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Civil Rights Act Of 19641964년 미국 연방 민권법은 1964년에 제정된 미국의 연방법이다.
이 연방법을 통해 과거부터 흑인 차별을 법제화한 주 정부들에 대하여 압박을 가함으로써, 노예 해방으로부터 99년만인 1964년 미국 전체에서 짐 크로우 법 등 인종분리 법안과 인종 차별이 법적으로 철폐되었다.
2. 상세
1964년 민권법은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또는 출신 국가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한다. 이 민권법의 조항은 채용, 승진 및 해고에 있어서 성별과 인종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며 공공 시설 및 연방 자금 지원 프로그램에서의 차별을 금지한다. 더해서 투표권의 집행과 학교의 인종차별 철폐를 강화했다. #이 법 이전까지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법적으로도 인정되었으나, 이 법안이 만들어진 후 미국 흑인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인, 히스패닉계 미국인, 미국 원주민에 대한 인종차별까지 모두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의 결실이다.
허나 법적으로 비백인에 대한 차별은 금지되었지만 이들의 투표권이 보장되지 않았다. 이에 흑인 민권 운동가들은 투표권을 얻기 위해서 노력했고 결국 1년 뒤에 결실( 1965년 선거권 법)을 얻었다.
3. 영향
미국이 1세기 가까이 유지해온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이 점차 폐지되고, 다른 이민 제한법 역시 사라지면서, 주로 유럽계 백인 위주로 이민을 받던 1960년대 이전과 달리 동양이나 중남미에서 수많은 이민자가 몰려오기 시작해 그 결과 아시아계 미국인은 전체 미국인의 7%, 히스패닉계 미국인은 전체 미국인의 18%를 차지하게 되었다.이 연방법 이전에는 미국에 아시아계와 히스패닉계 숫자는 극소수였다. 지금 미국이 다인종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계기는 여러 이민 제한법 철폐 및 인종차별 법적 철폐로 1970년대부터 히스패닉계 이민자와 아시아계 이민자가 본격 증가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전 미국 인구의 대부분은 미국 백인과 미국 흑인이었고 아시아계나 히스패닉의 숫자는 극히 작았다.[1]
4. 과장된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오해
한편 린든 존슨 대통령이 서명한 이 법으로 인해 안 그래도 가속화되는 당의 진보화로 많이 퇴색한 남부의 민주당 지지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민권법에 분노한 남부인들은 이후 현재까지 굳건한 공화당 지지자로 남아있으며, 민권법 통과 이후 버락 오바마 당선 이전까지 민주당이 배출한 대통령 두 명[2]은 모두 본인이 남부 출신이라 개인기로 남부 표를 가져올 수 있는 인물들 뿐이었다.존슨 대통령 본인도 이를 알아서 법안에 서명할 때 꼭 해야 하는 일이지만 남부를 공화당에 넘기는 게 씁쓸하다는 평을 남겼다. 그래서 미국의 선거 여론조사를 보면 백인내에서도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했는데 공화당 지지율이 압도적이게 된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3]
그러나, 위 문단의 내용은 미국의 선거 결과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내놓은 단견들이다. 존슨의 평이 미래를 예측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위 솔리드 사우스라 불리는 남부의 민주당 지지세는 민권법 하나로 무너져 내린 게 아니다. 남부인들이 민권법으로 분노하긴 했지만, 그 때부터 현재까지 굳건한 공화당 지지자로 남진 않았으며 민권법으로 인해 미국 백인들 중에서 공화당 지지율이 압도적이게 된 것은 현실 세계에선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민주당이 최악의 패배를 당했던 대선에서조차 백인의 민주당 지지도는 최소 34% 이상이었다.
남부에서 의회와 지방 정부, 지방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을 지지해 이득을 보려는 심리, 남부 인구의 15% 이상을 차지하는 흑인들의 민주당 지지, 여러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게 표를 던진 전통적인 지지 세력들 덕분에 민주당은 90년대 초의 깅리치 혁명 이전까지 총선과 지방 선거에서 계속해서 우위를 점했다. 민주당이 남부에서 갖고 있던 기반은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무너져 내린 것이지, 민권법 하나만으로 무너진 건 아니었다.
깅리치 혁명 이전까지 남부의 표심이 공화당을 향한 것은 오직 대통령 선거였다. 공화당은 72년, 84년, 88년 선거에서 남부의 압도적인 지지를 확보했지만, 68년 선거에서는 남부의 표심이 갈려서 아칸소 · 루이지애나 · 미시시피 · 앨라배마 · 조지아 · 노스 캐롤라이나의 표심은 월레스에게, 텍사스는 험프리에게 향했고 그외의 남부 주는 닉슨을 지지했다. 레이건이 승리한 80년 선거에서도 남부에서의 표 차이는 압도적이라고 부를 수준은 아니었다. 따라서, 민권법 이후에 남부의 공화당 지지세가 강해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거의 30년 동안 일어난 변화를 민권법 하나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