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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무형문화유산|{{{#1da3b2 인류무형문화유산}}}]] | |
<colbgcolor=#1DA3B2><colcolor=#fff> 처용무 Cheoyongm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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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위치 |
<colbgcolor=#fff,#1f2023>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지정번호 | 189 |
등재연도 | 2009년 |
목록구분 | 대표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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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라 후기부터 현대까지 행사 때마다 이루어지는 궁중춤으로 기본적인 의미는 처용(병을 내쫓는 신)을 중심으로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풍요가 가득하길 바라는 일종의 의식이기도 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 39호.
전통 있는 춤이라 자주 이루어졌을 것 같지만 오히려 나라에선 처용무 추는 것을 마냥 좋아라 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어마어마한 비용 때문인데, 한번 할 때마다 고급 인사들이 모이니 성대한 무대와 음식은 기본이요, 배우들의 옷은 5방색에 맞추어 화려하게 장식하고 가면 또한 수제작인데 여러 곡식들이 주렁주렁 달렸으니... 이렇다 보니 자주 행해지지는 못 하였고 조선 시대에 와서는 아예 없애려고 했다. 다행히도 특유의 재미 덕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으며, 간간이 궁중연회에서 상연되기도 했다.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 형식
조선 초기의 성현이 쓴 용재총화와 악학궤범에 따르면 처용무는 원래 한 사람이 추는 춤이었는데 세종대왕 때에 와서 오방색에 맞춰 5명이 추는 춤으로 바뀌었다고 한다.[1] 5명의 무용수는 음양오행설에 맞춰 각각 서쪽 · 동쪽 · 북쪽 · 남쪽 · 중앙의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흰색 · 파란색 · 검은색 · 붉은색 · 노란색의 의상을 입었다. 동쪽의 청처용은 봄기운을 상징하며 남쪽의 홍처용은 여름, 서쪽 백처용은 가을, 북쪽 흑처용은 겨울을 상징한다. 가운데의 황처용은 사계절을 모두 관장하는 대지와 같은 포용을 의미한다. 춤은 가운데 황처용을 중심으로 진행된다.처용탈은 팥죽색 피부에 눈이 부리부리하고, 치아가 하얗고, 납 구슬을 단 주석 귀고리가 달려 있다. 머리에 쓴 검은색 사모에는 부귀를 상징(진경, 進慶)하는 모란꽃 2송이와 귀신을 쫓는(벽사, 辟邪) 의미의 복숭아 열매 7개를 꽂아 장식한다.
처용무는 수제천(壽齊天) 음악에 맞추어 왕을 향해 나아가 “신라성대소성대(新羅盛代昭盛代)”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고려가요 처용가의 첫 수를 ‘언락(言樂)’이라는 서정적인 가락에 맞추어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무용수들은 왕을 향해 인사하고 향악(鄕樂)과 당악(唐樂)을 번갈아 연주하는 소리에 맞추어 무대 중앙으로 나아간다. 세영산(細靈山)의 느린 가락에 맞추어 무용수들은 정방형을 이루며 산작화무(散作花舞)[2]를 춘 후 오른쪽으로 돈다. 십자형으로 대열이 바뀌면 음악도 삼현도드리[3]로 변경된다. 수양수무(垂揚手舞)[4]와 무릎디피무[5]을 마친 후 5인의 무용수는 대열을 원형으로 바꾸고 왼쪽으로 돈다.
다시 한 번 일렬로 대열을 바꾸고 나서 무용수들은 ‘산하천리국(山河千里國)'[6]으로 시작하는 〈처용가〉를 다시 가곡 우편(羽編) 가락에 맞추어 부른 후 '송구여지곡'(頌九如之曲)[7]에 맞추어 낙화유수(落花流水)를 추며 무대에서 퇴장한다.
춤사위를 가만히 보면 한삼 끝자락을 반대편 옆구리에 낀 채로 손을 앞으로 힘껏 내딛거나 휘젓는 동작이 있는데 귀신을 손으로 쓸어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3. 인식과 전승
처용무의 유래는 당연히 신라 시대의 처용. 고려 시대에도 상연되었는데, 『악학궤범(樂學軌範)』에 따르면 음력 섣달 그믐날, 묵은해의 역신과 사귀를 쫓기 위해 궁중에서 열린 귀신쫓기 행사인 구나(驅儺)의식에서 2차례에 걸쳐 추는 춤이었다고 한다. 고려의 이제현이나 이색 등의 문인들이 처용무를 보고 지은 시도 남아 있다.신라의 처용은 칠보를 몸에 장식하고 / 新羅處容帶七寶
꽃 가지 머리에 꽂아 향 이슬 떨어질 제 / 花枝壓頭香露零
긴 소매 천천히 돌려 태평무를 추는데 / 低回長袖舞太平
발갛게 취한 뺨은 술이 아직 안 깬 듯하고 / 醉臉爛赤猶未醒
이색 <구나행(驅儺行)>, 목은시고 권21
꽃 가지 머리에 꽂아 향 이슬 떨어질 제 / 花枝壓頭香露零
긴 소매 천천히 돌려 태평무를 추는데 / 低回長袖舞太平
발갛게 취한 뺨은 술이 아직 안 깬 듯하고 / 醉臉爛赤猶未醒
이색 <구나행(驅儺行)>, 목은시고 권21
조선 초기의 성현이 지은 악학궤범에 처용탈과 처용무복에 대한 소개와 설명이 되어 있고, 고려 시대에 개작되어 불린 처용가의 가사가 함께 실려 있다.
연산군이 처용무를 즐겨 췄다고 한다. 문제는 연산군이 조선, 나아가 한국사에도 손에 꼽을 만한 폭군이었다는 것. 연산군이 반정으로 폐위된 뒤에는 연산군이 좋아했던 처용무까지 도매금으로 비난을 당했다. 연산군일기에는 연산군이 자신의 할머니 인수대비( 소혜왕후) 한씨에 대해 저지른 패륜 행각 가운데 하나로 처용무와 관련된 한 가지 일화를 수록했다.
소혜왕후(昭惠王后)가 늘 왕의 행동이 무도(無道)함을 근심하니, 왕이 하루는 얼굴에 처용 탈[處容假面]을 쓰고 처용의 옷차림으로 칼을 휘두르고 처용무를 추면서 앞으로 갔다. 그러자 소혜왕후는 크게 놀랐는데, 그 후 왕후가 병들어 앓게 되니 왕은 미리 상기(喪期)를 짧게 하는 제도를 마련하였고, 승하에 이르러서도 슬퍼하는 빛도 없었으며, 상례ㆍ장례 등 모든 일을 또한 모두 강쇄(降殺)해서 행하였다.
연산군일기 연산군 11년 을축( 1505년) 10월 9일(경신)
연산군일기 연산군 11년 을축( 1505년) 10월 9일(경신)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처용무, 그러니까 귀신을 쫓기 위해 추는 춤을 자기 친할머니인 인수대비를 겨냥해서 추었다는 거다. 그냥 자기 할머니 방향으로 "사탄아 물러가라" 외친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담으로 연산군은 자신에게 목숨을 걸고 충언을 올린 김처선을 그 자리에서 잔인하게 처형한 뒤 그의 이름이 들어간 한자를 쓰지 못하게 하였고 그에 따라 연산군이 즐겨추었던 처용무도 처(處)자가 들어갔다고 하여 아예 풍두무(豊頭舞)로 이름을 바꿔버리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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