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16:52:13

존 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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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Sutter
파일:존 서터.jpg
본명 존 어거스터스 서터[1]
John Augustus Sutter
출생 1803년 2월 23일
신성 로마 제국 바덴 대공국 후작령 칸데른
사망 1880년 6월 28일 (향년 77세)
미국 워싱턴 D.C.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기업인, 탐험가
자녀 5명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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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기업인, 탐험가

2. 생애

독일 바덴 대공국 칸데른에서 스위스 국적의 부부에게서 태어났다. 스위스 뇌샤텔에서 성장하고 스위스군에 입대해 포병 대위까지 하고 제대했다. 이후 결혼하고 가게를 열었으나 씀씀이가 너무 커 빚을 졌고, 결국 가족을 버리고 미국으로 도피 이주를 하게 된다. 이때 이름을 요안 어거스터스 서터에서 미국식 발음인 존 어거스트 서터로 바꿨다.

세인트루이스를 거쳐 현 뉴멕시코주의 산타페로 이주했고 모피사냥꾼 앤드루 드립스와 합류해 오리건 준주의 밴쿠버 요새를 거쳤으며, 이후 하와이 왕국 호놀룰루까지 갔다. 멕시코 공화국 칼리포르니아를 넘어 몬테레이로 가 멕시코 시민권을 얻고 현 샌프란시스코가 되는 곳에서 정착했다. 자신의 거주지를 고향의 이름을 따서 "누에바 헬베티아(새로운 스위스)"로 명명했다. 서터는 종종 자신을 스위스 호위대의 서터 대위라고 밝히곤 했다.

이후 요새를 쌓고 토착 원주민인 마이두 부족과 교류하며 공장과 상점을 차렸고 자신이 데려온 하와이 원주민, 마이두, 이후 건너온 유럽계 개척인들을 고용하며 세를 불려나갔다.[2] 미국 멕시코 전쟁 당시 프랑스의 영향권에 있었으나 미국의 손에 무혈로 점령되면서, 요새의 권리를 빼앗기고 아메리칸 강 인근에 제재소를 차렸다.

그의 인생을 뒤흔들을 격변은 이때 벌어졌다. 아메리칸 강 밑에서 부하 직원인 제임스 W. 마셜이 사금을 발견했고 본인은 숨기고 싶었으나, 상인전문 신문기자가 이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하며 골드 러시가 시작되었다. 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서터의 사유지에 침입해 허가도 없이 금을 캐기 시작했으며 서터의 물건과 가축들을 훔쳐댔다. 서터의 농장은 쑥대밭이 되었다. 서터는 모든 가산을 탕진하고 땅을 뺏기는 것을 그저 손놓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1852년 파산에 이르렀다.

서터는 법정투쟁을 벌여 1855년 캘리포니아 법원으로부터 재산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승소판결을 받아냈으나 금광 이주민(포티나이너)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폭동을 일으켜 법원에 불을 지르고, 판사를 폭행하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서터는 이 폭동으로 인해 세 아들을 잃었다. 남은 아들인 존 서터 주니어 새크라멘토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마저도 법정분쟁 비용으로 날아갔다.

서터는 이후 20년이 넘도록 땅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워싱턴 DC에서 심장발작으로 1880년 사망했다.


[1] 스위스계이므로 본명은 요한 아우구스트 수테르(Johann August Sutter) [2] 그러나 원주민들에게는 노예처럼 가혹하게 부렸고 심지어 성노예를 부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