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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총 天馬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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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A2D5B,#2d2f34><colcolor=#fbe673,#f9d537> 추정 피장자 | <colbgcolor=#fff,#1f2023> 소지 마립간 · 지증왕 | |
출토 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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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3년 경주관광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조사한 천마총에서 국보 제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와 백화수피제 천마도 말다래 2점과 함께 발견된 신라시대 금동 천마형 말다래.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2. 내용
발굴 당시의 모습. 사진 출처 : 천마총 天馬圖, 두 점 더 공개합니다, 한겨레 - 40년 전 ‘빛살 무늬’는 천마의 갈기였다
1973년 천마총에서 발견된 유물로, 기존에 잘 알려진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국보 제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와는 또 다른 천마도이다. 원래는 기존 천마도 2점과 같이 천마총에서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 바로 전 국민에게 공개한 국보 제207호 천마도와는 달리 백화수피제 천마도 말다래와 이 유물 2점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발견 당시 유물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비밀리에 국립경주박물관 수장고에 특별 보관되다가 2014년 3월, 발굴 40여 년 만에 처음 학계에 보존처리 공개한 것이다. [대구MBC뉴스] 금동 천마문 말다래 최초 공개(2014.3.3)
이 유물 공개 후 연구자들은 기존 국보 제207호로 지정되어 있던 천마도와 이 유물을 구분하기 위하여 '죽제 금동천마문 말다래'라고 부른다.
자작나무껍질을 여러 겹 겹친 후 동물 가죽을 대어 만든 기존 천마도와는 달리, 이 유물은 얇은 대나무살을 엮어 바탕판을 만든 후, 앞면에 마직을 댄 뒤 황금으로 도금한 동판에 천마문 등의 무늬를 10개 투조하고 금으로 만든 못으로 붙인 것이다.
제작연대는 대략 5~6세기로 추정하는데, 신라의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 그리고 기마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2018년 7월 경주 천마총이 1년 만에 복원 작업을 마치고 왕릉을 재공개하면서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개되었다.
시사IN 뉴스에 따르면 1973년 천마총 발굴자들이 처음 국보 제207호 천마도 1세트를 발견했을 때는 모두가 기뻐 환호성을 질렀으나 이후 백화수피제 천마도 말다래와 이 투조금동판식 죽제장니(透彫金銅板飾竹製障泥) 2세트까지 발견되자 일종의 공포라고도 할 수 있는 불안, 그리고 깊은 두려움에 빠지고 말았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생전에 '어떤 놀라운 일에도 냉정함을 유지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았다던 김정기 단장은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대발견인 천마도 3세트 6점을 자신이 모두 무사히 발굴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고는 주저앉을 것 같았다고 술회하였다. 시사IN : 나와서는 안 될 유물 천마도가 나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