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22:08:17

아티쿠스 브라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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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겸 집정관 }}}
101년 101년 보결 101년 보결 101년 보결 101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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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년 102년 보결 102년 보결 102년 보결 1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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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년 보결 103년 보결 103년 보결 103년 보결 1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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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년 보결 108년 108년 보결 108년 보결 1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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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년 보결 109년 보결 109년 보결 110년 110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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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년 보결 110년 보결 111년 111년 보결 111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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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년 112년 보결 112년 보결 112년 보결 112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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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년 보결 114년 보결 115년 115년 보결 115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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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년 보결 116년 116년 보결 116년 보결 116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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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년 117년 보결 117년 보결 118년 118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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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년 보결 118년 보결 119년 119년 보결 119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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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년 보결 120년 120년 보결 120년 보결 1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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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년 보결 121년 보결 121년 보결 122년 122년 보결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파우스투스 티투스 폼포니우스 안티스티아누스 푸니술라누스 베토니아누스 마르쿠스 스타토리우스 세쿤두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칸디두스 카피토
퀸투스 폼포니우스 마르켈루스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실바누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메룰라 아우스피카투스 루키우스 코렐리우스 네라티우스 판사 루키우스 비트라시우스 플라미니누스
122년 보결 123년 123년 보결 123년 보결 124년
가이우스 트레비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아르티쿨레이우스 파이티누스 티투스 프리페르니우스 게미누스 티투스 살비우스 루피누스 미니키우스 오피미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티투스 칼레스트리우스 티로 오르비우스 스페라투스 루키우스 베눌레이우스 아프로니아누스 옥타비우스 프리스쿠스 푸블리우스 메틸리우스 세쿤두스 그나이우스 센티우스 아부르니아누스 가이우스 벨리키우스 플라쿠스 토르콰투스 테바니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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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루스 라르키우스 마케도 가이우스 율리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롤리우스 파울리누스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베티나 베루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
푸블리우스 두케니우스 베레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루키우스 티티우스 에피디우스 아퀼리누스 푸블리우스 루키우스 코스코니아누스 가이우스 에기우스 암비불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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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사이니우스 세베루스 마르쿠스 가비우스 스퀼라 갈리카누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파이투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켈레르 네포스
127년 보결 128년 128년 보결 128년 보결 128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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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투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 퀸투스 폼포니우스 마테르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호물루스]
128년 보결 129년 129년 보결 130년 130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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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투스 [플라니우스 사르두스 바리우스 암비불루스] 루키우스 네라티우스 마르켈루스 퀸투스 율리우스 발부스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아페르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콰르티누스
131년 131년 보결 132년 132년 보결 1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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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피누스 퀸투스 파비우스 율리아누스 가이우스 트레비우스 세르기아누스 아울루스 카시우스 아리아누스 푸블리우스 뭄미우스 시센나
133년 보결 133년 보결 134년 134년 보결 134년 보결
퀸투스 플라비우스 테르툴루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아티쿠스 헤로데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우르수스 세르비아누스 티투스 하테리우스 네포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판사
퀸투스 유니우스 루스티쿠스 푸블리우스 수페나스 베루스 티투스 비비우스 바루스 루키우스 아티우스 마르코
135년 135년 보결 135년 보결 136년 1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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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년 138년 보결 138년 보결 139년 139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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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폼포니우스 카메리누스 푸블리우스 팍투메이우스 클레멘스 마르쿠스 노니우스 무키아누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루스티쿠스 루키우스 클라우디우스 프로쿨루스
139년 보결 139년 보결 140년 140년 보결 140년 보결
ignotus 마르쿠스 케키우스 유스티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티투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피우스 퀸투스 안토니우스 이사우리쿠스 율리우스 크라시페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스카풀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플라쿠스 ignotus
140년 보결 141년 141년 보결 141년 보결 141년 보결
마르쿠스 바르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티투스 호에니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피시바누스 티투스 카이세르니우스 스타티아누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파비아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율리아누스 마르쿠스 페두카이우스 스틀로가 프리스키누스 (라르키우스) 레피두스 ignotus ignotus
142년 142년 보결 142년 보결 142년 보결 142년 보결
루키우스 쿠스피우스 팍투메이우스 루피누스 루키우스 그라니우스 카스투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프론토 루키우스 투시디우스 캄페스테르 [술피키우스] 율리아누스
루키우스 스타티우스 콰드라투스 티베리우스 유니우스 율리아누스 가이우스 라베리우스 프리스쿠스 퀸투스 코르넬리우스 세네키오 안니아누스 티투스 율리우스 카스투스
143년 143년 보결 144년 144년 보결 144년 보결
가이우스 벨리키우스 플라쿠스 토르콰투스 퀸투스 유니우스 칼라무스 루키우스 헤디우스 루푸스 롤리아누스 아비투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카루스 ignotus
루키우스 비불리우스 히파르쿠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아티쿠스 헤로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유니아누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에그릴리우스 플라리아누스 퀸투스 라베리우스 리키니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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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켈레르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롱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티투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피우스 루키우스 플라우티우스 라미아 실바누스 그나이우스 아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프로쿨루스 퀸투스 무스티우스 프리스쿠스
데키무스 벨리우스 피두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포블리콜라 프리스쿠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파이투스) 마르쿠스 폰티우스 라일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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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페트로니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파디우스 루푸스 섹스투스 에루키우스 클라루스 퀸투스 리키니우스 모데스티누스 (섹스투스) 아티우스 라베오 푸블리우스 뭄미우스 시센나 루틸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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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년 보결 146년 보결 146년 보결 147년 147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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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보결 150년 보결 150년 보결 151년 151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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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윤쿠스] 섹스투스 칼푸르니우스 아그리콜라 티투스 유니우스 세베루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루피누스 사비니아누스 마르쿠스 가비우스 …
155년 보결 155년 보결 156년 156년 보결 156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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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년 157년 보결 157년 보결 157년 보결 1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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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메틸리우스 아퀼리우스 레굴루스 네포스 볼루시우스 토르콰투스 프론토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아일리아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세쿤두스 퀸투스 […]binus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 클레멘스
158년 보결 158년 보결 159년 159년 보결 159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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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notus 티투스 클로디우스 비비우스 바루스 마르쿠스 포스투미우스 페스투스 […] 플라부스 마르쿠스 켄소리우스 파울루스
160년 보결 160년 보결 161년 161년 보결 161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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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블리우스 유벤티우스 켈수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아비투스 루키우스 아리우스 푸덴스 루키우스 푸피디우스 폴리오 푸블리우스 마르티우스 베루스
167년 167년 보결 168년 168년 보결 169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덴틸리아누스 루키우스 베눌레이우스 아프로니아누스 옥타비우스 프리스쿠스 퀸투스 툴리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폼페이우스 세네키오 소시우스 프리스쿠스
마르쿠스 움미디우스 콰드라쿠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팔라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파울루스 ignotus 푸블리우스 코엘리우스 아폴리나리스
170년 170년 보결 171년 172년 172년 보결
가이우스 에루키우스 클라루스 티투스 호에니우스 세베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세베루스 세르비우스 칼푸르니우스 스키피오 오르피투스 가이우스 모디우스 유스투스
마르쿠스 가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ignotus 루키우스 알피디우스 헤렌니아누스 섹스투스 퀸틸리우스 막시무스 ignotus
173년 174년 174년 보결 175년 175년 보결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마케르 사투르니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푸블리우스 헬비우스 페르티낙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퀸투스 볼루시우스 플라쿠스 코르넬리아누스 ignotus 푸블리우스 살비우스 율리아누스 마르쿠스 디디우스 세베루스 율리아누스
176년 177년 178년 179년 179년 보결
티투스 폼포니우스 프로쿨루스 비트라시우스 폴리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카이사르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살비디에누스 오르피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아누스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아페르 마르쿠스 페두카이우스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 데키무스 벨리우스 루푸스 (율리아누스) 푸블리우스 마르티우스 베루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윤쿠스
179년 보결 180년 181년 182년 182년 보결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파우스티누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루스티쿠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수라 마메르티누스 (아우렐리아누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프로쿨리아누스 섹스투스 퀸틸리우스 콘디아누스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부루스 퀸투스 티네이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아티디우스) 코르넬리아누스
183년 183년 보결 183년 보결 183년 보결 184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투틸리우스 폰티아누스 겐티아누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세쿤두스 티투스 팍투메이우스 마그누스 루키우스 코소니우스 에기우스 마룰루스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빅토리누스 ignotus 마르쿠스 에그나티우스 포스투무스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아일리아누스
184년 보결 185년 186년 186년 보결 186년 보결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빈덱스 트리아리우스 마테르누스 라스키비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노비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사부키우스 마이오르 카이킬리아누스
카시우스 아프로니아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쿠스 아피우스 아틸리우스 브라두아 레길루스 아티쿠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안니우스 라부스 발레리우스 세네키오
187년 188년 189년 189년 보결 190년
루키우스 브루티우스 퀸티우스 크리스피누스 푸블리우스 세이우스 푸스키아누스 둘리우스 실라누스 세베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로스키우스 아일리아누스 파쿨루스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실라누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실라누스 비텔리우스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수라 셉티미아누스
190년 보결 191년 192년 193년 193년 보결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포필리우스 페도 아프로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폼페이우스 소시우스 팔코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
아풀레이우스 루피누스 (또는 아툴레누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브라두아 마우리쿠스 푸블리우스 헬비우스 페르티낙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에루키우스 클라루스 비비아누스 푸블리우스 율리우스 스카풀라 프리스쿠스
193년 보결 193년 보결 193년 보결 194년 194년 보결
마르쿠스 실리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율리우스 메살라 루틸리아누스 루키우스 파비우스 킬로 셉티미누스 카티니우스 아킬리아누스 레피두스 풀키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페르티낙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가비니우스 바르바루스 폼페이아누스
ignotus 가이우스 아이밀리우스 세베루스 칸타브리누스 데키무스 클로디우스 셉티미우스 알비누스 카이사르 ignotus
195년 196년 197년 198년 198년 보결
푸블리우스 율리우스 스카풀라 테르툴루스 프리스쿠스 가이우스 도미티우스 덱스테르 티투스 섹스티우스 마기우스 라테라누스 푸블리우스 마르티우스 세르기우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아니키우스 파우스투스
퀸투스 티네이우스 클레멘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트라세아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또는 가이우스) 쿠스피우스 루피누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갈루스 ignotus
199년 200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눌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프로쿨루스
마르쿠스 아우피디우스 프론토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빅토리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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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쿠스 브라두아
라틴어: Atticus Bradua
출생 당시 이름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쿠스 아피우스 아틸리우스 브라두아 레길루스 아티쿠스
Tiberius Claudius Marcus Appius Atilius Bradua Regillus Atticus
개명 후 정식이름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메틸리우스 브라두아 카우키디우스 테르툴루스 클라우디우스 아티쿠스 비불리우스 폴리오 가우이디우스 라티아리스 아트리우스 바수스
Marcus Atilius Metilius Bradua Caucidius Tertullus Claudius Atticus Vibullius Pollio Gauidius Latiaris Atrius Bassus
생몰년도 서기 145년경 ~ 서기 209년
계급 로마 귀족, 아카이아 귀족, 프리기아 귀족[1]
국가 로마 제국
출생 145년경, 미상
사망 209년, 미상
직위 원로원 의원, 총독, 자선사업가
가족 헤로데스 아티쿠스(아버지)
안니아 레길리아(어머니)[2]
아피우스 안니우스 아틸리우스 브라두아(외삼촌, 후원자)[3]
엘피니케(큰누이)
아테나이스(작은누이)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헤로데스 레길루스(남동생)
이름 미상의 아이(동생)[4]
루키우스 비불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헤로데스(친척, 입양형제)

1. 개요2. 생애
2.1. 출신 가문과 가계2.2. 아버지의 학대와 어머니의 죽음2.3. 이탈리아 이주와 개명, 정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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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원로원 의원, 총독, 자선사업가. 개명 전후 이름이 매우 길어 통상적으로 아티쿠스 브라두아라고 한다. 그리스인 정체성이 강한 아버지, 출신 가문과 달리, 아버지의 결정과 계속된 학대 때문에, 어머니와 둘째 누이 사망 후 이탈리아로 건너간 뒤에 개명했고, 그때부터 아버지와 절연 후 본인 스스로를 이탈리아인으로 여겨 평생을 살았다.[5]

185년 집정관을 지낸 인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루키우스 베루스 형제의 스승 헤로데스 아티쿠스 대 파우스티나의 사촌동생이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소 파우스티나의 오촌고모 안니아 레길리아와 결혼해 낳은 아들이다.

2. 생애

2.1. 출신 가문과 가계

145년경,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유서 깊은 아테네 귀족 가문 출신으로 키몬의 직계손인 원로원 의원, 소피스트 헤로데스 아티쿠스와 당시 로마 제국 안에서 최고의 파트리키로 불린 안니우스 베루스 가문 출신의 귀부인 안니아 레길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티쿠스 브라두아의 친가는 그리스 혈통으로 아테네 귀족의 직계후손이며, 오늘날 아나톨리아 중부의 프리기아 귀족 직위까지 가진 로마 제국 당시 최고의 그리스 귀족, 로마 귀족 가문 출신이다. 친조부모는 원로원 의원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아티쿠스 헤로데스, 로마 최고 재벌 출신의 상속녀 비불리아 알키아 아그리피나였다. 이들은 외삼촌과 조카로 근친혼이었고, 이들의 아들이 아티쿠스 브라두아의 아버지 헤로데스 아티쿠스였다. 가문과 혈통을 중요하게 여긴 그리스 귀족, 로마 귀족 사회에서 그는 당대 최고의 부유하고 권세 있는 조상들을 직계로 두고 있었다. 아버지의 외증조부모는 루키우스 비불리우스 루푸스, 클라우디아 알키아이며, 아버지의 외할아버지는 이들 부부의 아들 히파르쿠스였다. 이들은 모두 엄청난 재력을 자랑했고, 플라비우스 왕조 시절부터 황제들의 비호 아래 권력을 누렸다.

외가는 히스파니아 일대에 대규모 올리브 농장과 기름 정제시절을 갖추고, 벽돌 공장 등을 소유한, 이탈리아 혈통의 히스파니아 이주 노빌레스 명문가 안니우스 베루스 가문이었다. 이 가문은 공화정 말부터 원로원 의원을 세습 형태로 배출했고,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와 플라비우스 왕조 아래에서 두 번에 걸쳐 파트리키로 지위를 공인받았다. 아티쿠스 브라두아의 외할아버지는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의 황후 대 파우스티나의 사촌동생이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당숙이었고, 브라두아의 외삼촌은 160년 정규 집정관을 지낸 아피우스 안니우스 아틸리우스 브라두아였다.

2.2. 아버지의 학대와 어머니의 죽음

이런 가문, 배경을 둔 아티쿠스 브라두아는 이탈리아 혹은 그리스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살다가, 아주 어릴 때 다시 그리스로 건너가 자랐다.

명문귀족의 아들이자 키몬 직계 일가의 후계자라는 후광과 달리, 걸음마를 뗄 때부터 아버지 헤로데스 아티쿠스의 학대를 받았다. 이때 아버지 헤로데스 아티쿠스는 아들이 날 때부터 정신 장애가 있다고 주장했고, 자신의 학대는 교육의 일환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는 또래들보다 글을 늦게 배운 것을 제외하면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였다. 하지만 헤로데스 아티쿠스는 이런 아들이 정신지체가 있다며, 읽는 법을 배울 수 없는 얼간이라고 규정해, 아이였던 그를 폭행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면이 살지 않는다며, 24명의 노예 소년을 구입해, 이 노예소년들에게 알파벳 글자로 시작한 이름을 주고, 본인 편지로 이들 노예를 언급하며, 그에게 이를 바탕으로 글을 떼게 했다. 하지만 계속된 학대에 브라두아는 불안해 했다. 이에 헤로데스 아티쿠스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아들 브라두아를 악명 놓은 스파르타 공공 탁아소로 보내, 이곳에서 혹독한 훈육을 체험 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이런 학대는 당시 아티쿠스 제자들과 그들 부모 사이에서 "스승이 아들만 편애하면서, '스승과 제자' 관계를 맺고, 유학보냈다."고 이야기가 잘못 나오면서, 다행히 중단된다. 헤로데스 아티쿠스에게 엄청난 돈을 내고 수업을 받은 제자들은 가문과 부모를 앞세워, 이 문제를 놓고 아우성치고 항의했다. 그래서 그는 이후 가족 품으로 돌아왔는데, 헤로데스 아티쿠스는 자신이 학습부진에 시달린 바보 아들 때문에 이런 치욕을 당했다며, 더 큰 학대를 하고, 아티쿠스 브라두아를 혐오했다. 이때 헤로데스 아티쿠스는 이후 자신의 이런 경험을 그리스, 이탈리아, 아나톨리아 일대에서 공개하면서, 자신의 아들이 정신지체 장애를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아티쿠스 브라두아의 부모는 그리스 전역을 여행하면서 그리스 올림피아에 그들 가문과 명예를 적은 기념비가 박힌 호화 님파움(기념비적인 분수대)를 지어 기부했다. 그러면서 그의 어머니 안니아 레길리아는 극진히 아낀 아들 아티쿠스 브라두아의 흉상을 본인 가족, 황제와 황후 흉상과 함께 나란히 세웠다.

아티쿠스 브라두아가 대략 15세였을 당시, 그의 어머니 안니아 레길리아가 다섯째 아이 임신 중 남편와 남편의 해방노예 비서가 함께 벌인 가정폭력, 폭행으로 맞아 죽었다. 헤로데스 아티쿠스의 일방적인 주장에 따르면 자신에게 말대꾸를 했다는 이유였는데, 진짜 이유는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브라두아의 어머니는 만삭 중 남편에게 맞고, 남편의 지시를 받은 해방노예 비서와 시종들에게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 이 사건으로 안니아 레길리아는 조산으로 다섯째 아이를 낳고, 혼수상태가 됐다가 죽었다. 하지만 조산으로 태어난 브라두아의 동생은 출산 직후 죽었다. 이 사건은 방계 황족이 살해된 일이라서 곧 큰 문제가 됐다. 설상가상, 이때의 일 속에서 헤로데스 아티쿠스는 이 모든 일이 두 아들 때문이라며 아티쿠스 브라두아와 그의 남동생인 5살 아이 헤로데스 레길루스를 학대했다. 그래서 안니아 레길리아가 죽고 얼마 뒤, 어린 레길루스마저 학대, 폭언 등 속에서 요절했다. 이후, 헤로데스 아티쿠스는 1급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 진다. 그렇지만 브라두아의 아버지는 가문과 본인의 인맥과 재력 등을 총동원해, 마치 안니아 레길리아가 조산 증세로 죽었다는 식으로 둘러대고, 치안판사와 배심원을 매수해, 본인과 비서 모두 무죄로 방면됐다. 이후, 헤로데스 아티쿠스는 자신이 죽인 아내를 기념하고 사랑한다며 극장, 비문 등을 지어 무료로 개방하면서, 아내가 생전에 아낀 아티쿠스 브라두아가 이 사건의 원인이라는 식으로 학대했다.

결국 보다 못한 브라두아의 누나 시댁 식구들과 이탈리아에 있던 외가에선 헤로데스 아티쿠스에게 그 학대를 그만하라고 했다. 특히, 이 당시 정규 집정관을 지낸 외삼촌 아피우스 안니우스 아틸리우스 브라두아는 이 문제를 대놓고 거론하면서, 아티쿠스 브라두아 학대를 그만하라고 경고했다. 이에 헤로데스 아티쿠스는 관계가 좋아야 할 죽은 아내의 남자형제 아피우스 안니우스 아틸리우스 브라두아가 본인과 적이 된 이유가 얼간이 아들 때문이라며, 더 크게 화를 냈다. 그러다가 160년 브라두아를 아낀 누이들 중 유일하게 살아 있던 아테나이스가 아들 출산 후 산후 후유증으로 요절했다. 이에 평소 딸을 정략혼 대상으로 철저히 이용해온 헤로데스 아티쿠스는 이 모든 일이 브라두아 때문이라며, 동생의 아들인 조카 루키우스 비불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헤로데스를 입양해 그를 가문의 후계자이자 본인의 유일한 아들로 선포하고, 친아들 아티쿠스 브라두아를 가문에서 사실상 추방해버린다. 동시에 그는 이를 정당화하고자, 자신이 죽은 아내를 잊지 못했고 재혼을 할 생각이 없으며, 요절한 두 아들이 생각난다는 식으로, 마치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떠들었다.

따라서 아테네 지식인, 주민들은 이때부터 헤로데스 아티쿠스를 비인간적인 것을 넘어 인간말종이라고 생각하고, 아버지의 중상모략 속에서 학대당한 아티쿠스 브라두아를 동정한 여론이 아테네 시민 사이에 당연시됐다.

2.3. 이탈리아 이주와 개명, 정치 활동

아버지와의 관계가 최악이 되고, 어머니 죽음 속에서 사실상 가문의 버려진 후계자된 이후, 아티쿠스 브라두아는 어머니가 생전에 남긴 유산 대부분을 상속받고, 외가 식구들이 있는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아티쿠스 브라두아가 물려받아 소유하게 된 재산에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시집을 오면서, 외가에서 선물로 준 아피아 가도 인근의 호화 대저택이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평생을 살았고, 원로원 의원이 되어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교양 넘치고 능력이 뛰어나지만,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달리, 곧 부친보다 더 유능하고, 인격적으로 온화하다는 평을 주변에게 들었다. 그리고 이때 그는 후일 리비아에서 발굴된 비문에서 드러나듯이, 기존의 이름을 개명했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쿠스 아피우스 아틸리우스 브라두아 레길루스 아티쿠스라는 이름을 버리고,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메틸리우스 브라두아 카우키디우스 테르툴루스 클라우디우스 아티쿠스 비불리우스 폴리오 가우이디우스 라티아리스 아트리우스 바수스로 바꿨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는 통치 연간 중 어느 시점에 아티쿠스 브라두아를 파트리키 계급으로 승격시켜주고, 그를 아버지와 별개의 인물로 규정했다. 이는 헤로데스 아티쿠스의 거짓말 등에 속았다가 뒤늦게 알게 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도움 등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혜택 속에서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절 동안 원로원 의원으로 좋은 평판을 얻었고, 콤모두스 시절인 185년, 주변 동료들에게 정규 집정관에 추천받아 집정관으로 재임했다. 이후 187/188년에는 아테네의 집정관에 지명됐다.

브라두아는 아테네 시 집정관을 맡은 뒤에도, 아테네에서 공직 생활을 하지 않고, 절연한 친가와 거리를 뒀다. 그는 로마 제국의 속주 총독을 역임했고, 이탈리아의 로마 귀족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대신 본인의 이름으로 기부활동을 할 때, 부모의 발자취를 따르면서도, 어머니와 외가 식구, 죽은 두 누이를 강조하는 식으로, 아버지와 계속 거리를 뒀다. 하지만 기부액은 헤로데스 아티쿠스 생전보다 적었다. 이는 그가 가진 재산이 아버지와 아버지 양자인 입양형제보다 훨씬 적었던 것도 컸다. 하지만 아티쿠스 브라두아는 아테네 등 그리스 일대에 이런 기부를 계속 했고, 총독 재임 시절에도 선행을 계속 했다. 또 인품이 바르고 온화해, 아테네 사람들은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생전 주장한 것과 전혀 달랐던 브라두아를 더욱 동정했다.

그 결과, 트리폴리타니아 지방의 렙티스 마그나에선 185년 이후의 어느 시점에 회색 석회암으로 그를 헌정하고 인품을 찬양한 기념비가 세워졌다. 아마도 그가 아프리카 속주 총독이나 트리폴리타니아 지방관을 지낼 때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비문엔 이렇게 적혀 있다.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메틸리우스 브라두아 카우키디우스 테르툴루스 클라우디우스 아티쿠스 비불리우스 폴리오 가우이디우스 라티아리스 아트리우스 바수스 총독께 ; 데키무스 유니우스 크레스켄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갈바, 퀸투스 칼푸르니우스 카피토, 루키우스 플라우티우스 옥타비아누스가 이를 후원해 보내드립니다.

이를 통해, 아티쿠스 브라두아가 자신의 가족 중 어머니, 누이, 외가 조상들에 대한 기억만 기리고, 아버지와 친가는 철저히 언급하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억누른 것 등이 사실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또 그가 개명해, 헤로데스 아티쿠스에게 물려받은 이름을 철저히 삼간 것도 확인된다.
[1] 아버지 헤로데스 아티쿠스에게 사실상 가문 추방을 당하면서 상속받지 못했다. 하지만 본인 역시 아버지와 절연하면서 포기했고,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에게 개명 후 따로 파트리키로 공인받는 식으로 상속받지 못한 지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대했다. [2] 임신 8개월일 당시, 가정폭력으로 남편 헤로데스 아티쿠스와 남편 하인에게 맞아 죽었다. [3] 아티쿠스 브라두아가 어머니 사망 후 아버지 헤로데스 아티쿠스에게 가정폭력, 학대를 넘어 거의 살해 직전까지 위험에 처해진 직후부터 후원하고 그가 이탈리아로 넘어온 뒤부터는 실질적인 아버지 역할을 했다. [4] 어머니가 가정폭력을 당하고 죽기 전에 출산 후 함께 사망. [5] 외가, 어머니 모두 이탈리아인 정체성이 강한 로마 귀족들이었고, 실제 이탈리아 혈통 로마인이라서, 아티쿠스 브라두아는 그리스인과 이탈리아인 혼혈이라는 인식이 어릴 적부터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