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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倉

1. 개요

삼국지 가공인물 경극에서 설정된 는 원복(元福). 연의에서는 자가 없다.

가공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주인 잘 만나 수호신으로까지 떠받들어진다.

2. 민간 전승

비록 정사에는 없는 인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관중의 창작은 아니고 적어도 송나라 이전부터 민간 전승에서 관우의 부하로 등장했다. 북송 연간에는 관우를 그린 그림 등에서 청룡언월도를 들고 시립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모습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실존 자체가 없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실제 관우의 충복이었던 인물의 설화가 구전되어 내려온 것을 나관중이 정사와 민담을 두루 모아 엮는 과정에서 연의에 합류한 정도로 이해하면 될듯.

주창은 완력이 대단해서 처음에는 관우에게 승복하지 않았으나, 여러 차례 무술을 겨루어 모두 지게 되자 비로소 진심으로 복종하기 시작했다.[1]

민간 전승에서는 관우가 신격화됨에 따라 신장(神將)같은 분위기가 많이 풍기는데, 예컨대 발에 비모(飛毛)라는 특별한 털이 있어 적토마보다 좀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었고 항상 청룡언월도를 가지고 적토마를 탄 관우보다 전장에 앞서 도착해서 건네주었다고 한다. 출처

열심히 뛰는 주창을 기특하게 생각한 관우는 그에게 말을 선물하기로 했다. 하지만 하루 천 리를 달리는 적토마에 필적하는 말이 발견되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하루에 구백 리를 뛰는 말을 선물했다. 주창은 고맙게 받았지만 날마다 말이 구백 리를 달리다 관우의 적토마에 백리 뒤쳐지고 말았다. 그래서 말을 타고 구백리를 달리다 남은 백리는 말을 짊어지고 제 발로 뛰었다.[2]

어느 날 여몽은 주창의 고향 친구를 첩자로 보내 그가 빨리 달리는 비밀을 알아내려고 했는데, 함께 술을 마시다가 비모에 대해 알려줬더니 그 친구가 그것을 다 잘라버리고 오나라로 튀었다. 주창은 빨리 뛰지 못하게 되어 언월도를 건네주는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고 결국 관우는 패배하게 되었다.[3]

또한 관우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청룡언월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날 자신과 관우의 청룡언월도를 씻던 도중 그만 관우의 청룡언월도가 가라앉고 말았다. 그래서 관우에게 가서 이 말을 했더니 관우는 자기 것도 청룡으로 만든 것이고 네 것도 청룡으로 만든 것인데 어떻게 네것은 멀쩡하고 내것만 가라앉았다는거냐고 말했고 이에 주창이 자신의 실수라고 말하며 자신의 청룡언월도를 바쳤는데 사실 원래 관우의 청룡언월도는 오관육참을 거치며 망가져 있었기에 관우는 알면서도 주창의 청룡언월도를 가로채기 위해 이를 숨겼고 결국 주창은 아무것도 모르고 청룡언월도를 빼앗겼다는 이야기.

또 다른 이야기로는 관우 사후 신이 되었을 때의 일화로 관우는 신이 되어 날씨를 담당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주창이 보기에는 굉장히 쉬운 일로 사람들이 어떤 날씨를 청하면 그대로 들어주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 그러다가 어느날 관우가 외출을 하며 주창에게 일을 맡겼는데 그런데 이 날은 일진이 나빴는지 먼저 농부 두 사람이 청을 했는데 문제는 한 농부는 내일 보리를 수확해야 하니 맑은 날씨를, 다른 농부는 내일 모내기를 해야 하니 비를 내려달라고 청했고 또 과수원 주인과 상인이 찾아와 과수원 주인은 꽃이 떨어지면 안되니 바람이 불지 않게 해 달라고 하고 상인은 배를 타고 나가야 하니 바람이 불게해 달라고 했는데 이런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청에 주창이 어쩔 줄 몰라서 결국 관우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쉽게 해결했다는[4] 이야기.

3. 삼국지평화

삼국지연의에 앞서 간행된 삼국지평화에서는, 관우와 무관하게 제갈량의 북벌 때 촉한의 장수로 등장한다. 목우유마를 이용해 운반하는 중 위나라에 빼앗긴 뒤에, 만취한 상태로 사마의의 회유책에 넘어가 목우유마경을 읽어야 효율이 증가한다는 비밀을 사마의에게 알려준다. 이후 주창이 가져온 목우유마경을 사마의가 보았는데, 거기에는 제갈량이 사마의를 비웃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4. 삼국지연의

연의에서는 배원소와 함께 황건적 잔당 출신으로 28회에서 등장하는데, 이 때 유관장 삼형제를 멀리에서 보았지만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이후 관우 원소에게 의탁한 유비를 만나기 위해 오관을 돌파할 때, 곽상의 아들에게 속아 관우를 몰라보고 덤벼들 뻔했던 배원소의 소개로 관우를 만난다. 이에 오랫동안 존경했던 분이라며 감격하고 곧장 모시겠다고 했고, 관우는 지금은 이런저런 문제로 힘들지만[5] 나중에 반드시 데리러 오겠다며 약속한다. 이후 유비와 합류한 관우가 돌아왔을 때 어째서인지 조운에게 얻어터진 모습으로 등장했으나,[6] 어찌저찌 그들 모두가 유비를 모시려고 했던 같은 편이었음이 드러나면서 같이 유비의 부하가 된다.

시간이 흘러 관우와 노숙이 형주의 분쟁권에 대해 '칼 한자루만 가지고'[7] 논쟁을 벌일 때 분개한 나머지 "닥쳐라! 세상 천하는 덕이 있는 자의 것인데 어째서 오나라 너희가 형주의 주인 노릇을 하느냐!" 라며 한 마디 끼어든다.[8] 겉보기에는 무례한 행동일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주군인 관우를 돕기 위해서였다.

관우가 나름대로 식견을 갖춘 인물이라 해도 결국엔 무관이라 말재주로는 오나라 최고 문관 중 하나인 노숙을 상대할 수는 없었기에 밥상 뒤집기를 시전한 것. 이에 관우가 주창이 들고 있던 언월도를 뺏고 "어른들 얘기에 감히 어딜 끼어드냐!"라며 호통을 치면서도 눈짓을 보내자, 즉각 밖으로 나가 곧장 배를 출항시킬 준비를 한다. 관우 역시 어정쩡한 분위기를 틈타 "많이 취했으니 얘기는 여기서 끝냅시다!"라며 노숙에게 배웅을 해 달라고 하는데, 말이 배웅이지 한 손에는 노숙을, 다른 손에는 언월도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인질극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숙이 정말로 매복시켜 뒀던 여몽 감녕은 관우 한 명밖에 없었음에도 고대로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74회에서 관우가 번성에서 위나라 7군을 수계로 공격했을 때, 방덕이 여전히 항전하자 수영에 능했던 주창이 나서서 그를 물 속으로 끌어들이고 생포한다. 77회에서 관우가 마지막 탈출을 시도할 때에는 왕보와 함께 자청해서 맥성에 남지만 결국 관우는 잡혀 참수당한 뒤였고, 오군이 그 목을 성 내 병사들에게 보여주었다. 이것을 보고 왕보와 주창 둘 다 충격을 받아서 왕보는 관우를 따라가겠다면서 성벽에서 뛰어내려 투신자살했고,[9] 이어 주창 역시 관우의 곁으로 가겠다면서 칼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이후 지휘관들이 사라진 맥성은 손쉽게 오나라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마지막에는 한을 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던 관우의 양 옆을 (양자로 설정된) 관평과 함께 보좌하다가, 관우가 보정의 말을 듣고 한을 풀자 함께 성불한다.

5. 기타

파일:external/home.att.ne.jp/zhoucangmu_001.jpg

실제 존재했던 인물도 아닌데, 후베이성 당양현 맥성촌에는 주창묘가 건립되어 있다. 연의 출신도 아닌 포삼랑도 묘가 있는 마당이니 딱히 신기할 일도 아니다.

신상에는 좌우에서 보좌하는 인물이 필요한데, 관제묘 등에서 좌우로 관우를 지키고 있는 수호신은 관평과 주창이다. 서울특별시에 있는 동묘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국의 가면극에서 검은색 얼굴은 충성의 상징인데 주창이 바로 검은 얼굴로 나온다. 삼국지에서 검은 얼굴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또 다른 인물은 바로 장비.

6.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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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 소설쇄화(小說瑣話) 인용 시퇴삼국(柴堆三國). [2] 출처: 소부(笑府). [3] 원래 야사에서는 관우가 이를 신기하게 여겨서 뽑으라고 명령하니 직접 뽑았다는 전승이 있다. 과거 나무위키 판에는 이 야사만 실려 있었는데 아무래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부하의 능력을 아무 이유도 없이 약화시키는 관우의 행동이 말이 안 되기에 좀 더 그럴싸한 야사로 대체되었다. 사실 고전 이야기에 개연성이 없는 현상은 흔히 나타나는 일이며 후대인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좀 더 그럴싸하게 고쳐서 전승하는 건 꽤나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당장 제갈량만 하더라도 적벽대전에서 동남풍을 불러온 건 원판에서는 그냥 기도로 만들어낸 일이지만 후대인들이 사람이 마법을 쓴다는 게 너무 현실성이 없다고 느껴서인지 천문을 읽고 동남풍 부는 타이밍을 읽어냈을 뿐이며 기도는 일종의 오나라 기선제압을 위한 퍼포먼스 정도로 해석하는 판본이 나오기도 했다. [4] 보리 수확을 앞둔 농부를 위해 낮에는 맑게 모내기를 앞둔 농부를 위해 밤에는 비를 내리게 했고 바람이 불되 과수원에는 불지 않게 하고 상인이 배를 탈 강에만 불게 했다고 한다. [5] 두 부인을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눈에 띄거나 자잘한 관리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소수정예가 편했고, 또 배원소&주창이 어쨌든 황건적 출신이라 유비에게 이미지 문제라도 생길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6] 그 과정에서 배원소는 조운에 의해 죽었다. [7] 주위에서 노숙이 함정을 팠을지도 모른다며 만류했지만 대담하게 칼 한 자루만 들고 회의에 참석했다고 하여 '단도부회'란 고사성어가 나왔다. [8] 정사에서는 회의에 동석했던 유비군의 이름 없는 하급무사였지만 연의에서는 주창이 한 것으로 각색했다. [9] 정사에서는 이릉대전에서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