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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어
어떤 일이 끝났음을 이르는 말.접미사인 -하다가 붙으면 타동사로 쓰인다. 다만 과거에는 자동사로도 쓰인 흔적이 있다. 민법 한글 마춤법 통일안[1][2]
2. 중국의 지역
宛 城고대 중국의 지역. 완( 宛)이라고도 한다. 현재 허난성(河南省) 난양시(남양, 南陽市)를 말하며, 오늘날에도 난양 시의 시내 지역에는 완청구가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주로 완, 또는 완성이라고 나오고, 가끔씩 남양이라고도 나오는데 남양은 군, 완은 현으로 다르지만 완이 남양군의 치소(태수의 소재지)이기 때문에 남양군 전체 대신 그 중심지인 완으로 일컫기도 한다.[3] 아래 내용은 남양군과 완현에 대한 말이 섞여서 서술되어 있다. 사실 후한 시절 남양군은 완현 외에도 속한 현, 읍, 후국이 서른일곱이나 되는 크고 아름다운 군으로 후한 군 중 인구수가 가장 많은 곳이다. 사실 남양군은 후한의 창건자 광무제 유수의 고향이기도 해서 후한 당시에 우대를 받았던 점도 있었다.
2.1. 역사
역사적으로 매우 오래된 도시이고, 중국 역사상 자주 나온다. 현재의 지리로는 허난성의 남서쪽에 있으며 후베이성과 접하고 있다. 형주의 최북방[4]으로, 사예 - 형주 - 예주의 경계에 있는 도시다( 장안을 수비하는 관문으로 중요한 무관은 남양군 단수현 서쪽에 있었다).전국시대에는 초나라의 영역이었다.
후한의 광무제가 완성을 기반으로 다시 한실을 중흥시켰다.
교통의 중추지라서[5] 삼국지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는 지역으로 원술이 이곳에서 처음 거병해서 반동탁 연합군에 참여했고, 후에 형주 자사 유표의 지원을 받은 장수가 완성에 주둔해있다가 조조에게 항복하면서 조위의 영토가 된다. 유비가 유표에게 의탁했을 때 잠시 머물던 신야현도 남양군의 속현이다.
서진 시대가 되면 남양군을 셋으로 나눠 남양군, 의양군, 순양군을 두었으며, 완은 여전히 남양군의 치소 지위를 유지했다. 순양군의 치소는 찬( 전한 시절 소하의 봉국이던 곳)이고 의양군의 치소는 신야다.
인재의 고향으로 유명하며, 후한 때 유명한 과학자인 장형,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구천의 군사 범려, 설명할 필요도 없는 제갈량 등등 이곳의 출신의 명사가 꽤 많다.[6] 애당초 남양은 그 당시까지만해도 이민족의 영역이 많았던 형주의 다른 지역과 달리 낙양과 가까워 문화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다. 삼국지에서 나오는 형주의 인재들은 거진 여기 아니면 남군( 양양, 강릉 등) 출신이라고 봐도 된다.
[1]
“이 통일안이 완성하기까지에”, “이 통일안이 완성함에 따라”,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등 현재의 문법에는 맞지 않는 표현이 있다. 현재의 문법에 맞추면 하다를 되다로 바꿔야 한다.
[2]
완성이란 단어 자체가 개화기 이전에는 쓰이지 않은, 일본에서 건너온 단어라, 일본의 용법(일본에서는 자·타동사로 쓴다) 그대로 썼을 가능성이 크다.
[3]
현재 인구도
천만이나 되는 대도시이다.
[4]
지금의 허난성의 중심부는 옛
예주에 있긴 하나, 남양군은 예주가 아닌 형주에 속한다.
[5]
완성을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낙양, 동쪽으로는
허창, 남쪽으로는
양양, 서쪽으로는
한중, 서북쪽으로는
장안과 연결되어있다.
[6]
사실 제갈량의 원래 고향은 남양이 아니라
서주
낭야군 양도현이다. 조조가 벌인
서주대학살의 여파로 어린 시절 그의 일가가 서주에서 형주로 피신하여 정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