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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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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탑( 塼 塔)은 벽돌을 쌓아 만들어진 탑을 말한다.인도와 중국에서 유래한 양식이며 벽돌을 만들 황토가 풍부하고 인력을 쉽게 동원할 수 있었던 나라인 만큼 인도와 중국에는 전탑이 매우 많다. 중국은 523년 지어진 숭악사(嵩岳寺) 15층 전탑(40m)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는 돌로 만든 석탑보다 드문 편이다. 한반도에는 신라 의상대사가 본격적으로 전파시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수도인 서라벌로 가지 않은 대신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등에서 자리를 잡았고 현존하는 전탑도 대개 이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분황사 모전석탑을 보면 그 이전에도 이미 양식 자체는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통일신라시대에도 기술이 약간 발전하나 전탑은 벽돌을 쌓아 만든 것이어서 내구도가 낮고 파손된 벽돌은 새 벽돌로 교체하는 식으로 보존 및 관리를 꾸준히 해줘야 하는데 여러 혼란기를 거치다보니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몇 기에 불과하다.
벽돌은 흙을 불에 구워 만드므로 불에 안 탄다는 점은 목탑보다 낫지만, 벽돌쌓기 특성상 어느 일부만 약해져도 급속도로 무너질 수 있으니 내구도는 오히려 목탑보다 못하다. 실제로 남아 있는 탑들은 마을 주민들이 무너지면 다시 쌓는 식으로 지켜져왔다고 하며, 그 과정에서 본래 형태에서의 변형이 이루어졌을 개연성 또한 충분히 존재한다. 가장 큰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도 중앙선 철길의 진동으로 피사의 사탑마냥 기울어져 있다.
또한 한국은 인도 불교문화를 받아들임으로서 공덕, 즉 노력을 쌓아 만드는 걸 중시한 경향과 벽돌 재료인 흙 대신에 좋은 돌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환경 특성상 전탑은 보기 힘들다. 그래서 가장 최근 것이 여주 신륵사 전탑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 그 이후로는 거의 안 만들어 졌다. 대신 분황사 전탑 같이 구하기 쉬운 재료인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서 흉내낸 모전석탑 양식이 또한 발달했다. 모전석탑(模塼石塔)이라는 낱말 자체가 전탑을 모방한(模塼) 석탑(石塔)이라는 뜻이다. 각종 역사 시험에서 모전석탑을 전탑과 비교하거나 끼워넣는 함정문제가 많이 출제된다. 모전석탑은 국내에서도 진짜 전탑보다 더 자주 지어진 양식.
한편 지금까지 현존하는 전탑과 무너진 전탑 유적 등은 대부분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북 북부에 있고 정작 신라 불교문화의 중심이었던 수도 경주는 전탑 유적이 별로 없다.[1] 때문에 안동과 그 주변 지역에서만 전탑이 유행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혹은 안동지방은 우수한 화강석이 많지 않아서 전탑을 대신 많이 세웠다는 가설도 있으며, 안동의 3개 전탑이 모두 낙동강을 남쪽으로 바라보는 강 연안에 만들어진 점을 보아 강가에서 흔한 양질인 점토와 모래를 구워 벽돌로 만들기 좋은 조건 덕분에 특이하게 전탑을 쌓았을 것이란 가설도 있다. 혹은 강의 남쪽이 풍수지리적으로 허하기 때문에 전탑을 세워 보강하려 했다는 설도 있고, 불교 특정 종파가 경북 북부에서 자리잡아 유독 유행했다는 설도 있다. 한편 석탑이지만 전탑 형식을 흉내낸 모전석탑도 주로 경북 북부 의성군, 영양군 등지에 많이 모여있어서 형식이 경북 북부에서 유행했다는 설이 신빙성을 얻고 있다.
순수 전탑은 안동에만 3개가 있고[2], 칠곡에 1개[3], 청도에 1개[4], 그리고 중부 권역인 경기도 여주에 1개[5]로 총 6개 밖에 없다. 이 외에 터만 남은 걸로 따지면 안동 금계동 다층전탑과 경기도 안양 안양사 전탑터를 비롯하여 여러 전탑터가 있기는 하다. 한국 학계에서는 한국사에서 한반도 중부 지역 이북으로는 전탑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 왔는데, 요령성의 선양시 북쪽으로 40㎞ 거리에 석불사(石佛寺)라는 절의 전탑이 고구려 전탑이라는 지적도 있고, 발해 지역인 지린성 장백조선족자치주에 있는 발해 전탑인 영광탑이나 함경북도 갑산 백탑동유전탑 등 한반도 북부에서 전탑을 아예 만들지 않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오래된 전탑은 태풍 사라로 인해 무너져버린 안동 금계동 폐전탑처럼 자연재해로 인해 무너져버리는 예도 있어 한국에서 현재 남은 전탑은 총 5개라고 한다. 또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관련 기록에 의거해도 21개소만이 알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전탑 자체가 굉장히 희귀한 양식이었던 듯. 때문에 권역 내에 전탑 혹은 전탑지가 12개나 있는 안동시는 전탑의 고장이라는 별명이 존재한다. 특히 안동은 관련 기록에서 전탑을 대대로 보수하였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데, 이는 지역의 풍수 관점에서 관리했기 때문이라 한다.
2. 한국의 전탑 목록
- 현존(총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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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통일신라,
국보 제16호)
: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전탑으로 안동댐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시멘트로 엉망진창으로 보수해 원형이 상당히 훼손됐으며 한때 탑 바로 옆으로 중앙선 철길이 지나가는 악조건에 있었으나[6] 현재는 철길이 이설돼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 -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통일신라,
보물 제56호)
: 구 안동역 옆에 있다.[7] 신세동 7층 전탑보다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나름 국가지정 문화재인데 경비원 한 명 없다. -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통일신라, 보물 제57호)
: 남안동IC 입구에 있다. 원래는 사과밭 한가운데에 있어 관람에 불편했는데 부지를 문화재청과 안동시가 사들여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 그 때문에 2026년 12월까지 관람이 불가능하다. 다른 전탑에 비해서도 균형이 잡히고 자태가 빼어나다. 주변에 절터로 추측할 수 있는 유물이 발굴되지 않아 평야에 탑만 지어 놓았다는 추측이 있다. -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통일신라, 보물 제189호)
: 두 번째로 큰 16m인 전탑으로, 신라에서 국가제사의 대상이었던 팔공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상륜부 등의 보존상태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고려 추정, 보물 제226호)
- 붕괴 후 잔존(총 2기)
- 완전소실(총 14기?) 간신히 전탑이었던 흔적만 남아있는 정도부터 무너진 돌무더기 정도 상태.
- 안동 임하사지 전탑
- 안동 장기동 옥산사지 전탑 - 월천 전탑?
- 안동 서후면 개목사 전탑
- 영주 무신탑(無信塔) - 공민왕 때 정습인이라는 사람이 탑을 헐어 객관을 보수하는데 썼다고 전해진다. 다시 쌓았다고 하는데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 청도 운문사 작압전(수리 전에는 전탑의 모습이 남아 있었음) - 지금은 사방을 감쌌던 돌로 만든 사천왕상만 남음.
- 경주 덕동 전탑
- 경주 인왕동사지 전탑
- 경주 삼랑사지 전탑
- 경주 모량리사지 전탑
- 경주 석장사지 전탑(경주 전탑 중 유일하게 문헌기록 존재)
- 울산 농소 중산리사지 전탑
- 창녕 전탑
- 안양 안양사지 7층 전탑 -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최영이 세웠는데 우왕이 향을 보냈고 천 명의 승려가 불사를 올렸다고 한다. 사방에 그림을 그려넣는 등 매우 크고 독특한 형태였을 것이다. 조선 초까지는 남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실록의 기록을 보면 그때도 이미 쇠락한 상태였던 것 같고 그 후 절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렸다.
- 함경북도 갑산 백탑동 전탑 -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탑. 압록강 바깥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장백현의 영광탑(발해)으로 보이나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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