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4 21:57:23

오키우라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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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모습 젊을 때의 모습


1. 개요2. 특징
2.1. 작화
3. 작품
3.1. 감독작3.2. 대표작
4. 작화, 연출 샘플

1. 개요

沖浦啓之 (おきうら ひろゆき)

일본의 애니메이터, 애니메이션 감독. 1966년 10월 13일 생. ([age(1966-10-13)]세) 오사카 부 카타노 시 출신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졌으며,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전설거신 이데온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애니메이터를 직업으로 삼기로 한다. [1]중학생 때 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을 시도했으며 중학교 졸업 후 2개월만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전설거신 이데온의 작화를 담당한 '애니메 알'이라는 애니메이션 회사에 동화맨으로 취직해 타니구치 모리야스에게 애니메이션 기술을 사사한다. 처음엔 타니구치가 숙제만 던져주고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서 불만을 가졌지만 그가 시키는 과제를 계속하니 작화 실력이 크게 늘어서 감탄했다고 한다. # 천재적인 실력으로 2년후 원화를 맡게되며 18세에 작화감독 데뷔. 이때는 주로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활약하였으며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블랙 매직 M-66, 성총사 비스마르크, 푸른유성 SPT 레이즈너가 있다. 당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10대의 천재가 있다." 라는 명성이 돌았으며 오토모 카츠히로, 니시쿠보 미즈호가 그를 지명해서 캐스팅하기도 했다.

Production I.G 이시카와 미츠히사 프로듀서는 블랙 매직 M-66을 보고 "정말 천재다." 라고 놀랐으며 "저걸 한 게 18세라고?" 라는 사실에 두 번 놀라다고 한다. 이 애니메이터를 절대 놓치기 싫어서 나카무라 타카시를 시켜서 붉은 광탄 질리온에 캐스팅했으며 최고급 대우를 약속하고 붙잡았다고 한다.

AKIRA에서 원화를 한 후에 프리로 다양한 작품에 원화가로 참가하게 되었다. 이후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 우츠노미야 사토루를 만나 현실 사물처럼 부드럽게 움직이게 보이게 연출하는 리얼계 작화법, 연출법에 매료되어 리얼계 애니메이터로 전직하게 된다. 주로 Production I.G의 작품을 맡았는데 정작 I.G 소속은 아니고 스튜디오 카라 소속이다.

그가 원화를 맡은 파트 중 유명한 장면으로는 공각기동대 극장판의 쿠사나기가 조립되는 장면,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 천국의 문의 인트로가 있다. 감독을 맡았던 인랑은 오키우라 히로유키의 이름에 걸맞게 매우 정교한 영상을 보여주었으며 오키우라 혼자 그린 수백쪽의 콘티의 높은 완성도로도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부인은 성우 무토 스미. serial experiments lain 요모다 치사 별의 목소리의 나가미네 미카코로 유명하다. 인랑을 통해 친해졌다고 한다.

인랑의 제작이 끝나고 부산 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해당 작품을 공개하며 오시이 마모루와 함께 부산에서 관객들과의 대화와 사인회 등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곤 사토시와 친구였다고 한다.

2. 특징

2.1. 작화

우츠노미야 사토루계로 분류될 수 있는 오키우라 히로유키는 작화에서 사실성을 추구한다. 다른 리얼계 애니메이터인 이소 미츠오, 이노우에 토시유키와는 지향성이 다른데 이 둘과는 달리 매우 극단적인 사실성을 추구하며 투시와 데셍이 극도로 정확하다. 그의 사실적인 작화는 마치 3d렌더링이나 로토스코핑을 한 게 아닌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또한 사실적인 이펙트작화와 감정표현, 뉘앙스표현에도 능하다. 이런 부분은 비단 원화 뿐 아니라 콘티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실제로 그가 작업한 콘티를 보면 잘 정돈된 원화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그 정밀함이 혀를 내두르는 수준이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고 초창기에는 매우 빨리 그리는 평범한 만화체 스타일이었으나 점점 느리고 세세하게 사실적으로 그리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작화보루에도 참여작들이 있다.

리얼한 작화를 구사하지만 미술이나 회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으며 여러 애니메이터의 기술과 영향을 흡수해 현재에 이르렀다. 영향을 받은 인물로는 카나다 요시노리, 나카무라 타카시[2], 이나노 요시노부, 카네모리 요시노리, 유키 노부테루, 야마우치 노리야스가 있다. 그래서 초기 작화는 리얼계가 아닌 일반 애니메이션에 가까웠다. 그러다 AKIRA 때 옆자리였던 에무라 토요아키(江村豊秋)와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때 만난 오시이 마모루, 조상님 만만세를 만든 우츠노미야 사토루를 통해 리얼계 작화 쪽으로 변화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키우라 히로유키의 특기는 작화 기술 중 최고 난이도라는 배경동화이다. 움직이는 피사체가 아니라 배경까지 같이 그려서 움직이게 하는 고난도 기술인데 오키우라는 이걸 별 연습도 없이 10대 때 바로 했다고 한다. [3] 오키우라가 애니메이터로 참여한 작품을 보면 이 배경 동화를 상당히 자주 볼 수 있다. CG 기술자 키후네 토쿠미츠는 오키우라를 두고 "뇌에 캐드가 들어있어 그림이 3D로 돌아가서 그걸 꺼내서 쓰는 사람' 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평론가 오구로 유이치로는 오키우라 히로유키, 야마우치 노리야스, 히라마츠 타다시를 일본에서 다리를 가장 잘 그리는 3대 애니메이터라고 한다. 오키우라 말로는 야마우치 노리야스를 존경해서 다리 작화를 연구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겨본 적이 없다고 한다. #

3. 작품

3.1. 감독작

<rowcolor=#fff> 년도 제목 감독 각본 콘티 비고
1999 인랑 [4]
2012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5]
장편은 단 2 작품을 감독했으나 2 작품 모두 작화와 연출에서 상당한 평을 받으며 성공했다. 다만 완벽 주의라 작품 하나 내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작업 방식은 오토모 카츠히로처럼 철저하게 다 하는 방식으로 대고 그려도 될 정도로 정교한 콘티 레이아웃을 애니메이터에게 주고 나중에 올라온 원화도 자신이 직접 다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정교한 영상을 만든다. 이런 깐깐한 체크 방식은 오토모 카츠히로와 오시이 마모루의 영향이다. 이노우에 토시유키말로는 오시이가 처음 이런 방식을 시켰을 때 오키우라는 너무하다며 화를 냈는데 나중에 이노우에가 오키우라 감독 작품 작화를 하러가니 오시이보다 더 독한 완벽주의자가 되어있더라고 한다.

오키우라 히로유키의 작화 특성은 그가 감독을 맡은 작품 특성에도 아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의 작품은 매우 사실적인 작화, 배경, 캐릭터디자인을 보여준다. 오키우라 히로유키는 사실성에 대한 강한 고집으로 다른 애니메이터들의 원화를 사실상 새로 만드는 수준으로 수정하기도 하는데, 그의 작품에서 엄청난 고퀄리티가 유지되는 대신에 작업 속도가 매우 느려진다. 그가 너무 극단적인 리얼리티를 요구하기 때문에 배경, 미술, 작화 등 모든 스태프들이 혀를 내두르며 그 이노우에 토시유키조차도 꽤나 고생했다고 한다.

오시이 마모루가 각본을 맡았던 인랑은 매우 어둡고 난해했지만 사실 그는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같은 유쾌한 작품을 지향한다고 한다.

모모와 요괴들의 의외의 성공에 힘입어 현재는 애니메이터보다는 감독 및 기획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다.

안도 마사시에 따르면 오키우라의 작화 요구치가 워낙 높은 것이 업계에 소문이 나서 같이 일하려고 하는 애니메이터가 매우 적어서 문제라고 한다.

3.2. 대표작

굵은 글씨는 참여 비중이 높거나 명장면이 있는 경우.

4. 작화, 연출 샘플

피사체와 배경을 입체로 파악하고 그려서 자유롭게 회전하고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작화 모음 (1980 ~ 1990년대 위주)
작화 모음 (1990년대 ~ 2010년대 위주)
인랑
감독, 콘티 오키우라 히로유키 / 연출 카미야마 켄지
작화감독 니시오 테츠야 / 부 작화감독 이노우에 토시유키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감독, 콘티 오키우라 히로유키 / 연출 쿠스미 나오코
작화감독 안도 마사시 / 부 작화감독 이노우에 토시유키


[1] 하루루 아지바의 팬으로 셀화를 수집하기도 했다. [2] 나카무라 타카시도 오키우라가 대단해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바빠서 못 부를 것 같아 걱정했다고 한다. 그때 나카무라 타카시가 자기 작업물을 보여주겠다고 하니 바로 달려와서 붉은 광탄 질리온을 했다고 한다. [3] 2010년대에는 WEB계 애니메이터가 자주 쓰는 작화법이지만 이들은 이걸 디지털 프로그램으로 참고선을 치고 하거나, CG 모델을 참고용으로 대고 그려서 할 때가 많다. 오키우라가 이걸 할 때는 그런 보조 하나도 없이 애니메이터의 천부적인 공간감각과 기술로 해야하던 시대였다. [4] 캐릭터 디자인, 레이아웃, 마지막 장면 원화 [5] 원안, 캐릭터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