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16 00:21:30

충렬사(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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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주요 시설물 및 건축물4. 기타

1. 개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과 싸우다 순절한 순국 선열을 모신 사당이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 345( 안락동)에 위치한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2. 역사

본래 동래성 전투를 이끈 동래 부사 송상현을 모신 송공사(宋公祠)로 시작했다가 1624년 선위사 이민구의 건의로 지금의 이름인 충렬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부산진 전투 정발 장군을 함께 모시게 되었다.

그 후 1652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고 이런저런 부속 건물이 붙어 서원의 기능이 추가되었다. 이후로도 동래성 전투에서 송상현과 함께 순절한 조영규, 다대포 전투에서 전사한 윤흥신,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한 정운 등 모시는 위의 숫자가 계속 늘어[1] 현재는 93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흥선대원군 서원 철폐령에서 제외된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매년 5월 25일 제향을 봉행한다. 오늘의 부산이 있기까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령들을 모신 곳이기에 서울 국립서울현충원처럼 새해 첫날이나 선거 다음날 등 특별한 날 부산광역시장이나 동래구청장 등 지역 인사가 참배하는 곳 중 한 곳이다.[2]

3. 주요 시설물 및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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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는 동래성 전투 당시 일본군의 '전즉전의 비전즉가도(戰則戰矣 非戰則假道 : 싸우려면 싸우고 안 싸울 거면 길을 비켜라)'에 대한 대답으로 내놓았다는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 : 싸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비키기는 어렵다)'이 작은 비석에 새겨져 있는데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만큼 작게 서 있어서 아쉬움을 자아낸다. 길게 늘어선 계단의 중간쯤에 위치한 기념관은 임진왜란 관련된 유물이 보관된 작은 박물관처럼 되어있다.

본전[3]으로 가는 문 바로 앞 왼쪽에는 의열각(義烈閣)이라 하여 여성을 배향한 곳이 따로 있다. 기왓장으로 왜적에게 저항했던 무명 의녀(義女) 2명과 송상현, 정발을 따라 각각 순절한 열녀 금섬(金蟾), 애향(愛香)의 위패가 이곳에 있다. 맞은편인 문 오른쪽에는 강당으로 쓰이는 소줄당(昭崒堂)이 있다.

4. 기타

충렬대로나 충렬초등학교, 충렬중학교, 충렬고등학교, 구 충렬여자중학교[4], 지금은 재개발로 없어진 충렬아파트, 그리고 부산 도시철도 4호선 충렬사역의 역명이 여기서 유래했고 실제로 충렬사역 1번 출구 바로 옆에 있다.

충렬사 경내에 뒷산으로 올라가는 산책로가 있으며 하절기에만 출입 가능하다. 이 산책로로 올라가면 동래읍성 군관청 및 동래읍성 성벽 일부, 동장대가 있다.

[1] 제일 최근에 들어온 위는 2007년 합사된 이응원(李應元, 1556~1640)이다. 동래성 함락 이후 의병을 이끌고 왜군을 끈질기게 괴롭혔으며, 전쟁 이후 아버지가 전사한 남쪽을 보고는 앉지 않았다고 한다. [2] 이곳은 정치성향과 무관하게 거의 의무적으로 오는 곳이지만 정치성향에 따라서 민주당계 출신 인사는 민주공원, 보수정당 인사 재한유엔기념공원을 추가로 찾는 경우도 있다. [3] 송상현 등이 배향된 곳 [4] 남녀공학 전환 후 남일중학교로 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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