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6 23:45:50

조 스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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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스트롱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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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8

{{{#fab93d [[현대 유니콘스|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7번}}}
김억만
(1995~1997)
조스트롱
(1998)
서성민
(1999~2004)
플로리다 말린스 등번호 50번
아치 코빈
(1999)
조 스트롱
(2000~2001)
줄리안 타바레즈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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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스트롱1.jpg
조 스트롱
Joe Strong
본명 조셉 벤자민 스트롱
Joseph Benjamin Strong
출생 1962년 9월 9일 ([age(1962-09-09)]세)
캘리포니아 페어필드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세인트 패트릭 고등학교 - 캘리포니아 대학교
신체 183cm, 90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양타
프로 입단 1984년 드래프트 15라운드 (전체 376번, OAK)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1998)
플로리다 말린스 (2000~2001)


1. 개요2. 선수 경력3. 여담4. 연도별 성적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MLB와 KBO 리그에서 뛰었던 야구선수였다. 1962년 9월 9일생이다.

2. 선수 경력

1984년 MLB 드래프트 15라운드에서 오클랜드의 지명을 받으며(전체 376순위) 데뷔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 대만 웨이취엔에서 3년간 뛰었는데 매년 200이닝씩 던지며 에이스로 활약했다.

1998년 KBO 리그에서 처음으로 용병선수제도를 실행했는데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였다. 처음에는 35살 노장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컸었다. 마무리투수로 활약해서 준수한 성적을 거뒀지만 기복 있는 모습도 보였다. 6승 5패 27세이브로 스탯상으로만 보면 괜찮은 성적으로 보이지만 겨우겨우 세이브를 따는 모습을 보였으며 Whip(이닝당 출루허용)이 1.60이나 되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올 때마다 맨날 장작을 쌓아두고 불만 질렀다. 더구나 매번 등판할 때마다 경기 마무리는 제대로 못하고 땀만 한바가지를 쏟아내자 불안감에 사로잡힌 도원전사 아재들이 경기 막바지 구수한 욕설을 쏟아내기도 했다. 또한 당시 현대는 김수경, 정민태 등 선발진은 좋았는데 그들의 승리를 날려먹고 자기가 승리투수가 되는 기묘한 피칭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김수경이나 조규제 같은 투수들이[1] 스트롱을 대신해 마무리투수 알바를 뛰기도 했다.

그래도 팀은 정규리그 1위를 해서 한국시리즈에 직행하였고 우승했지만 그는 정규시즌에 불안한 모습 때문에 한국시리즈에서 한경기도 등판하지 못했다. 현대는 스트롱 때문에 한국시리즈에서 선발투수로 돌려막기를 해야 했다.[2] 이후 현대 유니콘스와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2000년 5월 11일에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38세 나이로 역대 최고령 세번째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였다. [3] 메이저에서는 2시즌 23경기 26.1이닝 1승 1패 ERA 5.81을 기록했다. 이후 멕시칸리그로 가서 준수한 마무리로 뛰었지만 1년만 뛰고 멕시코에서도 재계약은 실패했고 마지막으로 독립리그에서 2004년까지 활동한 후 은퇴했다고 한다. 그는 현재 시애틀에서 야구클럽을 운영 중이라고 한다.

3. 여담

땀이 많은 체질이었는지 등판하게 되어 일정한 투구수를 넘기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경기를 마무리 짓는 일이 많았었다. 인천야구의 역사를 정리했던 사이트 '짠물야구'(현재 폐쇄됨)에 따르면, 당시 현대 팬들이 붙여줬던 별명이 빨대였다고 한다. 성씨인 스트롱이 빨대를 뜻하는 영어 단어 '스트로우(Straw)'와 비슷해서 붙은 별명인데 불을 거하게 질러서 마운드에서 땀을 한바가지 쏟아내는 날이면 이름을 앞에 붙여서 조빨대라고 불렸다.

야구와는 별개로 적응력이나 인성 측면에서는 흠잡을데 없는 선수였다. 훌리오 프랑코처럼 삼계탕은 물론 김치나 삼겹살같은 한국 음식도 무난히 즐겨먹었고,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같은 팀 선수들과도 친하게 지내려 노력했다. 무엇보다도 본인이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던 당시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한 ‘ 금모으기 운동’이 한창이었는데 그 소식을 접한 스트롱 역시 자신도 돕고 싶다면서 소지하고 있던 금을 쾌척하면서 인성과 문화 적응에 있어서는 이미 특급 에이스의 행보를 보였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1998 현대 53 58 6 5 27
(2위)
0 2.95 64 4 29 2 54 1.60
KBO 통산
(1시즌)
53 58 6 5 27 0 2.95 64 4 29 2 54 1.60

5. 관련 문서


[1] 조규제는 현대로 오기전 쌍방울 레이더스의 특급 마무리 투수였다. 애초에 조규제를 쌍방울에서 데려온 이유도 조 스트롱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무리 역할을 대신 맡기기 위해서였는데, 정작 조규제도 현대 이적 초기에는 선발로 뛰게 된다. [2] 심지어 우승을 결정지은 마지막 경기의 헹가래 투수 역할을 맡은 선수도 에이스 정민태였다. 다만 이때 정민태의 기용은 연고지에서 나고 자란 로컬 보이 에이스로서 창단 첫 우승의 영광을 직접 맛보게 하려는 팀 코칭스태프의 예우 차원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정민태는 이 경기에서 우승을 결정짓고 마운드에서 김경기, 정명원과 얼싸안고 대성통곡한다. [3] 두번째는 만 41세에 데뷔한 디오메데스 올리보, 최고령은 만 42세로 데뷔한 그 이름도 유명한 사첼 페이지. [4]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