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6 14:21:46

유수(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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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脩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기타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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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후한 말의 형주자사인 유표의 아들로 자는 계서(季緒).[1]

2. 생애

행적은 알 수 없고 조식 양수가 주고 받은 편지에서 부정적으로 언급되는데, 유수가 자신의 재주가 글을 지은 사람에 미치지 못함에도 남의 글을 매도하거나 단점을 들춰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전파와 노중련에 대해 이야기와 함께 유수는 말재주가 과거의 전파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또한 오늘날의 노중련은 구하기 어렵지 않다면서 유수의 입을 닫게 할 정도의 재주가 있는 사람은 오늘날에도 많다고 말했으며, 유수의 제멋대로의 행동에 탄식하지 않을 수 없겠냐고 했다.

유표의 아들들인 유기, 유종과는 달리 후계자 논의에서도 아예 거론되지 않았다. 유비가 지지했던 유기, 채씨 일족과 연줄이 있던 유종과는 달리 어떤 파벌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한 듯.

또한 태평어람에 의하면 유표 부자는 술을 매우 좋아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수도 아버지처럼 음주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출사해서 후에는 낙안태수에 올랐다.

3. 기타 창작물

화봉요원에서 등장하고 유표의 장례식에서 채모 조조에게 항복하는 것을 주장하자 형주의 신하들 중에서는 채모의 결정에 반발하는 자들도 있었는데, 이 때 조조군의 장수 하후돈과 함께 형주의 한수를 지키던 왕고(王故)가 나타났다.

하후돈이 한수에서 배를 타고 왔다는 것, 왕고는 한수가 범람해 방어선이 무너진 사실을 알리는데, 왕고가 하후돈이 형주로 발을 들이게 놔뒀다는 것에 분노한 형주의 한 신하가 하후은의 칼에 맞아 죽었고 유수는 유종과 함께 이 상황을 지켜보고 놀랬다.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에서는 조식의 빈객으로 의랑을 지내고 어중간한 문장 실력을 지녔으면서 걸핏하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비평하기 일쑤라서 연신 별로라고 말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1] 백중숙계의 원리에 따르면 유기의 자는 백서(伯緖), 유종의 자는 중서(仲緖)가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다만 사서에 언급된 건 아니기에 진위 여부는 불확실. 게다가 백중숙계를 따르더라도 나머지 글자를 통일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단정짓기는 근거가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