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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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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배경3. 다게스탄 참수
3.1. 이후
4. 또다른 체첸클리어 영상5. 의미

1. 개요

1994년부터 시작되어 2009년[1] 종전한 러시아 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 사이의 체첸 전쟁포로로 잡힌 러시아 군인들을 참살하는 행위를 기록한 선전 영상.[2] 체첸군이 러시아군 포로를 고문하고 참수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다. 체첸 전쟁 이후 체첸 반군이 러시아군에 대한 공포전략을 위해 만들었던 많은 스너프 필름 중 하나이며 암시장을 떠돌다가 디지털화된 후 LiveLeak에 올라와서 2000년대 초반에 전세계의 네티즌들을 충공깽에 빠뜨렸다.

2023년 기준으로는 영상이 인터넷에서 삭제되어서 풀버전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당시 체첸 영상을 전문적으로 올렸던 정체불명의 유저 'Warlord47'이 오그리쉬와 LiveLeak 운영진과 모두 갈등을 빚고 해당 영상에 저작권 클레임까지 걸리는 바람에 올라온 영상들은 빠르게 지워졌으며 이 때문에 제대로 탐구될 시간이 많이 없었고 본 문서에도 여러 버전의 체첸클리어 영상에 대한 설명이 어지럽게 섞여 있다. 따라서 본 문서의 제목에서 설명하는 체첸클리어는 로스트 미디어에 해당한다. 물론 러시아 방송국들이 저작권을 주장하기도 하고 실제로 튼 적도 있으니 어디엔가는 여전히 존재하긴 할 것이다.

한국에선 체첸클리어라고 부르지만 영미권에선 'Chechclear'로 주로 부른다.

2. 배경

캅카스는 예전부터 러시아와의 갈등이 심했고 애초에 근본 자체가 이슬람 문화권이었다.[3] 하지만 소련이 수립된 후 이오시프 스탈린- 니키타 흐루쇼프 집권기부터 이들에 대한 종교 탄압은 암묵적인 방법에서 점차 표면화되고 있었다.

러시아가 캅카스 산맥을 넘어 캅카스 지역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캅카스 지역과 카스피해에 있는 유전지대에 대한 행사권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 지역들에서 나는 유전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가치가 엄청났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아돌프 히틀러 청색 작전을 계획한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었다.

체첸은 1991년 독립을 선포했으나 3년 뒤 러시아가 침공해 체첸 전쟁이 발발했다. 제2차 체첸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는 여전히 캅카스 일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이에 불만을 가진 체첸군 출신들이 캅카스 일대 각지에서 유격전을 벌이면서[4] 러시아를 골치 아프게 했는데 해당 영상은 이때의 영상이라고 보면 된다.

'체첸클리어'는 본 영상의 제목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이슬람 반군의 모토이자 구호였다. 번역하면 '체첸 정화 운동의 일환'으로서 구체적으로 체첸 인종청소를 뜻하는 문구다.

이러한 종류의 인종청소는 전세계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 쉬워서 실제로 인종청소를 시도했던 르완다의 후투족 지도자들이나 세르비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도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심지어는 그 옛날 나치들도 절멸수용소 부지를 밀어버리고 절멸수용소 관련 인원들을 일부러 참혹한 동부전선이나 유고슬라비아 쪽으로 보내어 소모하는 식으로 은폐를 시도했지만 체첸인들은 이러한 의도를 감추려 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체첸군의 학살 영상들은 모두 '체첸클리어'로 불리며 이 영상들 중 유명한 스너프 필름으로는 다게스탄 참수 영상이 있다.

촬영 시기는 1999년으로 추측된다.

3. 다게스탄 참수

파일:external/si.wsj.net/NA-BW087_DAGEST_NS_20130424172704.jpg

이븐 알 하타브로부터 와하비즘과 전술을 전수받은 샤밀 바사예프가 2,000여 명의 체첸군을 이끌고 러시아에 이슬람 신정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1999년 8월 다게스탄 공화국을 침공해 제2차 체첸 전쟁이 발발했다. 1996년에 러시아군 참수 의혹을 받았던 '살라웃딘 테미르불라토프(Salautdin Temirbulatov)' 주도의 체첸군 200명이 투흐차르(Tukhchar) 마을 점령을 시도했다. 200명이란 물량 공세에 제13내무군 부대와 BMP-2와 함께 검문소를 운영하고 있던 소수의 러시아군은 전부 포위당해 버렸는데 이때 마을에 있는 러시아군을 총 지휘하던 바실리 중위는 피격되지 않은 모든 BMP-2 장갑차로 강 건너에 체첸군이 있는 참호와 포위선 돌파를 시도했지만 결국 BMP-2가 파괴되었고 병력은 와해되었다. 살아남은 러시아군 13명 중 7명은 겨우 살아 도망쳐서 마을에 숨어 버렸고 나머지 6명은 포로로 잡혔으며 곧 상상도 할 수 없는 지옥이 펄쳐졌다.

테미르불라토프는 BMP-2가 파괴된 장소에서 포로로 잡힌 5명을 참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영상을 보면 블라디미르 카우프만(Vladimir Kaufmann)이라고 알려진 19살의 러시아군 포로가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부분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결국 참살당하고 말았다. 이 영상에 나오는 체첸군과 카우프만의 대화를 번역한 글이 있는데 카우프만이 체첸군에게 화약고와 무기 위치를 알려주면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자 칼을 든 체첸군은 망설이지만 영상을 찍는 체첸군과 주위에 있던 체첸군이 부추기면서 카우프만을 구타하자 처음에 칼을 들었던 체첸군이 나서서 결국 카우프만을 참수한다.

이 사건과 이후에 터진 러시아 아파트 테러 사건은 푸틴이 체첸을 공격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체첸클리어와 달리 다게스탄 참수 영상은 16분짜리 풀버전이 인터넷에 여전히 꽤 돌아다니고 있다. 영미권에서는 주로 다게스탄 참수보단 Tukhchar Massacre로 부르며 위키백과에 별개의 문서도 있다.

3.1. 이후

파일:external/www.gazeta.ru/0temirbulatov.jpg

이 체첸 군인이 바로 살라웃딘 테미르불라토프(Salautdin Temirbulatov)다. 테미르불라토프는 원래 소련 시절 협동농장 트랙터 운전수로 이 때문에 '트랙터리스트'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소련 시절엔 모범 노동자로 지역 소비에트의 일원이었던 인물이지만 소련 붕괴 이후 체첸 반군 지휘관이 되어 상술된 각종 학살을 저질렀고 1996년 제1차 체첸 전쟁 때부터 학살 스너프 필름을 만들고 다녔다. 해당 비디오는 FSB의 수중에 떨어졌고 이를 근거로 FSB는 테러리즘과 살인 혐의로 테미르불라토프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하였다. 1999년 제2차 체첸 전쟁 이후부터 러시아 방송국들이 테미르불라토프가 만든 비디오를 텔레비전에 방영하면서 그는 러시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전범이 되었으며 러시아 여론은 격노하여 체첸 전쟁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 #

2000년경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FSB에 명령을 내려 러시아군 처형 동영상의 카메라맨 역할을 한 이슬라누 무카에바(Islanu Mukaeva)를 추적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작전이 시작되었고 체포하는 데 성공해 러시아의 고문을 받고 정보를 다 털어놓았으며 살인에 가담하지 않은 것은 인정되어 징역 25년을 선고받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그가 전해 준 정보를 통해 러시아군은 카메라에 찍힌 체첸 반군들을 찾아내서 모조리 잔인하게 사살해 버렸으며 이 특수 작전에 체첸의 보스토크 여단, 러시아 특공대가 참여했다. 어떤 이들은 영상의 반군들이 러시아의 폭격으로 죽었다고도 한다. 하여간 어찌되었건 이 참수 비디오에 나온 반군들은 다 죽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2000년 3월 특별군사작전에서 체첸 반군 지휘관 테미르불라토브는 체첸의 두바 유르트 마을에서 주민들에게 자신의 부하들에게 식량과 쉴 곳을 제공하라고 강요하던 중 체포되었고 1996년 4월 러시아 병사 세르게이 미트랴예프 처형을 비롯한 4건의 살인, 튀르키예 사업가를 납치하여 25만 달러의 몸값을 뜯어낸 사건, 1997년 러시아군 육군중령 아나톨리 모구트노프[5] 납치 사건을 비롯한 수차례의 납치 및 반란군에 복무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당시 러시아에서 사형제가 시행 중단되었던 관계로 2001년 2월 살인의 책임을 물어 종신형이 선고되었는데 처형 동영상을 다른 체첸 지휘관 몰래 돈 받고 팔려고 했다. 그 이유는 은퇴 자금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체포된 많은 체첸 반군들은 재판도 없이 비밀리에 처형되었으나 테미르불라노프는 이미 너무 유명해진 관계로 러시아 정부가 일종의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선전용 재판에 회부하면서 그나마 약간 더 연명할 수 있게 되었다. 어쨌거나 재판정에 선 테미르불라토프는 미트랴예프를 죽인 사실은 인정했으나 나머지 혐의는 부인했으며 미트랴예프를 죽인 것에 대해서는 그가 자신의 사촌 여동생을 강간하고 죽였기 때문에 체첸의 전통에 따라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검사는 이 주장을 부인했다. 종신형 선고에 유족들은 분노하여 그 야수에게 사형을 선고하라고 항의했지만 그는 연쇄살인범 안드레이 치카틸로가 복역했던 러시아 남부의 악명 높은 교도소로 보내졌고 1년 뒤 교도소에서 증발해 버렸는데 정황상 옥사를 가장해 살해된 것이 명백해 보인다.

4. 또다른 체첸클리어 영상

'체첸클리어(Chechen clear)'라고 불리는 가장 유명한 스너프 필름. 이 영상에 나오는 러시아군과 위에 먼저 서술했던 다게스탄 참수에 나오는 러시아군은 각각 별개의 인물들이다. '체첸클리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대표적인 영상이 바로 이 영상이다. 앞서 말했지만 체첸클리어는 이 동영상만이 아니라 체첸군의 학살기록을 담은 영상들 전부를 지칭하는 단어다.

다게스탄 참수 영상이 제2차 체첸 전쟁 때 일어난 일이라면 이 영상은 제1차 체첸 전쟁 때 일어났던 일이다. 테미르불라토프는 2000년 3월 20일 3명의 러시아인을 살해한 죄로 체포되었고 2001년 2월 15일 기소되었는데 그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사용된 영상 중 하나가 바로 이 체첸클리어였다.

영상에서 칼로 러시아군 포로의 목을 자르는 사람은 체첸인의 편이 되어 함께 싸웠던 유명한 사우디 지하디스트 ' 이븐 알 하타브'라는 설이 있지만 테미르불라토프의 소행이라는 게 정설이다.[6] 하여튼 영상의 내용은 아래 설명과 같다.

1996년 4월 12일 테미르불라토프의 부하들이 콤소몰스코예(Komsomolskoye) 지역 밖에서 4명의 러시아군을 붙잡아 온다. 4명의 러시아군들의 나이는 18살, 19살 등 다양했으며 테미르불라토프는 이들 네 사람에게 고문하며 질문을 던진다. 포로로 잡힌 4명 중 2명은 총살당했고 2명은 참수당한다.

흔히 체첸클리어라고 네이버나 구글에 치면 나오는 러시아군의 신원은 아직도 확인된 바가 없다.[7]

1999년 러시아 미디어가 이 영상을 구매하여 오직 2채널[8]에서 풀버전을 틀어 주는 기행을 선보였는데 목적은 대대적으로 공개하여 체첸인이 잔인하고 야만적인 것을 즐기는 사람들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서방 국가들이 체첸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고 제2차 체첸 전쟁의 명분이 명확하게 생겼다.

인터넷에 고어 영상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한 러시아군의 목을 썰어 처형하는 영상이 15초짜리 영상이 대부분이다. 풀버전에는 체첸군들이 러시아군을 고문하고 능욕하는 장면까지 포함이 되어 있다.

1996년 10월 22일경 촬영된 ogrish chechen이라는 또다른 체첸클리어 영상도 있지만 범인들의 신원과 처형한 장소는 밝혀지지 않았다.

5. 의미

이런 잔인한 영상을 촬영해 배포하는 이유는 공포심 확산, 대의명분 천명이 대표적이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9]의 대부분이 처형 방식으로 참수를 택하는데 흔히 생각하는 큰 칼이나 도끼로 목을 자르는 게 아니라 30cm 가량의 단검으로 피해자의 목을 앞에서부터 쓱싹쓱싹 톱질하듯이 썰어 들어가는 방식을 택한다. 이게 이슬람 율법의 동물을 도살하는 자비하 법을 변형하여 인간에게 적용한 것인데 동물 도살되듯 치욕스러운 죽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10] 사실 정통 이슬람 율법을 아는 사람이 보면 알겠지만 이것도 순 사이비다!

실제로 이슬람 문화권에서 동물을 도축하거나 사람을 참수할 때를 보면 반드시 예의를 갖추고 단칼에 잘라냄으로서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이고 합법적으로 참수형을 집행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도 사형수에게 최대한 인도적이고 고통 없는 죽음을 선사하기 위해 최대한 무거운 칼을 사용하는 등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동물 도축 시에도 각주에서 보듯이 동물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춰 도축함을 생각해 보면 야만적으로 쓱싹쓱싹하는 방식은 율법에도 없는 사이비 방식이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는데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어그로에 대통령부터 이등병까지 전 러시아군이 악에 받혔고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런 영상을 찍은 자들을 추적하는 것은 물론 스페츠나츠를 파견해 모두 잔혹하게 쓸어 죽였기 때문이다. 특히 스페츠나츠 대원들이 영상을 보고는 경악하고 분노하여 체첸 반군을 적극적으로 사살했으며 러시아군은 그 과정에서 이들이 숨어 있거나 연관된 지역의 민간인들을 마구잡이로 살육하고 여기에 분노한 체첸인들이 다시 러시아에 테러를 자행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양측에 큰 상처를 남겼다. 이후 당시 작전을 펼쳤던 스페츠나츠 장교의 술회에 따르면 반군과 관련된 어린아이, 임산부, 여자 할 것 없이 무차별로 도륙했다고 하며 시체까지 TNT로 흔적도 남지 않게 폭파했고 이런 "박멸" 행위만 수행하는 제대가 따로 편성되었다고 한다. 체첸클리어나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도 제1차, 2차 체첸 전쟁 동안 러시아군의 잔혹한 민간인 학살로 생긴 증오가 이슬람과 만나면서 일어난 것이다.

결국 전쟁범죄는 체첸의 여러 테러 행위들처럼 러시아에 두려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공분을 일으키고 국제 여론에도 악영향을 끼쳐 결과적으로 러시아 정부가 체첸 반군의 싹을 말리려고 하도록 유도하였는데 미국에게 호기롭게 9.11 테러를 저질렀다가 끈질긴 도주 생활 끝에 처참한 말로를 맞이한 알카에다 오사마 빈 라덴이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 제2차 체첸 전쟁은 잔존 반란군과의 전쟁을 제외하면 2000년에 종전했다. [2] 참수형과는 의미가 다르다. 참수형는 법에 의해서 이뤄지는 형벌이지만 이 사건과 같은 경우는 법에 의해서 이뤄지는 형벌이 아닌 반인륜적인 범죄 행위이기 때문이다. [3] 남캅카스 중에서 조지아 아르메니아 일대는 전통적으로 기독교가 자리잡았고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권이다. [4]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비슷한 게릴라 전법을 사용했다. [5] 운 좋게도 모구트노프는 살인이 아니라 인질 교환을 목적으로 포로로 잡혔기 때문에 고문당하지 않고 대접을 잘 받았고 2001년 테미르불라토프 재판에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6] 이븐 알 하타브는 탁월한 전술 실력을 가졌지만 체첸의 독립운동을 와하브파로 물들이는 데 한 몫한 인물이다. [7] 예브게니 로디오노프라는 19살의 러시아군이란 설도 있지만 영상에 나오는 군인하고는 별개의 인물이다. 확실한 것은 로디오노프가 참수당한 곳은 다른 곳이라는 점이다. [8] 러시아의 국영방송 채널. 현재 로시야 1로 바뀌었다. [9] 체첸에서는 이츠케리아 체첸의 체첸 분리주의자 세력 중 전통적인 체첸 수니파 이슬람 계열이 아닌 와하브파의 영향을 받은 이슬람 극단주의자 일파는 중동권의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도 친하였는데 그 시초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올라간다. 발생 년도를 보았을 때 이러한 체첸 영상 대부분에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요소가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10] 이슬람식 동물 도살 방법은 다음의 조건들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1. 하느님의 이름으로 도살되지 않은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말라는 쿠란(6장 121절)의 규정에 따라 동물의 머리를 메카 방향에 두고 '자비로운 하느님의 이름으로'라는 뜻의 '비쓰밀라'와 '하느님이 가장 위대하시다'라는 의미의 '알라후 아크바르'를 암송한 다음 도살할 수 있다. 2. 동물은 날카로운 칼로 고통을 최소화하는 빠른 방법으로 도살되어야 한다. 3. 도살은 목구멍, 숨통 그리고 목 혈관들을 베어냄으로써 척수를 베지 않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4. 피가 다 빠지게 한다. 지만 사용되는 건 그냥 3번째 방식만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