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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제국 플랑드르 왕조 초대 황제 보두앵 1세 Baudouin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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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보두앵 6세 드 에노(Baudouin VI de Hainaut) | ||||
출생 | 1172년 7월 | ||||
프랑스 발랑시엔 | |||||
사망 | 1205년 3월 8일 (향년 32세) | ||||
불가리아 터르노보 | |||||
가문 | 플랑드르 가문 | ||||
가족 |
보두앵 5세 드 에노(부친) 마르그리트 달자스(모친) 필리프 드 에노(동생) 욜랑드 드 에노(여동생) 피에르 드 쿠르트네(매부) 앙리 드 에노(동생) 이자벨 드 에노(여동생) 마리 드 샹파뉴(아내) 잔 드 플랑드르[1](장녀) 마르그리트 2세(차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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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로마 가톨릭 | ||||
재위기간 | 1204년 4월 13일 ~ 1205년 5월 | ||||
참전 | 4차 십자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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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204년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들어선 라틴 제국의 초대 황제. 즉위한지 얼마 안 돼서 불가리아의 약탈로 인해 몰락했다.2. 생애
보두앵 6세 드 에노는 원래 플랑드르와 에노의 백작으로 제4차 십자군 원정의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고, 에노 백작 보두앵 5세와 플랑드르 백작의 딸 마르그리트의 아들이었다. 플랑드르 가문은 대대로 십자군과 예루살렘 왕국과 관련이 깊었는데, 1194년 어머니가 죽자 에노와 플랑드르를 상속받은 보두앵은 플랜태저넷 왕조와 동맹을 맺고 잉글랜드 왕 리처드 1세 편에 서서 프랑스 왕 필리프 2세에 대항했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제4차 십자군을 소집하자 그는 이 원정에 참여하여 120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침공에 가담했고, 이사키오스 2세와 그의 아들 알렉시오스 4세를 황제로 추대했다.그러나 이듬해 이사키오스 2세와 알렉시오스 4세를 살해한 로마인들이 알렉시오스 5세를 옹립하자, 다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한 십자군은 동로마를 대신할 라틴 제국을 만들기로 하였다. 이 때 몬페라토의 변경백 보니파시오와 보두앵이 새로운 황제 후보로 추대되었는데, 당시 십자군의 실질적인 수괴인 베네치아 도제 엔리코 단돌로가 보니파시오를 견제하기 위해 보두앵을 지지하면서 1204년 5월 16일 하기아 소피아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그렇게 라틴 제국의 황제가 된 보두앵은 동로마 제국의 전통[2]을 폐기하고 서유럽의 봉건제도와 비슷한 새로운 제국을 만들고, 제국을 나누어 라틴인 기사들과 제후들에게 봉토로 나누어주었다.
이 즈음 대외적으로 자신의 지위를 인정받길 원했던 신생 불가리아 제2제국의 차르 칼로얀은 십자군에 접촉하여 군사적 지원을 대가로 자신의 황제위를 공인해 줄 것을 제의했다. 하지만 십자군 측은 이를 모욕적으로 거절했다. 칼로얀은 재차 동로마 붕괴 시의 혼란을 틈타 자신이 점령한 트라키아 영토의 평화로운 분할을 제의했다. 하지만 십자군은 트라키아 영토를 양보할 용의가 없었기에 칼로얀의 요청을 무시했고, 이에 분노한 칼로얀은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에서 대대적인 반라틴 폭동을 사주함과 동시에 직접 군대를 이끌고 라틴 제국을 침공했다.
보두앵 1세는 황급히 소아시아에서 돌아와 요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1205년 3월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보두앵 1세는 칼로얀의 불가리아군에 대패하고 포로로 잡힌 뒤 사망한다. 불가리아군은 이후 연전연승하며 라틴 제국 전역을 유린한다.
라틴 제국은 1년도 채 안 돼서 멸망의 위기에 임박했다. 그러나 불가리아의 약탈이 너무 심하여 동로마인들은 라틴 제국에 의지하게 되었고, 불가리아의 동맹인 쿠만족의 이탈과 차르 칼로얀의 의문사로 라틴 제국은 간신히 한숨 돌리게 되었다. 보두앵이 죽고 라틴 제국의 제위는 그의 동생인 앙리가 계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