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5 01:15:44

일본표해록

1. 개요2. 상세3. 여담4. 해석본

1. 개요

19세기 조선 승려 풍계 헌정이 풍랑을 만나 일본 표류, 체제하면서 겪은 경험을 서술한 표해록. 분량은 짧지만 매우 세밀하게 기술되어 있어 사학계와 일본지역학계에서도 굉장히 소중한 자료로 평가 받는다.

2. 상세

능주(綾州)[1] 쌍봉사(雙峰寺)의 화원승(畵員僧)인 풍계 현정(楓溪賢正)은 해남 대둔사 천불전의 천불 조성을 담당했던 승려였다. 그는 경주에서 천불 제작에 쓸 과 자재를 구해 장진포(長津浦)에서 자재를 배에 싣고 해남으로 출항했으나 1817년 11월 27일, 일본 후쿠오카 인근 오시마(大島)에 동해상에서 큰 풍랑을 만나 일본까지 흘러가게 된 것.

오시마에서 나가사키, 그리고 대마도를 거쳐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는 동안 보고 들은 일을 세세히 기록했는데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상의 서술을 줄이고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만 기록하였다. 표해록 전체에서 헌정이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보이는 대목은 두어 군데에 지나지 않는다.[2]

딱딱한 역사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의외의 사실[3]도 알 수 있어서 여러 가지로 흥미롭다. 무엇보다 분량이 짧아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료지만 저자인 풍계 헌정의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생몰연도를 포함해 알려진 바가 없으며 알려진 저서도 이거 한권 뿐이다.

3. 여담

여담으로 이 기행문은 일본에서 승려 일행이 겪은 고난이나 차별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아니다. 내용을 보면 상당히 친절한 대우를 받았고 저자인 헌정도 대부분 친절한 사람들이었다고 기술한다. 당연한 것이 일본은 불교가 오랫동안 국교였던 시절이 있었고, 이후로도 신토와 공생하며 성장했기에 옆나라 사람이라도 승려이므로 잘 대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있던 시절이었다.

4. 해석본

일본표해록의 해석본이 출간되어 있는데 홍보용으로 써먹으려고 책 소개에 '대마도는 조선땅이었다!'라고 광고되어 있다. 하지만 막상 내용을 보면 "대마도 사람 중에는 조선말을 할 줄 알며 조선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냥 대마도인이었다."라고 언급할 뿐이다.[4]

[1] 화순군 능주면. [2] 그것도 금욕하는 승려로서는 당연히 불쾌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일본 특유의 성풍속에 관한 것이다. [3]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었는데도 양국 사이에는 해상 조난자에 대한 구호체계가 존재했다. 왜란 이후로 3백여 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라서 양국 간의 악감정이 많이 희석됐기도 했거니와, 정치적인 문제와 무관한 재난 상황에서는 외교적 상황과 무관하게 상호협력하는 것이 오랜 옛날부터 한중일 삼국 간의 불문율로 자리잡은 탓도 있다. 가령, 한일관계 이상으로 무력 분쟁이 잦았던 유럽에서도 해상 조난자나 침몰한 군함에서 생존을 위해 탈출한 해군 수병들을 구조해서 보호하는 체계는 확립되어있었고, 그 흔적으로 현대에도 국제법 상 바다에 빠진 적군을 공격하거나 죽이는 행위를 전범행위로 간주한다. [4] 표해록을 보면 대마도주에 대한 표현이 좋지는 않다. 대마도주가 표류민에게 지급할 구호식량을 빼돌린다던지, 숙적 영주를 모함해서 3대를 죽게 만든다던지. 비슷한 기록은 간양록에도 나온다. 대마도 항목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