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동아시아의 전통 도량형으로 곡식을 세는 가장 큰 단위이다.1석(섬) = 10두( 말) = 100 되 = 1000 홉이다. 1홉은 180.39 ml[1]이므로 1석은 약 180 리터가 되며 무게는 150~200kg 가량이 된다. 중국에서 석의 크기는 시대에 따라 매우 달라졌으나, 청나라 때에는 약 103.5 리터 정도였다. 현대 중국에서는 깔끔하게 100 리터로 정의한다.
석( 石)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사용하던 용량단위로 한서에도 기록된 바 있다. 원래는 120 근을 뜻하는 무게단위였으나 한나라 때부터 곡식의 용량을 재는 단위로 사용하였다.
곡( 斛)이라고도 한다. 이 한자는 당나라 이전까지는 석의 속칭이었으나 후대에는 그냥 동의어가 되었다.
2. 지역별 양상
2.1. 한반도
한반도에서는 특이하게도 석을 가리키는 단위가 작은 것과 큰 것이 따로 있었다. 신라시대에 15말을 1석으로 삼는 단위와 20말을 1석으로 삼는 단위가 병용되다가 고려시대에 15말을 기준으로 하는 쪽으로 정리가 되었다. 그러나 고려말에 다시 민간에서 20말을 1석으로 하는 단위가 통용되자, 조선은 소곡(小斛)과 대곡(大斛)이란 이름으로 아예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하기로 정하였다.조선에서 정한 소곡과 대곡의 용량을 국제단위계로 환산하면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기준이 되는 자의 길이가 얼마인지 혼선이 있기 때문인데, 세종대왕 때 교정된 영조척(營造尺)이 30.8 cm라는 설에 따라 환산한다면 소곡이 약 85.9 리터, 대곡이 114.53 리터 정도 된다.[2] 일본이 사용하던 석 단위가 약 30말로 소곡의 2배, 대곡의 1.5배쯤 되었다.
-
1두(말) = 10되 = 100홉
(1홉은 약 57.27 ml으로, 일본 홉의 1/3쯤 된다.)
- 15두 = 소곡
- 20두 = 대곡
16세기 말에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세종 때 만든 표준 도량형기가 소실되었다. 전란이 끝난 후 조선 조정은 도량형을 복구하고자 하였으나 자의 크기가 살짝 커졌고, 따라서 관련 도량형도 줄줄이 영향을 받았다. 조선 말기에 이르면 도량형이 혼란스러워 큰 문제가 될 수준이었지만 조선 조정은 이를 바로잡을 수 없었다. 이 문제는 일제의 압력으로 1905년에 한 석을 180리터로 정하는 등 일본과 단위를 통일하면서 해결되었다. 현대 한국에서는 이 영향으로 흔히 한 석이라고 하면 일본과 마찬가지로 180리터를 기준으로 말한다.
심청전에 나오는 공양미 3백 석을 조선시대 단위에 기준하여 환산하면 소곡으로는 약 25,770리터, 대곡으로는 약 34,360리터가 된다. 이를 현대의 도정미 기준으로 '쌀의 무게'로 바꾸면 소곡 3백 석은 약 20.6톤, 대곡 3백 석은 약 27.5톤이 된다. 20톤으로 계산해도 2020년 기준 약 5588만 원이다.
한국어에서는 석을 '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5말짜리 석을 점(苫)이라고 쓰기도 하였다.
현대 한국에서 쌀 1석의 무게는 약 160 kg, 쌀 1가마니는 약 80 kg인데 쌀 1석(섬)은 2가마니이다. 즉 쌀 한가마니는 소곡 한석과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마트나 시장 등 소매점에 유통되는 쌀 한 포대는 40 kg짜리(1/4석), 일반 가정용은 20 kg짜리(1/8석)가 일반적이며 최근에는 1인가구 증가 등으로 10 kg, 5 kg 등의 소포장도 많이 보인다.
참고로 가마니는 고유어로 생각하기 쉬운데, 의외로 일본어에서 유래한 외래어 단위다. 일본어 카마스(かます)가 변형되어 정착한 것인데, 상기한 대로 일제의 압박으로 구한말 한일 도량형을 통일시킨 흔적이다.
2.2. 일본
오늘날 한국과 일본에서 통용되는 1석의 기준은 1669년에 에도 막부가 정했다. 일본에서 1석은 국제단위계로 환산하면 약 180.39 리터였으나, 근대화 이후에는 180 리터로 하였다. ' 고쿠다카' 단위의 기준이 되는 석 단위는 이쪽이고, 한반도에도 구한말에 일본의 압력으로 일본의 석 단위를 채택하여 일제강점기는 물론 광복 이후로도 널리 사용한다.에도 막부는 일반 성인 한 명이 하루 생쌀 한 컵으로 밥을 지어서 두 끼씩 먹으면 1년을 생활할 수 있다는 기준으로 1석으로 정했다. 일본인이 하루 세 끼씩 먹기 시작한 때는 겐로쿠 시대부터였다. 농지를 개간하여 쌀 생산량이 증가하고 세 끼씩 먹을 수 있게 됨은 좋았지만, 쌀이 남아 돌아 불경기를 초래하여 쌀 쇼군이라고 불리게 된 도쿠가와 요시무네 덕분이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지금처럼 쌀을 무게로 재는 대용량 계량기( 저울)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무로 만든 측량기를 사용하여 부피로 쟀는데, 현대의 기준으로 1홉은 무게로 치면 150g이었고 따라서 1석은 그 1000배인 150kg 정도다. 쌀겨를 벗겨내고 도정한 하얀 생쌀 1석의 무게는 135 kg 정도였다. 즉, 1석이란 당시의 일본인 성인 남성 1명이 하루에 두 끼씩 현미로 밥을 지어 먹는다고 가정하고 1년간 먹을 수 있는 단위였다.[3]
옛날 일본의 다이묘들의 영지규모를 환산할 때도 이 石자를 쓴다. 이를 석고(石高), 고쿠다카라고 하는데[4], 이 뜻은 그 영지에서 나온 쌀의 양을 의미한다. 100만석의 영지를 가지고 있는 다이묘는 100만석의 쌀을 수확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영주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석고는 순수 쌀농사 외에도 무역이나 공업 등도 반영된다.
[1]
우리가 아는 그 자판기 커피 종이컵으로 가득 채워서 한 컵이다.
[2]
인터넷상에 올라온 자료 중에서는 소곡이 약 91.7
리터, 대곡이 122.3
리터 정도라고 쓴 것도 있다. 이는 현존하는 유물로 추정된 영조척의 값 중 하나를 인용한 계산인 듯하다. 그러나 현존하는 영조척 유물이나 영조척으로 만든 물건에서 역추적한 영조척의 최대-최소 길이는 2 cm 정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계산을 신뢰하긴 어렵다.
[3]
이것도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1년 365일간 남자 1명이 쌀 한 홉씩 두 끼를 매일 먹는다고 해도 730홉이다. 1000홉이 되기엔 부족하다. 오히려 하루에 세 끼를 먹는다고 가정해야 1000홉에 더 가깝다. 날수를 양력이 아니라 음력을 기준으로 생각해도 마찬가지이다.
[4]
여기서 한자 '石'는 위에서 언급한
斛(휘 곡, 괵)의 대자이기 때문에 '石'는 일반적인 음독인 '세키(セキ)'가 아니라 '고쿠(コク)'라고 읽는다.