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6 15:29:00

카슈타

파일:카슈타의 시툴라.png [1]
이름 카슈타
(고대 이집트어: k3š-t3, 영어: Kashta)
출생 미상
사망 기원전 746년
직위 쿠시의 왕

1. 개요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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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쿠시 왕국 나파타 시대 2대 왕.

2. 행적

상부 누비아 일대를 통합하고 나파타를 수도로 삼은 알라라 왕과의 관계는 알려진 바 없지만, 여러 학자들은 두 사람이 형제였을 거라고 추론한다. 그는 페바트마(Pebatjma) 왕비와 결혼하여 두 아들 피이 샤바카, 세 딸 켄사, 페크사테르, 아메니르디스를 낳았다. 이 중 켄사와 페크사테르는 훗날 이집트를 정복한 피이와 결혼했다.

당시 고대 이집트 이집트 제3중간기 시대였는데, 통일 이집트를 유지하던 제22왕조의 세력이 약해지며 하이집트는 제22왕조, 상이집트 지역은 제23왕조가 분할하여 통치하다가 두 왕조 모두 지방 통제력을 상실하여 도시국가들이 난립하던 혼란한 시기였다. 그는 이 때를 틈타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 상이집트의 중심지인 테베를 점거했다. 이후 상이집트의 제23왕조 파라오이자 아문 대신관이었던 오소르콘 3세의 딸 셰페누페트 1세에게 자기 딸 아메니르디스를 테베의 아문의 대신녀 후계자로 임명하도록 했다. 아문의 대신녀 직은 제3중간기에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커졌는데, 제22왕조 시기에 파라오의 친딸을 임명하고 그 후계자는 생전에 대신녀 본인이 양자로 들이는 관습이 자리잡았는데, 후계자는 다음 파라오 즉위가 유력한 자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슈타의 친딸이 양녀로 입양되었다는 건 이 시기에 상이집트 지역에서 쿠시 왕국의 영향력이 매우 강력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가 상이집트를 장악했거나 최소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는 엘레판티네 섬(현재 아스완)에서 발견된 그의 비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제23왕조는 오소르콘 3세-타켈로트 3세까지는 세력을 유지했으나, 타켈로트 3세 사후 뒤를 이은 루다멘이 2~3년밖에 재위하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멸망했다. 쿠시 왕국이 확실히 상이집트 지역을 장악한 건 카슈타의 아들인 피이 치세이다.

746년경에 사망했고, 장남 피이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여러 학자들은 나파타의 왕실 묘지인 엘 쿠루에 세워진 피라미드들 중 최남단에 자리잡은 엘 쿠루-8 피라미드가 그와 아내 페바트마의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1] 카슈타 왕과 아메니르디스의 이름이 적힌 청동 시툴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월터스 미술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