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by(超竜, ruby=ちょうりゅう)] / Super Dragon> [ruby(高岩 竜一, ruby=たかいわ たつひと)] / Tatsuhito Takaiwa |
|
|
링네임 |
5대 블랙 타이거 (ブラック・タイガー([ruby(5代目, ruby=ご だい め)])) 타카이와 타츠히토 |
본명 |
타카이와 타츠히토 [ruby(高岩 竜一, ruby=たかいわ たつひと)] |
생년월일 | 1972년 7월 5일 ([age(1972-07-05)]세) |
신장 | 178cm |
체중 | 97kg |
혈액형 | O형 |
출생지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교토부 카메오카시 |
유형 | 브롤러 + 파워하우스 |
시그니쳐 무브 |
역수평 찹[1] 머신건 찹[2] 초룡([ruby(超竜, ruby=ちょうりゅう)]) 래리어트[3] 엘보 드랍, 배면 엘보 드랍[4] 브레인버스터[5] 싱글 레그 보스턴 크랩 파워밤 데스밸리 드라이버 |
피니쉬 무브 |
초룡([ruby(超竜, ruby=ちょうりゅう)]) 래리어트 떡찧기식 파워밤[6] 데스밸리 드라이버 데스밸리 밤 타카이와 드릴러[7] |
별명 | 초룡 ([ruby(超竜, ruby=ちょうりゅう)])[8] |
테마곡 |
Goro Vs. Art (1995 - 1997)[9] One Way Up (1997 - 2001) Hangin' Tough (2001 - )[10] |
데뷔 |
1992년 7월 21일 (20세) 아키타현 아키타시 아키타현립체육관 신일본 '92 서머 스트랭글 4일차 vs 코지마 사토시 |
SNS | |
주요 커리어 |
|
1. 개요
일본의 프리랜서 프로레슬러. 재일교포 출신.2. 커리어
2.1. 신일본 프로레슬링
한일혼혈로 태어나 아버지의 가정에 대한 무관심으로 어렸을 적을 가난하게 보낸 타카이와 타츠히토는 학창 시절 유도를 하면서도 신문배달을 병행하는 어려운 생활을 하며 고교에 졸업한 후 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부모님이 추천하던 경찰관이 되고 싶지는 않았던데다 돈을 공무원보다 더 벌고 싶다는 목적으로 1991년 Rings에 입문 시험을 봤으나 낙방했고, 1992년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입문 테스트에 합격하면서[11] 신일본에 입단했다.1992년 7월 21일 아키타시에서 열린 서머 스트랭글 4일차에서 코지마 사토시를 상대로 데뷔전을 가졌다. 그 후로 야마모토 히로요시, 카네모토 코지, 니시무라 오사무, 나가타 유지, 이시자와 토키미츠, 오오타니 신지로와도 경기를 가지나 패하고, 연패행진을 달리다가 니시무라 오사무와의 경기에서 심판에 의한 경기 중단으로 첫 승리를 거두며 연패에서 탈출한다.
1993년에 영 라이온 컵에 출전하지만 코지마 사토시, 나가타 유지, 니시무라 오사무, 이시자와 토키미츠, 야마모토 히로요시, 나카니시 마나부, 오오타니 신지로에게 차례대로 패하며 득점을 못얻고 예선 탈락했다. 1994년에도 영 라이온 컵에 출전하지만 이시자와 토키미츠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것을 빼면 대부분 상대들에게 패해 또 낮은 득점으로 탈락되고 해마다 영 라이온 컵에 출연하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1996년 5월에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에 A조로 처음 출장하여, 비록 승점 8점 조 3위로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참가 첫 해부터 10점의 엘 사무라이와 와일드 페가수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성과를 얻었다.[12]
1997년 5월에도 BOSJ에 출전하여 이번에도 A조에 배정받았으며, 수신 선더 라이거에게 승자승에서 밀려 승점 4점 조 3위를 기록하며 예선 탈락했다.[13]
1998년 5월에도 BOSJ에 A조로 참가하여 승점 2점 4위에 그쳤으나, 7월에 초대 IWGP 주니어 헤비급 태그팀 챔피언을 가릴 리그에 같이 통가리 콘즈를 결성한 오오타니 신지로와 팀을 이뤄 참가해 결승전까지 진출했고, 8월 8일에 오사카 돔에서 열린 RISING THE NEXT GENERATIONS IN OSAKA DOME 흥행에서 독토르 와그너 주니어 & 또다른 통가리 콘즈의 동료 카네모토 코지 팀을 상대했다. 여기서 오오타니가 20분만에 독토르 와그너 주니어에게 드래곤 수플렉스 홀드를 터트리고 승리하며, 오오타니와 함께 초대 IWGP 주니어 헤비급 태그팀 챔피언이 된다.
12월 11일에 WAR에서는 역시 오오타니와 함께 모치즈키 마사아키 & 오리하라 미사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제 9대 WAR 인터컨티넨탈 주니어 헤비급 태그팀 챔피언에 오르며 2관 챔피언이 되었으나, 1999년 1월 4일 레슬링 월드 1999에서 독토르 와그너 주니어와 켄도 카신에게 패배하며 IWGP 주니어 태그 벨트는 내줘야 했다.
3월 1일에는 코라쿠엔 홀에서 야스라오카 유지와 이시이 토모히로에게 패배하며 WAR 인터컨티넨탈 주니어 헤비급 태그팀 벨트도 내줬으나 5월에 BOSJ에 참전한 이후[14] 7월 13일에 맹우 오오타니와 함께 더 그레이트 사스케와 수신 선더 라이거와의 IWGP 주니어 헤비급 태그팀 챔피언전에서 승리하면서 다시 벨트를 되찾아왔다.[15]
2000 5월의 BOSJ는 타카이와의 시간이었다. 이제는 익숙한 A조에 배정된 타카이와는 카네모토 코지를 제외하고 그란 하마다, 엘 사무라이, 독토르 와그너 주니어, 마카베 신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승점 8점 조 1위 결승전에 진출했고, B조에서 승점 10점 조 1위를 찍고 올라온 맹우 오오타니 신지로를 상대로 18분만에 러닝 초룡 래리어트를 터트리고 쓰리 카운트를 따내며 우승하게 된다.
2.2. ZERO1
2001년에 타나카 미노루 & 카네모토 코지와 팀을 이뤄 독토르 와그너 주니어 & 엘 사무라이 & 실버 킹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을 끝으로 친구 오오타니 신지로와 함께 하시모토 신야가 새롭게 세운 ZERO1으로 이적하게 된다.ZERO1으로 이적한 후로 Battlarts에서도 경기를 가지다가 프로레슬링 NOAH에서도 활약하게 되고, 2001년 10월 19일에 초대 GHC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인 카네마루 요시노부에게 탑 로프 타카이와 드릴러를 터트리며 꺾고 제 2대 GHC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하며 벨트를 Zero1에 가져오는 데 성공했으나 12월 9일 벨트를 되찾으러 온 마루후지 나오미치에게 패배하며 벨트를 돌려줬다.
2002년 ZERO1의 제 1회 천하제일(天下一) 주니어 토너먼트에 출전했으나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2004년의 제 2회 천하제일 주니어 토너먼트에 출전해 호시카와 나오히로, 나미구치 오사무, 히다카 이쿠토, 로우 키를 차례로 꺾고 결승전에서 이시이 토모히로를 꺾고 우승을 거뒀다. 경기 후 자신이 재일교포라고 말하며 재일교포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함과 동시에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일본인으로서의 긍지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5월 16일에는 토니 스트래들린을 꺾고 UPW ZERO1-MAX World-1 인정 인터내셔널 주니어 헤비급 벨트를 차지했고, 4회를 방어해 내다 12월 18일 치바에서 수퍼 크레이지에게 벨트를 내주었다.
ZERO1에서 활동하며 챔피언 경력을 만들어 나가다가 타단체에도 출연하고 있었고, 2006년 12월 23일 NOAH에서 스기우라 타카시를 꺾고 통산 2회 GHC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에도 등극한다.
2008년 5월에는 오랫만에 고향 신일본의 BOSJ에 참전, 여태까지 그래왔듯 A조에 배정받았으나 승점은 미노루, 수신과 함께 4점으로 공동 3위에 만족해야 했다.
2.3. ZERO1 퇴단 이후 프리랜서
2008년 12월 17일자로 ZERO1-MAX와 협의 하에 계약을 해제하며 FA가 되고, 그 후로도 ZERO1에서 경기를 가지나 전일본 프로레슬링, 신일본 프로레슬링, FTO, 대일본 프로레슬링, NOAH, FREEDOMS, DDT 프로레슬링, WRESTLE-1에서도 출전하며 여러단체에 출연하고 다닌다.3. 여담
- 처음 재일교포인 것을 대중들에게 공개하게 된 것은 2004년 Zero1의 천하제일 주니어 결승(vs 이시이 토모히로) 때로, 하시모토 신야가 결승 전에 애국가를 틀라고 했다고 한다. 타카이와 왈 "모두 내가 혼혈인거 알고 있을텐데 왜 이제와서..."라고 생각했다고.[17]
- 어렸을 적 아버지가 집에도 없는데다 돈도 보내지 않아 집안이 굉장히 가난했으며, 성장기에는 오사카시에서 살고 있었는데 초등학생 때만 9번 이사라는 이름의 야반 도주를 해야했다고 한다. 공장의 2층에서 살아본 적도 있다고. 생활이 어려운 나머지 3남매 중 맏이였던 누나를 외가집에 맡기기도 했으며, 타카이와 본인도 신문 배달을 5년 넘게 하면서 신문 배달 장학금으로 고교 졸업 후 전문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 프로레슬러를 목표로 한 계기는 보통 프로레슬링 팬 → 프로레슬러 루트를 타는 다른 프로레슬러들과는 달리 그냥 돈을 벌고 싶어서로, 부모님은 안정적인 경찰관이 되기를 원했으나 인생에 재미가 없을 것 같거니와 돈도 많이 못 벌기 때문에 스모, 프로레슬링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 했는데 스모는 중학생 때부터 하지 않으면 입문하지 못 하기 때문에 프로레슬링을 골랐다고 한다.
- 처음 입문 테스트를 본 곳은 Rings로, 이유는 단순히 서점에서 주간 공을 봤더니 Rings의 제자 모집 공고가 올라와서였다고. 힌두 스쿼트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18] 테스트를 보러 갔기 때문에 어떻게든 끝까지 하기야 했는데 탈락했다고 한다.
- 프로레슬러 입단 후 얼마 안 있어 원형 탈모가 진행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영 라이온을 벗어나고도 스킨헤드에 가까운 머리를 유지했고, 그대로 스킨헤드로 전향했다. 20대 중반인 오오타니 신지로, 카네모토 코지와의 통가리 콘즈 시절에 이미 반쯤 스킨헤드였다.
- 소문난 경마광. 경기가 없는 주말에는 항상 경마장을 찾는다고 하며 선수명감의 '좋아하는 유명인' 란에도 좋아하는 경주마의 이름을 적을 정도라고 한다.
- 종합격투기 짐에서 코치로도 활동한다.
4. 둘러보기
역대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우승자 | ||||
1999 | → | 2000 | → | 2001 |
켄도 카신 | → | 타카이와 타츠히토 | → | 수신 선더 라이거 |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태그팀 | ||||
초세대군([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 ( 미사와 미츠하루 & 아키야마 쥰) (1996, 1997) |
→ |
통가리 콘즈 ( 오오타니 신지로 & 타카이와 타츠히토) (1998) |
→ |
BURNING 코바시 켄타 & 아키야마 쥰 (1999) |
[1]
횡방향 모션을 크게 잡아 칼로 베는 것 같이 친다.
[2]
다른 머신건 찹이 그렇듯 거의 쇼맨십용 기술이라고 보면 된다.
[3]
팔이 특별히 굵지도 않은 편이지만 허릿심이 좋아 훌륭한 래리어트를 보여준다. 코너식, 로프반동식 등 여러 사용법을 보여주며, 상대와 고함을 지르며 공격을 주고받다가 "시끄러 임마!!(うるせぇこら!!)"라고 외치면서 숏레인지식으로도 상당히 자주 사용한다. 러닝식은 피니셔로도 활용했으며,
오오타니 신지로를 상대로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7 결승전에서 이 기술로 우승을 거두었다.
[4]
텐류 겐이치로식의 배면 엘보 드랍. 세컨 로프에서 사용한다. 이전에는 높이가 상당한 정통 엘보 드랍만 사용했으나 2023년 이후 타카이와의 연령적인 문제도 있어서인지 배면 엘보 드랍을 사용하게 되었다.
[5]
떨굴 때 약간의 점프를 가미하여 수직낙하식으로 떨어트린다.
[6]
파워 밤을 찍은 상대를 그대로 들어올려서 연속으로 파워 밤을 갈기는 기술. 근육미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튼튼한 통짜 허리를 가지고 있는 타카이와의 주니어를 넘어선 파워를 보여주는 상징기이다. 때로는 떡찧기식 파워밤에서 데스 밸리 밤으로 잇는다.
[7]
타카이와의 최종 피니셔. 브레인버스터 상태에서 상대의 몸을 반전시켜 리버스 파일 드라이버 형태로 상대를 떨어뜨리는 기술.
스캇 스타이너가 사용하는 SSD와 동일.
[8]
타카이와의 파워 파이팅에서 붙은 별명인데, 똑같이 초룡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동시대에 활동하던 신일본의 파워하우스 빅맨 용병
스캇 노턴과 구별하기 위해 '주니어의 초룡'이라고 할 때도 있었다.
[9]
모탈 컴뱃의 첫 영화판인
모탈 컴뱃(1995년 영화)에서 나온
고로와 아트 린의 대결에서 쓰인 Ost. 타카이와의 초창기 테마곡으로 쓰였다.
[10]
Zero1 이적 이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테마곡. Zero1을 벗어나서도 총 20년을 넘게 계속 사용하는 타카이와의 상징곡이다.
[11]
입문 테스트 당시 시험관은
야마모토 코테츠,
쵸슈 리키,
코시나카 시로로, 그 중에서 같은 재일교포인 쵸슈에게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12]
나머지 4명 프란츠 슈만, 에밀리오 찰스 주니어,
제리 린,
카네모토 코지의 승점은 전부 2점이었다.
[13]
이 해는 각 조 1등만 결승전을 치렀고, A조의 1등은 승점 5점의 카네모토 코지, B조의 1등은 역시 승점 5점의 엘 사무라이였다. 결승전에서는 엘 사무라이가 가면이 벗겨진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설붕식 리버스 DDT와 리버스 DDT 연타를 터트리며 엘 사무라이가 승리했다.
[14]
역시나 A조에 참전했으나 승점 4점으로 결승 진출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15]
이 벨트는 장장 1년을 지켜내다가 주니어 스타즈(카네모토 코지 &
타나카 미노루)에게 2000년 6월 25일에 내줬다.
[16]
본명 '타카이와 타츠히토(高岩 竜一)'에서 '岩'자를 제외하면 '고용일'이라는 독음이 되는데, 이것을 그대로 한국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17]
타카이와 왈, 민감한 이야기를 링위로 끌고 올라가기 좋아하는 하시모토의 성향상 Zero1에 한국인 레슬러가 있다라는 것을 알려 한국의 부자를 스폰서로 획득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물론 하시모토는 그래놓고 정작 민감한 이야기의 세부 내용은 아예 모른다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18]
첫 입문 테스트가 힌두 스쿼트 500회, 그런데 횟수가 아니라 시간을 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