ザ・グレート・サスケ /The Great Sasuke |
미치노쿠 프로레스 | |
<colcolor=#000000><colbgcolor=#fff> 링네임 |
더 그레이트 사스케 MASA 미치노쿠 SASUKE 닌자 사스케 블랙 닌자 |
본명 |
[ruby(村川, ruby=むらかわ)] [ruby(政徳, ruby=まさのり)] 무라카와 마사노리 |
생년월일 | 1969년 7월 18일 ([age(1969-07-18)]세) |
신장 | 173cm |
체중 | 82kg |
출생지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
유형 | 루차 리브레 + 하이 플라이어 -> 루차 리브레 + 쇼맨 + 하드코어[1] |
시그니쳐 무브 |
토페 콘 히로 아시히 문설트 사스케 스페셜 I 사스케 스페셜 II 센턴 아토미코[2] 라이더 킥 라 부파도라 |
피니쉬 무브 |
썬더 파이어 밤 라운딩 바디 프레스[3] 램 잼[4] 사스케 스페셜 X[5] |
별명 |
마스터 도호쿠의 영웅 |
테마곡 |
みちのくひとり旅 - 야마모토 죠지[6] ゆけゆけ飛雄馬 - 앙상블 보카[7] Separados - 더 그레이트 사스케 [8] Integral Hard - 시바타 나오토 [9] NOTFORSALE - SASUKE時代 Sweet Child O' Mine - Guns N' Roses Metal on Metal - Anvil Beat of Tomorrow - 세인트 엠마 |
데뷔 |
1990년 3월 1일 (21세) 도쿄도 분쿄구 코라쿠엔 홀 유니버설[10] vs 몽키 매직 와키타 |
주요 커리어 |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IWGP 주니어 태그팀 챔피언 1회 WWF 라이트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초대 주니어 8관왕[11][12][13] |
1. 소개
일본의 프로레슬러. 짧게 G・サスケ로도 표기한다. 악역일 때는 SASUKE란 링네임을 사용한다. 미치노쿠 프로레슬링 주식회사의 창립자이다. 울티모 드래곤, 수페르 델핀[14]과 더불어 일본식 루차 리브레를 확립한 주역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15]가면의 디자인은 가부키의 구마도리(隈取り)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평소에는 붉은 구마도리를, 악역일 때는 파란 구마도리 가면을 쓴다. 루차 리브레의 영향을 받아 사생활에서도 일절 가면을 벗지 않는다. 심지어 목욕할 때도 가면을 쓰고 한다고. 이 때문에 현의원으로 당선됐을 때 논란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
한창 전성기이던 1990년대에는 고난도의 공중기를 자유자재로 쓰면서 세계 수준의 루차도르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나이도 들고 체중이 늘어서인지 전성기만큼 고난도 공중기는 잘 쓰지 않고 공중기를 써도 자폭하는 일이 많다.
2. 커리어
2.1. 유니버설 프로레슬링(1990- 1993)
신일본 프로레슬링 학교에서 프로레슬링을 배워 1990년에 데뷔했다. 데뷔 초반에는 본명을 사용하다가 얼마 후 MASA 미치노쿠란 링 네임을 썼다. MASA는 본명 마사노리에서, 미치노쿠는 고향인 도호쿠지방을 달리 부르는 미치노쿠에서 따왔다.[16]이후 몽키 매직 와키타[17]와 함께 멕시코에서 수행하다가 1992년 잠깐 귀국해 수페르 니뇨로 활동했고, 다시 멕시코로 원정갔다가 8월 귀국하면서 더 그레이트 사스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2. 미치노쿠 프로레슬링(1993년-현재)
1992년 10월 경기에서 승리한 후 도호쿠지방 6개 현에 프로레슬링을 뿌리내리게 하는 것을 목표로 지역 밀착형 단체 '미치노쿠 프로레슬링' 설립을 선언했다. 미치노쿠 프로레슬링은 한 달 후인 11월 사전출범전을 거쳐, 1993년 3월 16일 공식 출범했다. 일본 인디 프로레슬링 단체 중 최초로 도쿄가 아닌 지방을 중심으로 한 단체로, 루차 리브레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도 다른 단체들과 대비됐다.1994년 신일본 프로레슬링 주최로 열린 1회 슈퍼 J컵에 출장해 2회전에서 신일본 소속 엘 사무라이를 꺾었고, 준결승에서는 수신 선더 라이거를 상대로 이겼다. 비록 결승전에서 와일드 페가수스를 상대로 졌지만,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에서 준결승전과 결승전 모두 별 5개를 줬을 정도로 경기 자체도 명승부였고 전국에 중계되는 슈퍼 J컵에서 당대 최고의 경량급 선수였던 라이거를 꺾은 것 때문에 일본 전역에 미치노쿠 프로레슬링을 알림과 동시에 일약 스타가 됐다.
같은 해 7월 WAR 양국대회에서 울티모 드래곤과 경기를 가졌다. 당시 둘 다 루이스 미겔의 Separados를 테마곡으로 사용했었는데, 패배하면서 사스케는 Separados를 포기하고 미치노쿠 프로레슬링 테마를 테마곡으로 사용했다.
1996년 8월 신일본프로레슬링 양국대회에서 열린 각 단체 대표에 의한 주니어 8관왕 통일 토너먼트에서 울티모 드래곤을 꺾고 초대 주니어 8관왕 챔피언이 됐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두개골 골절의 중상을 입어[18] 장기간 결장이 불가피해졌는데, 2달만에 복귀를 강행했다.
1997년 WWF로부터 오퍼를 받았다. 당시 WWF는 신설된 라이트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타이틀을 둔 토너먼트에서 사스케를 우승시키려고 했다. 사스케는 정식 계약을 앞두고 제자인 타카 미치노쿠를 추천하면서 그와 경기를 가졌는데, 마침 그 경기를 지켜본 빈스 맥마흔이 타카 쪽을 더 높게 평가해 WWF는 사스케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타카와 계약했다.
1998년 부상 때문에 결장을 반복하다가 경영난을 이유로 단체 활동을 중단하기로 했는데, 수페르 델핀 등 선수들의 반발하면서 단체 운영을 두고 대립하게 됐다. 결국 수페르 델핀은 1999년 1월에 자신을 따르는 선수들과 함께 미치노쿠 프로레슬링에서 탈단해 오사카 프로레슬링을 창단하면서 연을 끊었다.
1999년 공석이었던 NWA 월드 미들웨이트 챔피언 벨트[19]를 두고 매그넘 TOKYO와의 경기에서 우승하면서 챔피언이 됐다. 4년간 28회의 방어전을 거치고 2003년 울티모 드래곤에게 벨트를 넘겨주는데, 불과 1달만에 울티모 드래곤이 WWE와 계약하면서 다시 공석이 됐다.
2003년 현 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자 미치노쿠 프로레슬링 사장직을 사임했고 신자키 진세이가 사장을 맡게 됐다.
같은 해 9월 후쿠면 월드리그에 참여해 당시 자민당 소속 참의원이기도 했던 오니타 아츠시를 상대로 전류 폭파 데스매치를 치렀다. 일본 최초의 의원 레슬러간의 대결로 광고됐는데, 오니타의 승리로 끝났다.
2003년 11월 미치노쿠 프로레슬링 창립 10주년 기념대회에서 수페르 델핀과 경기를 치렀다. 과거 대립 끝에 델핀이 탈단하면서 둘은 껄끄러운 사이가 됐지만 미치노쿠 프로레슬링 사장인 신자키 진세이와 팬들의 설득으로 수락했다. 경기는 수페르 델핀의 승리로 끝났는데 경기 후에도 여전히 껄끄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06년 11월 이와테대회에서 도호쿠 주니어헤비웨이트 챔피언인 수페르 델핀을 상대로 승리했다. 3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경기 후 서로 악수하면서 둘의 사이가 어느 정도 완화됐음을 보였다.
2009년 8월에는 영화 더 레슬러의 주인공 랜디 "더 램" 로빈슨을 오마주했는데, 영화에서 랜디가 슈퍼마켓에서 일한 것처럼 사스케도 모리오카 시내 중화요리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달 31일에는 미치노쿠 프로레슬링 사장직에 복귀했다.
2011년에는 미국 치카라에서 활동했다.
2012년 11월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세계 최강 태그팀 결정 리그전에 참가했는데, 경기 도중 왼쪽 어깨 골절의 부상을 당해 1년간 결장했다.
2013년 12월, 오랜 기간 앙숙이었던 바라몬 형제와 협력하면서 턴힐해 무의 태양이란 군단을 만들었다. 지구에 위기가 찾아온 것을 느낀 사스케가 지구를 구하기 위한 메시아로 나서고 바라몬 형제가 사도로서 사스케를 보좌한다는 설정. 사스케는 시합 전에 가마를 타고 입장하면서 경기 중에는 바라몬 형제를 염력으로 조종하는 컬트 집단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기를 끌어, 2014년 사무라이 TV에서 시청자 투표로 선정하는 인디 프로레슬링 대 2014에서 베스트 군단상에서 1위로 선정됐다.
2.3. 정치인 커리어
2003년 미치노쿠 프로레슬링 주식회사 사장직에서 물러나 무소속으로 이와테 현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본명이 아닌 링네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가면을 쓴 채로 유세했고, 2003년 4월 13일 1위로 당선됐다. 안토니오 이노키, 하세 히로시, 오니타 아츠시에 이어 4번째 프로레슬러 출신 현의원이 됐다.공약 중 하나로 가면을 쓴 채 의회에 참석을 하는 것을 내걸었는데, 자유민주당과 공명당 소속 현의원들은 가면을 벗고 의정 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됐다. 마스다 히로야 당시 이와테 현지사도 유권자가 표정을 볼 수 없어 정치인으로서 활동을 평가하기 어렵다며 가면 착용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사스케는 얼굴 노출 부분을 늘린 새로운 가면을 만들었다. 관련뉴스
이 논란은 점점 매스컴의 주목을 받아 뉴욕 타임즈에도 보도될 정도로 과열됐고, 결국 마스다 지사는 가면을 쓴 채 등원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에 자유민주당, 공명당 현의원들은 회의장에서의 가면 착용 금지에 대한 규칙 개정안을 제출했다. 2003년 6월 25일 현의회에서 기명 투표는 찬반 동수가 됐고, 후지와라 의장에 의한 의장 결재로 부결 처리되면서 마침내 가면 착용이 허용됐다.
2007년 4월 현지사에 나서기 위해 현의원직에서 사직했는데, 5명의 후보 중 3위로 낙선했다.
2011년 이와테 현의원 선거에 재출마했는데 16명 중 14위로 낙선했다.
3. 여담
- 아내는 멕시코인으로 멕시코에서 수행할 당시에 만났다. 이 때문에 가족들끼리는 스페인어로 말한다고 한다.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팬클럽 명예회원이다.
- UFO 연구가로도 유명해 도호쿠 UFO 포럼의 게스트로 초대된 적도 있다. 현의원이던 시절에도 이와테현에 UFO에 대한 목격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현의 입장을 묻기도 했다.
- 2009년 2월 전철 안에서 평소처럼 가면을 쓰고 있던 중 한 30대 남자가 휴대전화로 자신의 모습을 찍자 초상권을 주장하며 휴대전화를 뺏어 던지고 폭행해 체포됐다. 합의가 잘됐는지 20일만에 복귀했다.
- 2012년 3월 센다이시에 '면도 THE 그레이트 사스케(麺道THE匠サスケ)'란 국수 전문점을 열었다. 본인이 직접 방송에서 가게를 소개하기도 했으나 같은 해 10월 폐점했다.
4. 둘러보기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최고의 레슬링 피니셔 | ||||
베이더 다이빙 문설트 (1993) |
→ |
더 그레이트 사스케 사스케 스폐셜 (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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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미스테리오 Jr. 플립 다이브 인투 어 프랑켄슈타이너 온 더 플로어 (1995)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최고의 하이 플라이어 | ||||
수신 선더 라이거 (1989 ~ 1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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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레이트 사스케 (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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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미스테리오 Jr. (1995 ~ 1997)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5성 경기 [★] | ||
1994년 4월 16일 |
신일본 프로레슬링 슈퍼 재팬 컵 |
싱글 매치 _ 와일드 페가수스_ vs 더 그레이트 사스케 |
1994년 7월 8일 |
신일본 프로레슬링 섬머 스트러글 8일차 |
싱글 매치 _ 수신 선더 라이거_ vs 더 그레이트 사스케 |
일본 인디 대상 MVP | ||||
이부시 코타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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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레이트 사스케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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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시 코타 (2009) |
[1]
나이가 고령에 접어들었고 허리 부상, 다리 부상 등의 심각한 부상들을 겪게 되면서 2010년대 들어선 공중기를 거의 대부분 봉인한 상태가 되었고, 쇼맨쉽과 하드코어 경기 위주를 치루는 하이브리드한 스타일이 되어버렸다.
[2]
제프 하디의 스완턴 밤의 원조인데, 성공하면 본인이 더 놀랄 정도로 성공률이 바닥을 친다.
[3]
1대 타이거 마스크가 사용한 그 라운딩 바디 프레스가 맞다
[4]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영화
더 레슬러에 대한 오마주로 사용했다.
[5]
탑로프 DDT
[6]
MASA 미치노쿠 시절 태마곡
[7]
MASA 미치노쿠 시절 태마곡
거인의 별애니메이션op 이다
[8]
루이스 미겔의 곡을 커버한 노래다. 사스케 본인이 노래하고 노래 시작 부분에 『사쿠라 사쿠라』를 넣어 어레인지를 하였다.
[9]
미치노쿠 프로레슬링의 테마
[10]
유니버설 프로레슬링
[11]
1996년 6월 17일에 열린 THE SKY DIVING-J 흥행때
수신 선더 라이거의 주니어 타이틀을 통합해보자 라는 제한을 통해 1996년 8월 2일 부터 7일까지 열린 J-CROWN 흥행에서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을 하여 첫 경기에서 이기면 2관 두번째 경기에서 이기면 4관 결승에서 이기면 8관 이렇게 진행되었다 결국 그레이트 사스케가 최종 우승을 차지하여 첫 주니어 8관이 되었다.
[12]
J-CROWN참가자는
수신 선더 라이거,
울티모 드래곤, 엘 사무라이, 오오타니 신지로, 네그로 카사스, 그란 하마다, 모테기 마사히로, 그레이트 사스케 이렇게 8명이다.
[13]
토너먼트에서 걸린 타이틀은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WAR 인정 인터내셔널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WWF 라이트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UWA 세계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브리티시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NWA 웰터급 챔피언십, NWA 월드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WWA 월드 라이트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이렇게 8개의 타이틀이 걸렸다.
[14]
한국에서는 스펠 델핀으로 알려져 있으나, 스페인어 수페르를 가타카나로 옮긴 것으로 영어 Spell이나 스페인어 Super나 가타카나로는 スペル로 똑같이 표기하다 보니 생긴 오류이다.
[15]
일본에 루차 리브레의 붐을 일으킨 건 초대
타이거 마스크인 사야마 사토루지만, 이 3명은 멕시코에서 루차 리브레를 배우고 귀국한 이후 일본에서 루차 리브레를 베이스로 하는 단체를 직접 운영했다.
[16]
제자
TAKA 미치노쿠의 링네임은 이를 이어 받은 것이다.
[17]
이후 수페르 델핀으로 링네임을 바꾼다.
[18]
주특기 중 하나인 토페 콘 히로를 시전했는데 거리 계산에 실수해 울티모 드래곤이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면서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찧고 말았다. 어찌 경기를 마치긴 했으나, 부상당한 순간 사스케 본인도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
[19]
원래는 울티모 드래곤이 갖고 있었지만 팔 부상으로 인해 은퇴를 선언하면서 공석이 됐다.
[★]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