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3 13:57:55

영수회담

1. 개요

영수회담(領袖會談)은 일반적으로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입법부의 제1야당 대표(옛 총재) 간의 회담이다.

영수는 어떤 집단에서 특별히 뛰어난 사람을 의미하며, 따라서 영수회담은 국가나 정치단체 또는 어떤 사회조직의 최고 우두머리가 서로 만나서 의제를 가지고 말을 나눈다는 뜻이다.[1]

한국 정치에서 '영수회담'이란 단어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양자회담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는 경우가 보통이었고, 참여정부 이래로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분리되는 게 일반화되었지만 여당의 실질적 1인자는 여전히 대통령이다보니 일반적으로는 여당 대표와 야당 대표의 회담은 대개 영수회담이라 부르지 않는다.

다당제 상황이 어느 정도 나왔던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문재인 정부에서는 1:1 만남 뿐만 아니라 원내 정당 대표들을 모두 초대하는 대표 회담을 하기도 했다. 문민정부는 당시 민주당, 자유민주연합 국민의 정부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을, 참여정부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을, 문재인 정부 국민의당, 정의당, 바른정당과 이후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 정의당을 초대하는 등 대표 회담을 주최했다. 다만 이 경우는 영수회담이라고 일컫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정치적 난국에 봉착했을 때 야당의 대표들과 회담하여 국정을 풀어가는 것이 역사적 관습으로 존재했다. 회담 장소는 대통령의 집무 공간이 되는 청와대에서 열렸다. 식사를 겸해서 회담하는 경우도 있고 차담회 형식으로 회담하는 경우도 있다.

2. 정부별 영수회담

관습적인 영수회담의 뜻에 맞게 다자회담을 제외한 양자 영수회담만 정리한다.

2.1. 박정희 정부 (5회)

파일:최초영수회담.jpg
△ 1965년 7월 20일 영수회담
파일:박정희 김영삼.png
△ 1975년 5월 21일 영수회담

2.2. 최규하 정부 (1회)

1980년 2월 18일에 최규하 대통령과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영수회담이 있었다. 참고로 최규하 대통령은 당적을 가진 적이 없으며 전임 박정희 정부의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총재는 김종필이었다.

2.3. 전두환 정부 (1회)

파일:전두환 김영삼.png
△ 1987년 6월 24일 영수회담

1987년 6월 24일에 전두환 대통령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의 영수회담이 있었다.

2.4. 노태우 정부 (2회)

  • 1988년 8월 31일 노태우 대통령 -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노태우 대통령 겸 민주정의당 총재는 이 회담에 앞서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와 8월 22일, 제2야당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와 8월 29일에 개별 회담을 했다.
  • 1990년 1월 11일 노태우 대통령 -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이후 노태우 대통령은 제2야당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와 1월 12일에,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와 1월 13일에 개별 회담을 했다. 이는 1월 22일 3당 합당의 전조였다.

2.5. 문민정부 (2회)

파일:영수회담문민정부.jpg
△ 1996년 4월 18일 영수회담

영수회담은 2회지만 전술했듯, 김영삼 대통령은 대표 회담을 가지며 몇 차례 다당 대표와 만났다.

2.6. 국민의 정부 (8회)

파일:영수회담국민의정부.jpg
△ 2001년 10월 9일 영수회담

2.7. 참여정부 (2회)

파일:노무현 박근혜.png
△ 2005년 9월 7일 영수회담

영수 회담은 2회지만, 전술했듯 노무현 대통령은 대표 회담을 몇 차례 가지며 다당 대표와 만났다.

2.8. 이명박 정부 (3회)

파일:영수회담0805.jpg
△ 2008년 5월 20일 영수회담
파일:영수회담0809.jpg
△ 2008년 9월 25일 영수회담

2.9. 박근혜 정부 (0회)

양자회담은 없지만 다자회담은 여러 번 가졌다. 여야 대표와 3자회담, 원내대표까지 5자회담으로 하는 방식. #

2.10. 문재인 정부 (1회)

파일:문홍회담.jpg
△ 2018년 4월 13일 영수회담

2017년에 선출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내가 당 대표 하는 한 영수회담 없다"고 선언하고 임기 초반 여러 번 있었던 대통령 +원내 5당 대표 모임 등에 모두 불참했다. 그러다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2주 전인 2018년 4월 13일에 문재인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가졌다.

영수 회담은 1회지만, 전술했듯 문재인 대통령은 대표회담을 몇차례 가지며 여러 당대표와 만났다.

2.11. 윤석열 정부 (2024.4.24 예정)

2022년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차례 영수회담을 제안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은 참모진의 의견에 따라 ' 범죄 피의자와 면담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영수회담이 이뤄지지 않아왔다.[3]

그러나 2024년 4월 19일, 22대 총선에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여당인 국민의힘이 참패한 뒤 국정 지지율이 두자릿수 폭으로 급락하자 협치를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상호 합의 간 영수회담을 실시하기로 했다. #

당일은 4.19 혁명이 일어난 날로 야당인사들은 그에 해당하는 일정을 이어가던 중이었고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장혜영 녹색정의당 원내대표 권한대행 등을 포함한 범야권 인사들이 채상병 특검 관련 합동 기자회견을 가지던 날이었다. 또한 금요일이라는 특성상 당일 갤럽지지율이 나오는 날인데 이날 국정지지율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징계정국 당시 받았던 24% 지지율보다 1%가 더 낮은 23%의 지지율을 받으며 임기중 갤럽 지지율로썬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윤석열정부가 궁지에 몰리자 끝끝내 거부해왔던 영수회담을 결국 수락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1] 한자로 ‘옷깃 영’(領), ‘소매 수’(袖)자를 쓴다. 옷깃과 소매가 왜 이러한 뜻으로 해석되는지에 관해서는 해당 글 참조. [2] 여담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의 영수회담은 가장 많이 시행되면서 민주화 이래 가장 성과가 큰 영수회담으로 꼽힌다. 7번의 영수회담을 거치면서 약학 분리, 남북정상회담, 9.11테러로 인한 민생 안정 조치 등 여러 방면에서 합의를 이뤄냈기 때문. * [3]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후에도 박정훈 국회의원 당선인은 ' 영수회담은 항복'이라며 대통령이 재판을 받는 피의자와 절대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