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엘리오 그레이시 Hélio Gracie |
|
출생 | 1913년 10월 1일 |
브라질 파라주 벨렝 | |
사망 | 2009년 1월 29일 (향년 95세)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주 페트로폴리스 | |
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70cm / 65kg |
링네임 | Caxinguelê[1] |
[clearfix]
1. 개요
브라질의 무술인. 브라질리언 주짓수에 큰 영향을 끼친[2] 인물로, 그레이시 가문의 주요 일원이었다.2. 생애
1913년 브라질의 벨렝의 유지인 가스타오 그레이시의 9자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몸이 왜소했고 허약했다. 1921년 가족이 파산하고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주한 후 심리적인 불안감으로 만성 현기증으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벨렝에 있던 시절 형인 카를로스 그레이시는 유도가인 마에다 미츠요를 만나 유술을 정식적으로 수련했고 다른 형제들에게 기술을 공유했다. 허나 이땐 엘리오도 같이 수련하려 했으나 몸이 약해 제외되었다.1925년 가문이 리우데자네이루로 옮긴 후 카를로스는 주짓수 체육관을 차리기 위해 형제들의 도움을 받았다. 엘리오도 이 시기에 형 몰래 주짓수 훈련에 참가했고, 빠른 시간에 형제들의 기술을 터득하고 밀리지 않게 되자 카를로스도 본격적으로 수련을 허가했다.
1928년부터 카를로스가 수업에 지각하게 되자 엘리오가 대신 지도하기 시작했고, 피지컬이 아닌 타이밍과 무게중심을 이용한 기술을 개발해냈다.
1931년 본격적인 발리 투도에 뛰어들었고, 자신보다 덩치가 큰 복싱선수인 안토니우 포르투갈을 손쉽게 제압했다. 이후로도 1930~40년대 발리 투도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퍼포먼스를 보이며 그레이시 가문과 주짓수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1947년 복싱 헤비급 챔피언이였던 조 루이스에게 도전했으나 매니저가 거부하며 성사되진 못했다.
1951년 10월 23일 일본의 유도가인 기무라 마사히코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대결했다. 처음 기무라는 시합을 거부했지만, 또다른 유도가인 카토 유키오와 맞붙어 1번은 무승부, 1번은 크로스 초크로 승리하자 기무라가 도전을 받아들였다. 여기서 예상과 달리 13분을 넘게 버텼고 팔얽어비틀기로 패배하긴 했으나[3] 체급 차이를 극복하고 10분 넘게 대등하게 싸운 모습 덕분인지 패배했음에도 엘리오의 명성은 더 높아졌다.
1955년 자신의 제자인 발데르마르 산타나와의 시합에서 4시간 가까이 접전을 벌이다가, 형인 카를로스가 멈추고 무승부를 선언했고, 이후 현역으로는 은퇴를 선언한 후 자신과 형제의 자식들에게 주짓수를 훈련시켰다.
1993년 자신의 첫째 아들인 호리온 그레이시가 만든 UFC의 첫 번째 대회인 UFC 1에서 호이스 그레이시의 세컨을 섰으며, 이후 호이스의 모든 UFC대회에 세컨으로 참가했다.
2009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