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神聖帝王고려 시대에 고려 군주의 미칭어구로 사용되었던 칭호.
2. 역사 기록
조서를 내리기를,
"제왕의 덕은 무엇보다 겸손을 우선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노자(老子)는 '왕(王)과 공(公)은 스스로를 고(孤: 아버지가 없음)[1], 과(寡: 덕이 적음), 불곡(不穀: 착하지 못함)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또 한나라 광무제(光武帝)는 조서에서 신하들이 상서를 올릴 때 성(聖)자를 쓰지 말라고 하였으며, 공자도 역시 인자(仁者)나 성인(聖人)이라고 자처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신하가 임금을 높이고 찬미할 때 사용하는 호칭이 정도에 지나치므로 이는 합당한 일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상소나 공문서에서 "신성제왕(神聖帝王)"이라 일컫지 말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 고려사》 인종 16년( 1138년) 2월 26일
"제왕의 덕은 무엇보다 겸손을 우선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노자(老子)는 '왕(王)과 공(公)은 스스로를 고(孤: 아버지가 없음)[1], 과(寡: 덕이 적음), 불곡(不穀: 착하지 못함)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또 한나라 광무제(光武帝)는 조서에서 신하들이 상서를 올릴 때 성(聖)자를 쓰지 말라고 하였으며, 공자도 역시 인자(仁者)나 성인(聖人)이라고 자처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신하가 임금을 높이고 찬미할 때 사용하는 호칭이 정도에 지나치므로 이는 합당한 일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상소나 공문서에서 "신성제왕(神聖帝王)"이라 일컫지 말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 고려사》 인종 16년( 1138년) 2월 26일
3. 탐구
조선 시대에 집필된 《 고려사》에서는 왕을 나타내는 3인칭 칭호가 전부 "국왕"으로 통일되어 있어 고려 군주를 고려인이 어떻게 불렀는지 알기 어렵지만[2], "신성제왕"이라는 칭호는 역설적이게도 고려 인종이 본인에게 그 호칭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조서에 기록됨으로써 역사에 남게 되어 밝혀진 칭호이다. 뜻은 신성한 제왕이라는 뜻의 미칭어구이다.유사한 사례로 태조의 시호 응운원명광렬대정예덕장효위목신성대왕(應運元明光烈大定睿德章孝威穆神聖大王)에서도 "신성대왕(神聖大王)"이라는 부분이 있다. 고려왕의 또 다른 호칭으로는 성스러운 황제라는 미칭어구인 성황(聖皇)이 있다.
4. 동아시아의 황제와 유사한 칭호 목록
- 대군주(大君主): 조선 고종이 칭제건원 이전까지 사용하였다.
- 대왕(大王)
- 성황(聖皇)
- 제왕(帝王)
- 천왕(天王): 오호십육국 시절 유목민족의 군주들이 사용하였다.
- 천황(天皇): 일본에서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 태왕(太王): 고구려 국왕에 대한 칭호. 신라 상대의 몇몇 국왕들도 사용한 바 있다.
- 패왕(霸王 또는 覇王): 왕중왕의 의미로, 초패왕으로 유명한 항우가 사용하였다.
- 황왕(皇王): 신라에서 한동안 사용하였다.[3]
- 어라하(於羅瑕): 백제에서 사용된 칭호로, 순우리말이다.
- 건길지(鞬吉支): 어라하와 동일.
- 가독부(可毒夫): 발해에서 사용한 칭호로 성왕(聖王), 기하(基下)와 함께 발해의 왕을 일컫는 칭호다.
5. 같이보기
[1]
'
고아(孤兒)'의 그 '고(孤)'다. 일반적인 부자 상속제 하에서는 부왕이 승하해야
세자가 승계받아 왕위에 오르는 것인 만큼, 아버지가 이미 죽어서 없어야 한다(...).
[2]
다만, 고려시대 여러 금석문들을 통해서 고려시대 고려인들이 주로 임금을 어떠한 호칭으로 불렀는지는 확인이 가능하다. 가령 금석문 사료들에서는 ‘왕’과 '선왕'의 용례가 일반적이고 압도적이면서도 ‘황제', '선제(先帝)', ‘선황(先皇)'이 드물게 사용됐으며, 왕위의 경우에도 왕위가 1건에 불과한 ‘제위(帝位)’보다 상대적으로 빈출하다. 황자(皇子), 황태자(皇太子), 황후(皇后)의 용례도 있으나 왕자와 왕후의 빈도가 압도적이며, 왕태자라는 용어도 사용됐다.(최종석(2015), "베트남 外王內帝 체제와의 비교를 통해 본 고려전기 이중 체제의 양상", 《진단학보》 125, p. 10~12.)
[3]
진성여왕 대에 세워진 월광사 원랑선사 탑비에서는 진성여왕의 아버지
경문왕에게 '황왕(皇王)'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