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8:38

이방석(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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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1. 개요

정도전의 등장인물. 이성계의 8남이자 막내아들이다. 배역은 박준목.[1]

2. 작중 행적

14화에서 태어났고, 갓난아기로 잠깐 출연하였다. 26화에 아역으로 등장하였다. 이후 30화에서 이지란과 함께 투호놀이를 하는 장면으로도 등장.
41화에서 성장한 모습으로 재등장하며 배역이 박준목으로 변경되었다. 형 이방번보다 비중 있게 나오며 어린 나이에 4서3경을 배우며 매우 총명하게 표현되었다. 물론 나이에 비해서이고 정식 과거급제자인 이방원에 비할바는 아니다. 아들만큼은 아니지만 태종도 왕위에 오르고 나서 경연 중에 경연관들 말문을 막아 버린 적이 있을 정도로 학문수준이 상당했다.

42화에서 이방원의 반 협박에도 조리있게 대처하고 이를 정도전이 보고 호감을 가지는 모습을 보였으며[2]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 세자 자리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는 용의 눈물과도 명백히 다른 부분인데 용의 눈물에서의 이방석은 세자 자리에 심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고 형과의 다툼을 원치않았다. 하지만 정도전에서의 이방석은 연령으로 보나 공적으로 보나 자신보다 훨씬 위인 형들을 무시한 채, 처음부터 세자 자리는 당연히 자신의 것이 아니냐는 태도로 나온다.
44화에서는 이방원과 함께 《조선경국전》과 정도전의 사상에 대해서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정말 말 그대로 이방원의 속을 벅벅 긁어놓았다. 아역배우의 국어책 읽기가 심해서 그렇지 사실 논리나 말하는 것을 보면 이방원은 정말 이 토론에서 그대로 발렸다.[3] 나중에 이방원이 하륜에게도 '의안군이 나의 허를 찔렀다'라고 말했을 정도. 그리고 하륜 역시 '의안군은 총명함이 범상치가 않다'라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실록에서 나온대로 개초딩은 아닌 모양.[4] 다만 작중 설정과 별개로, 위에 언급한 국어책 읽기 및 마지막에 "삼봉을 믿으니까요"라는 대사 때문에 방석이 똑똑하다기보다는 이방원의 말한 것처럼 정도전에게 세뇌당한 것 같다.는 평도 나왔다. 이방원과의 썰전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는 것이 아닌 마치 정도전의 생각을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5][6]
47화에서는 어머니 강씨를 잃고 만다. 더불어 어떤 묘사나 설명도 없이 세자빈 심씨가 등장했다. 48화에서는 진법훈련을 위해 왕자, 각 도의 절제사들의 사병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그들의 지휘를 맡게 된다. 그러나 사병들이 조선의 군기가 아닌 자신들만의 군기를 들려고 하여 이를 시정하려고 하다, 이에 반발하는 이방원, 이방과와 충돌한다. 이방원이 사병들을 자신들의 목숨으로 비유하면서 너 같으면 자기 목숨을 뺏으려고 하는데 가만히 있겠니? 아니면 뺏으려 하는 자를 죽이겠니?라는 협박을 듣고 완전히 기가 죽어 울먹거리며 사병을 제어하려는 시도를 포기한다. 이방석을 짓누르는 데에 성공한 이방원은 진법훈련 자체를 무력화시키려 하는데, 그러나 곧이어 이성계가 와서 직접 진법훈련을 지휘하면서 이는 실패로 끝난다.[7] 49화에서는 이성계가 쓰러지자 아버지를 걱정하는 한편 자신은 왕이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며 정도전에게 불안감을 내비친다. 결국 50화에서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면서 정도전을 비롯한 자신의 지지세력이 몰살당하고, 자신마저 궁에서 끌려나와 이방원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은 상태로 칼을 맞아 죽는다. 이에 정도전의 장남인 정진이 “세자 마마!”라고 울부짖으며 그의 죽음을 슬퍼하자, 이방원은 누가 세자라는 것이냐며 이방석을 가리켜 정도전이 세운 허수아비일 뿐이라고 고인드립을 친다.[8] 또한 드라마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사후에는 이성계의 적자라는 사실마저 부정당하고, 서자로 격하당해 동복형인 이방번과 함께 왕실 족보에서도 제명당한다.

3. 기타

담당 배우 박준목의 연기에 대한 비판이 많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우왕 아역을 맡은 정윤석[9]을 제외한 아역 배우들은 연기력에서 좋은 평가를 못 받았다. 나이대에 맞는 어린아이 연기는 괜찮은 편이지만 일국의 세자로서 연기해야 하는 장면은 발성부터 시작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발연기다. 그래서 후자쪽이 주를 이루는 한양천도 시점까진 발연기의 향연이었으나 그 이후론 일국의 후계자가 아니라 어머니를 여의고 나이많은 형들에게 겁박 당하다 사망하는 불쌍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그려지는지라 괜찮아진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이방석은 아무런 공도 없이 그것도 막내로서 세자로 책봉된 탓에 정통성이 아주 취약하다.[10][11][12] 그래서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이 이를 명분으로 거사를 일으킨 것이었고, 대부분 이에 대해 수긍했던 분위기였던터라 계유정난과는 달리 정통성부분에서는 별 잡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정통성도 취약한 마당에 몸사리고 있어야 하는 판에 마치 세자자리가 제것인마냥 시건방을 떨어대니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저게 아주 죽고 싶어서 환장했다는 소리를 괜히 꺼내는 것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이 드라마에서는 정몽주가 크게 전작이라 볼 수 있는 용의 눈물보다 크게 그려지고, 표독스럽고 강한 면이 더 부각되어 정도전 이성계를 몰아넣고 공격하는 입장이 강한 상태에서 정도전과 이성계 둘 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아버지, 그리고 숙부 정도전에게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고 사람들에게도 악평은 다 들어가면서 조선 건국에 제일 큰 걸림돌이었던 정몽주를 제거하는 최고의 공을 세웠는데 아무리 자기 엄마가 중전이라고 해도 마치 세자 자리 따 놓은 것처럼 행동하니 이방원의 입장으로써는 속이 안 뒤집어질수가 없는 수준이다.[13]

42화에서 시청자들이 이방원에 감정이입하다보니 커뮤니티에서는 이방석이 불쌍하지도 않고 그냥 얄밉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방원은 단순히 세자 후보에서 탈락한 수준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대놓고 "네놈은 왕의 자격이 없다." 라고 폄하당하였고, 숙부 정도전은 이방원의 공적을 아예 지워버렸으며, 계모는 세자 자리에 이방석을 밀었다. 오히려 이방석이 얄미운 나머지 이방원이 이방석을 어찌 죽일까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거기다 아역배우의 국어책 읽기가 좀 심해서, 총명해 보이지가 않았다.

실록 속 세자 이방석은 공부도 게을리하고 민가의 가축을 함부로 쏘아 죽이는 등 폐나 끼치며 자기 마누라도 건사못하는 개초딩이다.[14] 성정이 거칠다는 이유로 세자 책봉에서 밀리고 1차 왕자의 난 때 반란이 일어났음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방번도 그렇고, 이들 형제는 권문세가 어머니를 두고 막내로 귀하게 자란 탓인지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물론 태조실록이 태종 때, 그것도 하륜의 주도로 편찬된 것을 감안했을 때 다소 과장된 면이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방석을 미화하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는데, 이방석이 드라마에서 갓 세자가 되고 총명한 모습을 보이는 시점은 1392년이고, 실록에서 이방석이 개초딩 행각을 보이는 건 1393년 이후이다. 이러한 이방석의 개초딩 행각은 드라마에서 이후에 나와도 늦지 않기는 했다. 같은 시간대를 다룬 용의 눈물에서도 모범생→개초딩으로 변화하는 걸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용의 눈물과는 달리 세자빈 유씨의 존재와 관련된 사건들이 언급도 되지 않고, 성적으로 타락하는 장면도 없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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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시대를 다룬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가공인물 선돌 역을 맡았다. [2] 빠른 전개 탓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억지 연출의 느낌이 강했다. 현명하다기보다는 무난했으며 전후 이방석의 태도를 보면 가식적으로도 보일 수 있는 발언이었는데 정도전이 감복을 받는 것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그래서 재상정치를 주장한 정도전이 이런 이방석을 "요놈 허수아비로 다룰만 하겠는데?"라고 만만하게 여겨 미소를 지은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3] 물론 아래의 설명에서 나오지만 이걸 제대로 된 논리라고 보기도 힘들다. 말끝마다 "삼봉대감은.."을 이야기하거나 거의 삼봉이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나열한다. [4] 이 장면이 문제가 되는 게 태종이 겨우 10살짜리에게 토론으로 진 것도 문제이지만, 정도전의 재상중심주의에 맞서는 이방원이 이 시점까지 그저 왕권은 강해야한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을 뿐이라는 걸 보여주는 부분이다. 즉, 이 시점까지 이방원은 미숙한 존재라는 것이다. 완결까지 6화 남았다. [5] 다른 해석도 있는데, 이방석은 얼핏 보면 논리적으로 보일 지 몰라도 결국 마지막, 중요한 문제를 삼봉을 믿으니까요하나로 매듭짓는다. 또한, 이방석은 이방원이 지적하는 헛점들을 수긍하지 않으며, 되려 덕망 하나로만 반박한다. 이방원이 발린 이유는 논리에서 진 것이 아니라, 삼봉을 내미는 강경한 태도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둘의 토론(?)을 보고 이방원이 발렸다기보다는 삼봉을 믿기만 하는 태도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판단하고 더 이상 주장하기를 포기했다고 보기도 한다. [6] 여담으로 덕망이 없어서 권신들이 파고드는 것 때문에 고려가 망했을지는 몰라도 조선에선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당당히 주장한다. 그러나 세조, 연산군, 그리고 그 이후 대의 웬만한 왕들을 생각하면 상당히 잘못된 발언이다. [7] 세자를 욕보인 것이다. 아무리 왕자라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다. [8] 또한 정진이 자신의 아버지를 어찌했냐고 묻자 이방원은 가문의 대를 이어야하니 살려주겠으나, 대신 네 아비를 잊고 살라는 폭언을 정진에게 던지며 이성계에게 찾아간다. [9] 비슷한 시간대를 다뤘던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방석을 연기했다. [10] 그럼에도 이방석이 위의 형들을 모두 제치고 세자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있긴 했다. 일단 그가 당시 경쟁할 다른 여성이 없는 신덕왕후의 아들이며 (신의왕후 한씨의 경우 이미 죽은 사람이어서 신덕왕후가 바로 왕실 여인 1인자의 자리를 장악할 수 있었다) 신덕왕후를 중전으로 볼 경우 적장자 이방번의 경우 공양왕의 조카사위라는 부분이 있어서 이방석보다는 상대적으로 외척 문제가 걸림돌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 반대로 이방석은 고려 왕가 쪽 인맥문제와는 자유로운 왕자였다. 여기에 당시 중전이자 유력가문인 신덕왕후 강씨, 그리고 정통성 있는 후계자로 자기 왕권을 강화시키려던 태조의 의중까지 합쳐졌다. [11] 반대로 이방원은 아버지 밑에서 충실히 행동한 개국공신이긴 했지만 이미 죽은 어머니 덕에 외척의 빽도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실권을 틀어쥔 정도전과 아버지이자 국왕 태조부터 이방석을 세자로 삼고자 했다. 정도전의 경우 그래도 이방원이 세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아주 막아놓지는 않았지만, 태조의 의중이 거의 결정적이었다. 물론 이 결정은 후세에서도 왜 이런 결정으로 귀결되었는지 말이 많이 있으며, 전반적으로 다른 왕자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위험한 가능성을 내포한 결정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정도전과 태조가 완전히 방심만 한 건 아니었지만 결국 그 예방조치들은 실패로 돌아갔다. [12] 이방석이 죽은 1차 왕자의 난 뿐만이 아니라, 나이 많은 형이나 나이 많은 가까운 친척들이 있는 상황에서 어린 왕이 즉위하거나 어린 세자가 책봉될 경우 왕위를 욕심낸 다른 나이 많은 왕족 형제나 친인척들로 인해 그 끝이 영 좋지 않은 사례는 역사적으로 더 있긴 하다. [13] 용의 눈물 때와는 이와는 반대로 억지로 떠밀려 세자에 등극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망나니 같은 모습도 더 강조되었고, 형에게 개기는 모습도 확실히 더 적게 보여주었다. 죽기 전에도 자기는 세자가 되기가 싫었다며 정말 처절하게 살려달라고 빌었다. [14] 물론 이것은 승자인 태종 측의 기록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15] 이런 저런 내용을 모두 다루자면 회차가 어마어마하게 길어질 것이다. 실제로 용의 눈물은 연장 방송까지 감안해도 전체 159화다. 2010년대에 이 정도 화수의 사극을 방영하려면 그 제작비가 얼마일지는 짐작도 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