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2 00:06:01

설관수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설관수
薛灌洙[1]였는데, 이후에도 두 한자 표기가 혼용되는 것이 보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의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정보에는 설권수(薛權銖)로 오기되어 있다.]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일(一) / 서산(曙山)
본관 순창 설씨[2]
출생 1899년 5월 16일
경상남도 창원군 부내면 중동리
(현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중동 498번지)
사망 1972년 12월 27일
상훈 대통령표창 추서

1. 개요2. 생애3. 선거 이력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정치인. 1992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독립유공자 설창수는 그의 9촌 삼종질(三從姪)이다.

2. 생애

1899년 5월 16일 경상남도 창원군 부내면 중동리(현 창원시 의창구 중동 498번지)에서 아버지 설희진(薛喜瑨, 1873. 11. 15 ~ ?. 9. 22)과 어머니 분성 배씨(盆城 裵氏, 1873. 8. 25 ~ ?)[3] 사이에서 3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 정치경제과를 졸업했다.

1919년 3월 28일 창원군 창원면 장날에 공도수(孔道守)· 구재균(具在均)· 김호원(金浩元)· 조윤호·신갑생(申甲生)· 조희순 등과 함께 장터에서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날 시위군중 7,000여명이 모였는데, 이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며칠 뒤 4월 2일 제2차 시위운동에도 7,000여명의 군중들이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들이 총검으로 위협하여 시위는 일단 중지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른 주동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결국 그해 5월 1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아 마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8년 2월 7일 창원청년동맹 창립에 참여해 부의장 및 집행위원에 취임했다. 1929년 3월 10일 동아일보사 마산지국 고문에 임명되었다. 1931년 7월 26일 창원군 창원면 소계리(現 창원시 의창구 소계동) 129번지[4]에 창원곡자(麯子)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1937년 5월 10일 경상남도 도평의회 의원 총선거에 창원군 대표로 출마해 당선되었으나, 같은 해 8월 23일 돌연 사임했다. 1939년 11월 창원군 창원면, 동면, 북면, 내서면 등 자기 소유의 논에서 소작하는 소작인들이 극심한 가뭄을 당하자, 기존에 4할이던 소작료를 전면 면제해주었다. 같은 해 11월 22일 함안군 산인면· 함안면· 가야면의 광업권 이전을 등록했다.

8.15 광복 후에는 창원군 청년연합회를 결성하여 청년운동에 종사했으며, 창원군 창원면 중동리(現 창원시 의창구 중동) 592번지에 적성주조장(赤城酒造場)을 설립해 탁주 제조업에 종사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군 을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자유당 이용범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군 을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당시 무투표 당선을 원하던 자유당 이용범 후보로부터 입후보를 포기하라는 협박을 당하기도 했으며, 마산경찰서 수사계장 송평조(宋平朝)가 이 과정에서 경찰을 동원해 입후보등록 서류심사를 부당하게 지연시키기도 했다.[5] 결국 본 선거에서 자유당 이용범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군 을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같은 지역구의 제2대 국회의원 출신이던 무소속 김봉재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1972년 12월 27일 별세하였으며,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종류 선거구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54 제3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창원군 을[6]

[[무소속(정치)|
무소속
]]
751표 (1.79%) 낙선 (5위)
1958 제4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창원군 을[7]

12,103표 (32.13%) 낙선 (2위)
1960 제5대 국회의원 선거 5,204표 (15.69%) 낙선 (3위)

[1] 원래 이름은 薛 [2] 참의공파 61세 진(鎭) 항렬. 족보명은 설진철(薛鎭鉄). [3] 배찬억(裵讚億)의 딸이다. [4] 현재 이 자리에 창원테크노밸리가 위치해 있다. [5] 1962년 1월 11일 경향신문 기사 [6] 제21선거구 [7] 제29선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