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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기병대 소속의 후기 캐러비니어.[1]
1. 개요
Carabinier( 프랑스어)[2], Carabineer / Carbineer( 영어)총기병(銃騎兵)은 근대의 기병 병과 중에서도 카빈총[3]을 다루는[4] 병종으로, 이쪽은 드라군과는 달리[5] 처음부터 말 위에서 사격하는 기병으로서의 승마 전투를 염두에 두었던 부대이다. 따라서 적의 탄환을 막을 충분한 갑옷과 총을 다루는 것의 편의를 위해 대형마를 운용 했다. 따라서 중기병으로 분류.[6]
2. 역사
이들은 루이 14세 당시의 프랑스 기병대 중 최정예를 '기마총병대'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례했다. 총기병대가 왜 최정예 기병 취급을 받았는지 살펴보자면 원래 18세기 당시 기병들의 화기는 권총 정도 였으나 프랑스 총기병대는 기병총을 들고 마상 사격까지 할 수 있었다. 이는 사격과 승마 모두에 도통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었고 그렇기에 총기병대는 엘리트 기병으로 대우 받았다. 나폴레옹 휘하에서 총기병대는 두개의 연대를 갖추었고 낭수티 등 유능한 중기병 지휘관들의 지휘를 받는 중기병 사단에 배속되어 싸웠다. 이들은 흉갑기병 연대가 10여개에 달하는 숫자를 갖추었을 때 겨우 2개 연대를 갖추었을 뿐이었기에 그 희소성은 엄청 났다. 하지만 실전에서 이들은 졸전을 거듭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라이프치히 전투에서의 졸전이다. 이들의 진형에 일련의 헝가리 후사르들[7] 이 돌격해 왔고 이들의 지휘관인 세바스티아니 장군은 " 중기병에게 경기병이 돌격해오다니 저 바보들 ㅋㅋㅋ" 하며 박장대소 했지만[8] 이게 웬걸 총기병대는 장군을 버려두고(!!!) 패주했다. 결국 이 후사르들과 교전한 것은 총기병대 뒤에 서있던 제1 흉갑기병 연대였고 전투 후에 이들은 모든 중기병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았다. 어쨌든 이 사례 외에도 그 멋진 장비와 두 개 연대 뿐이라는 희소성에 비해 총기병대는 나폴레옹 전쟁 내내 졸전을 거듭했지만 총기병은 19세기까지 남은 대표적인 기병 병종이었고 나중에 가면 퀴레시어와 크게 다르지 않은 흉갑기병이 된다.사실 총기병대가 흉갑기병이 된데는 조금 슬픈 내막이 있다. 원래 총기병대는 곰가죽 모자에 검은색 말을 탄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근위대 소속 기마척탄병 연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9] 하지만 1809년 오스트리아와의 피튀기는 치열한 전역에서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들이받는 오스트리아 울란과 앞쪽 갑옷밖에[10] 안입은 오스트리아 흉갑기병에게 계속 피해를 입자 최우수 인적자원이[11] 전쟁에서 자꾸 소모되어감을 우려한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흉갑과 곰가죽 모자 대신 프랑스 경창기병 연대와 거의 같은 디자인의 금속제 신(新) 그리스풍 투구를 지급했다. 웃긴 것은 이 명령을 받은 이들의 반응인데 이들은 나폴레옹이 자신들의 용맹을 의심하여서 흉갑을 입으라는 줄 알고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여러 모로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흉갑이 사람을 안전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이들은 그 후에도 쭉 투구와 흉갑을 입고 싸우게 된다.
이들 역시 드라군과 마찬가지로 치안 유지에 투입되었고, 이 때문에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있는데, 현재 이탈리아군 소속 헌병군인 이탈리아 헌병군은 1814년에 창설된 사보이아 왕가 소속 총기병 연대가 1861년 이탈리아 통일과 함께 이탈리아 왕국군에 편입된 것이 기원이다.
[1]
1812년
보로디노 전투 당시의 총기병대를 그린 그림이다. 우상단 언덕에서 전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나폴레옹이다. 총기병대는 제국 근위대 소속은 아니지만 2개 연대밖에 없던 최정예 기병대라 종종 나폴레옹의 경호를 서기도 했는데 이 그림도 그런 상황을 그린 것이다. 해당 그림의 총기병대 부사관은 나폴레옹의 명령서를 전달하고 있으며 퀴러시어보다도 잘 차려입은 갑옷이 눈에 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 총기병대는 흉갑기병의 흉갑에
황동을 입힌(장교는 구리를 입혔다) 갑옷을 입고 싸웠다. 방호력은 흉갑기병의 것과 다르지 않지만 황금빛이다 보니, 멋 하나는 타국의 어떤 흉갑도(이를테면 러시아나 오스트리아 흉갑기병대의 검은색 흉갑) 확실히 압도했다.
[2]
정확히는 기마총병대라는 의미의 Carabiniers-à-Cheval(카라비니에르 아 셰발)이라고 한다.
[3]
카빈이란 말 자체가 캐러비니어에게서 유래하였다. 그외에도
등산 장비인
카라비너 역시 여기서 유래.
[4]
사실
드라군과
흉갑기병, 기마
척탄병 등과 같은
중기병에게 있어
카빈총이 기본 옵션이었다. 물론 기본 옵션인 것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기병 대원들이 잘 안 들고 다니긴 했지만... 이 당시 기병대들은
권총도 거추장스럽다고 잘 안들고 다녔다.
[5]
드라군도 종류가 있다. 크게는 '기마 드라군'과 '도보 드라군'으로 나뉘는데, 기마 드라군은 주로 승마 전투를 수행하였던 만큼 말의 크기가 중형 ~ 대형인 말을 탔고 이들도 총기병처럼 종종 마상 사격을 수행하였다. 도보 드라군은 드라군인데 말이 없는(말은 무척 비싼 것이어서 드라군 연대만큼 말을 준비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드라군으로 사실상 그냥 보병이었어나 말이 생기면 기마 드라군으로 전환이 가능한, 승마 훈련을 받은 부대였다.
[6]
중기병이기에 흉갑기병과 같이 길고 곧거나 약간 굽은 세이버를 장비했다.
[7]
'헝가리
후사르'들은 프랑스 기병대에게
나폴레옹 전쟁 내내 자존심을 구긴 오스트리아 기병대의 유일한 빛이라고 칭함받는 용감한 기병대 중 하나였다.
[8]
보통의 경우 더 큰 말을타고 더 길고 타격력 있는 검을 장비하고 흉갑을 입어 방호력이 좋은 중기병이 경기병을 발라야 정상이다.
[9]
그래서 총기병대가 출격했는데 기마척탄병대가 출격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도 하는 등 당대에도 두 부대는 그 모습이 서로 비슷하여 오해하는 일이 잦았다. 특히 바그람 전투 때 보병들을 지원하기 위해 총기병대가 출격했는데 몇몇 사람들은 이 모습을 제국 근위대 기마척탄병들이 출격했다고 오해하였다. 총기병대는 때때로 나폴레옹 호위를 서기도 했던 것도 이러한 오해를 야기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10]
오스트리아 흉갑기병은 갑옷이 앞쪽 한 개밖에 없어 등쪽은 전혀 방호받지 못했다.
[11]
총기병은 중기병들 중에서도 정예를 뽑아서 편성했다. 하지만 상술한 예에서 보듯이 나폴레옹의 전쟁에서 이들이 보인 모습은 나폴레옹과 중기병대 지휘관들의 대접과 기대에 비해 한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