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아타나시우스 키르허 Athanasius Kirch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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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02년 5월 2일 | |||
풀다수도원령 가이자 | ||||
사망 | 1680년 11월 27일 (향년 78세) | |||
교황령 로마 | ||||
국적 | 신성 로마 제국 | |||
직업 | 신부, 수도자, 학자 | |||
분야 | 고대 이집트, 중국, 지리학, 생물학, 의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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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예수회 수도자. 고대 이집트어와 콥트어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했고, 중국과 관련된 백과사전을 편찬했으며,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수많은 연구를 했다.2. 업적
2.1. 이집트학
1628년부터 슈파이어의 도서관에 소장되어있던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관련된 서적을 본 후, 고대 이집트에 관심을 가져 연구를 시작했다. 1633년에는 콥트어를 공부해 1636년 문법책을 편찬했고, "콥트어가 고대 이집트어의 마지막 발전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키르허는 고대 이집트어를 해석했다고 주장했으나, 로제타 석의 발견으로 그의 해석은 틀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인정받아, 그는 '이집트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2.2. 중문학
키르허는 중국에 관심을 가져, 1629년에는 자신의 장상에게 "중국에 선교사로 가고 싶다"고 청했다. 그는 1667년 중국의 지도를 제작했고 중국의 역사 또는 신화와 관련된 장소들을 강조했고 중국에 있었던 네스토리우스파와 관련한 서술도 했다. 그러나, 중국인을 함의 후손이고 공자를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라고 주장했으며 한자를 추상화된 상형문자라고 주장했고 키르허는 상형문자를 가장 최상의 고도화된 문자로 그 다음에는 표의문자를 그리고 픽토그램을 최하의 문자라고 설명했다.2.3. 지리학
1638년, 폼페이를 멸망시킨 베수비오산의 크레이터를 연구했고 화석에도 관심을 가져 연구를 했었다.2.4. 생물학
키르허는 자신의 저서인 Arca Noë에서 대홍수 이후의 동물들이 전세계로 뻗어나가면서 기후에 맞게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두 개의 개체가 만나 하이브리드 종이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자연발생설을 옹호했다.키르허는 콩 잎으로 실험을 하던 중 엽록소 형광을 처음 발견하고 이를 보고했다.
2.5. 의학
1646년, 현미경을 통해 흑사병으로 사망한 사람의 피를 관찰하고 미생물에 의해 병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검역,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방안을 제시했고 폐를 통한 세균감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한다고 주장했다.말라리아와 관련된 연구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