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2:45:19

쿠르디스탄 노동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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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 대원들
쿠르디스탄 노동자당
Partiya Karkerên Kurdistanê
Kurdistan Workers' Party(P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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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기 }}}
창당 1978년
창당자 압둘라 외잘란, 무라트 카라일란, 세밀 바익
당수 압둘라 외잘란
국제조직 없음
터키 대국민의회
0석/0석(0%)
이념 혁명적 사회주의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A]
공산주의[A]
쿠르드 민족주의
본부 튀르키예, 시리아, 이라크[3], 레바논

1. 개요2. 역사3. 현황4. 기타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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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재 튀르키예 정부에서의 이 단체를 바라보는 시각. 튀르키예의 공영방송인 TRT에서 밝히는 PKK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교차검증해서 봐야한다.

튀르키예에서 활동중인 쿠르드족의 분리주의 무장조직, 테러조직. 약칭 PKK. 극좌,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성향이다.

2. 역사

신생 쿠르드 독립국 건국을 갈망하는 터키 출신 쿠르드족 민족주의자 압둘라 오칼란 1978년에 설립하였다. 그런데 더 거슬러 올라가면 튀르키예어로 에슈키야(Eşkiya, 도적)라고 불리던 마적단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오스만 제국시대와 공화국 초창기에 아나톨리아 지방은 도시를 제외한 시골지역에는 아아(Ağa)라고 불리는 대지주들이 마을단위의 토지를 보유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소작을 부치면서 사실상 농노처럼 부리는 체제가 지속되고 있었다. 튀르키예 총리 아드난 멘데레스도 이러한 대지주 출신이었으며 대지주들은 자신의 소작민들에게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정당에 대해 몰표를 강요하거나 사적으로 제재를 가하고 자신에게 거슬리는 주민을 마을에서 추방시킬 정도의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다.[4]

특히 동부지역은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미진했고,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이어져온 쿠르드 부족들의 자치 전통이 존재했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대지주들은 더욱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이러한 대지주들에 대항한 소작민들이 마을을 탈출해서 말을 타고 다니면서 대지주의 집과 곳간을 털어먹는 도적이 되는데 이들이 이후 공산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으면서 공산주의 게릴라 같은 단체로 발전하게 되었다. 1970년대 초까지 지속된튀르키예 내 좌우파의 갈등과 중앙정부와 결탁해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지주들에게 저항하는 에슈키야들이 여럿 있었으며, PKK의 초창기 또한 이러한 마적단중 하나 였다.

창설 이후 폭력시위나 사보타주, 폭탄테러를 벌이는 식으로 튀르키예에게서 분리독립하는것을 지향해왔다. 레바논에 훈련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 그리고 서구에 있는 튀르키예인들의 외교시설과 상점까지 공격하는 덕에 튀르키예는 물론이고 서유럽 국가들, 미국에게 테러단체로 지정되었다. #

PKK가 초창기에는 이 지역에 널리 실시되고 있던 대지주제에 대한 소작민들의 반발로 인해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테러대상은 주로 지주, 모스크였으나, 1980년 케난 에브렌의 쿠데타 이후 튀르키예 정부가 급속히 우경화되고, 정부를 지지하는 대지주층에 대한 반발로 분리독립 주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역시 먹고살기 힘들면 칼을 잡는 법이다. 정작 쿠르드 해방을 주장하면서도, 이들이 제일 많이 피해를 끼친 이들은 역시 쿠르드인이다. 때문에 쿠르드인들도 대체로 PKK에서 떨어져나온 온건파와 튀르키예의 좌파가 연합하여 결성한 인민민주당(HDP)은 지지하지만 PKK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창설 초기에는 이념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했으나, 1999년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Abdullah Öcalan)이 튀르키예 당국에 체포된 뒤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고 민주연맹주의를 새로 표방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기 전이나 후나 튀르키예 내의 급진 좌파운동과 계속 연대하고 있다. 이 민주연맹주의는 외잘란이 옥중에서 감명 깊게 읽은 미국의 좌파 운동가이자 생태 운동가 머레이 북친의 영향을 짙게 받은 아나코-사회주의적 사상이다. 엄밀이 말하자면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에 생태운동을 접목 시킨 것이다.

이슬람 국가의 등장과 함께 쿠르드족의 생존권이 위협받자 튀르키예의 참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주도하며, 이라크, 시리아에 의용군을 파견하고 있는데, 이 과정이 유혈 시위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튀르키예 당국과 휴전을 맺었지만, 튀르키예의 참전을 요구하며 이들이 튀르키예 당국도 같이 공격하면서 깨졌다.

튀르키예에서도 이슬람주의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IS보다도 더 밟아버려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이 과정에서 IS에게 심정적 지지를 날리는 원흉이 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현재 PKK에 대한 입장은 PKK가 그들을 적대하지 않기에 당장은 절대악 다에쉬를 막아야 하니까 일단은 나쁘게 보지 않는 테러단체라면, 튀르키예에서는 PKK나 IS나 그놈이 그놈이라고 보는 인식이 강하다.

그나마 다행으로 현재 PKK는 폭력노선을 포기하고 평화노선으로 방향을 바꾸었다...인 줄 알았는데 IS의 수루치 테러를 빌미로 튀르키예 경찰 및 군인들을 지하디스트와 협력했다는 이유로 살해하여 도발했다. # 튀르키예 정부 역시 보복으로 IS와 PKK 양쪽으로 공습을 가하면서 PKK는 분노하여 다시 폭력노선으로 돌아갔다.

특히 튀르키예 정부는 PKK와 타협하지 않고 멸망시키겠다며 강경노선을 펼치다보니 PKK도 결사항전을 외치며 필사적으로 튀르키예군과 맞서고 있다. 수루치 테러 이후 튀르키예에서는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PKK의 테러와 게릴라전으로 인해 튀르키예 군경들의 사망 소식이 뉴스에 흔하게 실리고 있는 중. 특히 PKK와의 전쟁 때문에 치안이 불안해지면서 세계 국가들이 튀르키예로의 관광을 기피하게 되어 튀르키예의 주요 산업인 관광업도 침체된 상황이다.그 대신 그리스와 불가리아만 관광산업에서 입 떡 벌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튀르키예에게선 심각한 골칫거리가 되었다.

2015년 9월부터 튀르키예가 동남부에서 대대적인 소탕을 시작하면서 해당 지역에 강제이주 명령이 내려져 10만명이 피란길에 올랐으며, 디야르바크르 구시가지, 마르딘도 누사이빈(Nusaybin)군, 시으르낙도 지즈레(Cizre)군, 학캬리도 등에 출입통제령이 발표되었다. 대체로 PKK와 튀르키예군의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들은 민간인이 소개되어 빈 상태이지만 미처 피신하지 못한 민간인이나 오사로 인한 민간인 피해, PKK의 보복으로 인한 군경 및 공무원 피해자가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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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동남부 지역의 피해 현황.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절대로 이라크 시리아가 아니다.

2016년 3월 19일 PKK의 보복으로 튀르키예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 2016년 이스탄불과 앙카라에서만 각각 3차례, 2차례 PKK에 의한 테러가 발생했다. 8월에도 튀르키예 도 이키 니산(İki Nisan)동의 경찰서에 차량 폭탄 테러를 일으켜 3명의 사망자와 71명의 부상자를 나오게 했다. 9월에 계속된 PKK의 테러와 게릴라전에 빡친 튀르키예 정부는 공군으로 동원해 남동부의 학캬리 도에서 PKK에 대한 공습을 실시해 7명을 사살했다. 이로써 PKK는 지금까지 사망한 대원이 7천명에 이른다. 하지만 튀르키예 측의 피해도 상당한데 현재까지 튀르키예 군인과 경찰이 600명이나 사망했고, 2배에 달하는 인원이 부상을 입었으며, 민간인 피해 역시 비슷하게 발생했다.

2017년 5월에는 튀르키예측이 PKK 대원 29명을 사살했다. 하지만 교전중에 튀르키예 군경 8명이 사망했다. 특히 튀르키예의 남동부에는 통행 금지령이 발령되었다.

2017년 9월에 튀르키예는 2017년 동안 PKK 대원 1800명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튀르키예측은 작전을 수행하던 군인 126명이 전사했고 공무원 19명과 민간인 13명도 사망했다. # 튀르키예의 고위 정보요원 2명도 PKK에게 납치되었다. #

2019년 5월 4일 PKK 대원들이 튀르키예의 남동부 하카리 주에서 튀르키예 군인들을 공격하여 3명을 사망하게 하고 1명을 중상입히자 튀르키예군은 보복으로 하카리 주와 시리아 델 리파아트에 공습과 포격을 가하여 쿠르드 반군 28명을 사살했다. #

2019년 8월 23일 튀르키예 정부는 PKK 대원 635명을 무력화시켰다고 발표했다. #. 튀르키예에서는 적을 사살하거나 생포하고 적이 항복하면 무력화라는 단어를 쓴다. 25일에는 PKK와의 교전중이던 튀르키예군 병사 3명이 전사하고 7명이 부상당했다. #

2019년 10월 27일 시리아 북동부에서 PKK와 YPG가 튀르키예군을 공격하여 튀르키예 군인 1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당했다. #

2020년 6월 1일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튀르키예군이 PKK 대원 3명을 사살했다. # 14일에 튀르키예 공군이 이라크 북부의 PKK 근거지를 공습했다. # 17일부터는 튀르키예군이 이라크 북부에서 PKK에 대한 소탕작전에 들어갔다. #

이쪽도 옛날 아일랜드 IRA나 다른 민족 독립 성향의 무장 반군 단체와 비슷한 상황이 있다. 2010년대에서 2015년 사이 있었던 튀르키예와 PKK간 평화 협정에 반발하여 떨어져 나온 쿠르디스탄 자유의 매(Teyrêbazên Azadiya Kurdistan, TAK)라고 부르는 과격 분리 세력이 있다. 최근 2016년 2, 3월에 연속으로 있었던 앙카라 폭탄 테러, 50명 가까운 희생자를 남긴 16년 12월의 이스탄불 폭탄 테러, 같은 달 카이세리 폭탄 테러 같은 민간인 피해를 여의치 않고 집중적인 도심 내 폭탄 테러를 집중적으로 가하는 과격파라 비난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PKK 자체와 분리 되지 않는 동일 집단 뿐이라고 주장하나, 적어도 PKK 간부들은 본인들도 딱히 통제 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TAK 당사자들도 PKK는 휴머니스트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며 별개 단체임을 주장한다. 물론 PKK 본인들이 자행하는 공격에서도 민간인 피해가 나지 않는건 아니다.

어찌 되든 튀르키예 정부 당국 입장에서는 이들이 별개의 과격파던 아니던간에 PKK 자체의 소행으로 몰아가면 그만이고, 이러한 튀르키예 내부의 공안 분위기에 일일이 딴지 걸며 반발할 사법부, 언론, 학계 등은 정치적 숙청으로 인해 마비되어 버렸으니 2017년 초 작금의 시점에서는 앞으로 전망은 더 나쁘면 더 나빠지지 다시 평화적으로 분쟁이 해결될 길은 소원해 보인다.

2020년 9월에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중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는 튀르키예에 대한 반감으로 아르메니아군과 같이 소수 인원들이 참전하고 있다.

2020년 12월에는 튀르키예 내에서는 영향력을 거의 상실하였고 이라크 북부지역으로 내몰린 상태다. 더욱 암울한건 튀르키예가 PKK 잡겠다고 이라크 북부지역을 계속 폭격하자 이라크 쿠르디스탄인 KDP와의 사이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Kurd vs Kurd: Fears of full-scale war rise in northern Iraq 사실상 5000명 남짓한 규모의 PKK 잔당들이 근처 쿠르드족들의 지지를 받지못한다면 멸망할 수 밖에 없어서 PKK의 존속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쿠르드 무장단체들이 PKK만 있는게 아니라서 설령 PKK가 멸망한다 해도 다른 무장단체들로 대체되고 새롭게 결성될 수 있어 무조건적으로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1년 2월 14일 튀르키예군은 PKK가 터키인 13명을 납치하여 살해하였기에 이라크 북부의 PKK 기지를 공격하여 PKK 대원 48명을 사살하고 무기고를 파괴했다고 밝혔다. 작전 과정에서 튀르키예군은 군인 3명이 전사하고 3명이 부상당했다. #

2022년 7월 17일 튀르키예군은 드론으로 이라크 북부를 폭격하여 PKK 대원 5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

2022년 11월 13일에 일어난 이스탄불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어 이후에 본거지인 북부 시리아와 이라크가 공습을 밭았다.




3. 현황

일각에서는 2016년 에서 모인 쿠르드족 부족 대표자들의 PKK 반대 성명 같은 예시를 들며 PKK에 대한 쿠르드족 사회의 대중적 지지와 쿠르드 민족주의에 대한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비판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다. 예나지금이나 PKK와 튀르키예 정부는 오랜 시간동안 공개적으로 내전급의 대치 상태에 있었고, 공동체 지도자들은 당연히 튀르키예 정부의 눈치를 봐야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반면 현재의 인민민주당과 거의 매 선거마다 강제 해산되어 이합집산되길 반복했던, PPK와 좌파 쿠르드 민족주의라는 이념을 공유하고 튀르키예 당국에서 항상 2중대 취급을 받아 왔던 인민노동당(HEP), 민주사회당(DTP), 인민민주당(HADEP) 같은 쿠르드계 좌파 정당들은 9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전국적으로 5% 이상의 득표율을 유지하며 적어도 터키 내 쿠르디스탄 지역인 동남부에서는 우세를 유지해왔다. 참조 논문.

이를 고려하면 PKK가 튀르키예 내 쿠르드 공동체 모두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하는 것도 과장이겠지만, 대중적 차원의 지지가 아예 없다거나 미약하다는 것 또한 왜곡이다. 특히 PKK가 활동하는 지역들은 쿠르드인들의 빈곤율과 실업률이 높고 튀르키예 정부는 해결하지 못하거나(사실 현재 튀르키예도 내부의 실업률과 빈곤율이 높아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무관심한 경우가 많아 이 지역 쿠르드인들에게선 튀르키예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며 청년층은 PKK를 포함한 쿠르드 무장단체에 가입하는 경우가 흔하다. #, # PKK를 포함한 쿠르드 무장단체들이 튀르키예 정부의 무자비한 토벌에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대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며 저항하고 튀르키예를 괴롭힐수 있는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

쿠르디스탄 노동자당은 태생부터가 비합법적 반군 단체이고, 수십년간 의회 정치의 링에 들어가려던 시도도 번번히 차단당했던 조직이다. 그런 조직에 대한 민간의 구체적인 지지도를 몇개의 성명만으로 평가하는 건 문제가 있다.

튀르키예 동부와 아나톨리아 내륙 일대가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지방이라 하나 이는 구 서부 아르메니아 지방에 해당하는 현대 동부 아나톨리아의 에르주름, 카르스 같은 지방에게 더 해당되는 말이지 쿠르드인 다수 지역인 동남부 아나톨리아는 예전부터 알레비를 비롯한 비수니파 소수 종파, 근대 이전에는 아예 사파비 왕조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아 시아파 쿠르드계 키질바시들도 많이 활동했던, 종교적으로 수니파의 확고한 우위가 자리 잡은지 그리 오래된 지방도 아니다.

쿠르드족 자체가 예지디교 조로아스터교 같은 다른 종교를 믿다가 이슬람으로 서서히 개종되었던 민족이라 예전부터 대놓고 이교도들에 비하면 쿠르드인들은 그나마 무슬림이다(li gora gawirî Kurd misilman e).라는 속담마져 있을 만큼 애초에 종교적으로 경직된 지방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이슬람권에서도 예전 남예멘에서도 사회주의적 국가 체제와 이슬람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공존했다. 이란 혁명기 중 호메이니의 이슬람주의 세력이 확고하게 승리하기 이전 이란만 하더라도 '이란 혁명의 선구자적 사상가'라고 불렸던 알리 샤리아티 박사 같은 많은 지식인들이 좌파적 이념과 무슬림으로서의 신앙을 상당히 유연하게 넘나들었다. 그런만큼 이슬람교와 세속적 좌파 사상은 무조건 이분법적으로 보기만 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당장에 아랍 민족주의와 이슬람 사회주의 성향을 내세우는 바트당의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소련의 아프간 전쟁과 아랍권에서 친소 세속 군사 정권들과 이슬람주의 세력간의 싸움을 통해 형성된 현대의 관점에서는 크게 보면 서로 상극으로 나타나지만 마치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해방신학이나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있는것 처럼 이슬람과 좌파 또한 백프로 절대적으로 공존 불가능한 이데올로기적 체계는 아니며, 쿠르디스탄의 경우 또한 그런 예외에 속할 뿐이다.

4. 기타

  • 으드르일대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PKK와 정부 군경간의 총격전을 목격한 알파고 시나씨 후기 영상도 있다. 한국어로 해당 분쟁의 목격담을 들을 수 있는데, PKK 측에서 경찰 가족을 공격하기 위해 관사를 향해 로켓을 발사하고 그에 따라 사망자가 발생한 광경이 트라우마처럼 남았다고 한다.
  • 이들의 여성게릴라를 다룬 다큐가 2016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된 '장미의 땅: 쿠르드의 여전사'가 있다.
  • 일부 PKK 멤버들은 쿠르드 마피아와 손잡고 조직자금 확보를 위해 범죄와도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튀르키예의 만성적인 밀수(술, 담배 등) 문제가 PKK와 떼 놓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아예 밀수 담배 근절 공익광고에서도 PKK의 자금원이 된다고 언급할 만큼 매우 뿌리 깊다.[5]

5. 관련 문서


[A] de Jong, Alex (18 March 2016). "The New-Old PKK". Jacobin Magazine. Retrieved 6 February 2019. [A] [3]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본부가 산맥 어딘가의 오지로 나온다. [4] 당시 튀르키예 지주제의 부조리를 알고 싶다면 영리한 페이조(Kibar Feyzo)라는 코미디 영화를 참조. 1970년대의 하란을 배경으로 지주제의 부조리와 횡포를 제대로 묘사한 영화이다. [5] 튀르키예 국경수비대들 사이에서 도는 ' 킬리스에서 절룩이는 노인은 아타튀르크의 친구이지만, 절룩이는 젊은이는 십중팔구 밀수꾼이다.' 격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