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4 20:20:45

투시 롤

파일:Tootsie Roll.png
1. 개요2. 역사3. 상세

1. 개요

Tootsie Roll
영어 위키백과 문서

미국에서 만들어진 캐러멜 사탕의 브랜드명.

투시 롤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면, 집 주변의 수입과자점이나 다이소 등에 가면 2천원 정도에 투시 롤 한 봉지를 살 수 있다. 정 안 판다면 인터넷 쇼핑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1봉지당 약 500kcal 정도(1개당 3g, 12g에 43Kcal)로 상당한 열량을 가지고 있고 몸에 좋은 재료라고 말하기는 좀 애매하니 조금씩 맛보는 용도로 사용하자. 한 봉지 안에 꽤 많이 들어있는 편이다. 캐러멜이 손가락 2마디 크기 정도로, 그렇게 크지는 않다.

미국 본토에서는 가래떡 같이 매우 길고 큰 투시 롤도 판매하는데, 이 버전의 투시 롤은 미군의 전투식량 안에도 포함되어 있다. # 전술한 가래떡 같이 생긴 것 외에도 길쭉한 투시 롤을 사각형 모양으로 나뉘어 원하는 양 만큼 떼어 먹을 수 있게 만든 버전도 있다. #

2. 역사

1907년 출시되었으며, 당시 유행은 했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아이들이 쉽게 먹지 못했던 간식인 초콜릿을 저렴한 재료를 이용해 낮은 가격으로 비슷한 맛을 구현해 낸 것이 바로 투시 롤이다. 1931년에는 다양한 맛의 막대 사탕 가운데에 투시 롤을 넣은 투시 팝스도 출시되었다.

투시라는 이름은 당시 유대인 부사장 레오 히쉬필드(Leo Hirshfield)의 딸[1] 별명을 따서 만든 브랜드 명이다. 히쉬필드는 딸의 이름을 따서 사탕 회사를 만들었을 정도로 가족에 헌신적이었으나 결국 가족 문제로 자살하는 최후를 맞이한다.[2]


스팸, 엠앤엠즈, 허쉬, 코카콜라와 더불어 20세기 미군과 연관이 있다.

50여년이 지난 뒤 투시 롤은 한반도서 발발한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혹한기 전투인 장진호 전투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당시 전투 중 북한을 지원해 투입된 중공군들에게 포위되어 위험에 빠진 미합중국 해병대는 후방 보급부대에게 '투시 롤'이 떨어져가니 빠른 시일내에 잔뜩 보내라는 긴급한 무전을 전했고, 이에 후방 보급부대에서는 갑자기 탄약도 아닌 캐러멜을 긴급하게 요구하는 것에 당황했다.

일단 보급부대는 요청대로 막대한 양의 투시 롤 캐러멜을 구한 뒤 항공투하해 줬다. 보급품 상자를 보고 기뻐하던 해병대원들이었지만 상자를 열어보니 잔뜩 들어있던 투시 롤 캐러멜들을 보고 경악했으며, 심지어 보급품을 투하하고 떠나는 비행기에게 손가락 욕을 날리기도 했다.

왜냐하면 해병대에서 '투시 롤'은 박격포탄을 뜻하는 은어였고, 박격포탄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통신 방수나 도청을 우려해서 은어로 보낸 것이었는데 해병대가 아닌 일반 육군 부대였던 보급부대는 이러한 은어를 몰라서 당연히 해병대가 진짜 투시 롤 캐러멜을 원하는 줄 알고, 말 그대로 투시 롤만 잔뜩 보내준 것이다. 이 사례는 미군은 물론 전 세계 군대에서 '은어를 함부로 사용하면 이런 사고가 터집니다.\'라는 반면교사이자 매우 좋은 교육자료로 지금까지 남겨지고 있다.

그런데 애물단지 취급받던 투시 롤은 결과적으로 미 해병대를 구하는 새옹지마가 되었다. 그 이유는 장진호 전투 당시 주간에는 영하 20도, 야간에는 영하 35도까지도 내려가는 얼음지옥이 찾아왔기 때문.[3][4] 게다가 전투 중이라서 큰 불을 함부로 피웠다가는 연기로 인해 위치가 발각되어 포격을 비롯한 공격을 당할 수도 있으니 체온 유지를 위해 불도 발각되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으로 피우고 담요로 어떻게든 체온을 유지하려는 상황에서 사람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당연히 평소보다도 더 많은 열량 섭취가 필요했는데, 영하 20~30도에 달하는 등 기온이 하도 낮아 전투식량 가운데 열량 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기류 요리나 수프류 통조림 상당수가 얼어서 먹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어거지로 고기류 통조림을 모닥불에 데워먹으려 해도 아래는 타고, 가운데와 윗쪽은 그대로 얼어붙어 못 먹는 건 여전했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얼어붙은 전투식량을 그냥 먹은 병사들. 이들은 강추위 속에서 설사를 하면서 탈수까지 걸린 상태에서 엉덩이나 항문 등에 동상이 걸리는 게 기본이라 지옥 중의 지옥을 경험했다.[5][6]

결국 해병대원들은 별도의 조리가 불필요한 식량, 건조한 형태의 전투식량[7]만 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때 투시 롤이 해병대를 구원한다. 투시 롤 같은 부드러운 감미품(캐러멜)은 얼어도 입 안에 넣으면 입속의 체온에 의해 천천히 녹여가며 쉽게 먹을 수 있었고 별도의 조리도 필요없어 영하 30도의 강추위 속에서도 문제 없이 먹을 수 있으며, 당분이 많아서 혹한 속에서 열량 보충이 절실한 장진호의 미 해병대에게 매우 적절한 식품이었다.[8] 이후 해병대 병사들은 마른 전투식량과 상당량의 재고를 확보해 둔 투시 롤로 열량을 보충하여 중공군의 진격을 간신히 막아내며 퇴각에 성공할 수 있었다.

게다가 투시 롤은 먹는 용도 외에도 땜빵용 재료로 굉장히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병사들은 투시 롤을 적당한 양 입안에 넣고 녹인 뒤 그것을 뱉어 총에 맞아 구멍이 난 연료통을 때우거나 떨어진 부품을 이어 붙이는 접착제로 사용했는데, 붙여 놓은 투시 롤이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어지간한 접착제 못지 않은 결합력을 발휘한 것이다.

결국 박격포탄 대신 잘못 받은 투시 롤이 비상식량 및 수리용 등으로 톡톡히 대활약하여 해병대에겐 전화위복이 된 셈. 오죽하면 퇴각하는 경로에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빈 레이션 깡통 대신 투시 롤 포장지가 수북히 쌓여있었다고 한다. 장진호 전투를 겪은 참전용사의 인터뷰에는 투시 롤 덕분에 목숨을 건져서 고마웠다는 말이 빠지지 않으며,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장진호 전투를 겪은 미 해병대의 모임에는 투시 롤이 반드시 올라온다고 한다.

6.25 전쟁 이전에 발발한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도 투시 롤은 위험에 빠진 전투기 조종사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는데, 바로 미합중국 육군 항공대 소속 파일럿 프레데릭 아놀드(Frederick arnold, 1922~2018)의 일화다. 전쟁 당시 프레데릭은 출전하는 전투마다 투시 롤을 간식거리로 가지고 다녔고 1942년, 20세의 나이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북아프리카 전역에 출격할 때에도 투시 롤을 가져 갔다.

하지만 교전 도중 그가 조종하던 전투기 P-38이 적군의 비행기에 격추당해 사하라 사막의 어딘가에 위치한 채석장에 추락했고, 그는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투시 롤을 제외하곤 변변찮은 식량 하나 없이 고립된다. 이때 프레데릭은 자신이 챙겨온 투시 롤을 까 먹으며 며칠을 버티다 인근에 살던 원주민들에게 발견되었는데, 경계심을 보이는 이들에게 투시 롤과 담배 한 보루를 나눠 줘 누그러뜨리고 개고기를 받는 물물교환을 하며 근근이 버티다 결국 구조되어 무사히 생환하게 된다. #

프레데릭은 전쟁 이후 이러한 자신의 일화를 도어납 파이브 투(Doorknob five two)라는 자서전에 싣기도 했으며 2018년 96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3. 상세

가장 유명한 제품군은 초콜릿맛 캐러멜 사탕인 '투시 롤'과 막대사탕 ' 투시 팝스'가 있다. 투시 롤 봉지를 열어보면 볼펜 정도의 굵기의 캐러멜이 들어있고, 길쭉한 봉지의 경우 약 2cm 정도 길이로 끊어져 잔뜩 포장되어 있다. 재료는 옥수수 시럽, 팜유, 설탕, 탈지분유, 코코아, 유장, 콩의 레시틴, 첨가 향이다.

투시 롤에 다양한 과일 맛을 첨가한 제품인 투시 프룻 츄도 있다.

투시 롤은 사막의 더운 날씨에도 녹거나 변질되지 않고, 반대로 추운 곳에서도 입에서 쉽게 녹여 먹는다는 장점으로 인해 제2차 세계 대전 때부터 군납으로 채택되며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

현재까지 투시 롤은 계속 생산되고 있지만, 2015년에 재정난을 겪고 있다는 뉴스가 한국서도 떴다. 고집불통 美캔디회사…투시롤, 제품 변화거부, 2015-03-18 원인은 세계적으로 건강을 의식하는 소비자의 취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과 점점 심해지는 식품업계 내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 알례로 네슬레는 2014년에 자사 250종 초콜릿바에서 인공색소 등의 첨가물을 제거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투시 롤은 변화없이 과거의 제조방식과 첨가물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MRE 등의 미군 전투식량에는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 때문에 지금도 투시 롤이 들어가고 있다.


[1] 본명은 클라라 히쉬필드(Clara Hirshfield, 1890-1976). 저 투시 롤 일화 이외의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2] 그 정도로 성공적인 사탕을 많이도 만들었건만 부사장에 머무르는 레오 히쉬필드는 결국 사장을 못 하는 것에 불만을 품게 된다. 기존에 큰 도움을 주었던 스턴과 샐즈버그(Stern&Saalzberg Co.)가 은퇴한 뒤에도 다른 사람이 나타나 사장 자리를 차지해버려서 결국 레오는 1920년 퇴사하고, 새로 회사(Mells Candy Corporation)를 차렸으나 이듬해 부인과 자신 모두가 병을 앓게 되고, 경영도 악화되는 이중고 끝에 1922년 변호사에게 이런 메모를 남긴 후 권총 자살했다."미안해요. 이럴 수밖에 없어요.(I'm sorry, but I couldn't help it.)" 1920년에 차렸던 회사는 그로부터 2년 후인 1924년 파산한다. # 생전에 히쉬필드는 여러 히트작을 만들었는데, 이 중에는 젤 오(Jell-O)와 비슷한 '브로망겔론(Bromangelon)'이 있었다. 젤 오는 가루에 물을 태우면 푸딩으로 변하는 제품인데, 한국에서는 생소한 물건이지만 미국에서는 파티 음식이나 간식으로 인기 있다. 1900년대 초부터 유사한 제품이 다수 생산되었는데 스턴&샐즈버그 사는 당시에 브로망겔론을 "브로-망-겔-온" 또는 "브로만-겔론" 같은 악센트로 끊어서 광고를 하곤 했다. [3] 장진호 전투가 일어난 것은 11월 말~12월 초. 참고로 장진의 12월 평균 기온은 영하 11.6도이다. 평년의 12월 평균 기온이 영하 1~2도 전후인 서울에서도 12월중 추운 날은 영하 10~15도 수준까지 떨어지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즉 이 정도의 기온은 평년 겨울이라도 더럽게 추운 날이면 나올 수 있는 수준으로, 장진호 전투 당시 현지의 기온이 평년에 비해 특이하게 낮았다고 볼 근거까지는 되기 어렵다. [4] 다만 이렇게 추우면 그냥 집이나 보온이 되는 장소로 들어가면되는 평시와는 달리, 전시 그것도 전투중이다보니 이 추위를 그대로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5] 설사는 변의 내용물 특성상 물이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는데, 신체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물이 급격하게 배출될 경우 당연하게도 수분 부족 현상을 겪게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수분 성분이 엉덩이에 묻어 얼어버리는 순간 동상과 치질, 항문파열등 비전투손실이 계속 발생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6] 당장 매 식사를 한겨울에 야외에서 히터 없이, 그것도 식사 후 매번 급성 장염에 걸린다고 생각해보자. 상상만으로도 아주 끔직한 경험이 떠올려질 것이다. [7] 크래커, 과자나 사탕 등, C-레이션의 B-유닛 부분. [8] 투시 롤은 사탕 포장 하나에 10~12kcal, 전투식량에 동봉되는 길쭉한 것은 한줄에 약 200kcal을 지닌 높은 열량의 식품이다. 또한 타지에서 먹는 조국의 간식은 병사들 입장에서 심리적으로 큰 위안이 된다. 당장 2차 대전 시기 미 해군에선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배급했고 별도의 아이스크림 생산용 함선까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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