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지역구 국회의원
1. 개요
본 항목은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의 경기도 지역구 선거 결과를 정리하는 항목이다. 선거구는 가나다순이 아니라 지역 선거관리위원회가 설치된 순서로 한다.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쓰는 공식 발표법이기 때문이다.2. 결과
13대 총선 경기도 지역구 결과 | ||||
민주정의당 | 신민주공화당 | 통일민주당 | 평화민주당 | 무소속 |
16석 | 6석 | 4석 | 1석 | 1석 |
19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경기도는 경부선 - 경인선 주변에 형성된 베드타운 도시[1]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농촌이었고, 이 때문에 보수 성향이 매우 강했다는 것을 이 선거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당인 민정당은 총 28석 중 절반 이상인 16석을 휩쓸었고, 제2당은 김종필의 공화당이 차지했는데 3석은 수원, 성남, 광명 등 위성도시에서, 나머지 3석은 안보 이슈에 민감한 경기 북부[2]에서 얻었다. 반면 민주당계는 통일민주당이 4석[3], 평화민주당이 1석[4]에 그치며 부진했는데, 민주+평민 후보의 단순 득표 합이 타 정당 당선인 득표보다 높았던 지역구가 무려 8곳이나 되었다.[5]
2.1. 수원시 갑
수원시 갑 팔달동, 남향동, 신안동, 화서1동, 화서2동, 파장동, 정자동, 영화동, 송원동, 연무동, 지만동, 이의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인영(金仁泳) | 47,745 | 1위 |
|
45.01% | 당선 | |
2 | 박왕식(朴旺植) | 40,071 | 2위 |
[[통일민주당| |
37.78% | 낙선 | |
3 | 이일구(李一坵) | 18,246 | 3위 |
[[평화민주당| |
17.2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61,408 |
투표율 66.60% |
투표수 | 107,517 | ||
무효표수 | 1,455 |
당시만 해도 수원은 토박이 인구가 많고, 지금보다 보수 성향이 훨씬 강한 도시였다. 게다가 보수 표를 일부 잠식할 수 있는 공화당 후보도 출마하지 않았다. 덕분에 민정당 김인영 후보가 정치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쉽게 당선되었다.
3년 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때 신민당 돌풍을 일으키며 당선된 민주당 박왕식 후보는 돌풍을 재연하지 못하고 낙선했다.
2.2. 수원시 을
수원시 을 매교동, 세류1동, 세류2동, 세류3동, 평동, 서둔동, 매산동, 고등동, 인계동, 매탄동, 원천동, 곡선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남평우(南平祐) | 32,383 | 2위 |
|
29.05% | 낙선 | |
2 | 김정태(金正泰) | 21,857 | 3위 |
[[통일민주당| |
19.60% | 낙선 | |
3 | 유용근(劉溶根) | 18,766 | 4위 |
[[평화민주당| |
16.83% | 낙선 | |
4 | 이병희(李秉禧) | 35,947 | 1위 |
[[신민주공화당| |
32.24% | 당선 | |
5 | 이응철(李應喆) | 2,520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2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56,669 |
투표율 71.70% |
투표수 | 112,300 | ||
무효표수 | 827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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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희 전 의원은 육사 8기이자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5번 연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수원을 위한 굴직한 과제를 해결했다. 경기도청을 서울에서 수원으로 옮기는데 힘을 썼으며, 삼성전자의 수원 공장 유치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신군부에 의해 정치권에서 쫓겨났으나, 13대 총선을 통해 정계 복귀를 노렸다.
비록 주요 4당 중 당세가 가장 약한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이병희 후보는 높은 인지도와 의원 시절 세운 업적을 바탕으로 국회의원에 다시 당선되었다. 민정당 후보로 출마한 남평우 후보도 경남여객 대표를 지내는 등 막강한 재력과 조직력을 지녔으나, 이병희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남평우 후보는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의 아버지로, 4년 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때 수원의 지역구가 1개 더 늘어나자 신설 선거구에 공천을 받아 당선된다.
2.3. 성남시 갑
성남시 갑 수정출장소 일원[6]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충호(金忠鎬) | 29,237 | 3위 |
|
25.60% | 낙선 | |
2 | 장문영(張文英) | 9,909 | 4위 |
[[통일민주당| |
8.67% | 낙선 | |
3 | 이윤수(李允洙) | 30,420 | 2위 |
[[평화민주당| |
26.63% | 낙선 | |
4 | 이대엽(李大燁) | 44,625 | 1위 |
[[신민주공화당| |
39.07%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166,994 |
투표율 68.94% |
투표수 | 115,120 | ||
무효표수 | 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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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는 광명시와 더불어 4개월 전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평민당 김대중 후보가 경기도 내에서 유이하게 1위를 한 지역이다. 따라서 평민당도 이윤수 후보의 승리를 내심 기대했다. 민정당 김충호 후보도 경기교통 대표라,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선전을 기대해볼만 했다.
하지만 당선자는 현역 의원인 공화당 이대엽 후보였다. 낮은 당세에도 불구하고, 영화배우 및 의정활동으로 얻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승리했다.
2.4. 성남시 을
성남시 을 중원출장소 일원[7]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오세응(吳世應) | 30,056 | 2위 |
|
32.13% | 낙선 | |
2 | 양건주(梁健柱) | 7,448 | 4위 |
[[통일민주당| |
7.96% | 낙선 | |
3 | 이찬구(李讚九) | 37,187 | 1위 |
[[평화민주당| |
35.47% | 당선 | |
4 | 김기평(金基平) | 19,754 | 3위 |
[[신민주공화당| |
21.11% | 낙선 | |
5 | 정완립(鄭完立) | 3,096 | 5위 |
[[한국국민당(1981년)|]] |
3.3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1,893 |
투표율 65.92% |
투표 수 | 93,541 | ||
무효표 수 | 844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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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패배한것이 정치경력의 전부인 평민당 이찬구 후보가, 현역 5선 의원이자 장관까지 지낸 민정당 오세응 후보를 꺾었다. 당시는 분당신도시 개발 전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중원구 지역인 원도심권에 인구가 몰려있었고, 4개월 전 대선때 평민당 김대중 후보가 성남시에서 근소하게 앞섰지만, 오세응 의원의 중량감을 생각할때 이변으로 평가받았다.
이찬구 당선자는 전라도와 서울특별시를 제외한 지역의 유일한 평민당 소속 당선자였다.
2.5. 의정부시
의정부시 의정부시 일원[8]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홍우준(洪禹俊) | 26,414 | 2위 |
|
32.30% | 낙선 | |
2 | 홍사임(洪思姙) | 3,751 | 4위 |
[[통일민주당| |
4.58% | 낙선 | |
3 | 문희상(文喜相) | 22,492 | 3위 |
[[평화민주당| |
27.50% | 낙선 | |
4 | 김문원(金文元) | 29,103 | 1위 |
[[신민주공화당| |
35.59%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111,724 |
투표율 73.87% |
투표수 | 82,525 | ||
무효표수 | 765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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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대 의원을 역임하고 이 지역 교육기관인 경민학원 이사장이었던 민정당의 홍우준 후보, 역시 이 지역 유명 서점 숭문당을 운영하며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평민당의 문희상 후보, 이 지역에서 11대 의원을 지낸 공화당의 김문원 후보,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민주당의 홍사임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팽팽한 접전이 예상되었다.
선거 결과 김문원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재선의원에 당선되는 영광을 누린다. 몇 안되는 지역구 여성 후보인 홍사임 후보는 5%도 득표하지 못하며 최하위로 참패했다. 4명의 후보 중 지역기반이 가장 약했고, 당시만해도 여성 후보라 어려움이 많았다.
한편 이 선거에서 낙선한 문희상 후보는 다음 선거인 14대 총선에서 민자당 김문원 의원을 꺾고 당선, 이후 해당 지역구에서 5번 더 당선되며 국회의장 까지 오르게 된다. 김문원 의원은 낙선 이후 의정부시장으로 당선된다. 홍우준 전 의원의 정치기반은 아들인 홍문종 이사장이 물려받게 된다.
2.6. 안양시 갑
안양시 갑 안양1동, 안양2동, 안양3동, 안양4동, 안양5동, 안양6동, 석수1동, 석수2동, 박달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정숙(金貞淑) | 20,652 | 2위 |
|
22.95% | 낙선 | |
2 | 이인제(李仁濟) | 29,325 | 1위 |
[[통일민주당| |
32.59% | 당선 | |
3 | 이석용(李奭鎔) | 19,958 | 3위 |
[[평화민주당| |
22.18% | 낙선 | |
4 | 진성범(陳成範) | 6,430 | 5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7.14% | 낙선 | |
5 | 김재중(金在中) | 1,158 | 7위 |
[[민주한국당| |
1.28% | 낙선 | |
6 | 임정조(林正助) | 3,436 | 6위 |
[[한겨레민주당| |
3.81% | 낙선 | |
7 | 김채순(金彩淳) | 839 | 8위 |
|
0.93% | 낙선 | |
8 | 이택돈(李宅敦) | 8,179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9.0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2,835 |
투표율 68.30% |
투표 수 | 90,721 | ||
무효표 수 | 744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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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총선에서 신민당 후보로 당선된 이택돈 전 의원은, 김영삼, 김대중 등에 반감을 갖고 조폭을 동원해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을 일으켰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는 민주당과 평민당에 입당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참패했다. 이후 문민정부때 사법처리까지 되었다.
2.7. 안양시 을
안양시 을 비산1동, 비산2동, 호계1동, 호계2동, 호계3동, 관양동, 평촌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일주(金日柱) | 16,518 | 3위 |
|
18.93% | 낙선 | |
2 | 신하철(申河澈) | 21,754 | 1위 |
[[통일민주당| |
24.93% | 당선 | |
3 | 이석현(李錫玄) | 18,990 | 2위 |
[[평화민주당| |
21.76% | 낙선 | |
4 | 박제상(朴濟相) | 15,008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7.19% | 낙선 | |
5 | 안기석(安起奭) | 1,177 | 6위 |
|
1.34% | 낙선 | |
6 | 김정묵(金定默) | 12,728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4.58% | 낙선 | |
7 | 이광훈(李光薰) | 1,082 | 7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2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28,841 |
투표율 68.30% |
투표 수 | 88,030 | ||
무효표 수 | 773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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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4당의 후보가 모두 득표력이 있기에, 접전 승부가 펼쳐졌다. 민정당 김일주, 민주당 신하철, 공화당 박제상 후보는 탄탄한 지역기반을 갖춘 인물들이었고, 평민당 이석현 후보는 지역기반은 없지만 재야 출신으로 신선함이 있다고 평가받았다.
4파전끝에 민주당 신하철 후보가 지난 3번의 낙선 혹은 낙천을 겪으며 얻은 동정표 덕분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낙선한 4명의 주요 정당 후보 모두 훗날 국회의원에 최소 1번씩 당선된다. 이석현 평민당 후보는 6선 의원을 지내며 국회부의장 자리에까지 오른다.
2.8. 부천시 중구
부천시 중구 부천 중구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임무웅(林茂雄) | 38,785 | 1위 |
|
34.22% | 당선 | |
2 | 김길홍(金吉烘) | 20,942 | 3위 |
[[통일민주당| |
18.48% | 낙선 | |
3 | 안동선(安東善) | 37,002 | 2위 |
[[평화민주당| |
32.67% | 낙선 | |
4 | 김정운(金貞雲) | 16,659 | 4위 |
[[신민주공화당| |
14.6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68,237 |
투표율 68.00% |
투표수 | 114,405 | ||
무효표수 | 1,087 |
민정당 임무웅 후보와 평민당 안동선 후보가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였고, 민주당 김길홍 후보와 공화당 김정운 후보가 추격하는 형세였다. 평민당은 자당 소속 경기도내 유일한 현역의원이 출마한 선거구라 큰 기대를 걸었다.
선거 결과, 민정당 임무웅 후보가 막강한 재력과 야권의 표분열 덕분에 현역 의원인 안동선 후보를 근소하게 꺾고 당선되었다.
2.9. 부천시 남구
부천시 남구 부천 남구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형기(李亨起) | 24,767 | 3위 |
|
20.08% | 낙선 | |
2 | 최기선(崔箕善) | 30,616 | 1위 |
[[통일민주당| |
24.82% | 당선 | |
3 | 김정웅(金政雄) | 21,378 | 4위 |
[[평화민주당| |
17.33% | 낙선 | |
4 | 이경용(李慶容) | 8,907 | 5위 |
[[신민주공화당| |
7.22% | 낙선 | |
5 | 원혜영(元惠榮) | 6,839 | 6위 |
[[한겨레민주당| |
5.54% | 낙선 | |
6 | 한상운(韓相雲) | 565 | 7위 |
[[제3세대당| |
0.45% | 낙선 | |
7 | 박규식(朴圭植) | 30,264 | 2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4.53%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83,049 |
투표율 67.87% |
투표 수 | 124,234 | ||
무효표 수 | 898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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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4당, 군소정당, 유력 무소속 후보까지 난립하며 치열한 다자 대결이 벌어졌다. 상도동계로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외신담당 공보비서를 지낸 최기선 후보가 352표(0.3%) 차이로 당선된다.
민정당은, 현역 박규식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는데, 박규식 의원이 공천에 불복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바람에 민주당에게 지역구를 내줬다. 오히려 둘 다 낙선했으나 무소속 박규식 후보가 민정당 이형기 후보보다 많은 표를 얻으면서 공천이 잘못되었음만 입증하고 말았다.
부천에서 재선 시장과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원혜영 전 의원이 첫 출마한 선거이기도 하다. 원혜영의 아버지인 원경선 원장이 설립한 풀무원 농장이 부천에 있다. 원혜영은 야권통합에 실패한 김영삼, 김대중을 모두 비판하며 창당한 한겨레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원혜영 후보의 선거운동에 참여했던 지성수 목사가 본인과 원혜영, 최기선과의 일화를 딴지일보에 적었다. #
2.10. 광명시
광명시 광명시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윤항렬(尹恒烈) | 27,743 | 2위 |
|
25.61% | 낙선 | |
2 | 노병구(盧秉九) | 18,747 | 4위 |
[[통일민주당| |
17.30% | 낙선 | |
3 | 최정택(崔正澤) | 23,471 | 3위 |
[[평화민주당| |
21.66% | 낙선 | |
4 | 김병용(金炳龍) | 33,978 | 1위 |
[[신민주공화당| |
31.36% | 당선 | |
5 | 이기한(李琪漢) | 2,480 | 5위 |
[[한겨레민주당| |
2.28% | 낙선 | |
6 | 곽인수(郭寅洙) | 1,906 | 6위 |
[[한국국민당(1981년)|]] |
1.75%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56,737 |
투표율 69.71% |
투표 수 | 109,256 | ||
무효표 수 | 931 |
주요 4당 중에 당세가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은 김병용 후보가 깜짝 승리를 거두었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냈기에 기아차 소하공장 노동자의 표를 얻는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선거 전에는 당선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평가받았다.
이번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들은 이후의 정치인생도 꽃피지 못했다. 민정당 윤항렬 후보는 4년 뒤 통일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현역 의원이 된 김병용 후보를 꺾고 당선되지만, 임기 시작 후 1년도 안되어 암으로 별세한다. 민주당 노병구 후보는 이후 계속 공천에서 탈락하고 공기업 직책에 만족해야 했다. 평민당 최정택 후보도 계속 낙선을 겪다가 지병으로 2002년 별세했다.
2.11. 송탄시·평택시
송탄시·평택시 송탄시[9], 평택시 일원[10]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권달수(權達洙) | 28,480 | 1위 |
|
40.66% | 당선 | |
2 | 최동화(崔東和) | 13,337 | 3위 |
[[통일민주당| |
19.04% | 낙선 | |
3 | 조성진(趙成珍) | 10,967 | 4위 |
[[평화민주당| |
15.65% | 낙선 | |
4 | 유치송(柳致松) | 17,251 | 2위 |
[[민주한국당| |
24.63%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93,292 |
투표율 76.37% |
투표수 | 70,805 | ||
무효표수 | 770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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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한국당의 유치송 총재가 본인의 정치기반인 이 지역구에 당의 운명을 걸고 출마하였으나, 군소정당으로 전략한 민한당의 당세와 관제야당을 이끈 구 시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낙선했다. 선거 직후 민한당의 해산과 동시에 정계를 은퇴하게 된다.
2.12. 동두천시·양주군
동두천시·양주군 동두천시, 양주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덕호(李德浩) | 31,879 | 1위 |
|
45.22% | 당선 | |
2 | 김형광(金炯光) | 25,847 | 2위 |
[[통일민주당| |
36.66% | 낙선 | |
3 | 김국환(金國煥) | 6,112 | 4위 |
[[평화민주당| |
8.67% | 낙선 | |
4 | 정진영(鄭進永) | 6,649 | 3위 |
[[신민주공화당| |
9.43%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94,668 |
투표율 75.28% |
투표 수 | 71,267 | ||
무효표 수 | 780 |
민정당 이덕호 후보가 현역 의원인 민주당 김형광 후보를 8.6% 차이로 꺾고 당선되었다. 김의원의 낙선에는 평민당 김국환 후보와 공화당 정진영 후보가 표를 분산시킨게 큰 원인이었다.
2.13. 안산시·옹진군
안산시·옹진군 안산시, 옹진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장경우(張慶宇) | 35,161 | 1위 |
|
45.94% | 당선 | |
2 | 정진일(鄭鎭一) | 18,518 | 2위 |
[[통일민주당| |
24.19% | 낙선 | |
3 | 송진섭(宋振燮) | 16,865 | 3위 |
[[평화민주당| |
22.03% | 낙선 | |
4 | 이영복(李瑛腹) | 5,977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7.8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6,154 |
투표율 66.71% |
투표 수 | 77,489 | ||
무효표 수 | 968 |
당시 옹진군은 인천이 아닌 경기도 소속이었고, 따라서 직항 여객편이나 군청이 있는 인천 선거구가 아닌 안산시와 묶여 한 선거구를 이뤘다. 11대 국회에서 전국구 의원을 지낸 민정당 장경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2.14. 과천시· 시흥군
과천시·시흥군 과천시, 시흥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황철수(黃哲秀) | 48,354 | 1위 |
|
38.46% | 당선 | |
2 | 김상원(金祥源) | 42,548 | 2위 |
[[통일민주당| |
33.84% | 낙선 | |
3 | 강상섭(姜相燮) | 29,662 | 3위 |
[[평화민주당| |
23.59% | 낙선 | |
4 | 김병규(金炳奎) | 5,139 | 4위 |
|
4.0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98,174 |
투표율 64.15% |
투표 수 | 127,126 | ||
무효표 수 | 1,423 |
경기도 교육감을 지내다가 이번 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민정당 황철수 후보가 당선되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과천시에서는 민주당 김상원 후보가 가장 많은 득표를 하였으나 시흥군 군포읍(현 군포시), 의왕읍(현 의왕시) 지역에서는 민정당 황철수 후보와 민주당 김상원 후보가 거의 비슷하게 득표했다. 승패를 가를 것은 현 시흥시 지역이었다. 황철수 후보가 시흥군 소래읍, 수암면, 군자면에서 압승하면서 표를 벌려 6,000표차로 당선되었다.
2.15. 구리시
구리시 구리시 일원[11]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전용원(田瑢源) | 14,738 | 1위 |
|
34.18% | 당선 | |
2 | 조병봉(趙炳鳳) | 8,427 | 2위 |
[[통일민주당| |
19.54% | 낙선 | |
3 | 권운상(權雲相) | 7,427 | 3위 |
[[평화민주당| |
17.22% | 낙선 | |
4 | 손명렬(孫明烈) | 6,276 | 4위 |
[[신민주공화당| |
14.55% | 낙선 | |
5 | 김대근(金大根) | 2,458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5.70% | 낙선 | |
6 | 조정무(曺正茂) | 3,790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8.7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60,376 |
투표율 72.17% |
투표수 | 43,572 | ||
무효표수 | 456 |
기업인 출신인 민정당 전용원 후보가 당선되었다. 야권정당 표가 고르게 갈렸고, 야권 소속 정치인인 무소속 조정무 후보도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야권 표를 갈랐다.
2.16. 남양주군
남양주군 남양주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성호(李聖浩) | 30,592 | 1위 |
|
39.87% | 당선 | |
2 | 안종목(安淙睦) | 7,697 | 4위 |
[[통일민주당| |
10.03% | 낙선 | |
3 | 신동균(申東均) | 10,327 | 3위 |
[[평화민주당| |
13.45% | 낙선 | |
4 | 이진용(李珍鎔) | 24,447 | 2위 |
[[신민주공화당| |
31.86% | 낙선 | |
5 | 김성오(金聖吾) | 3,665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77% | 낙선 | |
|
|
- | 등록무효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 ||
계 | 선거인 수 | 110,014 |
투표율 70.49% |
투표 수 | 77,547 | ||
무효표 수 | 819 |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당시 남양주는 도시화가 덜 되어서 서울의 베드타운이라기보다 경기도의 농촌지역이라는 특성이 강했다. 농촌지역답게 여당인 민정당의 강세 지역이었다.
현역 전국구 의원인 민정당 이성호 후보가 당선되었다. 야당인 민주당과 평민당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오히려 구여권인 민주공화당 의원을 지낸 공화당 이진용 후보가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선전했다.
2.17. 여주군
여주군 여주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정동성(鄭東星) | 21,561 | 1위 |
|
45.60% | 당선 | |
2 | 이규택(李揆澤) | 19,934 | 2위 |
[[통일민주당| |
42.16% | 낙선 | |
3 | 조종오(趙鍾五) | 1,007 | 4위 |
[[평화민주당| |
2.12% | 낙선 | |
4 | 권혁준(權赫俊) | 4,776 | 3위 |
[[신민주공화당| |
10.1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62,273 |
투표율 76.89% |
투표 수 | 47,882 | ||
무효표 수 | 604 |
3선 현역 의원인 민정당 정동성 후보와 해직기자 출신인 민주당 이규택 후보 간 첫 맞대결이었다. 첫 대결에서는 농촌의 보수 표심과 조직력을 갖춘 정동성 후보가 승리하였다. 하지만 정동성 의원의 높은 인지도와,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김영삼 후보를 여주군에서 두배 이상의 격차로 제친것을 고려하면 이규택 후보가 엄청 선전한 것이었다.
2.18. 평택군
평택군 평택군 일원[12]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자헌(李慈憲) | 27,134 | 1위 |
|
48.15% | 당선 | |
2 | 장기천(張基天) | 11,928 | 3위 |
[[통일민주당| |
21.16% | 낙선 | |
3 | 장순식(張淳植) | 3,720 | 4위 |
[[평화민주당| |
6.60% | 낙선 | |
4 | 서화택(徐華澤) | 13,566 | 2위 |
[[민주한국당| |
24.0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74,655 |
투표율 76.43% |
투표 수 | 57,062 | ||
무효표 수 | 714 |
4선 중진 의원인 민정당 이자헌 후보가 무난하게 승리했다.
특이한 점은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민한당의 서화택 후보가 2등을 차지했다. 평택이 민주한국당 유치송 총재의 고향이라 민한당세가 어느정도 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서화택 후보는 안중읍에서 약국을 경영하며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이후 2번 더 출마하나 당선에는 끝내 실패한다.
2.19. 화성군
화성군 화성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지원(朴志遠) | 49,083 | 1위 |
|
45.90% | 당선 | |
2 | 차진모(車鎭謨) | 27,655 | 2위 |
[[통일민주당| |
25.86% | 낙선 | |
3 | 박형우(朴炯宇) | 13,126 | 3위 |
[[평화민주당| |
12.27% | 낙선 | |
4 | 이창기(李昌起) | 11,519 | 4위 |
[[신민주공화당| |
10.77% | 낙선 | |
5 | 김문병(金文炳) | 5,545 | 5위 |
[[한국국민당(1981년)|]] |
5.1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51,984 |
투표율 71.20% |
투표 수 | 108,208 | ||
무효표 수 | 1,280 |
1988년 당시의 화성군은 현 오산시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물론 1989년 오산읍이 오산시로 분리된 이후에도 화성군과 오산시는 한동안 같은 선거구에 속해 있었다. 오산시가 별도의 선거구를 구성한것은 2004년 제17대 총선이 처음이다.
당시 화성군은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고, 따라서 민정당 강세 지역이었다. 이변없이 민정당 박지원 후보가 승리했다.
2.20. 파주군
파주군 파주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용호(李龍鎬) | 33,953 | 2위 |
|
41.47% | 낙선 | |
2 | 김현수(金顯洙) | 5,634 | 4위 |
[[통일민주당| |
6.88% | 낙선 | |
3 | 윤승중(尹承重) | 5,908 | 3위 |
[[평화민주당| |
7.21% | 낙선 | |
4 | 최무룡(崔戊龍) | 34,219 | 1위 |
[[신민주공화당| |
41.80% | 당선 | |
5 | 박영석(朴英錫) | 2,145 | 5위 |
[include(틀:한겨레민주당)] | 2.6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07,565 |
투표율 76.89% |
투표수 | 82,707 | ||
무효표수 | 848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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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배우, 탤런트, 가수 출신의 공화당 최무룡 후보가 현역 의원이었던 민정당 이용호 후보를 근소한 표 차이로 꺾고 당선에 성공한다.
개표 초반만 하더라도 최 후보가 500~1천표 차이로 뒤쳐지고 있었으나 개표완료 30분을 앞둔 27일 오전 4시 30분쯤에 266표차이로 극적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2.21. 고양군
고양군 고양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국헌(李國憲) | 19,272 | 2위 |
|
20.41% | 낙선 | |
2 | 이근진(李根鎭) | 16,957 | 3위 |
[[통일민주당| |
17.96% | 낙선 | |
3 | 김진택(金鎭澤) | 8,814 | 4위 |
[[평화민주당| |
9.33% | 낙선 | |
4 | 이택석(李澤錫) | 47,928 | 1위 |
[[신민주공화당| |
50.77% | 당선 | |
5 | 황인형(黃仁亨) | 1,426 | 5위 |
|
1.5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1,723 |
투표율 72.30% |
투표 수 | 95,274 | ||
무효표 수 | 877 |
공화당 이택석 후보는 지난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 모두 한국국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3위로 낙선하면서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특히 12대 총선때는 고향인 고양군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파주군에서 민정당 이용호 후보와 민한당 이영준 후보에게 압도적인 표차로 밀리며 3위로 낙선했다.
지난 두 번의 낙선에 대한 고양군민의 동정심리가 발동한 덕분에, 이택석 후보는 4자구도임에도 과반을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 차이로 당선되었다. 농촌에서 당세가 가장 강한 민정당 후보도 4자구도에서는 과반을 거둔 선거구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엄청난 동정여론을 받은 셈이다.
2.22. 광주군
광주군 광주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정영훈(鄭泳薰) | 23,799 | 2위 |
|
34.47% | 낙선 | |
2 | 유기준(兪棋濬) | 38,300 | 1위 |
[[통일민주당| |
55.48% | 당선 | |
3 | 강광호(姜光虎) | 6,931 | 3위 |
[[평화민주당| |
10.0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01,729 |
투표율 68.69% |
투표 수 | 69,873 | ||
무효표 수 | 843 |
13대 대선 때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큰 표차로 승리한 지역이나, 총선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 민주당 유기준 후보가 관료 출신 정치신인인 민정당 정영훈 후보를 20% 이상의 압도적인 표차로 꺾고 당선되었다.
유기준 당선자는 중대선거구 시절에도 여러번 출마했으나, 매번 광주군에서 높은 지지를 얻고도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성남시의 낮은 지지도 때문에 패했다. 소선거구 출범 이후 첫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 여러 번 낙선으로 얻은 높은 인지도와 광주군민의 동정여론을 등에 업었기에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될 수 있었다.
2.23. 연천군·포천군
연천군·포천군 연천군, 포천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한동(李漢東) | 57,531 | 1위 |
|
64.51% | 당선 | |
2 | 홍찬기(洪贊基) | 23,865 | 2위 |
[[통일민주당| |
26.76% | 낙선 | |
3 | 김유근(金裕根) | 7,782 | 3위 |
[[평화민주당| |
8.7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2,657 |
투표율 80.22% |
투표 수 | 90,368 | ||
무효표 수 | 1,190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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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정당 이한동 의원은 5공 후반부 시절 민정당 사무총장, 원내총무등을 맡으며 경기 북부의 주요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포천 지역에도 본인의 정치적 중량감을 활용해 예산을 잘 끌어와 인기가 많았다. 중대선거구 시절 동반 당선된 공화당 김용채 의원도 이한동을 피해 노원구 을 선거구로 옮겼다.
따라서 총선 결과도 예상대로 이한동 후보가 압승했다.
2.24. 가평군· 양평군
가평군·양평군 가평군, 양평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영선(金永先) | 38,913 | 1위 |
|
53.01% | 당선 | |
2 | 정재인(鄭在寅) | 10,894 | 3위 |
[[통일민주당| |
14.84% | 낙선 | |
3 | 오치성(吳致成) | 23,590 | 2위 |
[[신민주공화당| |
32.1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93,617 |
투표율 78.97% |
투표 수 | 74,417 | ||
무효표 수 | 1,020 |
경기도에서도 가장 보수정당 지지율이 높은 가평군과, 양평군이 포함되어 있는 농촌 선거구다. 이변없이 육군 중장 출신 현역 의원인 민정당 김영선 후보가 20%가 넘는 득표율 차이로 승리했다.
김영선 의원의 군 선배이자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곳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오치성 전 의원도 정치규제 해금 이후 명예회복을 위해 출마했으나, 너무도 긴 정치 공백기와 저조한 당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김영선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2.25. 이천군
이천군 이천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영문(李榮文) | 27,022 | 1위 |
|
43.72% | 당선 | |
2 | 황규선(黃圭宣) | 18,497 | 2위 |
[[통일민주당| |
29.93% | 낙선 | |
3 | 구재춘(具載春) | 5,580 | 4위 |
[[평화민주당| |
9.02% | 낙선 | |
4 | 김정현(金正鉉) | 7,390 | 3위 |
[[신민주공화당| |
11.95% | 낙선 | |
5 | 이종원(李鍾遠) | 3,307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5.35%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83,048 |
투표율 75.17% |
투표수 | 62,430 | ||
무효표수 | 634 |
지역 명망가이자 정치 신인인 두 유력 후보가 맞붙었다. 민정당은 이천에서 학교 교장등을 역임한 교육자인 이영문 후보를 공천했고, 민주당은 지역에서 치과의사로 활동한 황규선 후보를 공천했다.
보수 지역인 이천군 특성상, 민정당 이영문 후보가 무난하게 승리했다.
2.26. 용인군
용인군 용인군 일원[13]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웅희(李雄熙) | 30,127 | 1위 |
|
42.22% | 당선 | |
2 | 조종익(趙鍾益) | 24,029 | 2위 |
[[통일민주당| |
33.67% | 낙선 | |
3 | 박창희(朴昌喜) | 17,206 | 3위 |
[[신민주공화당| |
24.1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96,778 |
투표율 74.69% |
투표 수 | 72,282 | ||
무효표 수 | 920 |
중대선거구 시절 2번 당선된 현역 의원인 민주당 조종익 후보에 맞서, 민정당은 MBC 사장까지 지낸 언론 거물인 이웅희 후보를 출마시켰다. 물론 MBC 사장을 역임하며 정권 홍보에 앞장선 인물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공화당은 장교 출신에다가 지역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며 사회활동도 활발히 한 지역 유지 박창희 후보를 공천했다.
이웅희 후보가 비록 땡전뉴스때문에 비판도 받았지만, 당시만해도 농촌 지역이었던 용인군의 보수성과 중앙 거물이라는 점 덕분에 당선되었다.
2.27. 안성군
안성군 안성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신호양(辛皓洋) | 7,850 | 3위 |
|
12.41% | 낙선 | |
2 | 정진환(鄭鎭桓) | 25,390 | 2위 |
[[통일민주당| |
40.14% | 낙선 | |
3 | 김흥수(金興洙) | 2,744 | 4위 |
[[신민주공화당| |
4.33% | 낙선 | |
4 | 이해구(李海龜) | 27,255 | 1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3.09%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80,426 |
투표율 79.52% |
투표 수 | 63,957 | ||
무효표 수 | 718 |
내무부 치안본부장직과 경기도지사를 역임한 이해구 후보는 노태우 정부의 5공 색깔 지우기 정책으로 민정당 공천에서 탈락했고,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 개인적 인물론을 바탕으로 국회의원 당선에 성공한 뒤 민정당으로 복귀했다.
한편 이 선거에서 2위로 낙선한 민주당의 정진환 후보는 10대 총선부터 계속 출마해 이름을 알렸고 안성군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중대선거구 특성상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평택 지역 후보에게 계속 밀렸다. 이번이 당선될 절호의 기회였지만, 안성이 배출한 대표적 거물 관료 중 하나인 이해구 후보에게 근소한 표 차이로 밀려버렸다. 이후 정진환 후보는 14대 총선에는 통일국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5번째로 또 다시 고배를 마셨고, 신민당 지구당 위원장직을 맡던 1994년,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2.28. 김포군·강화군
김포군·강화군 김포군, 강화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정해남(丁海男) | 49,061 | 1위 |
|
47.64% | 당선 | |
2 | 김선흥(金善興) | 8,213 | 3위 |
[[통일민주당| |
7.97% | 낙선 | |
3 | 이주완(李柱玩) | 4,948 | 4위 |
[[평화민주당| |
4.80% | 낙선 | |
4 | 김두섭(金斗燮) | 40,752 | 2위 |
[[신민주공화당| |
39.5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4,327 |
투표율 77.69% |
투표 수 | 104,356 | ||
무효표 수 | 1,382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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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에서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커리어를 쌓아온 정해남 후보와 지난 7번의 선거에 출마해서 전부 낙선한 7전 8기 김두섭 후보의 양자구도로 관심을 모았다.
투표 결과 김포에서는 김두섭 후보가 1위를 기록했으나 강화군에서 정해남 후보에 밀리면서 8번째로 고배를 마시며 아쉬운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러나 김두섭 후보는 4년뒤에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8전 9기의 도전 끝에 드디어 당선에 성공하며 국회입성 이라는 오랜 숙원을 푸는 데 성공했다.
[1]
수원시,
안양시,
광명시,
부천시,
의정부시
[2]
의정부시,
고양군,
파주군
[3]
안양시 갑·을,
부천시 남구,
광주군
[4]
성남시 을
[5]
수원시 갑·을, 부천시 중구, 광명시, 동두천시·양주군, 안산시·옹진군, 과천시·시흥군, 구리시
[6]
신흥1동, 신흥2동, 신흥3동, 태평1동, 태평2동, 태평3동, 수진1동, 수진2동, 단대1동, 단대4동, 은행2동, 복정동, 신촌동, 고등동, 시흥동
[7]
성남동, 중동, 단대2동, 단대3동, 은행1동, 상대원1동, 상대원2동, 상대원3동, 분당동, 이매동, 여수동, 판교동, 금곡동, 운중동
[8]
호원1동, 호원2동, 가능동, 흥선동, 녹양동, 의정부1동, 의정부2동, 신곡1동, 신곡2동, 송산1동, 송산2동, 송산3동, 장암동, 자금동
[9]
중앙동, 서정동, 동부동, 도원동, 지산동, 송북동, 신장1동, 신장2동
[10]
신평동, 서부동, 통복동, 비전1동, 비전2동, 세교동
[11]
수택1동, 수택2동, 수택3동, 교문1동, 교문2동, 갈매동, 동구동, 인창동
[12]
진위면, 청복면, 서탄면, 포승면, 현덕면, 고덕면, 오성면, 팽성읍, 안중면
[13]
용인읍, 기흥읍, 수지면, 구성면, 포곡면, 모현면, 이동면, 내사면, 남사면, 원삼면, 외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