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BWV1043) 일반 연주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실히 느껴진다.
1. 개요
時代演奏 / 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HIP) 혹은 Period performance당대의 악기, 조율 방식과 연주법, 연주 관행과 편성 등을 살려 연주하는 스타일이다.
악기 등은 시대가 지나며 개량되기 때문에 현대의 악기로 수백년 전의 음악을 연주하면 작곡 당시의 음악과 다르게 들리기 때문에 당시의 음악을 재연하는 것이다.
1.1. 유사한 용어
'정격 연주(authentic performance)', '원전 연주' 등의 용어가 혼용된다.'원전 연주' 혹은 '정격 연주'는 연주 방식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으며, 작곡 당시의 방식대로 연주되는 음악만이 그렇다는 사상을 담은 용어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정격 연주'는 다른 방식이 격식이 틀렸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노골적인 표현인지라 '원전 연주'라는 표현이 더 자주 쓰였다. 오늘날의 시대 연주가들은 반드시 작곡가가 살던 시대에 연주하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야만 작곡가의 의도를 구현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최근에는 '시대 연주', '시대 악기'라는 라는 표현을 쓴다.
역사주의 연주(historical performance),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 줄여서 HIP라고 쓰기도 한다. 한국에 처음 들어올 때는 당대연주라는 표현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2. 역사
아놀드 돌메치(Arnold Dolmetsch)와 그의 가족들은 고음악 및 바로크 음악을 연구하며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악기를 소개하고 복원했으며 당대의 연주방식을 알렸다. 이런 노력이 곧장 시대 연주의 흐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이후 시대 연주가들의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음악을 연주하는 기존의 방식이 작곡가가 살던 시대에도 동일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면서 1950, 60년대에도 종종 바로크 음악을 중심으로 당시의 악기를 재현하여 연주가 시도되기도 했으나, 본격적으로 시대 연주가 시작된 것은 1970년대이다.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1970년대부터 각각 레온하르트 콘소트와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을 이끌고 바흐의 칸타타를 포함하여 많은 바로크 레퍼토리를 녹음했다. 프란츠 브뤼헨, 존 엘리엇 가디너, 시히스발트 카위컨, 조르디 사발,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로저 노링턴 등의 연주자, 지휘자도 이 시기에 연주를 시작해 1980년대부터는 왕성하게 활동했다.
1980년대부터는 시대 연주 음반이 대거 발매되었고 시대 연주가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1990년에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녹음했다. 여기에서는 트럼펫과 팀파니만 시대 악기를 사용했다. 1990년대 이후로는 바로크 음악 및 고전파 음악의 경우 시대 연주가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고, 존 엘리엇 가디너, 로저 노링턴, 요스 판 이메르세일 등의 연주자들이 고전파 이후의 레퍼토리도 적극적으로 개척해서 슈베르트, 브람스, 드뷔시 등의 음악에도 시대 연주를 적용했다. 요스 반 이메르세일의 경우에는 1930년대에 작곡된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에 시대연주를 적용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들이 시대 연주와 절충하여 연주를 택하고 있으며, 요즘은 시대 연주가들도 절충주의적으로 연주한다.
네빌 매리너는 1960년대부터 현대악기로 연주하면서 빠른 템포와 고전식 건반악기를 사용했고 아르농쿠르의 경우에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면서 현대악기로 시대악기 연주를 모방하려고 했다. 헤레베헤 같은 지휘자는 시대악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현대악기 오케스트라와 유사한 음색을 들려준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한편 이반 피셔는 왕립 콘서트허바우 관현악단과 베토벤을 지휘할 때 보편적으로 시대 연주에서 선택하는 전통적인 2관 편성을 취하되 곡마다 조금씩 변화를 주는 식으로 시대 연주의 성과를 도입하는 등, 시대 연주와 현대 악기 연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주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전통적인(traditional) 현대 오케스트라에 대한 연주 전통을 중시하는 연주자들도 있다.
3. 시대연주자들의 주장에 대한 논쟁
주요 시대연주가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독선적이고 과격하게 주장했다. 정격 연주나 원전 연주라는 표현을 쓰면서, 작곡된 당시에 사용된 악기와 편성 그대로 하는 연주 방식만 옳고, 현대적인 악기로 연주하는 연주 관행이 틀린 것이라 비판했다. 시대연주자들이 자신들의 방식만이 옳다는 과격한 주장을 많이 하는 바람에 이들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많은 사람들은 시대 연주는 음악이 작곡될 당시의 악기와 연주법만을 고집하는 연주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음악이 주는 감동 자체보다는 형식에만 집착한다고 여긴다. 시대 연주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는 음악이 주는 감동을 무시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또한 그들의 주장이 다소 원색적인 것은 진실이었다. 또한 어떤 부분은 왜곡된 부분이 있었다. 시대연주자들은 자신들이 정격성이라는 정당성,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주 강한 어조로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했다. 다수의 기성 음악인들이 학자들은 아니기 때문에 문헌연구를 들이대는 정격연주자들의 주장에 뭐라 반박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시대연주자들의 문헌 연구는 허점과 오류가 많았다. 나중에 이들 정격연주, 시대연주자들이 주장했던 내용 중 사실과 맞지 않거나, 그들이 유리한 자료만을 바탕으로 한 것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아르농쿠르는 상당히 극단적인 주장을 많이 했는데, 베토벤 교향곡 4번이 초연됐을 때 36명으로 연주되었으니, 그보다 많거나 적은 인원으로 연주되는 것은 역사적 고증에서의 의미에서 다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 정작 본인은 절충주의적인 연주나 만년에는 일반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존 엘리엇 가디너와 같은 지휘자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시대악기 이외의 현대악기로 연주하는 것은 잘못되었고, 시도해서도 안된다고 주장하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가디너는 슈베르트나 멘델스존 교향곡들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 등 현대 오케스트라와 공연, 녹음했다. 슈베르트 교향곡 8번은 베토벤 교향곡 9번보다 먼저 작곡된 곡이고, 멘델스존 교향곡 1번은 베토벤 교향곡 9번과 같은 해인 1824년에 작곡되었다.
시대연주자들은 단편적인 근거를 일반화하는 오류를 많이 저지른다. 예를 들면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서신을 근거로 당대에는 비브라토가 쓰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베토벤이 30여명으로 자신의 3, 4번 교향곡을 초연했기 때문에 오늘날도 그렇게 연주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렇게 파편적인 단서를 일반화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또 당시에 그렇게 연주되었다고 오늘날 그렇게 연주해야 한다는 주장도 독선적이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상황에 따라 자신의 작품의 연주에 있어서 상당한 융통을 발휘한 경우가 많았다. 베토벤이 교향곡 3, 4번을 비교적 작은 규모로 초연한 것은 당시 여건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3번은 초연 시에는 저택에서 작은 규모로 연주되었지만, 얼마 후에는 대형 공연장에서 다시 연주되기도 했다. 헨델은 자신의 메시아를 연주할 때 악보에 없는 악기를 집어넣어서 연주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대악기 연주자들이 베토벤만 연주하는 것도 아니고, 베토벤의 연주 해석 때문에 전체 시대연주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시대악기 및 연주만이 표현이 할 수 있는 음악의 가치가 분명하다. 그리고 비브라토 부분의 논쟁은 단순하지 않다. 어깨받침, 턱받침이 없는 현악기에서 비브라토를 현대악기처럼 안정적으로 할 수 있지도 않거니와, 보잉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부분이 많기 때문에 굳이 현대악기 연주처럼 비브라토에 집중하지 말라는 것이다.
3.1. 편성
아르농쿠르를 위시한 다수의 시대연주자들은 현대의 대형 오케스트라에서 관악기 연주자들을 더블링하는 관행을 비판했다. 대표적인 시대 연주가인 아르농쿠르는 과격한 주장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오케스트라 더블링을 금지한다던가, 오케스트라의 인원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 등 상당수는 나중의 연구 결과에 의해 반박당했다.사실 아르농쿠르는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등 현대악기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바 있고, 음악의 정격성에 대해 여러 차례 부정하는 견해를 나타낸 걸 보면 입장이 바뀐 듯. 애초에 아르농쿠르는 음악의 정격성과는 거리가 좀 있다. 본인 역시 커리어 초창기부터 음악에는 정격성이 존재하지 않고 음악가의 해석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며, 시대악기로 연주하는 것은 최대한 작곡가의 생각을 살리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 게다가 시대연주의 대표자 치고 루바토와 인위적인 아티큘레이션을 애용한 편이다.
어쨌든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자금 문제만 해결된다면 더블링하는 것을 매우 선호했다. 모차르트는 파리, 프라하, 만하임 등에서 큰 오케스트라를 동원할 수 있는 경우에 기꺼이 더블링, 트리플링을 했다. 그는 만하임의 큰 오케스트라와 연주할 때 여섯명의 바순주자를 동시에 기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크게 기뻐하기도 했다. 베토벤 역시 더블링을 적극적으로 선호했다. 일례로 그가 교향곡 9번을 초연할 때 케른트너토어 극장 오케스트라의 규모에 만족하지 못하여 오디션을 보아 증원된 오케스트라로 연주했는데, 모든 관악파트는 더블링으로 연주하도록 지시했다.
3.2. 해석에 대한 논란
베토벤 영웅 교향곡 1악장 코다에서 트럼펫이 상승하다가 하강하는 부분에서 어떤 시대연주자들은 '베토벤이 나폴레옹의 그릇된 행보를 풍자하기 위해 일부러 금관을 주저앉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이 부분을 영웅 서사 구조를 차용해 '영웅의 실패'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이 부분에서 다른 악기들의 선율과 달리 트럼펫이 상승하다가 하강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유난히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연주가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곡이 작곡되고 완성된 시기는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기 전으로 베토벤이 한창 나폴레옹을 숭배하던 시기였다. 베토벤은 이 작품이 나폴레옹에 대한 헌사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곡이 완성된 후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했다는 소식을 들은 베토벤이 격분해서 나폴레옹에게 바친다는 악보의 겉장을 찢었지만, 곡 자체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 시대연주자들이 스스로 고증과 정격성을 중요시한다고 주장하면서 기본적인 전후 관계조차 파악하지 않은 억지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보면 그들이 내세우는 시대연주의 고증의 정확성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게다가 처음에는 자신들의 방식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기성 오케스트라들을 까던 이들의 상당수가,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유명 프로 오케스트라에서 섭외가 들어오자 태세를 전환하여 아무런 해명도 없이 현대 오케스트라의 섭외에 응하며 활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작곡가들은 자기 음악을 연주할 때 연주 장소를 고려하여 편성에 변화를 주었다. 헨델의 경우 메시아를 생전에 몇 차례 연주하면서 사정에 따라 악보에 없는 악기를 추가했다. 트롬본은 현재 메시아 총보에 없는 악기이지만 기록에 의하면 헨델은 트롬본을 메시아 연주에 사용한 적이 있다. 다른 작곡가들도 이런 경우들이 있다. 따라서 바흐나 모차르트의 음악을 대편성 오케스트라로 연주한다고 해서 틀린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시대 연주가는 이제는 이러한 사실에 동의한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그렇지만, 독주 및 소편성 연주의 다양성을 제공하였고, 더 나아가 잊혀졌던 많은 바로크 시대의 곡들을 재발견하였으며, 현대악기 연주법에서 미쳐 표현하지 못한 영역을 발견하고 대중화 하였다는 측면은 충분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3.3. 후기낭만주의 연주
시대연주자들은 후기낭만주의 음악의 연주도 시도했다. 이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었다. 시대연주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시대 연주의 대상을 베토벤 이전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시대 연주를 그저 과거의 연주를 재현하기만 하는 것이라는 오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르네상스 이전의 음악과 바로크, 고전파 음악뿐 아니라, 말러나 슈트라우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음악이 시대 연주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후기 낭만주의 음악에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다. 한편 작곡가가 직접 일일이 악기 편성을 지시하거나 어떤 방법으로 연주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한 경우는 예외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시대 연주가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작곡 당시의 연주를 그대로 고정된 형태로 재현하는 것 자체보다는 당대의 연주 관습과 음악적인 효과를 발굴해내고 이를 통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바이올린 현의 재질 변화가 있던 시기에 작곡된 곡의 경우는 과거의 바이올린과 변화된 바이올린을 섞어서 편성한 오케스트라로 연주한다. 연구를 통해서 작곡가의 의도에 최대한 가깝게 음악을 표현함과 동시에 바로크 시대의 연주처럼 연주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보여주는 것을 지향한다.
시대연주자들이 후기낭만주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주장하는 정격성과도 배치되는 이율배반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가디너는 자신의 시대 악기 오케스트라로 브람스를 연주하고 말러도 연주한다. 헤르베헤는 1885년 초연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시대악기로 녹음했고, 역시 말러도 연주한다. 노링턴도 그의 시대악기 악단인 런던 클래시컬 플레이즈로 1885년 초연된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녹음했고 역시 말러도 지휘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시대연주로 후기낭만주의 곡들을 연주하는 당위성을 애써 주장하는데 이는 억지 주장에 가깝다.
1885년이라면 악기도 현대악기와 별 차이가 없다.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악기에 대해서는 일단 그들 의견을 수용한다고 해도, 이 시대에 이르면 현대와 연주 양식에서도 별 차이가 없다. 헤르베헤가 시대악기로 연주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의 경우, 이 작품을 실제로 초연한 사람은 아르투르 니키슈인데, 음반에서 알 수 있듯이 니키슈는 풍부한 비브라토를 활용하는 연주 양식의 지휘자였다. 헤르베헤와 로저 노링턴은 말러 교향곡도 비브라토 없이 연주한다. 그들의 연주는 그들 스스로가 주장하는 정격성에 어긋난다.
존 엘리어트 가디너는 베토벤 교향곡 9번보다 먼저 작곡된 슈베르트 교향곡 8번이나 멘델스존 교향곡 1번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같은 현대 오케스트라와 녹음했다. 베토벤 교향곡을 현대 악기로 연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사람이 베토벤 교향곡 9번보다 먼저 작곡된 곡을 현대 오케스트라와 녹음하는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더욱 모순적인 것은 가디너는 슈베르트나 멘델스존 교향곡보다 약 50년 후에 작곡된 브람스 작품들을 어떤 때는 시대악기로 연주하고 어떨 때는 현대 오케스트라로 연주했다. 1820년대 곡을 현대 오케스트라로 지휘하는 시대연주자가 있는 반면 1880년대 곡을 원전악기로 연주하는 등 시대연주자들의 주장과 행태는 내로남불과 이율배반이 난무한다.
노링턴은 “20세기 초 바이올린 연주가 크라이슬러가 집시 바이올린에서 모방한 비브라토를 확산시키기 전에는 현악기 연주자들이 비브라토를 거의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사실을 완전히 왜곡한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20세기 초에 녹음된 음반들만 들어봐도 노링턴의 주장이 거짓임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음악학자들 역시 노링턴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노링턴의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20세기 초에 처음 비브라토 주법이 나타나자 불과 몇년 사이에 전세계 모든 현악기 연주자들이 비브라토 주법을 배워 완벽하게 비브라토를 연주했다는 것이 된다. 바이올린을 배워본 사람이면 알지만 현악기 연주법의 핵심인 비브라토 주법을 다 큰 성인이 몇년만에 배워서 주법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게 말이 되는가.
악기를 배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소한 습관도 바꾸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이 사소한 변화가 그 사람의 연주 생명을 좌우할 정도로 크고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시대연주자라면 악기 발달사에 대해서도 잘 알텐데, 그렇다면 위 주장이 말이 안된다는 것은 노링턴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악기와 연주법 발전에 있어서 가장 큰 저항 요소가 된 것은 다름 아닌 연주자의 연주 습관이었다. 관악기의 발달사에서 수많은 편리한 기술적인 개량이 나타났지만 연주자들이 주법을 바꾸기 싫어해서 사장된 경우도 무척 많다. 밸브 호른이 개발되고 나서도 도입되는데 거의 100년이 걸렸다. 트롬본은 연주자들의 저항 때문에 끝내 밸브 시스템이 채택되지 못하고 원시적인 악기로 남아 있다. 클라리넷 연주자들은 한번 뵘식, 독일식 운지법을 배우고 나면 평생 그 방식을 고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른의 경우를 들자면 프랑스에서만 사용되던 피스톤 어센딩키 방식이 있는데, 1970년대 파리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에 취임한 다니엘 바렌보임이 프랑스식 피스톤 호른의 둔탁한 사운드를 참지 못하고 현대식 악기로 바꿀 것을 명했다. 그 결과 파리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두 현대식 로터리 호른으로 바꾸긴 했는데, 어센딩방식 운지법을 바꾸기 싫어서 3번 관을 짧은 것으로 교체해서 계속 어센딩키 방식으로 연주했다고 한다.
3.4. 변론
요즘은 시대 연주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시대 연주가가 많지 않다. 요즘은 정격 연주나 원전 연주같은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역사주의 연주 혹은 시대 연주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음악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시대의 방식으로 연주한다고 해서 그 시대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는 연주 관습과 공연 환경뿐 아니라, 음악을 듣는 관객들의 정서 역시 전혀 다르므로 단지 작곡가가 살아있을 당시의 연주를 재현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다른 음악인 것이다.4. 대표적인 특징
- 악보에 등장하는 지시를 대부분 지키고자 한다. 특히 고전파 음악과 그 이전 사조의 음악의 시대 연주를 들으면 빠르게 연주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시대 연주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이전의 연주들이 느리게 연주하거나 연주자가 템포를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생략된 도돌이표를 지켜서 연주하는 경우도 많다.
- 오케스트라가 소편성인 경우가 많다. 오케스트라의 편성은 과거부터 컸던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커졌기 때문. 각 성부의 소리가 섬세하고 정교하게 들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비브라토를 사용하지 않는 특징과 함께 물려 오늘날의 대형 콘서트홀에서는 음량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 비브라토를 억제한다. 바로크 시대에 비브라토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현대와 같이 빈번하게 사용하지는 않고 특별한 효과를 위해서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 피치(음고)가 현대와 다르다. 오늘날에는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표준 피치가 있으나 과거에는 조율법이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현대보다 반음 가량 낮게 조율된다. 현대에는 440Hz에서 445Hz정도를 사용하지만 바로크 시대에는 415Hz를 사용했다. 또한 프랑수아 쿠프랭, 마랭 마레, 장필리프 라모와 같은 프랑스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3]은 440hz보다 온음 낮은 음고를 사용했으며, 독일의 오르간은 465~490hz, 즉 현대보다 반음~온음 더 높게 조율되었다.[4] 고전파 이후의 음악에서는 430hz의 음고를 사용한다.
- 바로크 음악에서 장식음을 많이 사용하고 연주의 즉흥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 많은 악기들이 현대에 올수록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많이 개량되었는데, 시대연주에서는 그 음악이 작곡된 당시의 악기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바로크 시대의 첼로는 활이 현재와 달랐고[5], 지판이 현재보다 짧았으며, 뒷판의 볼록함도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첼로를 받혀 주는 핀이 없어 종아리로 악기를 고정해야만 했다. 또한 바이올린도 턱받침대가 없고 지판의 길이도 짧으며, 활의 모양도 지금처럼 직선형이 아닌 중앙이 패인 곡선 모양이었다.
- 지휘봉도 당대의 형식으로 만들어 지휘한다. 장바티스트 륄리의 음악은 지휘자가 짧은 지휘봉을 휘두르지 아니 하고 긴 지휘장(持揮杖, Staff)으로 바닥을 내리찍어 지휘하기도 한다.
이는 보편적인 특징일 뿐 오늘날에는 절충주의적인 해석을 취하는 현대 악단이나, 현대적인 연주 방식을 택하는 시대 연주가도 많다. 이는 철저히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5. 기타
5.1. 리프킨 가설
시대 연주가이자 음악학자인 조슈아 리프킨이 주장한 가설로 바흐의 칸타타의 합창은 합창단이 아니라 각 성부당 한 명의 가수가 맡아 노래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합창과 독창 모두 소프라노와 카운터테너, 테너, 베이스가 각각 1명씩, 총 4명의 가수가 바흐 칸타타의 합창과 독창을 맡았다는 것이다.이는 당시 바흐가 칸타타를 작곡한 상황에 근거한다. 바흐는 토마스 교회 부속 학교의 합창단을 기용해 매주 여러 교회에서 칸타타를 연주하도록 했는데,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인원이 많지 않다는 경제적인 이유로 극단적인 소규모 연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러므로 바흐는 칸타타를 작곡할 때 이걸 염두에 두고 작곡을 했을 거라고 추정 가능하다. 조슈아 리프킨 본인도 이 가설에 따라 바흐를 연주했다.
지휘자 앤드류 패럿의 마태 수난곡이 리프킨 가설에 따라 녹음한 첫 마태 수난곡이다. 이밖에 콘라트 융헤넬, 폴 맥크리쉬, 시히스발트 카위컨, 존 버트 등이 리프킨 가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바흐의 녹음을 내놓고 있다. 칼 리히터의 연주에서의 웅장함은 느낄 수 없으나 대신 분명한 발음을 들을 수 있고 어느 성부 할 것 없이 묻히지 않고 제 소리를 낸다는 장점이 있다. 듣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데,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대규모 합창으로 연주하는 칸타타에 익숙한 사람들은 소리가 너무 빈약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카라얀이나 칼 리히터는 이러한 현상을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리히터는 시대악기 연주가 곧 사라질 연주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 같이 현대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지휘하는 지휘자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가설대로 연주할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모든 곡을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가령 바흐의 B단조 미사와 같은 곡을 연주할 때 바흐의 상황이 현실적으로 그러했다고 해도 바흐의 의도는 그렇지 않을 수 있고 곡 내부에서도 표현력이 필요한 부분에서 소규모 합창단으로는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없다는 등의 비판은 아직까지도 존재하기도 한다.
6. 시대연주 음악가
- 존 엘리엇 가디너
- 필립 헤레베헤
- 트레버 피노크
-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 프란스 브뤼헨
-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 요스 판 이메르세일
- 조르디 사발
- 에마누엘 아임
- 리처드 이가
- 줄리아노 카르미뇰라
- 앤드루 패럿
- 지기스발트 쿠이켄
- 페데리코 마리아 사르델리[6]
- 안드레아 마르콘
- 리날도 알레산드리니
- 폴 맥크리쉬
- 페데리코 굴리엘모
- 조반니 굴리엘모
- 존 버트
- 디에고 파솔리스
- 알프레도 베르나르디니
- 체칠리아 베르나르디니[7]
- 바르톨드 쿠이켄[8]
- 사토 슌스케
- 료 테라카토
- 얀 빌렘 드 브렌드
- 파비오 비온디
- 알렉세이 루비모프
- 로날트 브라우티함
- 폴 바두라-스코다
- 오타비오 단토네
- 아르튀르 스혼데부르트
- 크리스틴 쇼른스하임
- 로버트 레빈
- 브루노 바일
- 에이드리언 챈들러
- 피터-얀 벨더
- 크리스티안 베주이덴하우트
- 안드레아스 슈타이어
- 이자벨 파우스트
- 레이첼 포저
- 르네 야콥스
- 크리스티네 쇼른스하임
- 알렉산더 멜니코프
- 장-기엔 케라스
- 니콜라스 알트슈타트
- 요르요스 페트로우
7. 시대연주 단체
-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
-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Venice Baroque Orchestra)
- 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
- 바흐 콜레기움 재팬
-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
- 에스페리옹 XXI
- 라 쁘띠 방드
- 레온하르트 콘소트
- 아카데미아 비잔티나(Accademia Bizantina)
- 라 샤펠 르와얄
- 라 세레니시마(La Serenissima)
- 모도 안티쿠오(Modo Antiquo)
- 라르테 델라르코(L'Arte dell'Arco)
-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
-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 콘체르토 이탈리아노(Concerto Italiano)
-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 르 콩세르 데 나씨옹
- 라 카펠라 레이알 데 카탈루냐
- 라 체트라(La Cetra Barockorchester Basel)
- 아니마 에테르나
- 에우로파 갈란테(Europa Galante)
- 타펠무지크(Tafelmusik)
- 무지카 에테르나
- 앙상블 마테우스
- 콘체르토 쾰른(Concerto Köln)
- 아르테 델 수오나토리(Arte dei Suonatori)
-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Camerata Antiqua Seoul)
- 무시카 안티콰 쾰른(Musica Antiqua Köln)
- 알테 무지크 쾰른(Alte Musik Köln)
- 무시카 안티콰 루시카(Musica Antiqua Russica)
- 네덜란드 바흐 소사이어티
- 프라이부르거 바로크오케스트라
8. 고음악 레이블
대부분의 고음악 전문 레이블들은 시대연주로 연주된 음반들을 취입한다. 르와조뤼르는 바이올리니스트 얍 슈뢰더, 지휘자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등이 몸담았던 레이블, 소니 산하의 비바 아르테와 도이치 아르모니아 문디는 첼리스트 안너 빌스마와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있던 레이블, 다스 알테 베르크는 텔덱 산하로 최초로 시대악기 연주를 취입하였다.
[1]
존 엘리엇 가디너는 1968년에 자신의 시대 악기 악단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낭만과 혁명 오케스트라, 몬테베르디 합창단을 창설하여 지휘하면서, 한 편으로 아주 유명한 악단들은 아니었지만 현대 악기 악단을 지휘하거나 음악 감독직을 역임했다. 가디너가 명성을 얻은 후 달라진 것은 그가 지휘하던 현대 악기 악단의 이름값 정도?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시대 악기 악단 연주 또한 꾸준하게 하고 있다.
[2]
물론, 여러 차례 개정하면서 죽기 전까지 행했던 마지막 개정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는
교향곡 5번이나 2악장과 3악장의 순서 문제와 4악장의 해머 타격 횟수 문제로 논란이 많은
교향곡 6번 등과 같은 곡들도 있지만 많은 곡들에 대해 명확한 지시를 해 놓았다.
[3]
간혹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나
아고스티노 스테파니,
아르칸젤로 코렐리같은 작곡가들의 작품에도 392~397hz의 음고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4]
그래서 이것 때문에 일부
절대음감인 사람은 실제 음과 다르게 들려 상당히 신경쓰일 수도 있다.
[5]
다른 현악기도 마찬가지였다.
[6]
이 사람은 작곡도 한다. 이탈리아 바로크 풍으로 쓴 곡이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사르델리가 직접 쓴 현을 위한 협주곡 C장조
[7]
알프레도 베르나르디니의 딸
[8]
지기스발트 쿠이켄의 동생
[9]
조르디 사발이 운영하는 레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