르와 이혼했고, 메리는 이후 재혼하여 제프는 양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제프는 양아버지의 성을 따라 스코티 무어헤드(Scotty Moorhead)로 개명하기도 했었다. 아들하고는 8살 때인 1975년에 다시 만났는데[4] 이것이 둘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만다. 사망 이후 제프는 버클리라는 성을 되찾았다.팀 버클리 역시 가정을 버렸지만 아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전 아내이자 제프의 어머니인 메리 귀베르를 위해 'I Never Asked To Be Your Mountain' 이라는 곡을 만들기도 했고 제프 역시 롤링 스톤 지와의 인터뷰에서 "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아버지와도 많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괴로웠습니다. 추모 공연에 참가한 것 역시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기에 참가했습니다"고 밝혔다. 이처럼 생전에 제프 역시 아버지인 팀 버클리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의 표현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애증의 관계라 할 수 있을 듯.
별개로 제프 본인은 굳이 아버지와 엮으려고 하는건 싫어했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 앞에서 아버지 이름을 연호하는 관객에게 욕을 했을 정도. 아버지 음악은 존중하지만, 후광에 업혀가긴 싫다고 판단했다고 봐야 할듯 하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첫 결혼 당시 팀은 아버지로써 자신이 자질이 없다고 생각이 없다고 판단해 소원해졌고, 결국 이혼했다고 한다. 참작의 여지가 있는 게 당시 팀은 데뷔도 안한 10대 후반의 뮤지션 지망생이었고[5], 서로 사랑하긴 했지만 소위 말하는 속도위반 결혼에 가까웠다고 한다.[6] 덜컥 결혼했는데, 현실의 벽에 좌절하고 이혼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이후 두 번째 결혼은 무난하게 이어갔다.
얄궂게도 둘 다 젊은 나이에 요절하면서 버클리 부자는 불운의 부자 뮤지션으로 꼽힌다.
4. 기타
밴드 스타세일러는 팀 버클리의 앨범 Starsailor에서 이름을 따왔다.5. 음반 목록
- Tim Buckley (1966)
- Goodbye and Hello (1967)
- Happy Sad (1969)
- Blue Afternoon (1970)
- Lorca (1970)
- Starsailor (1970)
- Greetings from L.A. (1972)
- Sefronia (1973)
- Look at the Fool (1974)
[1]
하지만 전쟁 당시 머리 부상을 입어 후유증으로 고생했고, 성격도 괴팍해졌다고 한다. 이는 후술할 팀과 메리의 이혼에 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2]
다만 운동 도중 왼쪽 손가락을 다쳐 연주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3]
2집 Goodbye and Hello은 레이블에서 밀어줬음에도 차트 171위에 그쳤을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4]
제프는 1975년 어느 날 공연을 하는 아버지를 보며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성향이 다르긴 하지만 둘다 포크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했다.
[5]
이혼 직후에야 데뷔 앨범을 냈다.
[6]
속도위반인 줄 알고 결혼했는데, 속도위반이 아니었고 결혼 후 제프가 생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