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7 19:17:46

조르주 에비

파일:Georges Aeby.jpg
이름 조르주 에비
(Geoeges Aeby)
생년월일 1913년 9월 21일
사망년월일 1999년 12월 15일 (향년 86세)
국적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
출신지 프리부르
포지션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신체조건 178cm | 77kg
소속팀 FC 빌비엔 (1930-1933)
세르베트 FC (1933-1942)
FC 로잔 스포르 (1942-1949)
우라니아 제네브 스포르 (1949-1952)
국가대표 39경기 13골 (1939-1946)
가족관계 형 폴 에비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2.2.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사생활5. 수상
5.1. 선수
5.1.1. 클럽5.1.2.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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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위스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스위스 프리부르에서 태어난 에비는 빌비엔에서 성장했고 그곳에서 축구를 배웠다. FC 빌비엔에서 성인 무대에 데뷔한 에비는 1933년부터 세르베트 FC의 왼쪽 측면 공격을 이끌기 시작했다.

에비는 세르베트 입단 시즌인 1933-34 시즌에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를 승점 3점 차로 제치고 커리어 첫 나티오날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 시즌에 40골을 넣어 역대 스위스 리그 한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수립한 공격수 레오폴트 킬홀츠와 당대를 넘어 스위스 역대 최고급 골키퍼 중 한 명인 프랑크 세슈에가 있던 팀에 에비의 가세는 팀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킬홀츠와 세슈에는 얼마 안 가 세르베트를 떠났고 한동안 세르베트는 우승과는 거리가 먼 세월을 보냈다.

세르베트가 다시 나티오날리가 우승을 차지한 시즌은 1939-40 시즌이었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앙드레 아베글렁과 공격진을 이뤘고 에비는 22골로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그의 커리어 중 최고의 한 해였다.

1942년까지 에비는 세르베트에서 활약했고 그 해에 FC 로잔 스포르에 합류했다. 당시 로잔 스포르의 감독은 세르베트에서 잠시 같이 뛰었던 세슈에였고 첫 시즌엔 3위를 차지했다. 세슈에대신 프리츠 레온하르트 감독 체제로 맞은 에비의 두 번째 시즌, 로잔 스포르는 더블을 달성했다.

1949-50 시즌에 우라니아로 팀을 옮긴 에비는 플레잉 코치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냈다.

2.1.2. 국가대표

에비는 1936년 3월 17일, 더블린에서 아일랜드를 상대로 나티에 데뷔했지만 스위스는 0대1로 패했다. 그리고 1937년 4월 11일, 에비는 바젤에서 헝가리를 상대로 한 그의 다섯 번째 A매치에서 국가대표팀 경력 첫 골을 넣었다. 하지만 스위스는 젠겔레르 줄러에게 해트 트릭을 얻어맞고 1대5로 대패했다.

1937년 9월 19일, 에서 열린 오스트리아와의 경기는 카를 라판의 스위스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처음 치르는 경기였다. 에비는 이 경기에서 나티에서의 두 번째 골을 넣었고 라판은 1938년 월드컵 본선 명단에 에비를 넣기로 사실상 결정하게 되었다.

에비는 1938년 2월 1일에 있었던 독일과 1대1로 비긴 친선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었고 5월 1일, 포르투갈 밀라노에서 단판으로 펼친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도 선제골을 넣었다. 스위스는 라우로 아마도의 추가골을 묶어 포르투갈을 2대1로 꺾고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에비는 1938년 월드컵 본선에서 독일과의 2경기에 참가했는데 독일과의 재경기에서 에비는 루트비히 골트브루너의 신발에 얼굴을 맞고 잠시 실신했다. 그는 얼굴을 꿰매고 다시 경기장에 들어왔다. 8강 헝가리전에는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월드컵 이후, 에비는 리스본에서 있었던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2골을 넣었고 그에 힘입어 스위스는 4대2로 포르투갈에 승리했다.

1946년 5월 25일, 그는 글래스고에서 열린 스코틀랜드와의 친선 경기를 끝으로 나티에서의 경력을 마감했다. 그의 39번째 A매치였고 나티에서 13골을 넣었다.

2.2. 이후

에비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제네바에서 식당과 여관을 운영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에비는 드리블과 득점력이 뛰어났다. 그는 또한 공이 있든 없든 매우 빠르고 강한 몸과 강력한 슛, 좋은 패스와 점프를 가진 선수였다.

4. 사생활

에비의 3살 위 형 폴도 1938년 월드컵에도 참가했고 스위스 대표팀에 20경기 출전한 경력이 있는 축구 선수였다. 다만 폴 에비는 월드컵 본선 경기에 출전하진 못했다.

5. 수상

5.1. 선수

5.1.1. 클럽

5.1.2. 개인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