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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기(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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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頎
생몰년도 미상[1]

[clearfix]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 무장이자 왕기(王基)와는 동명이인[2]으로 청주 동래군 사람이다. 는 공여(孔璵) 또는 공석(孔碩).

2. 정사 삼국지

238년, 공손연이 사망하자 현도 태수가 되었다.

242년, 관구검과 함께 고구려를 정벌하였다가( 고구려-위 전쟁) 비류수에서 동천왕에게 격파되었으며, 동부여에 찾아가 군량을 제공받아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지형이 험하여 실패했다.

244년 10월, 관구검과 함께 고구려에게 반격하여 환도성을 함락하면서 귀환했다.

삼국사기》에서 10월에 관구검이 환도성을 쳐서 무찌르고 장군 왕기를 보내어 임금을 추격케 했다는 부분 때문에 고구려의 충신 밀우의 활약과 유유의 자살 공격으로 246년 죽임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 삼국사기》 밀우, 유유 열전에서는 죽은 장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그냥 ' 위나라 장수(魏將)'라고 나오며, 정사 삼국지에서는 왕기가 현도군 태수로 고구려와의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행적이 보이는 것을 봐서는 왕기 본인이 부활 아니라 왕기군의 선봉장이 죽은 것으로 보인다.

247년에는 대방 태수로 지내면서 야마타이국 히미코가 쿠나국과 불화하자 화해할 것을 권유했으며, 이후 천수 태수로 임지를 옮겨 재직하다 263년, 촉한 정벌 등애 휘하에서 종군해 견홍과 함께 면죽관을 함락시키는 등의 기록이 나온다.

다만 관구검의 고구려 공격에 대한 기록이 기록마다 연도가 달라 심히 애매모호하게 꼬여 있어 선후관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왕기가 왜국과 교섭을 한게 유유에게 피습당한 이전의 일일 가능성도 열려 있고 왕기가 워낙 기록이 빈약한 인물이라 고구려 공격때 등장한 왕기와 촉한 공략때 나온 왕기가 동일인물인지도 불분명하다.

3. 삼국지연의

등애의 측근급으로 격상되었으며, 또한 강유와 무려 일기토씬이 나오고 제갈첨을 격파하는 모습 등 소소하게 삼국지연의의 수혜자가 되었다. 견홍과는 세트로 묶여서 발릴때도 함께 발리며 승리할 때도 함께 승리한다.

4. 미디어 믹스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kongming.net/261-Wang-Xin.jpg
삼국지 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038.jpg
삼국지 13, 14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동명이인인 왕기 백여보다 능력치가 전반적으로 낮다. 하지만 동명이인 왕기 백여의 능력치가 높은 것이지, 이쪽도 못 써먹을 정도는 아니다. 삼국지 12 편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7/무력 71/지력 61/정치력 74. 병법으로는 분전, 기사, 조영을 보유하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0/무력 66/지력 63/정치력 76/매력 73에 특기는 농업, 기술, 진정, 유인, 기합. 총 5개.

삼국지 11의 특기는 답파로, 이 때문에 이 문서의 왕기는 답파 왕기로 불린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69/67/61/70. 특기는 농업 2, 순찰 1. 왕기 백여와 마찬가지로 전수특기도 당연히 농업이고 전법은 창방약화.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9, 무력 67, 지력 61, 정치 70, 매력 68이며 개성은 장구, PK에서는 향도 개성이 추가되었고 주의는 할거, 정책은 수군육성 Lv 3, 진형은 봉시, 충차, 전법은 급습, 매성, 강습, 친애무장과 혐오무장은 모두 없다.

4.2. 삼국전투기

당연히 왕기 백여와는 동명이인. 이쪽은 킹덤 부저로 등장한다.[3] 아무래도 옛 상관 관구검이 방난으로 나온 것에 대한 영향일 듯. 비류 전투 (5)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비류 전투 편에서 관구검의 부장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으며, 고구려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뒤 관구검의 명으로 추격대를 끌고 동천왕을 추격하다가 유유에게 암살을 당한다. 그러나 간신히 죽음은 면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실제 정사에서도 왕기가 이때 죽지 않고 나중에 다시 등장하기 때문에 《 삼국사기》의 기록과 충돌하지 않도록 적당히 끼워 맞춘 것으로 추정된다.[4]

검각 전투 편에서 재등장. 등애 휘하로 정벌에 참여했다. 등애의 명으로 강유를 몰아붙이기도 했다. 촉이 음평을 포기하고 검각에 집결한 뒤에는 등애에게 혹시 모를 뒤에서의 기습을 대비해 음평에 남으라는 명을 받으면서 면죽관 공격에 참여하지는 않고 그대로 음평에 남게되는 것으로 묘사됐으며, 결국 다른 장수들과 달리 그대로 공기화됐다.

여담이지만 촉 멸망에 기여했던 등애, 종회, 위관, 호열, 견홍, 양흔, 등충, 사찬 모두 이후 말년에 전란에 휘말리거나,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이 그려져 일부는 댓글로 반 농담식으로 유비(혹은 강유), 촉한의 저주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들 중 유일히 죽는 씬이 없다.


[1] 위키피디아에는 210~268로 나와 있지만 그렇게 써 놓은 근거는 알 수 없다. [2] 거기다 고향도 군 단위까지 같다. [3] 부저는 애니메이션에서 밝은 갈색머리로 나오고 만화책에서도 밝은 머리색으로 묘사되지만 삼국전투기의 왕기(공석)는 그냥 흑발로 등장한다. [4] 사실 이 때 유유가 죽인 건 왕기가 아니라 왕기의 부장이라는 설이 정설인데 본작에서는 왕기 본인을 암살한 것처럼 묘사하다 보니 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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