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06:39:42

키스 자렛

키스 재럿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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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키스 자렛[1]
Keith Jarrett
파일:keithimg2.jpg
출생 1945년 5월 8일 ([age(1945-05-08)]세)
펜실베이니아 주 앨런타운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피아니스트, 작곡가
장르 재즈, 클래식
학력 버클리 음악대학
활동 1966년 ~ 2018년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음악 경력
2.1. 유년기2.2. 아트 블래키, 찰스 로이드2.3. 첫번째 트리오2.4. 마일스 데이비스2.5. 콰르텟과 ECM(음반사)의 만프레드 아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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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재즈 클래식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초기에 아트 블래키의 재즈 메신저스에서 피아니스트로 경력을 시작하였으며, 찰스 로이드, 마일스 데이비스를 거쳐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리더, 솔로 연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클래식을 비롯해 가스펠, 블루스, 민속 음악 등에서 영향을 받은 키스 자렛의 피아노 솔로 즉흥 연주 앨범 중 하나인 The Köln Concert는 약 400만 장의 판매로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솔로 피아노 앨범이며, 피아노 독주 형식 기반의 즉흥 연주의 지평을 확장했다고 평가받는다.

1980년대에 이르러선 빌 에반스 트리오 이후 재즈사에서 가장 큰 자취를 남기고 있는 키스 자렛, 게리 피콕, 잭 디조넷으로 구성된 스탠다드 트리오가 결성되었고, 25년 이상 레코딩 및 투어를 지속해왔다.

2. 음악 경력

2.1. 유년기

1945년 5월 8일 펜실베이니아 앨런타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독일계와 슬로베니아계 이민자 출신이었다. 유년 시절부터 천부적인 음악 재능을 보여주었는데, 3살 전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으며 7살엔 그의 첫 번째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생상스 등을 연주했다.

클래식 연주자의 길을 걷던 키스 자렛은 펜실비니아 엠마오의 엠마오 고등학교에서 재즈를 배운 후 현대 재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파리에서 나디아 불랑제에게서 클래식 작곡을 배우도록 제안 받았지만, 결정적으로 뉴 호프에서 데이브 브루벡의 연주에 매료되어 나디아 불랑제의 제안을 거절하고 클래식에서 재즈 쪽으로 관심을 기울게 된다.

1963년, 엠마오 고등학교를 졸업 후 버클리 음악대학에 입학했으며, 보스턴 지역의 칵테일 바에서 연주하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보스턴으로 이사하였다.

2.2. 아트 블래키, 찰스 로이드

1964년, 키스 자렛은 뉴욕으로 이사하여 빌리지 뱅가드에서 연주하게 되었고, 아트 블래키는 키스 자렛을 재즈 메신저스의 피아니스트로 쓰게 되었다.[2] 하지만 아트 블래키와의 마찰을 빚어 재즈 메신저스를 떠나게 되었으나 그룹 활동 당시 전설적인 재즈 드러머 잭 디조넷은 키스 자렛의 연주에 주목했으며, 찰스 로이드의 콰르텟에 그를 추천하게 되어 찰스 로이드 콰르텟에 합류하게 된다.
피아노, 소프라노 색소폰, 퍼커션 키스 자렛

2.3. 첫번째 트리오

또한 키스 자렛은 찰리 헤이든, 폴 모티안과 트리오의 리더로써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주로 락, 포크 음악에 기반을 둔 실험적인 여러 재즈 앨범들을 발표했다. 한편 이 트리오는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토속 민족 음악에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주목할 점으로는 토속 음악에 영향을 받은 메인 멜로디의 펜타토닉 사용과[3], 피아노를 최대한 배제하거나 후반으로 곡이 진행되면서 확장해나가는 구조이다.
Keith Jarrett - Death And The Flower, 동양 불교 사상에서 영감을 받은 앨범.
앞서 말한 토속 민족 전통 음악 실험의 정수라고 평가받는 The Survivors' Suite 앨범의 전작.

2.4. 마일스 데이비스

Miles Davis - The Isle Of Wight Festival
찰스 로이드와의 음악적 가치관의 돈에 관한 분쟁으로 콰르텟을 끝내게 된 키스 자렛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밴드에서의 활동을 시작하는데, 주로 칙 코리아와 키보드 연주자로 번갈아가며 일렉트릭 오르간이나 로즈 일렉트릭 피아노를 연주했으나 퓨전 재즈와 전자 악기에 대한 강한 염증을 느끼는 도중이였다.[4]

그런 와중에도 자렛은 잭 디조넷과 마일스 데이비스를 향한 존경심과 같이 연주하고 싶은 열망으로 키보드 플레이어를 계속해왔지만 1971년, 그해 잭 디조넷이 마일스 데이비스의 밴드를 나오게 되고, 자렛도 그 뒤를 따르게 된다.

2.5. 콰르텟과 ECM(음반사)의 만프레드 아이허



[1] 원어 발음은 자렛보다 재럿에 훨씬 가깝다. [2] 1966년 4월에 발매된 재즈 메신저스의 앨범 Buttercorn Lady는 자렛의 첫 데뷔 음반이다. [3] 특히 26곡의 비교적 짧은 주제로 모여진 Spirits이 가장 잘 도드라진다. [4] 키스 자렛의 클래식적인 성향을 알 수 있는 대목. 뿐만 아니라 키스 자렛은 허비 행콕이 전자 악기를 사용하며 펑크, 퓨전 등의 음악으로 전향하였다는 것에 실망스럽다고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