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1 02:18:11

이스타지우 다스 라랑제이라스

파일:laranjeiras.jpg
플루미넨시 FC
이스타지우 마누에우 슈와르츠
(Estádio Manoel Schwartz)
<colbgcolor=#870a28> 위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라랑제이라스
(Laranjeiras, Rio de Janeiro, Brasil)
건축가 히폴리투 푸조우[1]
(Hypolito Pujol)
개장 1914년
보수 1919년
좌석 18,000석 (1919)→ 25,000석 (1922)→ 8,000석 (2016)
최다 관중 기록 25,718명[2]
소유권 플루미넨시 FC

1. 개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위치한 축구장. 라랑제이라스는 위치 때문에 붙은 이름이고 이스타지우 마누에우 슈와르츠[3]가 정식 명칭이다. 마누에우 슈와르츠는 2004년에 헌정되었고 그 이전에는 이스타지우 아우바루 샤베스(Estádio Alvaro Chavez)라 불리기도 했다.

현재 플루미넨시 1군 경기는 2014 브라질 월드컵 때 보수된 마라카낭에서 치러지며 라랑제이라스는 플루미넨시 산하 여자축구팀과 유스팀이 이용하고 있다.

2. 역사[4]

1904년 8월 14일에 브라질의 주들끼리 축구 시합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1905년부터 옥외 관람석이 세워졌다. 이것이 이스타지우 라랑제이라스의 첫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1914년 7월에는 이 구장에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엑서터 시티 FC가 경기를 치렀는데,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이 경기가 브라질 대표팀의 최초 A매치가 된다.[5]

1915년 7월 27일에는 파울루 코엘류 네투[6]가 작사한 플루미넨시의 첫 찬가가 발표되기도 했다.

브라질의 축구 역사에서도 잊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브라질에서 처음 열린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의 개최지가 이곳이었는데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 네쿠 등의 활약으로 브라질이 국제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브라질 축구의 성지이다.

1919년에는 대형 보수공사를 시작하였고, 축구 경기 외에도 콘서트와 오페라, 퍼레이드 등을 개최할 수 있는 노블 홀도 곁들였다. 1922년경에는 25,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제법 규모 있는 경기장이 되었고, 10월에 있었던 우루과이와의 시합에서는 처음으로 라디오 중계도 시작되었다. 1928년에는 인공 조명도 설치되는 등 브라질에서 여러 혁신적인 시험을 많이 한 구장이다.

그 외에도 1922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등 국제 대회도 개최되었으며, 플루미넨시의 홈 외에도 1930년대까지는 브라질 대표팀이 이 곳에서 경기를 치르기도 하였다.

3. 현재

2003년 이후로는 공식 경기를 열고 있지 않다. 하지만 플루미넨시 축구단의 본부가 이곳에 있고, 1919년에 지어진 노블 홀은 아직도 쓰이고 있다.
파일:640px-Fluminense_Headquarters.jpg
플루미넨시 본부의 스테인드 글라스
파일:Salon Nobre.jpg
노블 홀

2014년에는 브라질 대표팀의 100주년을 기념하여 엑스터 시티와 플루미넨시의 2군 팀이 경기를 갖기도 했다.

4. 국가대표 경기

4.1.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4.1.1. 1919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브라질

<rowcolor=#373a3c> 경기일자 팀 1 결과 팀 2 라운드 관중
1919년 5월 11일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svg
6:0 칠레
파일:칠레 국기.svg
조별 풀리그 20,000
1919년 5월 13일 아르헨티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2:3 우루과이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조별 풀리그 18,000
1919년 5월 17일 우루과이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2:0 칠레
파일:칠레 국기.svg
조별 풀리그 8,000
1919년 5월 18일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svg
3:1 아르헨티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조별 풀리그 22,000
1919년 5월 22일 아르헨티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4:1 칠레
파일:칠레 국기.svg
조별 풀리그 15,000
1919년 5월 26일 우루과이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2:2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svg
조별 풀리그 23,000
1919년 5월 29일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svg
1:0 우루과이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최종전 35,000

4.1.2. 1922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브라질

<rowcolor=#373a3c> 경기일자 팀 1 결과 팀 2 라운드 관중
1922년 9월 17일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svg
1:1 칠레
파일:칠레 국기.svg
조별 풀리그 30,000
1922년 9월 23일 칠레
파일:칠레 국기.svg
0:2 우루과이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조별 풀리그 12,000
1922년 9월 24일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svg
1:1 파라과이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조별 풀리그 25,000
1922년 9월 28일 아르헨티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4:0 칠레
파일:칠레 국기.svg
조별 풀리그 2,500
1922년 10월 1일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svg
0:0 우루과이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조별 풀리그 30,000
1922년 10월 5일 파라과이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3:0 칠레
파일:칠레 국기.svg
조별 풀리그 1,000
1922년 10월 8일 우루과이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1:0 아르헨티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조별 풀리그 14,000
1922년 10월 12일 우루과이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0:1 파라과이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조별 풀리그 3,000
1922년 10월 15일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svg
2:0 아르헨티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조별 풀리그 25,000
1922년 10월 18일 파라과이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0:2 아르헨티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조별 풀리그 8,000
1922년 10월 22일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svg
3:0 파라과이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최종전 20,000

5. 여담

  • 이 경기장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프레기뉴로 총 79골을 득점하였다.


[1]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 1919년의 개보수를 맡았다. [2] 1925년 6월 14일 플라멩구와의 경기에서 기록되었다. [3] 마누에우 슈와르츠는 1980년대 플루미넨시의 회장이었던 인물이다. [4] 출처 [5] FIFA가 인정하는 브라질의 첫 정식 A매치는 두 달 뒤의 아르헨티나전이다. [6] 브라질의 유명 작가이자 플루미넨시의 초기 레전드 프레기뉴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