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알렉시오스 브라나스 (영어: Alexios Branas, 그리스어: Ἀλέξιος Βρανᾶς) |
출생 | 미상 |
사망 | 1187년 |
직위 | 프로토세바스토스 |
반란 대상 | 이사키오스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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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앙겔로스 왕조의 반란자. 시칠리아 왕국의 침략( 1185년 시칠리아 왕국의 발칸 침공)을 격파하여 제국을 구원하였으나, 페터르 4세와 이반 아센 1세 형제가 이끄는 불가리아인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도중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했다.2. 생애
미하일 브라나스와 알렉시오스 1세의 후손인 마리아 콤니니의 아들로, 마누일 1세의 조카 안나 바타치나를 아내로 들였다. 안드로니코스 1세가 재위했을 때 프로토세바스토스의 직책에 올랐으며,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앙겔로스, 안드로니코스 콘토스테파노스, 이사키오스 앙겔로스 등의 반란을 진압했다. 1185년 안드로니코스 1세가 피살되고 이사키오스 2세가 집권한 뒤, 그는 제국 깊숙이 쳐들어온 시칠리아 왕국군을 격파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제국군을 정비한 뒤 트라키아에서 대대적인 반격을 가하여 마케도니아로 밀어냈다. 시칠리아군은 강화를 제의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재차 총공격을 가했다. 시칠리아군은 괴멸되어 상당수가 스트리온 강에 익사했고, 소수가 간신히 산맥을 넘어 이피로스 지역으로 도망쳤다.1187년, 이사키오스 2세는 그에게 불가리아의 반란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그는 병사들에게 황제로 추대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진격했다. 그러나 황제의 두번째 처남인 콘라드 1세에게 전사했고, 그의 수급은 황궁으로 옮겨져 걷어차이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동로마 백성들에게 인망이 높았기 때문에, 그를 죽인 콘라드와 서방인들에 대한 여론은 무척 좋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