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09 00:40:24

성이성

成以性
(1595년 ~ 1664년)

조선 중기의 인물. 자는 여습(汝習), 호는 계서(溪西). 성안의의 아들. 경상북도 봉화군 출신.

학업에 열중해 13세 때 정경세가 "크게 될 인물"이라 평가했고 1610년에 진사가 되었지만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다가 1627년에 병과로 급제했으며, 1634년부터 1659년까지 정언, 교리, 부수찬, 부교리, 지평, 부수찬, 부응교, 교리 등의 관직을 여러 번 지냈고 중간에 관직이 교체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기록된 관직인 정원이 사간원의 정6품 관직이고, 과거 병과로 급제했다는 것을 고려할 때 1627년과 1634년 사이에도 관직생활을 했을 것이나, 직급이 낮아서 기록이 안 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1637년에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호남 지방을 순찰했으며, 1639년, 1647년에도 암행어사로 파견된다. 1648년에 담양에서 수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축조하고 나무를 심었고, 그가 죽고 난 이후에 황종림이 제방을 축조해 관방제림이라는 숲을 조성하게 되었다.

1660년 1월에는 강계 부사가 되었고 진주, 강계 등 4개의 고을을 다스렸으며, 사후에는 1695년에 청백리로 뽑혔고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계서유고가 있고, 그가 살던 생가인 계서당은 후손들이 중건해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에 보존되고 있다.

춘향전 이몽룡의 모델이다. 이몽룡이 암행어사인 것은 그가 3차례에 걸쳐서 암행어사가 되어 호남 지방을 순찰한 것을 반영한 것이며, 이 경험을 호남암행록이라는 책으로 남겼다. 이몽룡이 탐관오리 변학도를 비판한 시로 유명한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 千人血: 금잔의 맛좋은 술은 천백성의 피요)/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肴 萬姓膏: 옥쟁반의 맛난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니)/촉루낙시민루낙(燭淚落時 民淚落: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이 눈물 쏟고)/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 怨聲高: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도 높더라)"는 실제로는 성이성이 지은 시이다. 또한 현재 후손에게 전해 내려오는 어사화판에는 광한향악(광한루에 퍼지는 꽃향기)라는 말이 적혀있다고 한다.

대체역사 소설 '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에서는 인조의 총신이자 어사 신분으로 주인공과 만나 발탁하는 스승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