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5 11:39:50

에르메스 다 폰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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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연방 공화국 제8대 대통령
에르메스 호드리기스 다폰세카[1]
Hermes Rodrigues da Fonseca
파일:Hermes_da_Fonseca.jpg
<colbgcolor=#009B3A><colcolor=#FFD700> 출생 1855년 5월 12일
브라질 제국 히우그란지두술주 상가브리에우
사망 1923년 9월 9일 (향년 68세)
브라질 합중 공화국 리우데자네이루주 페트로폴리스
재임기간 제8대 대통령
1910년 11월 15일 ~ 1914년 1월 23일
경력 전쟁장관 ,(1906~1908),
군사고등법원 판사 ,(1908~1909),
군사클럽 회장 ,(1921~1922),
브라질 제8대 대통령 ,(1910~1914),
복무 브라질 육군
1871년 ~ 1906년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군인 시절2.3. 대통령 시절
3. 여담

[clearfix]

1. 개요

브라질의 제8대 대통령.

2. 생애

2.1. 어린 시절

아버지 에르메스 에르네스투 다 폰세카 장군이 히우그란지두술에서 복무할 때 태어났다. 파라과이 전쟁이 발발하고 아버지가 참전하자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주했다.

2.2. 군인 시절

1871년 Praia Vermelha 군사학교에 입학했다. 삼촌인 데오도루 다 폰세카가 초대 대통령으로 임명되자 군사부문 비서로 발탁되었고 10개월 뒤 대위에서 중령으로 진급했다. 1893년 산타카타리나의 해군 제2함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진압군으로 참전했다. 1894년 대령으로 진급했고 1896년 제2기마포병연대장을 맡았다. 1899년부터 1904년까지 리우데자네이루 주의 연방 수도 경찰 여단의 헌병대장을 맡았다. 1904년 개인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천연두에 대한 의무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운동인 백신 반란을 진압했고 대통령 호드리기스 아우베스는 그를 원수로 승진시켰다. 1906년 11월 15일부터 1908년 5월 27일까지 아폰수 페나 정부에서 전쟁부 장관을 지냈다.

1908년 11월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1910년 3월 1일에 열린 대선에서 403,867표를 득표하여 후이 바르보사 후보를 꺾고 제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3. 대통령 시절

1910년 11월 취임한지 일주일만에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채찍의 반란이 발발했다. 흑인과 혼혈 수병들이 채찍을 사용한 부조리에 반발하여 군함을 탈취한 사건이었다. 정부는 해군에서의 채찍 사용을 금지하고 사면을 약속했으나 이는 거짓말이었고 강경진압에 돌입해 1,200여명을 추방시키고 수백명을 체포하거나 죽였다.

1913년 폰세카는 상파울루, 히우그란지두술, 페르남부쿠, 바이아, 피아우이, 세아라, 알라고아스 주에 대한 연방 개입을 촉진하려고 시도하였다. 이 지역의 주지사를 친정부 인사로 임명하여 연방정부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계획이었는데 세아라 주의 정치인들은 특히 강하게 반발하여 가톨릭 교회와 연합하여 주아제이루에서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내 사업으로 마데이라-마모레 철도를 포함한 철도 건설 프로그램과 아폰수 페나 정부부터 추진된 기술 및 전문 학교 설립 프로그램을 계속했다. 또한 파라나 대학을 설립했다.

3. 여담

폰세카는 브라질 역사상 직접선거로 대통령이 된 군 출신 대통령 세 명 중 하나이다. 다른 이로는 에우리쿠 가스파 두트라 자이르 보우소나루이다.
[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상 로망스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