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5 00:07:29

우츠노미야 사토루

1. 개요2. 작화특징3. 호불호가 갈리는 그림체4. 참가 작품 리스트

1. 개요

# 담당 작화모음
# 작화보루

うつのみや理
1959년 4월 17일 생. ([age(1959-04-17)]세) 오사카 출신의 애니메이터. 스승은 키타지마 노부유키(北島信幸).

초등학교 때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장편 애니를 보고 예쁘고 굉장하구나 라고 생각했고 그게 쭉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장래 희망으로 일러스트레이터나 만화가 등을 생각했지만 어릴 적의 경험이 마음에 걸려서 애니메이션 쪽으로 가기로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에 견학을 갔는데 그곳에서 강사를 하고 있던 오오츠카 야스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동화맨으로 채용된다.[1] 그러나 1년 반 후 애니메이션은 연출 등에서 제약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만둘까 하고 퇴사. 이때 선배에게 "한 번이라도 원화를 하고 나서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하고 충고를 듣고 에이토바이텐(エイトバイテン)이라는 회사를 소개받아 거기서 원화맨으로 데뷔했다. 매드하우스, 스튜디오 주니오(スタジオジュニオ)를 거쳐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중.

이소 미츠오와 함께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의 묘사와 명암 묘사의 발전을 부른 천재적 애니메이터 중 한 명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캐릭터 디자인 데뷔작인 조상님 만만세는 일반 대중에겐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애니메이터들에겐 어떻게 저렇게 그릴 수 있냐는 충격으로 전해졌고 이를 조상님 쇼크라고 한다.

우츠노미야 사토루를 좋아하는 감독으로는 오시이 마모루, 카와모리 쇼지[2]가 있다. 함께 작품 활동을 자주 하는 건 아니지만 우메츠 야스오미와도 친분이 있다고 한다.

이노우에 토시유키는 신인 시절 우츠노미야의 작화를 보고 "그림체는 특이한데 움직임은 다른 차원에 간 천재."라고 평했으며 라이벌로 생각했다고 한다. 꽤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반대로 우츠노미야는 이노우에의 작화는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사실을 알게되어 서로 친해졌다고 한다.

2010년대부터는 고령의 나이를 이유로 그림을 손으로 그려내기 고되졌다며 CG를 연습하며 CG 쪽으로 이적할 준비를 했다. [3] 그런데 들어오는 의뢰가 전부 원화 의뢰라 곤혹스러운 것 같다. 그만큼 1990년대에 리얼리티함에 있어서 굴지의 실력을 보여주었다는 의미. 다만 결국 계속 그릴 수는 없었는지 이후로는 애니 업계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고, 2012년부터 CG 전문 회사 ILCA 소속으로 비디오 게임 CG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4] 회사 일에 집중해야 하고, 2d 애니메이션 작업은 회사의 허가를 받아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5] 그래서 그의 작화를 애니에서 볼 일은 거의 없어졌다. 우츠노미야가 ILCA로 간 뒤에 작화를 한 애니는 ILCA가 CG까지 담당한 작품이다. CG도 해주면서 우츠노미야가 작화도 덤으로 해준 셈이다.

2. 작화특징

배우가 '연기한다' 라고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배우의 연기는 실제 인간의 움직임에 비해 어딘가 딱딱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째서일까, 라고 한다면, 지금 이렇게 우리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움직임을 애니메이션으로 한다고 할 때, 그 때 우리들이 하고 있을 무의식의 액션은 깎여져 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평상시 생활하고 있을 때에 의식하지 않고 하고 있는 움직임, 그것이 깎여지면 깎여질수록 '연기한다'고 하는 일에 가까워져 버립니다. 요즘의 애니메이션은 그 무의식의 움직임을 너무 깎아버립니다. 그래서 리얼하지 않습니다. 그 무의식의 연기를 하자, 라고 하는 것이 지금의 나의 테마입니다.물론 그런 무의식의 움직임을 랜덤으로 넣으면 넣을수록, 그 컷이 가지는 테마가 희미해지기 때문에 밸런스를 맞춰야 합니다.
아니메스타일과의 인터뷰에서.
"그림을 움직인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 재능이 있었어. 처음부터 보고 있으면 아무 어려움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우선 보통이라면 '어떤 움직임으로 할까'라고 시행착오를 하거나, 1장 1장의 그림에 고생하거나, 혹은 그려 보고 나서, 타이밍이 다르다든가, 그려야 할 그림이 아니었거나 하면 그런 걸 알아차리지만 그런 일이 없어. 그리기 전에 거의 모든 걸 깨달은 것처럼 그려. 막힘없이 그린다는 거야. 게다가 그려진 움직임은 선명하기까지 하고. "이 그림은 잘못 그렸네"라고 지우고 고칠 것도 없어. 빨리 완성되냐 하면 그렇지도 않고, 나랑 같거나 오히려 느릴 정도. 그 이유는 그리고 나서 더 재미있는 것이 생각나면 그때까지 그린 것을 버려버려."
이노우에 토시유키

우츠노미야 사토루는 리얼리즘을 추구하였는데, 원화의 타이밍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조금 쓸데없어 보이는 동작을 삽입해서 움직임을 더 리얼하게 만들었다. 인간이 무의식 중에 하고있는 행동을 넣어 리얼하게 그린다.

기존엔 리얼한 움직임을 표현하려면 동화를 많이 써야 했는데 우츠노미야 방식은 동화를 많이 쓰지 않고도 부드럽고 리얼한 움직임이 나온다. 콤마의 타이밍을 움직임에 따라 조작해서 중간에 들어가는 작화 매수를 줄이기 때문이다. 카나다 요시노리가 동화를 적게 쓰고 속도감을 넣는 방식을 창시했다면 우츠노미야 사토루는 동화를 적게 쓰고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방법을 창시했다고 볼 수 있다. 간혹 우츠노미야 식 작화법이 들어간 애니를 본 사람들이 프레임이 좋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잘못 본 것이다. 우츠노미야 사토루는 프레임을 얼마 안 쓰고도 그런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 유명해진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볼 때 움직임이 끊어진다고 느끼는 건 사실 프레임( FPS)와 큰 관련이 없고 인간이 평소 보던 것과 다른 것을 볼 때 느끼는 이질감, 즉 불쾌한 골짜기 현상 때문인데 우츠노미야는 움직임 사이 사이를 전부 리얼한 움직임으로 채워넣어 위화감이 사라지고 보는 사람은 움직임이 부드럽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소 미츠오의 풀 3코마 작화도 비슷한 원리이다. 이소 미츠오와 우츠노미야의 방법론의 차이는 이소의 방법론은 환경을 리얼하게 묘사해서 작화에 다소 오류나 빠짐이 있어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하는 것이고, 우츠노미야는 정교하게 계산된 무의식적 움직임을 넣어 리얼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해 보면 우츠노미야의 작화법이 더 어렵다고 한다. 쿠츠나 켄이치는 "이소 미츠오의 작화는 따라할 수 있었지만 우츠노미야 사토루의 작화는 따라할 수 없었다." 라고 한다.

애니메이터 서바이벌 키트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지만 extreme 사이의 breakdown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체적 동작과 특징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 개념을 우츠노미야 사토루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도입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쓸데없는 나카와리(中割), 즉 동화를 줄인다는 발상도 하였다. 수 년동안 고민해서 이런 방법론을 익혔다고 하는데 결국은 이런 방식이 이소 미츠오, 이노우에 토시유키, 오키우라 히로유키, 니시오 테츠야, 마츠모토 노리오, 타나카 타츠유키, 타케우치 테츠야, 야마시타 신고, 쿠츠나 켄이치, 치바 타카히로, 치바 타카아키, 타카하시 유이치, 야마카도 이쿠오, 와카바야시 신, 이카라시 카이 등 90년대 이후의 수많은 애니메이터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어떤 물체든 입체적으로 선 처리를 해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입체적이나 공간감이 필요한 액션신을 자주 그렸다.

우츠노미야의 작화법은 1989년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으로 그 동안의 카나다 요시노리 식 작화를 이어 1990년대에는 유행이 되어 꾸준히 시도되었으나 2000년대엔 또다시 배척되기도 했다. [6] 그러나 WEB계 애니메이터를 중심으로 다시 꾸준히 시도되고 정착되면서 2010년대 이후론 다시 기본 작법이 되어 애니메이션 학원에서도 가르치고 있다. 원래 유행은 돌고 돈다.

그가 이름이 알려지게 된 건 아키라 이후에 참가한, 오시이 마모루 연출의 조상님 만만세이다. 여기서 그는 작화로 카메라 잔상을 재현하고 광원을 의식한 그림자 작화를 보여주었다. 그동안 리얼한 표현이라는 것은, 원화와 원화 사이에 동화를 많이 집어넣어서 실사영화와 같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추구하는 것이었는데, 이 작품은 나카와리(중간 삽임) 동화가 없이도 리얼한 움직임을 묘사해서 화제가 되었다. 실사적인 움직임을 중시하는 오시이가 선호하는 애니메이터이기도 해서 스카이 크롤러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카나다 요시노리 스타일로 신체를 과장하거나 디포르메 하는 경우는 많으나 중력, 바람, 관성, 조명에 대한 묘사를 매우 철저하게 한다. 이 때문에 우츠노미야가 작화 매수를 많이 써서 움직임을 그려내면 너무나 리얼해져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나 CG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우츠노미야 사토루 작화를 CG나 로토스코핑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츠노미야의 스타일을 배운 후배 애니메이터의 작화도 같은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다.

또한 망상대리인 8화로도 유명한데, 그의 특유의 그림체가 눈에 띄며 이노우에 토시유키, 오키우라 히로유키등이 참여하여 매우 뛰어난 작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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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에게는 본인만의 실제상황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체가 있는데 이는 망상대리인 8화에서 눈에 띈다. 가끔 그의 무수정 작화에서도 이런게 나온다. 얼굴조형부터 시작해서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리얼리티함을 보여주고 있다.

작화보루에 그가 참여한 컷들이 있다.

3. 호불호가 갈리는 그림체

한국 및 세계 애니 팬들에게 작붕이란 소리를 들었던 교향시편 에우레카 세븐 OP3
연출. 캐릭터와 메카닉 작화감독. 원화 우츠노미야 사토루.
원화 무라키 야스시, 니시오 테츠야, 아라이 코이치
타나카 마사요시, 쿠츠나 켄이치, 코마츠다 다이젠, 타카하시 유이치 등 15명.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얼굴은 뭉개진 경우가 많지만 옷자락, 바람 때문에 바뀌는 캐릭터의 낙하 궤도, 전체적인 구도 상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섬세함이 느껴진다. 분명 순간 작붕이란 느낌은 들지라도 전체적인 움직임을 보는게 중요하다. 잘보면 처음 장면의 얼굴도 단순하게 그려졌지만 일그러진 얼굴의 흐름까지 움직임을 넣어 보여주고 있다. [7][8]

움직임의 묘사에 대해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본인의 그림체는 썩 얼굴을 예쁘게 그리는 편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그림체에도 잘 맞춰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작화감독을 수정을 넣기도 뭐한 것이 잘못 수정해서 선이 어긋나면 우츠노미야의 섬세한 움직임 설계가 무너지면서 특유의 움직임이 훼손될 우려가 있어 작화감독도 우츠노미야의 작화는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다. 그래서 우츠노미야 스스로 작화감독을 하거나 무수정으로 통과한 경우에는 코바야시 오사무(1964)처럼 작붕 논란이 터진다.

대표적인 예로 교향시편 에우레카 세븐 3기 오프닝이 있으며 창성의 아쿠에리온 19화가 그렇다. 이 두 영상은 한국에선 그저 예산과 일정이 부족해 작붕이 초래된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애니메이터인 우츠노미야를 초빙해서 일부러 맡긴 것이다. 한국에선 원화가 예쁜 걸 중시해서 이렇게 움직임을 중시하기 위해서 그림을 뭉개 그리는 스타일의 애니메이터들에 대한 평가가 매우 박하다. 근래에도 테라포마스에서 그가 담당한 장면이 많이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선 또 작붕 논란이 터졌다.

우츠노미야의 원화는 작화감독들은 감히 손을 대지 못한다며 크게 수정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지만, 실제로 방영되면 시청자들에게는 작붕 취급을 받는 일이 대다수였다. 이런 인터넷 여론 때문에, 예전의 우츠노미야 사토루는 풀이 많이 죽어있었던 듯 하다. 일전엔 안녕 절망선생의 원화 의뢰를 받았던 적이 있고, 신보 아키유키가 마음껏 그려달라고 이야기도 했지만 원작이 인기 만화였다는 사실을 듣고 하차해버렸던 일도 있다고.

이런 문제로 언제부터인가 우츠노미야 사토루가 작화감독을 맡는 경우는 많이 줄었고 얼굴 부분은 대부분 작화감독의 수정을 거친다. 하지만 이러면 우츠노미야 사토루의 작업 속도가 떨어지는데다 특유의 느낌이 안 나서 콘 사토시 오시이 마모루 같이 우츠노미야 팬인 감독들은 일부러 우츠노미야의 작화를 그대로 내보내기도 한다. 카와모리 쇼지 창성의 아쿠에리온 19화에서 "세상이 이상해졌다." 라는 설정을 적용해서 우츠노미야 사토루의 작화를 그대로 내보내기도 했다.

4. 참가 작품 리스트

일본 작화위키 참조


[1] 텔레콤에 견학을 갔을 때는 이미 사원 모집을 마감한 뒤였다고 한다. 주변에서 "왜 이맘때에 온거야?"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오오츠카도 쓴웃음을 지으며 채용했다고 한다. [2] 이때문인지 창성의 아쿠에리온 19화에서는 우츠노미야 사토루가 작화를 맡았다. [3] 이미 2000년대 초반 작품인 이노센스 때 부터 3d공간에 작화를 올리기 위해 자신이 대강 참조모델의 위치를 잡는다던지 하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 [4] 출처. 트윗에서 회사 표시 イルカ로 카타가나로 표기됨. [5] 게임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채용되면 겸업 금지 조항이 있다. [6] 2000년대 애니메이션 팬들은 유튜브 같은 것도 없던 시절이라 애니메이션을 캡처해서 보고 홍보하는 문화가 있어서 움직임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다. [7] 위 영상이 작붕이라면 이타노 서커스가 영상에 나오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작붕이란 시간과 예산 중 어느 하나라도 삐끗하면 우후죽순 터져나오는 사고인데 이타노 서커스까지 나올 정도면 시간과 예산은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굴지의 애니메이터들이 다수 작업에 참여하였으므로 더더욱 작붕의 신빙성은 떨어진다. [8] 매컷 하나하나에 선과 색을 많이 넣고 고 퀄리티로 그리게 되면 애니메이션의 제작비용은 더 오르고 시간은 더 부족하고 움직임은 더 딱딱해져서 품질과 동세가 줄어드는 역효과가 생긴다. 그래서 극소수의 애니메이션을 제외하면 보통 한쪽은 포기하는데 우츠노미야는 움직임을 살리는 쪽을 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