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풍천 임씨[1] |
출생 | 1891년 9월 28일 |
경기도
용인현 수여면 김량장리 (現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153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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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71년 9월 13일 (향년 79세) |
상훈 | 대통령표창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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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91년 9월 28일 경기도 용인현 수여면 김량장리(現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153번지)에서 아버지 임성준(任性準, 1842. 1. 14 ~ ?)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1919년 3월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이웃 주민인 김경운(金敬云)과 함께 3.1 운동에 호응해 조선 독립의 의지를 드러내고자 마을 주민들을 포섭한 뒤 조선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계획했다. 이후 3월 28일 용인군 수여면 김량장리 주민 300여 명과 함께 용인군청 앞으로 가서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자고 권유했고, 미리 만들어 둔 태극기를 앞세우고 군중들과 함께 용인군청 앞으로 가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가 끝난 뒤 체포되었고, 1919년 5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 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71년 9월 13일 별세했다.
200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
목사공파(牧使公派) 26세 호(鎬)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