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7 17:14:56

이병석(야구선수)

이병석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LG 트윈스 등번호 0번
결번 이병석
(1991~1997)
송구홍
(1998)
해태/ KIA 타이거즈 등번호 31번
박철웅
(1996~1997)
<colbgcolor=#09081c> 이병석
(1998~2002)
이현곤
(2003~2004)
LG 트윈스 등번호 57번
서승화
(2002)
이병석
(2003)
강창주
(2004~2006)
}}} ||
이병석
李秉錫
출생 1971년 5월 17일 ([age(1971-05-17)]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서울고
신체 187cm, 98kg[1]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1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 LG)
소속팀 LG 트윈스 (1991~1997)
해태- KIA 타이거즈 (1998~2002)
LG 트윈스 (2003)
지도자 연세대학교 야구부 코치 (2006)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20)
화순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21)
장안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23~)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후4. 플레이 스타일5. 연도별 성적6. 여담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KBO 리그 LG 트윈스 해태- KIA 타이거즈에서 활동했던 우투우타의 투수이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고등학교 시절엔 포수였다고 한다. 서울고 선배인 이상훈, 이용호의 공을 받으며 봉황대기 준우승도 했지만, 그 이후 이렇다할 성적이 없이 LG와 700만원에 계약하였다.

2.2. LG 트윈스 1기

서울고를 졸업한 이후 199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4번째 고졸연고 지명 선수로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그 후 백인천의 추천으로 투수로 전향하였다.

신문상에 야구선수로 등장하는 것은 1991년 8월 10일이 처음이며, 해당 경기는 OB와의 잠실전으로 3대2로 리드 하던 중 5회말에 구천서에게 역전 2점 홈런을 허용 후 패전을 기록한 것으로 보도되었다.(LG 3 : 4 OB)[2]

8월 19일에는 6회말에 올라온 김용수가 8회말 급격히 무너지자 구원등판 했지만, 삼성의 타선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패배했다. 패전투수는 김용수

8월 23일, 태평양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3회초 1대1 상황에서 김기범과 교체되었다. 당시 17명의 타자를 상대로 3피안타 5볼넷 1사구를 기록했다.

신인치고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 미국 교육리그에 갔으나, 어깨부상으로 1경기만을 소화했다.

1992년엔 이 여파로 등판하지 못했다. 12월 10일, LG와 1,000만원에 재계약을 체결하였다.

1993년 역시 발목 부상으로 단 4경기만 소화하였다.

1994년엔 2군에서 1년을 보내며 북부 ERA 2위(2.04)를 기록하였다. 시즌 후 다시 한번 미국 교육리그로 떠나 서클체인지업을 전수받았다.

그러다 1995년, 시범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1군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6월 13일 기준으로 패전처리조로 있으며 13경기 ERA 5.64를 기록했다.

7월 30일, 박철홍의 뒤를 이어 7회부터 쌍방울을 상대로 3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첫 세이브를 기록하였다. 시즌 18경기까지 등판하여 승, 패 모두 없었다.

9월 20일, 9월 14일 경기에서 부상을 입은 이상훈을 대신하여 선발 등판했다. 그러나 1회부터 기록되지 않은 실책으로 1/3이닝만 막고 순식간에 강판되었고, 팀은 1회에만 6점을 주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1996년 9월 23일, 신인 손혁의 뒤를 이어 3이닝 3실점으로 세이브를 기록하였다.

1997년 1월에 재계약을 했는데, 전년과 동일한 2,200만원으로 계약하였다. 그러나 2군을 전전하며 2군 북부리그에서 ERA 1위(2.33), 다승 5위(6승 2패 7세이브)를 기록하였지만, 1군에 올라오진 못했다. 12월 20일, LG와 2,500만원에 재계약하였다.

그러던중 12월 27일, 해태 LG와의 2대2 트레이드로 송구홍과 함께 해태 신인 김동호, 박철웅과 맞트레이드 되었다.

2.3. 해태- KIA 타이거즈

1998년 5월 7일 등판했으나, 6회초 신동주가 2구를 받아쳐 KBO리그 9000번째 홈런을 허용했다. 팀은 8대2로 패배했다.

6월 8일 선발 등판했으나, 3회까지는 3대0으로 리드하였으나 4회 급격히 흔들리며 마운드를 내려갔고, 이후 구원투수 강태원이 신동주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해 3대7로 역전당했다. 팀은 8대7로 승리했다.[3]

6월 12일 선발 등판했으나, 9회까지 1대1로 흘러가며 승리를 기록하지 못했다. 팀은 13회말에 실책으로 역전승.

6월 19일 선발 등판했으나, 5.1이닝 동안 3피안타만 허용함에도 타선의 침묵으로 패배하였다.

그러다 6월 30일, 현대전에서 무너진 오철민을 2회에 구원등판해 6회 쿨바에게 2점 홈런을 맞고 내려오기 전까지 4.2이닝 4피안타(1피홈런) 2실점(0자책) 3삼진으로 호투하였고, 임창용이 이후 잘 틀어막으며 7년만에 첫 승리를 달성하였다. 시즌 69경기 만의 기록이었다.

7월 20일에는 오철민을 구원하기 위해 1회 무사만루에 등판했으나, 부시에게 던진 134km 몸쪽 하이 패스트볼이 통타당해 115m 대형 만루홈런을 내주며 분위기를 내주고 팀은 패배하였다.

8월 12일 쌍방울전에선 초반에 박살나며 시즌 3패를 기록하였다.

8월 24일 DH1차전에 등판해 8회부터 OB를 잠재우며 시즌 1호 세이브를 기록하였다.

9월 10일 구원등판에서 1볼에서 던진 131km 패스트볼은 우즈가 받아쳐 135m 장외홈런을 만들어냈다.

2.4. LG 트윈스 2기

3. 은퇴 후

4. 플레이 스타일

투수로 전향 후 평균 130km/h 중반, 최대 145km/h의 패스트볼을 던지던 투수였으며, 94시즌 후에 미국에서 서클 체인지업을 연마해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구력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던 듯 하며, 자신의 인터뷰로도, 코치의 말로도 제구만 잡으면 좋을 것이라 발언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5. 연도별 성적

<rowcolor=#ffffff> 연도 출장 타자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1 LG 9 98 22⅓ 0 1 0 0 4.84 22 3 10 9 12 12 1.34
1992 1군 기록 없음
1993 4 20 4⅔ 0 0 0 0 1.93 6 0 2 4 1 1 1.71
1994 1군 기록 없음
1995 25 213 47⅔ 0 1 1 0 4.34 53 1 25 33 24 23 1.53
1996 12 91 21 0 1 1 0 4.29 21 2 6 2 15 10 1.19
1997 1군 기록 없음
연도 출징 타자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8 해태 38 387 94⅓ 2 4 2 0 4.58 93 18 21 64 52 48 1.19
1999 37 296 62⅔ 4 4 1 0 5.60 86 10 30 54 46 39 1.77
2000 29 230 52⅔ 4 2 4 0 3.93 51 5 24 37 25 23 1.31
연도 출장 타자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1 KIA 47 277 68⅓ 4 2 3 3 2.63 46 8 32 58 21 20 1.07
2002 9 28 7 1 0 0 0 3.86 5 2 3 5 4 3 1.14
<rowcolor=#ffffff> 연도 출장 타자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3 LG 25 297 66 3 6 0 0 5.18 76 9 36 29 40 38 1.62
KBO 통산
(10시즌)
235 1937 446⅔ 18 21 12 3 4.37 459 58 189 302 240 217 1.38

6. 여담

스포키(Sporki) 스탯티즈가 합작한 새로운 세이버매트릭스에서 2001 시즌, 다른 투수를 다 제치고 무려 시즌 WAR이 12.77이 찍혔다.[4] 이후 6.72로 수정되었다.

7. 관련 문서


[1] 1993,1995년 기사에서 확인됨 [2] 승리투수는 박철순, 세이브는 김상진. [3] 여담으로 이 경기는 김응용 감독의 통산 1000승이다. [4] 해당 수치는 전체 8위로, 선동열의 86시즌과 동일한 WAR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