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03 23:05:46

테오도로스 브라나스

이름 테오도로스 브라나스
(영어: Theodore Branas, 그리스어: Θεόδωρος Βρανᾶς)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직위 알란 용병대 지휘관, 카이사르
종교 가톨릭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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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귀족. 알렉시오스 3세 휘하에서 십자군 콘스탄티노폴리스 침략을 막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끝내 함락된 뒤에는 라틴 제국에 귀순했다.

2. 생애

알렉시오스 브라나스 마누일 1세의 조카 안나 콤니니의 아들이다. 1185년 안드로니코스 1세가 살해된 뒤 과부가 된 22세의 프랑스의 아녜스를 보호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으로 발전했지만, 그녀가 아우구스타 직위를 잃을 수 있었기에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 후 이사키오스 2세 휘하에서 여러 전투에 참가했지만 별다른 공을 세우지 못했고, 1195년 알렉시오스 3세 쿠데타를 일으킬 때 가담했다. 알렉시오스 3세 집권 후 각지의 반란 토벌에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고, 1203년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할 때 알란 용병대를 이끌고 최선을 다해 맞서 싸웠다.

그러나 알렉시오스 3세가 도피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가 공략된 뒤, 그는 라틴 제국 초대 황제 보두앵 1세의 권유에 따라 아녜스와 결혼하여 훗날 투시의 나르조와 결혼한 딸을 하나 두었다. 1206년 앙리 황제로부터 카이사르(부황제) 칭호를 받았다. 니키타스 호니아티스는 그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라틴 정권과 협력한 로마인들의 지도자였다고 기술했다. 당시 로마인들은 불가리아 제2제국의 차르 칼로얀이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자, 차라리 라틴인들과 협력하는 게 낫겠다고 여겼다.

그는 지역 그리스 군인들과 40명의 라틴 기사로 구성된 아드리아노폴리스의 수비대를 이끌었고, 1206년 8월 20일 디디모티콘을 포위한 불가리아군과 맞섰으나 패배를 면치 못했다. 1207년 칼로얀 아드리아노폴리스를 포위 공격하자, 그는 구원군이 올 때까지 항전하여 성을 사수했다. 이후 아드리아노폴리스, 디디모티콘, 아프로스의 영주로 선임되었고, 1219년 사위 투시의 나르조와 함께 피에르 황제와 욜랑드 황후 사망 후 로베르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올 때까지 잠시 통치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