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22:50:22

카쿠나카 카츠야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00000><tablebgcolor=#000000> 파일:치바 롯데 마린즈 로고.svg 치바 롯데 마린즈
2025 시즌 외야수
}}} ||
{{{#!wiki style="margin: 0 -10px;"
{{{#000000,#e5e5e5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000000,#e5e5e5
0 오기노 타카시 · 1 후지와라 쿄타 · 3 카쿠나카 카츠야
22 그레고리 폴랑코 · 23 이시카와 신고 ·
25 오카 히로미 · 38 타카베 아키토 · 50 아이토
51 야마구치 코키 · 61 야마모토 다이토
63 와다 코시로 64 스가노 츠요시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육성선수
틀:치바 롯데 마린즈로 돌아가기
다른 NPB 팀 명단 보기
}}}}}}}}}}}}}}} ||
카쿠나카 카츠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이스턴 리그 로고.svg
2011 NPB 이스턴리그 최고출루율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2, 2016 NPB 퍼시픽리그 수위타자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2, 2016 NPB 퍼시픽리그 베스트나인(외야수)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6 NPB 퍼시픽리그 최다안타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61번
테라모토 시로 (1999~2006) 카쿠나카 카츠야 (2007~2016) 미케 카즈마 (2017~2020)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3번
사부로 (2012~2016) 카쿠나카 카츠야 (2017~) 현역
}}} ||
파일:角中勝也2024.png
치바 롯데 마린즈 No. 3
카쿠나카 카츠야
角中勝也 / Katsuya Kakunaka
생년월일 1987년 5월 25일 ([age(1987-05-25)]세)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이시카와현 나나오시
신체 180cm, 85kg
포지션 외야수[1]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06년 대학생ㆍ사회인 드래프트 7순위[2][3]
소속팀 치바 롯데 마린즈 (2007~)
등장곡[4] 아라시 - 君のうた[5]
EXPRESS - もぐらの唄[6]
응원가 응원단 자작곡[7]
연봉 2024 / ¥66,000,000

1. 개요2. 프로 입단 전3. 프로 입단 후
3.1. 2018 시즌3.2. 2019 시즌3.3. 2020 시즌3.4. 2021 시즌3.5. 2022 시즌3.6. 2023 시즌3.7. 2024 시즌
4. 플레이 스타일5. 연도별 성적6. 인물

[clearfix]

1. 개요

일본프로야구 선수로,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의 외야수.

대형 유망주는 아니었지만, 독립리그를 거쳐 프로에 입단, 수위타자에까지 등극하며 독립리그 출신의 가능성을 보여준 성장형 타자. 사실 독립리그 출신 중에서는 가장 대성공한 야수다.[8] 백업, 패전처리라도 1군 레귤러로 정착한 독립리그 출신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육성선수로 2군에만 있거나 1군을 한두번 밟고 빠르게 방출당하기 때문. 당장 독립리그 출신 야수 중에서 카쿠나카 카츠야 다음으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미와 마사요시는 야쿠르트에서 12년간 뛰면서 통산 418경기밖에 나오지 못했다. 내,외야가 모두 가능한 대수비용 유틸리티 겸 대주자로 1군에서 가늘고 길게 버텨온 케이스.[9]

2. 프로 입단 전

이시카와현 출신으로 "아들을 프로 선수로 만들겠다" 라는 강한 신념을 가진 부친의 영향으로 어렸을때부터 야구 영재 교육을 받게된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고시엔 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했다.(최고 기록은 지역대회 3회전 탈락)

고교 졸업 후 2006년부터 독립리그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 코치 파이팅 독스[10]에 입단하여, 첫해부터 고졸 신인임에도 개막전 1번 타자로 기용된다. 2006년 시즌에는 주로 클린업으로 기용되어 .253 4홈런 28타점을 기록, 승부처에서 펀치력 있는 타자로 주목 받았다. 프로 2군과의 교류전에서도 프로 스카우트들에게 타격 센스와 주루가 좋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 말 프로 드래프트 회의에 참가, 치바 롯데 마린즈가 7순위로 지명하게 된다. 입단 당시 받게 된 등번호는 61번, 이것에 대하여 카쿠나카는 "전 팀에서는 9번을 달았지만 롯데의 9번은 후쿠우라 카즈야 선배[11]가 쓰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안 되지만 언젠가 9번을 달 수 있도록 힘내겠습니다" 라고 포부를 밝혔다.

2017년 현재 카쿠나가의 등번호는 3번으로 바뀌었다. 이후 후쿠우라가 은퇴한 후에도 현재까지 3번을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9번을 다는 것은 포기한 듯.[12]

3. 프로 입단 후

입단 첫해부터 2군에서 3할을 넘는 좋은 타격을 보여 7월부터 1군 출전기회를 받게 되지만 1군의 높은 벽을 통감하는 듯,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13]

하지만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타격에 두각을 드러내며 성장, 4월 초부터 카쿠나카가 타점을 올린 경기는 12연승을 할 정도로 롯데의 시즌을 이끌었고 교류전 수위타자로도 뽑혔다. 퍼시픽리그 타격왕 경쟁에서도 나카지마 히로유키와 경합을 벌여 시즌 후반 부상으로 페이스가 떨어진 나카지마를 제치고 독립리그 출신으로는 최초로 수위타자상과 베스트 나인을 수상하게 된다. 독립리그 출신자 최초로 규정타석을 채웠을 뿐만 아니라 타이틀 홀더까지 차지했으며, 이시카와현 출신 선수로는 마츠이 히데키 이후로 두번째 수위타자 였다고 한다.

이후 2012년 오프시즌에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커리어 첫 국가대표 발탁도 이루었다. 2013 WBC에도 출장하였다.

이후에도 주전 외야수로 꾸준히 출장했으나 2012년같은 임팩트는 보여주지 못하다가, 2016년에는 다시 퍼시픽리그 수위타자 경쟁에 참여할 정도로 좋은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었고, 143경기 전 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339(525타수 178안타)로 수위타자 타이틀을 차지했다.

2017년 10년 넘게 썼던 61번 대신 사부로의 3번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팀과 함께 본인의 성적도 추락하며 아쉬운 시즌을 보냈다. 110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9(383타수 103안타)를 기록했다.

3.1. 2018 시즌

어찌된 일인지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하여 2군에서 시즌을 맞이했다.

부상 때문에 5월은 돼야 볼수 있다는 듯.

4월 17일 기준 2군 5경기 12타수 2안타 타율 .167로 부진하다.

5월 11일에 시즌 처음으로 1군 콜업되었다. 대신 네모토 슌이치가 2군으로 내려갔다.

콜업 이후 4번타자 좌익수로 고정 출장하고 있다.

5월 14일 기준 3경기에서 타율 .182를 찍었다.

6월 2일 4번 타자 좌익수로 나와 3타수 3안타를 기록. 거기다가 투런 홈런을 쳤다.

6월 17일 기준 30경기 타율 .319에 2홈런 22타점 기록중. 올해도 100안타 정도는 무난히 넘길 거 같다.

7월 4일 무안타로 말아먹었다. 특히 마지막 타석에서는 헛스윙을 남발하며 삼구삼진당했다.

8월 23일 2,3루 득점권 기회가 두번이나 왔는데 삼진과 플라이로 아웃당하면서 1점도 못 내고 팀의 패배의 원흉 중 한 명이 되었다.

8월 24일도 무안타에다가 9회 말 주루사로 말아먹었다. 주루사만 아니었어도 동점이 가능했던 상황이였다.

9월 5일 3타수 1안타 2타점. 투런 홈런을 하나 쳤다.

9월 15일 시즌 7호 홈런을 쳤다. 이게 팀내 공동 2위다.

9월 17일 끝내기 병살을 쳤다. 근데 사실 펜스직격 안타였는데 1루 주자 나카무라 쇼고와 스텝이 꼬이면서 둘다 아웃당한것이다.

시즌 후 FA였다. 롯데의 내부 FA 중 최대어였기에 타팀 이적 가능성도 있었으나[14] 다행히도 원 소속팀 롯데와 1년 1억 3100만엔에 계약을 맺었다.

3.2. 2019 시즌

꾸준히 5번 타자로 나오는데 타율이 2할 안팎에서 맴돌 정도로 부진하다.

4월 2일 경기에서 3점차로 뒤지던 9회 초 2사 만루 상황에서 초구치고 내야플라이로 아웃되었다.

이래놓고 4월 4일 경기에서는 4번 타자로 나왔다. 첫 타석부터 예상대로 무리하게 타격하다가 1루 땅볼 아웃. 근데 결승 쓰리런 홈런을 치면서 결과적으론 성공한 작전이 되었다.

4월 9일 오릭스 버팔로즈 전에 4번 타자 좌익수로 나와 2점차로 뒤진 9회말 동점 투런 홈런을 쳤다. 팀은 연장전에서 극적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그 후로 이노우에 세이야가 복귀하면서 주로 3번 타자 좌익수로 나온다.

5월 6일 3번 좌익수로 나와 2타수 무안타 1타점(희생플라이)을 기록했다. 그러나 타율이 .234로 좋지 못하다.

5월 8일 시즌 5호 홈런을 쳤다. 타율은 .239로 상승했다.

부진 끝에 5월 29일 1군에서 말소. 말소 전 성적은 46경기 타율 .210 5홈런 22타점 1도루 OPS .691로 선구안은 볼넷이 삼진보다 많을 정도로 살아있었으나 컨택능력에 심각한 저하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부진을 이유로 말소는 아니고 허벅지를 다쳤다고 한다.

7월 5일 1군에 복귀했다.

후반기에 그나마 똑딱질이라도 잘 하면서 타율을 .258까지는 끌어올렸고, OPS는 .734로 2018년보다 소폭 올랐다. 그러나 결장기간이 길어서 세자릿수 안타는 치지 못했다.[15]

3.3. 2020 시즌

시범경기에서는 주전 좌익수, 지명타자를 오가면서 타율 .250을 기록했다.

개막 이후 2번 지명타자, 좌익수를 오갔으나 1할대 타율에 그치는 바람에 7월부터는 주로 대타로 나오는 중이다.

7월 11일 대타로 나와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대타로도 나오다 안 나오다 하면서 타율 1할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오히려 키요타 이쿠히로보다도 못 치는 상황.

8월 1일 대타로 나와 내야안타를 치면서 간신히 타율 2할대로 올라갔다.

8월 2일 대타로 나와 2타수 2안타 3타점으로 대활약했다. 시즌 1호 홈런까지도 쳤다.

8월 초에 타격감에 불이 붙으면서 8월 타율만 .385를 기록하면서 다시 주전 지명타자 자리를 꿰찼다.

8월 11일 4타수 2안타로 팀이 친 3안타 중 2안타를 치면서 활약했다.[16]

8월 11일 기준 32경기 83타수 21안타 타율 .253에 1홈런 3타점 1도루 OPS .662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8월에만 OPS 10할을 기록하는 등 타격감에 불이 붙고 있어서 다시 주전으로 나오고 있다.

10월 6일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았다. 이날까지의 성적은 71경기 215타수 49안타 타율 .263에 2홈런 14타점 2도루 OPS .720. 딱 지타/좌익수 플래툰 수준이었다.

3.4. 2021 시즌

시범경기 때 그야말로 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수준으로 망하고도 개막 엔트리에 들었다. 허나 개막전에서는 출전조차 하지 못했다.

이후 지명타자, 좌익수, 대타를 오가며 플래툰 정도로 나오고 있다. 컨택은 2할대 중후반으로 그냥저냥 버티고는 있는데 이젠 홈런이 0개가 됐다. 팬들도 사실상 포기하는 모양이다.

3.5. 2022 시즌

시즌 초부터 2군 타율 0.350 2홈런 OPS 1.005를 기록하면서 1군 콜업의 문을 두드렸고 5월 22일 소프트뱅크와의 경기때 콜업되어 대타로 나와 안타를 기록했으나 팀은 패배했다.

이후로도 자주 대타로 나오지만 타율 2할대 초반에 OPS 5할, 무홈런이다. 2년 연속으로 무홈런이 될 정도로 심각한 똑딱이가 됐다.

9월 20일 경기에서 본인은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해 무안타를 기록하였으나 바다새로 인해 중단된 경기에서 배트를 휘두르며 바다새를 적극적으로 내쫓아서 스포나비 야구정보 앱 MVP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9월 22일 2번 좌익수로 출장하여 4타수 3안타 1홈런 3타점을 기록하며 2020년 이후 오랜만에 홈런을 쳤다 [17]

3.6. 2023 시즌

결국 주전 자리는 완전히 빼앗겼고, 대타 혹은 플래툰으로 주로 나오고 있는 상황.[18] 그런데 시즌 막판인 9월 말 기준 230타석 정도 나와놓고 8홈런에 OPS 8할대로 갑작스럽게 부활했다. 물론 풀 시즌을 뛰고도 이런 페이스를 유지했을지는 모르지만 몇 타석에 나왔든 카쿠나카가 OPS 8할대를 넘긴 해가 2016년 이후로 없었어서 이 정도면 팀에서는 가장 잘 치는 타자 중 한 명.

시즌 최종 타율 .296 9홈런 39타점으로 마감했다. 지난 3년간 장타가 크게 줄어들던 추세였지만 23년도에는 오히려 홈런 커리어 하이를 새로 쓰며 장타에 눈을 떴다. 비록 규정타석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데뷔 이후 처음으로 장타율 5할을 넘어섰다.

3.7. 2024 시즌

올해도 주로 대타 요원으로 출전하고 있고[19], 시즌 초반에는 폴랑코가 좌익수와 지명타자를 오간지라 폴랑코가 지명타자로 빠지면 좌익수나 우익수로 선발 출전을 하는 등 작년보다 더 많은 기회를 받고 있는 편.[20] 타격에서는 매우 좋은 활약을 보여줬는데, 4월 타율 0.367, 5월 타율 0.414로 초반 열심히 불을 뿜었고, 6월에는 2할 후반대로 살짝 주춤했으나 7~8월에도 연이어 3할 타율을 기록하며 대타로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타카베와 후지와라가 모두 돌아온 후에는 외야진이 주로 오카 - 타카베 - 후지와라 체제가 된지라 주로 대타나 지명타자 위주로 출전했고, 이후 컨디션 문제로 잠깐 말소되기도 했으나 오카 히로미, 타카베 아키토의 연이은 부상 이탈로 인해 1군 복귀 후 오기노 타카시[21]와 번갈아서 좌익수 선발로 출전했고, 이후 시즌 끝까지 1군에서 좌익수 플래툰 겸 대타 요원으로 남았다.

시즌 성적은 84경기 217타석에 나와서 53안타(3홈런) 25사사구 37K 20타점 21득점 .280 / .361 / .413을 기록했다. 9~10월에 35타수 2안타 타율 0.057(...)로 크게 부진하는 바람에 시즌 성적이 왕창 깎인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2019년 이후 계속 하락세였던 상황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느 정도 반등한 모습을 보여주며 오기노 타카시와 함께 베테랑으로서 팀을 지탱해줬다. 특히 작년만큼은 아니라도 올해도 장타율 4할을 기록하며 장타력이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또 84경기 중 58경기를 선발로 출전했는데, 이는 팀 내 외야수 중 4번째로 가장 많은 기록이다.[22] 그만큼 올해 제4외야수 및 대타 요원으로 제일 준수한 모습을 보여준 것.

4. 플레이 스타일

배트를 짧게 쥐고, 몸의 중심을 낮추어 컴팩트한 스윙으로 안타를 만드는 교타자. 타격 포인트를 가깝게 끌어 당겨서 투구의 완급에 대응한다. 하체를 더욱 사용하는 폼답게 허리 관련 부상은 없는 편이다.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노 스텝 타법으로 몰린 카운트에서의 대처가 뛰어나다는 평. 또한 선구안도 좋아서 통산 볼삼비가 거의 1대1에 다다른다. 2017년을 보면 대부분의 항목에서 성적이 추락하였으나, 선구안만큼은 매우 정교해져 볼넷이 삼진의 1.5배까지 다다랐다. 그 덕분에 타율은 낮았지만 출루율은 4위를 달성.

롯데 입단 당시에는 좌투수에게 약했지만, 2011년부터 좌투수 상대 타율이 오르면서 약점을 극복했다. 아웃코스에 약하지만 인코스에 강하고, "목으로 친다"라는 의식으로 인코스에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파워 히터는 아니지만 정교한 타격 센스로 2012년 주전 정착 후부터는 3번, 5번등 클린업으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다.

배터 박스에서 1루까지 3.97초 안에 주파하는 준족을 가지고 있으며, 주루 센스가 좋아서 2013년 시즌에는 중견수 플라이에 2루에서 터치업을 하여 홈인을 한 경우도 있고, 자신이 1루 주자였을때 다음 타자가 2루타를 치면 100% 홈으로 돌아오는 기염을 토했다. 다만 도루 센스는 그냥 그런 듯. 10개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커리어하이도 12도루고 최근에는 도루를 사실상 안 하는 수준이다.

주로 코너 외야수로 기용되며[23] 멀리던지기 기록은 110미터로 좋은 어깨를 가지고 있다. 2013년에는 퍼시픽 리그 최다 보살을 기록하기도 했다. 스카우트가 평하길 "어깨로는 구단 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라고 한다라는데 다 예전 얘기. 2019년 현재는 짧은 단타에서 2루주자가 홈에 가는 걸 못 잡아내서 끝내기를 허용하는 등 소녀어깨의 전형이다.[24] 2019년 기준 UZR을 보면 수비범위는 중간급은 가고 실책방지도 나쁘지는 않은데 송구기여가 정말 안 좋다. 블라디미르 발렌틴 시마우치 히로아키 다음으로 송구가 악평을 듣는다. 그런데 시마우치는 2019년 주전 좌익수들 중 수비범위가 두번째로 넓어서 커버가 가능하니 사실상 츠츠고 요시토모, 블라디미르 발렌틴, 후쿠도메 코스케 다음으로 수비를 못하는 좌익수가 카쿠나카인 셈.[25]

2019년 이후로 몇 년 째 지속되는 안좋은 타격감과, 좌익수 앞 안타가 나오면서 주자가 홈으로 달려들 때 홈 송구를 하지 못하고 내야수를 거쳐 송구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보면 2018~2019년을 기점으로 에이징커브가 왔다고 보는 것이 맞다. 사실 수비 능력만 상실하고 타격능력은 여전히 갖고 있다면 지명타자로도 써 볼 만하지만 그게 어렵다.[26]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사사구 출루율 장타율
2007 치바 롯데 마린즈 9 17 .235 4 0 0 0 2 0 0 .235 .235
2008 10 18 .111 2 0 0 1 1 0 4 .273 .278
2009 10 18 .167 3 0 1 0 1 1 2 .250 .278
2010 13 18 .000 0 0 0 0 0 0 4 .182 .000
2011 51 154 .266 41 5 1 0 10 2 13 .318 .312
2012 128 477 .312
(1위)
149 30
(3위)
5
(5위)
3 61 8 43 .366
(5위)
.415
2013 125 462 .288 133 26 6
(3위)
5 43 10 54 .360 .403
2014 133 451 .277 125 22 5
(3위)
8 57 9 82
(5위)
.385
(5위)
.401
2015 111 427 .293 125 20 5
(3위)
6 52 8 48 .363 .405
2016 143
(1위)
525 .339
(1위)
178
(1위)
30
(4위)
5
(3위)
8 69 12 74 .417
(2위)
.461
2017 110 383 .269 103 17 4 8 44 6 66 .375
(4위)
.397
2018 112 411 .265 109 23 2 7 57 3 53 .345 .382
2019 108 368 .258 95 17 1 8 48 2 60 .359 .375
NPB 통산(13시즌) 1063 3729 .286 1067 190 35 54 445 61 503 .368 .399

6. 인물

  • 독립리그 시절부터 "무조건 프로에 가기로 정했기 때문에 고생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노력가로, 밤에도 가까운 공원에서 배트를 휘둘렀다고 한다.
  • 당시의 주식은 패스트 푸드(주로, 햄버거, 규동)였다고 하나, 프로에서 활약하게 된 이후에도 "지금도 변함없다" 라고 한다.[27] 낯을 많이 가리는 타입으로 수훈선수 인터뷰에서도 "시합보다 긴장된다" 라고 말한 바 있다.
  • 현재 선수협 부회장이자 사단법인 선수협 상무이사라고 한다. 부회장은 10명이 공동으로 하는데 다른 부회장으로는 야나기타 유키, T-오카다 등이 있다.
  • 육성선수 드래프트 출신으로 자주 오인받는다고 한다. 아무래도 독립리그 출신이다 보니 그런 듯. 하지만 정식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다. 심지어 최하위 픽도 아닌데 이런 오해를 받고 있다.[28] 일부 사람들은 정말 육성선수 출신에 성도 비슷한 스미 코타를 보고 카쿠나카도 육성선수 출신으로 오인하기도 했다.[29]
  •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보니 데뷔 초에는 과묵하게 지냈지만 낯가림만 사라지면 엄청난 똘끼를 자랑한다고 한다. 팀의 중심선수로 떠오르고 친한 선수들or편하게 대해도 되는 후배들로 팀이 거의 이루어진 지금은 그 똘끼를 유감없이 보여준다고 한다. 밑의 항목들은 모두 이런 에피소드.[30]

    • - 스즈키 다이치를 초코칩 맨이라고 부르고 오오미네 쇼타는 섬 고릴라라고 부른다고 한다.[31]
      - 2019년 초에는 스가노 츠요시의 얼굴에다 펜으로 점을 찍은 사진을 올린 후 외야수 모임인데 스즈키 다이치가 있다. 라고 SNS에 올렸다.
      - 본인의 블로그 오기노 타카시의 이미지를 올리고 이 사람이 1년 동안 무사히 뛰는 날은 언제쯤에나 올까?라고 올렸다.[32]
      - 오오미네 쇼타가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경기 전에 오늘도 못 치면 우라와네 바이바이~라고 놀렸다.[33]
      - 타무라 타츠히로 쟈기를 닮은 자칭 꽃미남 타무라 씨[34] 라고 언급했다.
      - 키요타 이쿠히로의 생일 때 'Happy Birthday ゴリラ'라고 쓰인 플레이트를 얹은 케이크를 선물했다고 했다.[35]
      - 블로그에 오오미네 쇼타의 이미지를 올린 후 얼굴이 끔찍해서 셀프 모자이크입니다라고 올려놓고 정말로 모자이크 처리했다.
      - 스즈키 다이치 마스다 나오야의 결혼식에 참석 이 미소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라고 했다. 그 와중에 "나는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이라면서 자신의 사랑 얘기를 풀었다.
      - 오카다 요시후미 에 대해서 오카다 씨는 아침 인사가 비정상적으로 텐션이 높은 때가 있어 왠지 약을 빤 게 아닌가 싶다. 라고 토크 쇼에서 발언했다.[36]
      - 마스다 나오야[37]에게는 넌 던지면 맞으니까 던지지 마라 라고 했다,
      - 2016년에 타격왕 먹은 후 드디어 연봉 1억 엔을 돌파한 카쿠나카. 이때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다른 팀이라면 2억 이상 줬겠지만 글쎄, 롯데라서...라고 자학했다.[38]
      - 2017년 시즌 전에 열린 토크쇼에서는 그야말로 똘끼의 향연이었다. 알프레도 데스파이네 어디 갔냐[39]에 이어 이 전력은 5-6위 수준인데 이 전력 이끌고 3위를 거둔 이토 츠토무 감독님 대단하다는 감독 칭찬 겸 팀 상태 자학까지 거기다가 주전 멤버로 누가 적합하냐고 물어보니까 볼넷을 고른 오카다[40], 각성한 이노우에[41], 2015년 키요타[42] 같이 현실성 없는 대답만 했다. 마지막으로는 분명 키요타가 자기보다 선배인데 키요타한테 토크쇼 내내 대놓고 반말하기까지 했다.
      - 우천취소가 된 어느 날 팀 후배 카토 쇼헤이에게 우천취소 퍼포먼스를 시켰으나 쇼헤이가 거부하자 장내 방송으로 쇼헤이를 호출한데다 외야석 팬들에게까지 쇼헤이를 연호할 것을 요구하여 강제로 우천취소 퍼포먼스를 시켰다[43]
      - 2023년 연봉이 5555만엔이였고 24년연봉이 6666만엔이다.

[1] 주로 좌익수로 나온다. [2] 이 해의 2006년 대학생ㆍ사회인 드래프트에서는 롯데가 1, 2순위 지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3순위 지명자가 사실상 1차지명자였다. 그 3순위 지명자는 바로 고베 다쿠미. 그러니까 2006년 롯데의 드래프트는 상위픽은 망하고 하위픽이 대성한 케이스이다. [3] 이 해에 지명한 선수들 중 카쿠나카 카츠야와 오미네 유타 외에는 모두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래도 카쿠나카 하나 건졌다. 나머지 8명의 선수 중에서는 오기노 타다히로가 마무리 투수와 셋업맨을 오가며 3년정도 잘나갔던 게 그나마 잘 된 케이스. 그나마 그 오기노 타다히로도 부상으로 인해 마지막 5시즌 간 1군에서 10경기도 못 던지고 골골대다가 방출당했다. [4] 이쪽도 한 해에 여러 곡을 등장곡으로 쓰는 데다 자주 바꾸는 편이다. 단 EXPRESS - もぐらの唄만은 2012년부터 꾸준히 쓰고 있으며, 아라시 - 君のうた 역시 2019년부터 쭉 쓰고 있는지라 현재는 저 두 곡만 고정적으로 쓰고 있다. [5] 2번째 타석을 제외한 모든 타석 등장곡. 1번째 타석 때는 후렴 부분을 틀며, 3번째 타석부터는 후반부의 아이바 마사키 솔로파트를 튼다. 공교롭게도 아이바 마사키는 치바 현 출신이다. [6] 2번째 타석 등장곡. 툭하면 등장곡을 바꿨던 카쿠나카가 유일하게 10년 넘게 쓰고 있는 등장곡이기도 하다. [7] ララララ 角中 ララララ 角中 さあ戦え 角中 勝利へ導け 栄光の時を目指して(라라라라 카쿠나카 라라라라 카쿠나카 자 싸워라 카쿠나카 승리로 이끌어라 영광의 시대를 목표로) [8] 독립리그 출신으로 대성공한 투수의 경우는 마타요시 카츠키가 있다. [9] 통산 성적은 무홈런에 타율 .236, OPS .566이었고, 2019년 시즌을 끝으로 36세로 은퇴. [10] 이후 2014년 메이저에서 복귀한 후지카와 큐지가 프로구단에 복귀하지 않고 이 독립 리그 구단행을 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1] 스즈키 이치로의 미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퍼시픽리그 수위타자를 차지한 적이 있는 교타자 1루수. 뛰어난 1루 수비력으로도 유명했다. 이승엽과 주전경쟁을 벌인 선수로 한국에는 알려져 있다. [12] 사실 3번도 롯데의 프랜차이즈인 사부로를 포함해 많은 프랜차이즈들이 썼던 번호라 때문에 꽤 상징이 있는 등번호이니만큼 굳이 바꿀 이유도 없긴 하다. 더군다나 9번의 주인이 워낙 쌓은 업적이 많으니... [13] 이때 동기였던 코베 타쿠미도 들어가는 데 성공한 2010년 일본시리즈 엔트리에도 못 들었다. 그러나 우승반지를 얻은 코베와 카쿠나카의 관계는 2011년부터 역전되어 카쿠나카는 그 후로 쭉 주전 좌익수를 차지하였고 코베는 대타로 간간이 나오다가 2014년 은퇴했다. [14] 예전에도 자기가 타격왕인데 연봉 2억 엔도 안 준다면서 소속팀 롯데를 디스한 적 있다. [15] 규정타석에는 8타석 미달이었다. [16] 참고로 나머지 1안타가 레오니스 마틴이 친 역전 결승홈런. [17] 여담으로 작년에도 홈런을 하나 칠뻔했으나 동쪽으로 12m/s의 바람으로 파울홈런이 된적이 있다. [18] 특히 8월 말 즈음부터 1루수와 좌익수를 떠돌던 야마구치가 주전 1루수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이시카와 신고와 좌익수 자리를 두고 플래툰으로 나오게 되었다. [19] 주로 토모스기나 챠타니, 오가와 등 키스톤 선수들의 대타로 많이 출전했다. 2024년 대타로만 26경기를 출전하며 롯데 선수들 중 가장 많이 대타로 나온 선수가 되었다(2위는 13회의 오기노 타카시, 3위는 11회의 이시카와 신고와 오시타 세이이치로). [20] 다만 나이도 있고 수비가 좋은 편은 아닌지라 후반에는 대수비/대주자로 바뀌는 경우가 잦은 편. 대부분은 오기노 타카시나 아이토, 와다 코시로가 대수비, 대주자 역할을 맡아줬다. [21] 초반에는 야마구치랑 번갈아서 맡았으나 야마구치의 부진으로 오기노가 대신 선발로 출전했다. [22] 1~3위는 오카(90경기), 타카베(68경기), 후지와라(64경기) 순서. 폴랑코는 지명타자 출전이 대부분이기에 제외. [23] 2022년 기준 좌익,우익 둘다 나오지만 좌익으로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 [24] 2019년 좌익수 UZR -0.3으로 그 쉬운 좌익수 수비도 부족하다. [25] 카쿠나카보다 수비가 안좋은 좌익수 3인방의 공통점은 수비범위가 상당히 좁다는 것' 그나마 발렌틴과 후쿠도메는 40대를 바라보거나 이미 넘긴 고령의 선수들이라 참작의 여지가 있긴 하다. 츠츠고의 경우는 3루수 출신이라 그런지 송구는 생각보다 평가가 좋다. [26] 실제로 2020년에는 주전 지명타자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결국 극악의 타격으로 인해 밀려났다. [27] 2020년 롯데 홈페이지의 프로필에서는 고기류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은 여러가지 있다고 한다. 초딩입맛에 가까운듯. 다만 30대 초반부터 빠른 속도로 성적이 하락하자 "맨날 패스트푸드나 먹으니까 몸이 빨리 망가지지." 하면서 까이기도 한다. [28] 8라운드 마츠모토 코다이가 최하위 픽. [29] 카쿠나카와 스미는 한국말로는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지만 카쿠나카는 일본어로 角中이고 스미는 角이다. [30] 원문에선 아예 畜生(칙쇼)로 포기하고 있다. [31] 초코칩 맨은 스즈키 다이치 선수의 얼굴에 점이 굉장히 많아 붙혀진듯 하다. 오오미네 쇼타와 그의 형 오오미네 유타는 이시가키 출신이라서 섬 고릴라라고 부르는 거 같다. [32] 오기노는 풀 시즌만 뛸 수 있다면 일본 최고의 1번타자로 성장할 수 있다고 평가받는데 매 시즌마다 부상 때문에 풀 시즌을 완주하지 못하는 비운의 리드오프다. 본인의 등번호 0번도 부상이 0이었으면 좋겠다고 고른 번호. [33] 우라와는 롯데 2군 구장을 말한다. [34] 원문에서는 아예 한자로 안 쓰고 카타카나로 타무라라고 썼다. [35] ゴリラ는 당연히 고릴라를 말한다. [36] キメてるんじゃないかと思う을 약을 빤 게 아닌가 싶다 라고 번역했는데 오역이거나 더 좋은 번역 있으면 고쳐주세요. [37] 2016, 2017, 2019년 마무리. 2016년 시즌 중반부터 마무리를 했으나 2017년에는 나올 때마다 블론하는 수준으로 털리면서 시즌 중반에 마무리를 우치 타츠야에게 빼았겼다. 2019년 우치가 재활에 들어가며 다시 마무리 복귀. [38] 마냥 우스갯소리는 아닌게, 카쿠나카와 비슷한 타격 스타일과 통산기록을 가진 소프트뱅크 호크스 나카무라 아키라의 연봉은 카쿠나카와 두배 이상 차이날 때가 많다. 물론 나카무라의 소뱅 우승 기여도나 수비력을 감안하면 납득간다는 평도 종종 있긴 하지만. [39]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했는데 그걸 대놓고 언급해버렸다. [40] 선구안이 그야말로 최악으로 공을 갖다 맞히기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의 선수다. 그리고 2017년에는 아예 시즌 내내 무안타로 멸망했다(...). [41] 전형적인 2군 본즈다. 물론 2018년에는 각성하긴 했는데, 그건 나중 일이고 이해에는 그야말로 폭망(...). [42] 2015년 딱 한 해 3할 15홈런 치고 그 외의 해에는 만년백업/플래툰이었다. 그리고 그놈의 불륜을 3번이나 저질러서 방출... [43] 참고로 카토의 반응은 언젠가 복수할거다.였다고 한다. 복수하기 전에 주니치로 가버렸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